땅이름과 우리말 / 강원 정선 꽃벼루
벼루와 벼랑
비탈의 뜻 ‘별’에서 나온 친척 이름들
정선 땅 하늘 넓이가 겨우 15평
강원도 정선 고을은 너무도 험한 산악지대. 옛날에는 이 고을에 부임해 오는 현감마다 여기 오기를 힘들어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산굽잇길을 돌다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현감을 따라오던 부인마저 노래로 이렇게 탄식을 했단다.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여기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꽃베루에서 ’베루‘는 ’벼랑‘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정선 고을에 들어와 선정을 베풀었다는 오 현감의 부인이 꽃베루와 성마령(星摩嶺)을 넘으며 지루함을 달래느라고 불렀다는 이 노래가 정선아리랑의 하나로 남았으니 그 민요가 왜 구슬픈지를 알 만도 하다.
산이 많고 골이 길어 들어올 때는 울지만,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들고 아늑해서 웃고 산다는 고장.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그의 작품 양반전에서도 산간벽지로 그린 강원도 정선이다.
그래서 정선 읍내 중심에서 하늘을 보니 그 넓이가 겨우 15평이란다. 일제 때 철도 부설로 언덕을 깎아 하늘이 한두 평은 더 넓어 보인다나?
꽃베루는 꽃벼루라고도 한다.
이런 얘기가 있다.
오 현감과 함께 가마를 타고 꽃벼루재를 넘던 부인이 너무나 지루해 탄식을 하자, 그것을 보다 못한 현감이 나졸들에게 물었다. (꽃벼루재는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의 한 고개다.)
“고을이 아직 멀었느냐?”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나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되옵니다”
그러나 한참을 더 가도 아직까지 깊은 산골짜기.
“저 산베루만 돌아들면 되는감?”
산베루를 돌아들어도 계속 벼룻길(벼랑길). 현감은 아예 머리를 밖에 내놓지 않고 물었다.
“아직 산베루는 안 끝났는가?”
“예, 산베루는 곧 끝나요.”
이젠 현감이 묻기도 전에 나졸들은 계속 외쳐댔다.
“곧 베루가 끝나요.”
“곧 베루가 끝나요.”
이렇게 해서 이곳이 ‘곧베루’가 되고, 변해서 꼿베루, 꽃벼루가 되었단다. 지금의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의 한 지명인 화연(花硯)은 이 꽃베루(꽃벼루)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베루는 벼랑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로서, 이곳에선 산굽잇길, 산기슭길의 뜻으로도 쓰인다. 곧베루의 ‘곧’은 가도 가도 끝없다는 뜻의 강원도 방언이기도 하다. 곧베루는 ‘매우 긴 산굽잇길’의 뜻이 되기도 하니, 나졸들은 이 뜻을 잘 모르는 현감에게 일부러 이 말을 써서 변명할 소지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빌(별)‘에서 나온 ‘벼랑’과 그 사투리들
낭떠러지의 험한 언덕을 ‘벼랑’이라고 한다. 물가의 위험스러운 벼랑을 ‘벼루’라 하고, 이런 곳에 난 길을 ‘벼룻길’이라 한다.
‘벼랑’, ‘벼루’의 ‘별’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머리’ 또는 ‘산’의 뜻인 ‘볃, ‘받’이 된다.
벼랑, 벼루의 사투리는 무척 많다. 베랑, 베랑체, 베렝이, 베레이, 베리, 베아리, 비랑, 비렝, 비렝이, 비렁이, 비량, 비낭, 빈냥, 비양, 비앙, 빈장, 베루, 벼락, 베락, 베락체, 베락창, 비락체, 비럭, 비룩 등.
비슷한 말에 ‘비탈’이 있는데, 이것의 사투리는 비락, 비알이다.
‘비탈’은 ‘빗(斜)’과 ‘달(地)’이 합쳐 이루어진 ‘빗달’이 변한 말로 보인다.
