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에서 밀포로
하지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유월 중순이다. 낮이면 연일 뙤약볕이 내리쬐어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있다.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고 복사열을 식혀주면 좋으련만 당분간 그럴 기미가 없다. 다음 주중 예보된 비가 있기는 해도 장마전선이 아닌 기압골 통과 정도라 강수 여부는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아침을 들고 나서 산책 코스는 강가로 가려고 마음을 정해 현관을 나섰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각에 길을 나서 그런지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서 꽃을 가꾸는 꽃대감 친구와 밀양댁 안 씨 할머니는 보이질 않았다. 주인장이 없는 꽃밭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버스 정류소로 나가 마산역 앞으로 나갔다. 역 광장의 넓은 화단은 여름 화초로 새롭게 단장이 되고 주말 이틀 아침 반짝 열리는 노점은 각종 푸성귀와 과일이 진열되어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쳐 놓았다.
번개시장의 김밥을 마련하러 가는 길에 노점 할머니가 펼쳐 놓은 호박잎이 눈길을 끌었다. 그 호박잎은 내가 어릴 적 어머님이 밥을 지으실 때 밥물 위에 얹어 쪄 강된장으로 쌈을 싸 먹었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그 추억은 내가 아침마다 남기는 시조의 소재로 삼을까 싶었다. 김밥을 사서 마산역 광장이 아닌 동마산병원 앞에서 합성동 터미널을 출발한 농어촌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는 창녕 남지로 가는데 칠원을 거쳐 칠북 이령에서 칠서 이룡을 지날 때 내렸다. 이룡은 낙동강 강가로 4대강 사업 때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이 조성된 곳이다. 강변에는 사학재단의 작은 중학교와 분교로 격하된 그림 같은 초등학교가 보였다. 강둑으로 나가는 농지의 저습지는 연근을 심어 키웠고 모래밭은 연처럼 잎이 넓은 우엉을 키웠는데 우엉 역시 뿌리를 수확한다.
강둑으로 오르니 여름에 연분홍 수술이 아름다운 자귀나무가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강둑 너머 오토캠핑장에는 자동차를 몰아와 텐트를 쳐 야영하는 이들이 다수 보였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풍성한 꽃을 피웠을 작약은 꽃이 저물어 시든 꼬투리를 달고 내년을 기약했다. 그 곁에 원예용으로 키운 꽃양귀비와 수레국화가 끝물이었고 기생초는 아직 싱싱하게 노란 꽃을 달고 있었다.
드넓은 둔치의 생태공원에서 북쪽 나루터로 가 강 건너 창녕 도천 강변을 바라봤다. 조선 중기 의병장 곽재우가 만년을 보낸 우강리 정자와 배수장이 아슴푸레 보였다. 늦은 봄날에 행정당국에서 청보리 축제를 열었던 보리밭은 수확을 마친 휴경지로 잡초가 무성했다. 강나루 생태공원의 청보리 축제는 함안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 9경에 선정될 만큼 친환경 생태를 외지로 알렸다.
체육시설 야구장에는 젊은이들이 연습에 몰입했고 파크골프장은 시설 인가 여부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공을 치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생태공원 하류 습지 구역의 전망대 그늘에서 배낭을 벗어두고 쉬면서 이른 점심으로 김밥을 비웠다 이후 걸어야 할 여정에서는 마땅한 쉼터가 나오지 않을 듯해서였다. 강나루 공원에서 광려천이 샛강으로 합류하는 소랑교를 건너 덕촌마을로 갔다.
칠북의 강변은 생각보다 경지가 적은 곳이라 산비탈을 과수원으로 개간해 감과 포도와 복숭아를 재배했다. 두어 달 전 연분홍 꽃이 저문 복사나무는 과육이 여무는 볼이 붉은 복숭아가 달려 있었다. 산비탈의 포도 농장은 공을 들여 비닐을 덮어씌워 비가림막을 해서 키웠다. 포도는 지중해성 고온 건조가 좋은 생육 환경이라 인위적으로 비를 가려주는 정성은 억척스러울 정도였다.
강둑 따라 걸어 이령천이 흘러온 밀포교를 건너 창녕함안보로 내려갔다. 둑 아래 밀포나루의 팽나무와 아늑한 쉼터가 그림 같았다. 창녕함안보 홍보 전시관에서 냉커피를 마시면서 더위를 잊고 강변 풍광을 바라봤다. 오후는 햇볕이 더 따갑게 내리쬘 시간이라 오곡에서 내산을 거치 마금산까지 여정을 줄여 밀포에서 내봉촌으로 넘어가 마산에서 온 농어촌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