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으로 본 사명 (요 3:28-30)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 시간에 “세례요한으로 본 사명”이라는 제목입니다. 알고보면 우리 모두는 다 사명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나게 하셨고 이 땅에 머물게 하신 것은 모두 사명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덴마크의 유명한 종교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내가 정말 무엇을 하기를 하나님이 바라고 계신지, 그리고 과연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또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명을 아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본문의 세례요한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누구보다 일찍 그리고 정확히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고, 일생 빈들에서 준비했으며, 두려움 없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고 죽을 수 있었습니다.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얼마나 멋진 사명자입니까?
자기 사명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 그 일에 기쁨이 있습니다.
눅1:43-44에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주의 모친의 문안하는 소리가 들릴 때 엘리사벳 태중에서 세례요한이 기쁨으로 뛰놀았습니다. 누가 시켜서 된 일이겠습니까? 눅1:80에는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당시 에세네파라 해서 광야에서 기도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적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릴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심방하다가 어느 권사님이 자기 손녀가 어릴 때부터 목사님 곁에 서서 교인들에게 인사하더니 목사의 사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주일학생은 뭘안다고 어른도 못하는 금식하고 기도하더니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체험도 그렇습니다. 뭘 안다고 예수 갓 믿은 중학생이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교회를 위해 3일을 금식기도하고, 또 중단된 건축을 위해 한 겨울을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자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그 때부터 이미 하나님이 쓸 사람으로 정해 주셨던 것 같아요.
이처럼 사명이 있으면 그 일에 관심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은사라고도 말합니다. 고전12:8-11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했고
엡4:11-12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왼손을 얼마나 잘 쓰는지 왼손잡이도 은사였습니다. 물맷돌 던지는 것도 은사였고, 찬송하는 것도 은사였습니다. 다비다는 옷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에게 입히고, 가난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그의 상여의 뒤를 온 성민이 따른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사회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예수 닮은 영웅이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아 열심히 발전시키시기 바랍니다.
2. 사명은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사40:3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말4:5-6에도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세례요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우리 모두가 힘쓸 사명이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소금의 빛의 사명입니다. 마5:13-16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음으로만 착하지 말고 밖으로도 착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와 사랑의 사명도 있습니다. 힘을 모아 땅끝까지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부모는 알고 있었습니다. 눅1:13-17에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이처럼 천사가 제사장인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자세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며 기도할 때처럼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주시기도 하십니다. 제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가 전도사로 일하게 되었고, 평생 겸손히 전도사만 하려고 작정했는데 하나님께서 전도사가 전부가 아니요 목사가 되라고 하셔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교회를 위해서 뭔가 귀한 사명이 또 있다는데 그 사명은 말할 수 없지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영적 확신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1:33-34에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했습니다.
그 기록이 마태 3장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그 위에 임하시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요한에게도 들려왔습니다.
모세에게도 이사야에게도 예레미야에게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렘1:5-7에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셨습니다.
5. 사명은 물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물었습니다. 마11:2-3에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이 옥중에서 잠시 의문을 품었던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이 뒤바꾸어진다는데 예수를 소개하던 자기는 옥에 갇혔고 예수는 왕이 될 생각이 없으니 과연 그가 메시아인가?
어떤 이는 요한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으로 말하지만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 요한의 배반을 꼭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7:22)고 메시아적 표적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그가 진정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알려주신 말씀으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마지막까지 자기 사명을 다하다가 헤롯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예수님께 물은 것은 대단히 잘 한 일입니다. 이처럼 사명에 모르거나 실망된 일이 발생한다면 하나님께 여쭈세요. 내 맘대로는 하지 마세요. 그러면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으셨습니다. 세례요한도 그랬습니다. 우리들도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아직 사명을 모른다면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명자가 됩니다. 그래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세례요한처럼 자기 사명을 깨달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은 생애 주를 위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