빗+달=빗달 >비탈
기울거나 어긋남을 뜻하기도 한 이 ‘빗’은 ‘비뚜로’, ‘비키다’, ‘비스듬하다’, ‘비슷하다’ ‘빗장’, ‘비틀비틀’ 등의 관련 낱말들이 나오게 했다. 접두사로서의 ‘빗’은 ‘빗근길’(경사진 길), ‘빗금’(비스듬히 그은 금), ‘빗꺾다’(엇비슷하게 꺾다), ‘빗나가다’, ‘빗듣다’(틀리게 듣다), ‘빗디디다’(잘못 디디다), ‘빗뜨다’(눈망울을 옆으로 굴려서 뜨다), ‘빗맞다’(잘못 맞다), ‘빗보다’(틀리게 보다), ‘빗서다’(방향을 좀 틀어서 서다) 등의 말을 이루게도 했다.
“저리 비켜.”
여기서의 ‘비켜’는 ‘빗겨’가 변한 말로 제 길에서 옆으로 벗어나 있으란 뜻이다.
옛 문헌을 보자.
․‘고히 곧고 누니 빗도다’(鼻直眼橫=코가 곧고 눈이 비뚤다) <금강경삼가해․권二.11>
․‘빗근 남 라 나마시니’(干彼橫木 又飛越夸=늘어선 나무를 날아 넘었으니)<용비어천 가․86장>
․‘나모 히 길혜 거시니’(樹陰橫路=나무 그늘이 길에 비쳤으니) <백련소해․4>
․‘빗근길 사(斜)’ (비탈진 길) <역어유해․上6>
벼랑 이름이 한자의 성(星)으로 많이 나타나
‘비스듬하다’, ‘비탈’, ‘벼랑’의 바탕인 이 ‘빗’은 산이 많은 이 나라 여기저기에 많은 관련 땅이름들이 깔아 놓았다.
옛 땅이름 중에도 이러한 뜻이 들어간 것이 적지 않다.
고구려 때의 평진현(平珍峴.)(강원도 통천군 속현)은 ‘벼랑고개’의 뜻인 ‘별재’로 유추되고 있다. 역시 당시 지명인 비례홀(比例忽.淺城)(.함남 덕원군)도 ‘벼랑골’의 뜻인 ‘비래골’이 원이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비탈골’로 유추되는 ‘비달홀(非達忽)’(압록수 이북 미강성-未降城,) ‘빗벌’로 유추되는 ‘비화(比火)’(경북 경주 안강읍) 등도 있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의 옛 땅이름 ‘비중(比衆)’, 전에 충남 회덕군이며 지금의 대전시 일부로 들어간 ‘우술(雨述)’(※뒤에 비풍.比豊)도 각각 ‘빗골’, ‘빗수리’(또는 ‘붇수리’)로 유추된다.
전북 전주시의 옛 이름은 ‘비사벌(比斯伐.比自火)’인데, 이를 ‘양지쪽들’의 뜻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으나, 이 역시 ‘언덕이 진 벌’, ‘널리 퍼진 벌’의 뜻일 것이다.
경북 성주군의 통일신라 때 이름은 벽진(碧珍)군으로, 이 역시 벼랑의 뜻인 ‘별’의 소리빌기로 보고 있다. ‘벽’에서 ㄱ을 뗀 ‘벼’에 ‘돌(珍)’의 ‘ㄹ’을 받침으로 붙여 ‘별’을 이두식으로 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도 ‘나픈별’(높은 벼랑), ‘독별’(돌 벼랑) 원이름일 것으로 보이는 난은별(難隱別. 경기 파주시 적성면), 옹천甕遷(황해 옹진군) 등의 고구려 때 지명이 있다.
‘벼랑’이 한자식 땅이름에서 별(星), 보리(麥) 등 한자로는 여러 글자로 나타나지만, ‘벼랑’이나 ‘비탈’의 뜻은 그대로 지닌다.
