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주몽 = 고구려라고 알려져 있는데, 다른 의견도 존재함.
1. <한서 지리지>
1세기 후한 시대 반고가 만든 <한서 지리지>에 보면 고조선이 망한 기원전 108년 전에도 고구려가 존재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의 하나인 현도군을 설치했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고구려 현'이라고 함.
2. <삼국사기>
<삼국사기>비기를 보면 고구려는 900년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음.
우리가 알고 있는게 기원전 37년 ~ 서기 668년으로 총 704년이니 대략 190여년 정도의 차이가 있는 셈.
3. 중국, 북한의 일부 역사학자
고구려 문화와 가까운 중국과 북한의 일부 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 시기를 기원전 277년으로 추정함.
2번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되면 2번 설과 얼추 맞아 떨어짐. (약 900여년 존속)
4. 주몽이 세운 나라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해 만든 나라는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려 현'에 속하는 '계루부'라는 주장이 있음.
즉, 주몽은 '고구려 현'에 속하는 '계루부'의 '부족장'이자 '고구려 현의 대표 부족장'인 셈.
고구려 6대왕이 '태조왕'인데, 본래 '태조'란 나라를 만든 사람에게 쓰여짐
고려 = 태조 왕건
조선 = 태조 이성계
이는 6대 태조왕 때 가서 연맹국가였던 고구려가 위 사진의 5개 부족으로 계루부로 왕권을 모았기 때문에 '태조'라고 붙여졌을 수 있다고 함.
5. <당회요>
중국 역사서인 당회요에 따르면 '천년에 못 미쳐 80세의 노장군이 와서 멸망시킨다'라고 적혀 있음
즉, 고구려가 천년까지 못갔다는 말.
우리가 아는 고구려는 총 704년임으로, 2번과 마찬가지로 약 190여년 정도의 차이가 있음
만일 위 내용들이 사실일 경우, 주몽은 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아니게 됨.
주몽 이전에 고구려 현에서 왕(대표 부족장)을 하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주몽은 부여를 탈출해 고구려 현에서 '계루부'를 세워 '고구려 현의 대표 부족장'이 된 것.
- 요약
주몽이 기원전 37년 건국
고구려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
의견들 모두 종결지을 만한 오피셜은 아님.
모든 걸 종결지을 오피셜 유적, 유물 그 어떤 것도 발굴이 안됨
사실 발굴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도 모름..
출처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040405/8046936/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1902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329
첫댓글 오 신기방기
백제처럼 지방 호족들이 힘이 쏏거나 가야처럼 "가야연합체" 였을 수도 있고
그래서 평양 천도하고 역사학자 주장중에 하나가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나서 굉장히 오랫동안 내전에 휩싸이게 됩니다. (중략) 의외로 장수왕의 기록이 없어요.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다는 거에요. 아마 평양 천도 하고 굉장히 심각한 내적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국내성파와 평양 세력 간의 갈등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거든요."
임용한, <토크멘터리 전쟁사> 中
평양천도와는 좀 다릅니다.
애초에 광개토대왕이 정복활동으로 밖에 나가있으면서 왕권이 신권으로 넘어가게되서 귀족힘이 쎄졌죠.
그 아들 장수왕은 왕권 회복하는 방법으로 귀족들 기득권을 뺏으려고 평양천도를 생각한거고, 꽤나 기득권 반발이 심했는지 장수왕이 90대까지 사는데 20대에 평양천도를 계획하고 70대에 가서나 완료합니다. 장수왕이 70살 이전에 죽었다면 천도도 불가능했죠..
장수왕이 신라와 백제를 압박하는 남하정책을 편것도 북방에 위치한 군사력을 계속해서 평양 인근으로 내리는데에도 연관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양천도는, 국내성과 평양간 기득권 싸움이라고 봐야겠죠
오홍 재밌당
흥미롭당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