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나는 기도
마가복음 1:35~38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 주님을 믿고 복을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히 6: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축복하신 것은 기도하므로 성취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것이 있고, 꼭 구해야 얻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구하지 않아도 모두 하나님께서 아시고 때를 따라서 채우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일용할 약식을 구하라 말씀하신 것은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영어로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라고 하였는데 사실, 이 내용이 대단한 것입니다. 무언가 크게 흥했을 때 사용하는 ‘대박 났다’, ‘대박 터트렸다’라는 식으로 사용하는데 오늘 설교의 제목은 <대박 나는 기도>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모범을 보이신 주님께서 기도가 어마어마한 것을 성취하는 것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외적인 누림의 영역과 누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인격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라’는 현재인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를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이뤄졌고 점차 완성을 향해 전진하여 완성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이 힘쓰고 구해야 할 것은 완성되는 천국에서 내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기대하며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흔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대적자 마귀는 하늘의 것 보다 세상의 것에 취하여 구하도록 하는 것이 기복신앙(祈福信仰)입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늘의 것을 놓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늘의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을 다 가지고 누릴 수 있더라도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영역에 비하면 세상에서 얻은 것은 티끌과 같이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채우시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시는 것은 마태복음 5장에서 8복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외적인 풍부함을 말씀하지 않고 내적 상태를 말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혼의 상태가 되면 성경에 약속한 복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상태를 잘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 있다면 기도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기도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면 당연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저와 여러분은 말할 필요 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은 놀랍고 신기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첫째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 두 번째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그리고 세 번째는 응답받는 기도는 무엇인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라고 하였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태초에 만물을 지으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에 대하여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말씀은 헬라어 원문에서는 lovgo"(로고스)라고 하였는데 이 뜻을 단순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계획과 뜻 그리고 그분의 성품이 모두 담긴 완벽한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고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지닌 분이고 능력이 담겨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세상 오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담긴 채로 말입니다.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기에 예수님은 반드시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 두 가지 중 첫째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위함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마귀의 악한 꾀를 멸하게 하시고 마귀는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머리와 발꿈치는 차원이 다릅니다. 마귀는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 끊임없는 시험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며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승리하시고 믿음의 성도들이 시험을 받을 때 이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이 기도하셔야 하는 이유는 말씀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뤄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여자의 몸에서 잉태할 때 성령 하나님으로 말씀을 품고 오셨습니다. 그 말씀은 앞에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도인 로고스입니다. 이 말씀이 성취하여야 하는데 이 말씀을 도둑질하려는 세력이 마귀입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제일 목표는 말씀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말씀을 거스르고 말씀에서 떠나도록 하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반드시 기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라도 육신으로 계실 때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영적인 전쟁에서 이길 수 있고 마귀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육신의 연약함에 빠진 저와 여러분은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우리 각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것은 약속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만약에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하지 않고 구하는 복은 기복신앙이요 미신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약속의 말씀이 우선입니다. 약속을 믿지 않고 약속에 근거하지 않고 구한다면 이것은 헛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자기는 기도의 응답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참 답답한 분입니다, 이분에게는 말씀이 담겨 있지 않았고 믿음으로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른 믿음에서 나온 기도는 반드시 응답합니다. 더욱이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하는 모든 것에 능하게 채우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 말씀에서 기도하는 자의 자세와 기도의 환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새벽은 하루를 새롭게 여는 가장 신선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역사를 새벽에 이루심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왜 새벽 시간 첫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셨을까요? 하나님은 맏물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도 초 태생을 원하셨고, 곡물도 수확한 첫 이삭을 원하셨습니다. 첫 것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 제일주의의 순수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을 좋아하시며 열심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첫 시간을 드리므로 남은 시간을 거룩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롬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복을 받으려며 하나님께 먼저 시간을 드려 거룩함을 방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기도의 환경입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하여 갈릴리 가버나움 교외의 광야 지대로 추정되는 ‘한적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긴밀한 교제를 통한 영적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는 번잡한 곳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시더니’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토’은 미완료 시제로서 예수께서 기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지속적이고도 열심히 기도하셨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기도는 이 세상 육신으로 있을 때에 멈추지 말고 행하여할 과제이면 사명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응답받는 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막1:36,37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뒤를 따라가’라는 말씀은 단순히 추종(追從)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샅샅이 뒤지고 성가실 정도로 찾고 또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지 못하고 오직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기를 원하여 예수님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37절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있었던 무리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 열병을 고친 것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며 그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를 찾아뵙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들은 아직 예수를 구주로 깨닫지 못한 자들이었으며 그들은 단지 예수의 외적인 능력, 곧 병 고치는 능력에 혹(惑)하여 열광적으로 예수를 찾기에 급급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정욕적인 기도입니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이라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도의 응답을 놓친 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은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내게 유익 되고 좋은 것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뜻을 좇아 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면 말씀을 빼앗아 가려는 귀신을 내쫓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내게서 이뤄지기를 원할 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내 안에 말씀이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시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내 안에 임한 축복의 말씀이 쉬지 않고 흐르게 하는 것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와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 영혼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귀신은 더러운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여 내 안에 말씀의 열매가 맺지 못하도록 합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거나 듣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이라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기 때문에 반드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던 주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 싸움터에서 이기는 비결은 교회의 일원으로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음부의 권세는 영어에서 ‘the gates of Hades’라고 하였습니다. 지옥의 권세를 교회는 막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와 함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목회자가 있을 때 귀신을 내쫓고 약속의 말씀이 내 안에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는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부지런하여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남은 시간을 거룩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뜻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이 내 안에 흐르고 부정적인 생각과 말씀을 거스르는 귀신을 쫓아내므로 여러분과 저의 삶에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