조선시대 정약용의 <아언각비>나 노사신 등의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벼루’를 ‘천(遷)’자로 취했음을 알려 준다.
․‘천遷(벼로.벼랑.병애)이란, 물이 양쪽 산골에서 나와 그 양쪽 언덕에 임박하는 길을 말하는데,…천(遷)을 방언으로는 ‘벼로(別吾)’라고 한다’ (水出兩狹中,其兩厓水之路…遷方言別吾) <아언각비 권.2>
․‘도미천은 7~8리나 얽힌 돌길이며, 신라 방언으로 물가의 언덕으로 돌이 많은 길을 천(遷)이라 한다.’(渡迷遷...石路索紆七八里新羅方言 多以水崖石路稱遷) <동국여지승람․여주 산천조>
은성천과 문경천이 합치는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의 물가 벼랑을 ‘팃재이(톳재이배리)’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토천(兎遷)’ 또는 ‘곶갑(串岬)’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을 전해 주고 있다. ‘톳재이’는 ‘토끼’란 뜻의 사투리.
‘고려 태조가 신라를 치러 가는데, 벼랑길에 막혀 어찌할 줄 모르는 중에 산토끼가 벼랑 위를 지나는 것을 보고 그 토끼를 따라 길을 찾았다. 토끼가 알려 준 벼랑이니 ‘토천(兎遷)’이 된다.’ <동국여지람>
이 책에서는 이 밖에도 ‘견천(犬遷)’(경남 합천시), ‘와천(瓦遷)’(평북 창성군), ‘동천(銅遷)’(함남 갑산군) 등의 ‘천(遷)’자 지명을 보여 주고 있다.
'빌(별)‘에서 나온 숱한 땅이름들
‘별’은 그대로 ‘벼랑’의 옛말이어서 ‘낭떠러지’의 뜻이 들어간 지명들에 ‘별(別)’, ‘성(星)’자가 많이 취해질 수 있었다.
전남 순천시 별량면의 ‘별량(別良)’은 ‘벼랑’의 취음인데, 이곳은 고려 때 ‘별량부곡(別良部曲)’이었다. 평북 강계군 입관면 고개동의 ‘별한(別汗)’도 ‘벼랑’을 표기한 것이다.
특히, 산이 많은 북한에는 ‘산양별(山羊別)’(함남 장진), ‘적별(赤別’), ‘사양별(斜陽別)’(풍산), ‘별하(別河’)(평북 강계) 등 별(別) 지명들이 많은데, 이들 마을은 각각 장진강, 허천강, 부전강 등의 강가에 있다. 평북 만포시에는 ‘별오(別午)‘, 희천군에는 ‘하별(河別)’, 함남 학성군에는 ‘청별안(靑別崖)’ 등의 지명이 있다.
벼랑의 다른 이름인 벼루’를 별우(別隅’)로 취한 이름들도 북한에는 많다.
강원 금성군의 별우(別隅)
강원 이천군의 갈별우(葛別隅)
평남 덕천군의 두별우(頭別隅)
함남 장진군의 독별우(獨別隅)
고별우(高別隅) 내별우(內別隅)
신홍군의 소별우(小別隅)
‘별’(벼랑)과 ‘별(星)’은 음이 같아서 성산(星山), 성곡(星谷), 성암(星岩) 등의 지명들도 나왔는데, 이러한 지명들은 특히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에 많다.
물가의 낭떠러지도 ‘벼루’이고 먹을 갈아 쓰는 도구도 ‘벼루’여서 벼랑의 뜻이 ‘벼루연(硯)’자로 취해지기도 했다. ‘벼루말’로 불리던 곳이 ‘연촌(硯村)’으로 바뀐 것이 그 대표적 예.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경원선의 광운대역은 원래는 연촌역(硯村驛)이었다. 이곳 중랑천 냇가 벼루(벼랑) 근처에 ‘벼루말(연촌=硯村)‘이란 마을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연촌역이라고 한 것은 벼루말의 한자식 이름이 ’연촌‘이서다. 연촌역은 성북역으로 남아 있었다가 2011년 8월 17일부터 광운대역으로 바뀌었다.
벼루말의 ‘벼루’는 문방사우의 벼루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지형이 벼루 같아서’, ‘명필이나 문인이 나올 곳이어서’ 등의 엉뚱한 해석이 붙는다. 월계동의 연촌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을 가운데 못이 있어 벼루의 물과 같아…’로 말하기도 하고, 벼루말 근처에 먹골(墨洞), 필암산(筆岩山.佛岩山)이 있어서 벼루, 먹, 붓으로 지세의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고 풍수적으로도 서술하고 있다.
별영창이 벼랑창으로
서울 용산구 용산강가에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수위측정소가 있다. 지금은 수위 관측을 하지 않는 구용산 수위관측소인데, 이 근처 한강변 비탈을 ‘벼랑창’이라 했다.
‘벼랑’이란 말이 들어가서 용산 산머리의 비탈 때문에 이 비탈 때문에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군대 별영(別營)의 창고인 별영창(別營倉)이 변한 이름이다.
이름이 나온 배경이야 어떻거나 강의 벼랑이 있기 때문에 ‘벼랑창’이란 이름이 자연스러워졌고 또 모두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충북 괴산군 도안면의 연촌리(硯村里)는 연치리(硯峙里)와 점촌(店村)을 병합하여 이룬 지명인데, 이곳에 ‘벼루재’라는 마을과 고개가 있다. 마을이 넓어 ‘안벼루재(內硯)‘와 ‘바깥벼루재(外硯)’로 따로 구분해 부르기도 했다. 같은 도 제천시 봉양면에는 박달재로 가는 벼랑길의 마을인 ‘벼루박달(硯朴里)’이 있다.
‘벼루’란 땅이름은 특히 강원도에 많다. 산지가 많은 지역 특성상 그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별어’, ‘베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벼루꾸미’(강원 양양군 양양읍 연창리)
‘질벼루’(강원 홍천군 북방면 장항리)
‘밤벼루(강원 栗硯)’(강원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꽃벼루(강원 花硯)’(강원 횡성군 둔내면 석문리, 정선군 북면 여량리)
‘벼리실(別谷里)’(충북 단양군 단양읍)
‘벼리실(星谷里)’(충남 금산군 남이면)
‘별말(別斗里)’(전북 고창군 고창읍)
‘달벼리(月星’)(전북 임실군 신덕면 월성리)
강원도 곳곳에 많이 보이는 ‘꽃벼루’는 불뚝 튀어나간 언덕의 뜻인 ‘곶벼루’가 변한 지명으로, ‘벼루(硯)’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피재도 비탈고개의 뜻인 비재일 듯
경북 구미시의 비산동(飛山洞)과 경주시 내남면의 비지리(飛只里)는 각각 ‘비재’, ‘비지’이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는 ‘빗구미(比里)’’가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비개’는 비탈진 물가의 뜻인 ‘빗개’가 변한 것이다. 버스 행선지 표시를 ‘비계’로 한 것이 보이는데 ‘돼지비계’와 관련 있는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삼척시 하장면으로 넘어가는 피재는 남한강과 낙동강 지류의 분수령이 되는 곳으로, 이 고개 서쪽으로는 남한강 발원지로 알려진 금대봉 고목샘이 있다. 태백시에서는 근처 검룡소(儉龍沼)를 발원지로 홍보하고 있다.
35번 국도가 지나가는 이 고개는 서쪽에 매봉산을 두고 있고, 그 북쪽으로 덕메기산(덕항산)으로 이어지는 긴 줄기를 끌고 있다. 행정구역상의 위치로는 태백시 황지동과 창죽동 사이.
이 고개는 한자로 ‘직치(稷峙)’로 표기하고 있으며, 고개 밑의 마을도 아울러 이 이름을 쓰고 있다.
이름이 ‘피재’이고, 한자로 ‘직(稷)’으로 표기하니, ‘피(稷)’과 관련한 이름으로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피’는 ‘비’가 격음화(激音化)했을 가능성이 짙다. 우리말이나 우리 땅이름은 격음화 현상에 의해 변해 온 것이 너무나 많다. 새바람(동풍)이 새파람, 갯벌이 개펄, 고가 코, 갈이 칼이 되는 식이다.
전국에는 ‘비재’라는 곳이 무척 많은데, 일부는 ‘빗재’로, 일부는 ‘피재’로 옮겨갔다. ‘비재’에서의 ‘비’는 ‘벼랑’의 뜻을 가진 ‘별’이나 ‘빌’에서 나왔을 것이며, 이것이 ‘빌재’나 ‘별재’로 되었다가 ‘비재’나 ‘벼재’로 되었으리라고 본다.
빌재(별재)>비재>피재
경북 구미시 산동읍 동곡리에 ‘비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여기서는 ‘벼재’라고도 부르면서 한자로 ‘성령(星嶺)’이라고 쓴다. 주민들은 이 고개를 달리 ‘벼랑재’라고도 하는데, 벼랑 때문에 이 이름이 나왔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벼랑’의 뿌리말이 ‘별’이었음을 ‘성령’이란 이름에서의 ‘성(星)’자가 잘 받쳐 주고 있다. 우리나라 산지 이름에 성산(星山), 성곡(星谷) 등 ’성(星)’자가 많은 것은 비탈이 대개 산지에 있기 때문이다.
충북 보은군 내북면의 성티리의 한 마을도 벼랑이 있는 고개 밑이어서 벼재, 비재라고 불려 오고 있으며, 한자로는 성티(星峙)라고 쓴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 금곡리의 비재는 한자로 비령티(飛嶺峙)라고 표기한다. 비재산의 한 안부에 있는 이 고개는 비탈의 ‘비’를 날비(飛)로 쓴 예이다.
지리산 피아골도 비알(비탈) 관련 땅이름
지리산 피아골의 관문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경남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19번 국도를 타고 북서쪽의 구례로 달리다가 화개장터 앞을 지나 2km쯤 더 간 외곡(外谷) 마을이 바로 그 곳이다.
이 마을에서 섬진강 큰 물줄기와 헤어져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연곡천의 작은 물줄기를 따라 오르면 피아골의 긴 골짜기가 주위의 갖가지 풍경을 펼쳐 보이며 산길을 안내한다. 목아재와 촛대봉이 반원형으로 터 준 골짜기를 오르면, 양쪽 산기슭에 기촌(燕谷), 가락골(楸洞), 중터(中基), 조동(助洞) 등의 마을들이 차례로 나타나면서 외진 산길의 적적함을 덜어 준다.
촛대봉 능선이 경남과 전남을 갈라놓았다. 옛날부터 두 도(道)의 사람들이 짚신을 끌고 오가던 가느다란 길 줄기들이 등성이를 나란히 얽어 느랏목, 뒷골재, 새끼미재 등의 고개들을 만들어 놓았다. 목아재를 감돌아 산길 왼쪽으로 비스듬히 발길을 꺾으면 조선시대에 원집이 있었다던 원터(院基)에 닿는다.
더 오르면 피아골을 만난다. 마을의 한자명은 직전(稷田), 피아골 골짜기를 직전계곡(稷田溪谷)이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전후에 빨치산의 본거지이기도 했고, 영화 ‘피아골’의 주무대이기도 해서 우리 귀에 그 이름이 생소하지 않다.
세간에선 이곳이 임진왜란 때 많은 살상이 있었고, 한말의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25 한국번쟁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이곳에서 피를 많이 흘려 ‘피의 골짜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피아골을 피(血)와 관련지어 땅이름의 원뜻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전쟁 때 피(血)를 본 곳이라고 해서 피아골이라고 했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도 이 곳이 엄연히 ‘피아골’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피아골을 ‘피밭골’이 원이름일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경솔하다. 지리산뿐 아니라 전국에는 수십 곳의 ‘피아골’이 있는데, ‘피(稙)’와 전혀 관련 없는 것이 적잖게 있기 때문이다.
<피아골 땅이름을 가진 곳>(주로 골짜기)
경기 포천시 내촌면 마명리, 이동면 도평리
전북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삼계면 덕계리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반곡리
전뷱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소사리
충남 서산군 지곡면 연호리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어의곡리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장재리, 내속리면 상판리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피아골과 비슷한 피아실, 피실(稷谷) 등의 땅이름이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고사리, 경북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 등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피를 꼭 ‘피’라는 음(音)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땅이름에서는 ‘비’가 격음화해서 ‘피’가 된 것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핏재(稷峙) 마을을 한 예로 들어보자. 이 마을은 원래 ‘빗재’라는 고개 밑에 있어 ‘빗재’로도 불리는데, ‘핏재’는 ‘빗재’가 격음화한 것이다.
뱀사골. 밴(가파른) 샅골(사이의 골짜기)에서 유래한 이름이기 쉽다.
‘핏재’는 ‘피(血)의 재’처럼 느껴졌던지 한자로 혈치(血峙)가 되었다. 이 혈치는 다시 설치(雪峙)로 구개음화되어 핏재 마을에서 단양읍 가칠미(佳山里)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으로 붙어 있다. 주민들은 설치의 ‘설(雪)’이 ‘피’에서 나온 이름이라 하지 않고, 고개가 높고 응달져서 눈이 잘 녹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고개는 ‘피티재’로도 불린다.
·빗재 > 핏재 > 피티재
·빗재 > 핏재 > 혈치血峙 > 설치雪峙
‘빗재’는 ‘빗긴(橫, 斜) 재’의 뜻이다. ‘빗’은 땅이름에선 거의 ‘비탈’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즉, 지명에서의 ‘빗은’ 지형이 바로 놓여 있는 상태가 아닌 기울어진 상태를 많이 가리키고 있다. 이 ‘빗’이 파생시킨 ‘빗나감’, ‘비탈(비알)’, ‘비스듬히’, ‘빗기다’, ‘빗금’ 등의 말들을 생각하면 그 의미 이해에 도움이 된다. ‘빗’에서 나온 ‘비알’이란 말은 ‘벼랑(별+앙)’과 거의 뜻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이것은 ‘밸’, ‘배랑’, ‘빌’, ‘비랑’ 등의 방언으로도 옮겨갔다.
그렇다면, 옛 지명 중에 ‘빗골(비골)’이라는 곳을 여럿 볼 수 있는데, 이 뜻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낼 수가 있잖을까? 그리고, 이것이 ‘비아골’로 음(音)이 쉽게 변해갈 수도. 또, 한 발 더 나아가 앞의 설명에서 ‘빗재’가 ‘핏재’로 변한 것처럼 ‘피아골’까지 옮겨갈 수 있다는 것도.
전국에는 ‘비아골’이라 하는 곳이 무척 많은데, 비탈 심한 골짜기의 뜻으로 붙은 것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 지명(비아골)을 ‘피아골’로도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경북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 영덕군 남정면 남호리,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서평리 등에 있는 골짜기인 ‘비아골(비앗골)’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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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비탈 비키다(빗기다) 빗장 빗금 빗나가다 비스듬
* 친척 땅이름
-비사벌(比斯伐) 전북 전주의 경남 청녕의 옛 이름
-빗재(횡성. 橫城) 강원도
-별메(성산. 星山) 전남 나주시 노안면 도산리 등
-비껀섬(횡간도.橫干里) 전남 여수시 남면
-벼루말(연촌.硯村) 서울 노원구 월계동
2022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