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8>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0)
[My Review MDCCLXXVIII / 인물과사상사 15번째 리뷰]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벌어질 '제3차 세계대전'의 대리전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 결과론이라는 것이 글쓴이의 주장이다. 글쓴이가 지적하는 것처럼 '미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남북한의 첨예한 갈등부터 '김일성의 오판과 이승만의 무능'에 이르기까지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을 '무엇'으로 단정하기엔 너무나도 복잡다단한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분만 보고서 전체를 확증하는 식으로 '한국전쟁'을 논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세계가 '경제특수'를 맞이한 것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바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경기가 되살아나는 것이 눈에 드러날 정도로 확연했기에, '돈벌이'가 된다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국전쟁'에 발이라도 담궈보려 무진 애를 썼다. 이런 호황속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한국민족' 뿐이었다. 한국전쟁 이전 남북한 통틀어 3000만 명이던 인구가 정전 이후에는 24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전쟁통이라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었겠지만, 불과 3년 만에 600만 명이나 죽은 것이다. 이조차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수가 대부분일 것이며, 폭격과 공습, 그리고 학살로 인한 민간인의 사상자까지 포함한다면 가히 1000만 명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중공군의 참전 이후 미군의 대공습과 함포사격은 날마다 이어졌고, '휴전협정'을 체결하기 한 달 전인 53년 6월 한 달만해도 남북한 사상자가 도합 6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7월 27일 이전까지의 한 달간에는 10만 명이 증발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원산 폭격'에서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전쟁기록 하나를 남겼다고 한다. 휴전이 이루어지기 하루 전날 24시간 동안 숨 돌릴 틈도 없이 함포사격과 폭격, 그리고 대공습이 이루어졌단다. 당시 함포에서 발사 되는 포탄 한 발의 가격이 '캐딜락 한 대 가격'과 맞먹는다고 했는데, 그걸 24시간 동안 계속 쏘아댈 정도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퍼부은 셈이다.
이렇게 한반도는 작살이 났지만, 세계경제는 호황을 이루었다.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1차 경제부흥'에 성공했다면, 한국전쟁으로 '2차 경제대부흥'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제특수를 이룬 나라는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일본을 '전진기지'로 삼아 전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자를 일본에서 생산해서 한반도에 퍼날랐더랬다. 총탄과 포탄 등 전쟁물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리산 빨치산의 투항을 권고하는 종이전단지까지 일본에서 생산해서 한국에 뿌려댔단다. 일본은 그야말로 쉴 틈 없이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한국전쟁을 일컫어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평가했단다. 한국전쟁이 일본에게 준 선물은 이뿐 아니다. 51년에는 미일 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서둘러 맺으며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에게 '면죄부'를 안겨주며 거의 모든 방면으로 일본은 '미국의 파트너'로 승격되어, 일본을 묶어두었던 제재들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미국은 한술 더 떠서 일본을 세계무대에서 '전쟁 가해국'이 아닌 '전쟁 피해국'으로 이미지를 바꿔줄 정도로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정도였단다.
이로 인해 일본은 '우경화 경향'을 띠게 되었다. 한국전쟁이란 발등의 불이 떨어진 미국을 돕기 위해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우익인사들이 대거 정계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미국의 비위를 맞춰주었고, 그 덕분에 회생을 넘어 특수까지 얻게 되니, 그로 인해 쌓은 부를 통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일본은 50년대 기적 같은 '흑자전환'을 이루고 60년대 '경제성장'을 이루고 70년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로 인해 일본은 풍요로운 경제를 누리며 한국을 비웃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단다.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받은데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일본의 우월감'이 하늘을 찌를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풍조는 일본의 우익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패전으로 인해 '패배감'에 찌들어 살 걱정을 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는데, '한국전쟁'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버린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도움으로 '패전국의 멍에'까지 훌훌 벗어던지고 '피해국 코스프레'를 통해 미국과 함께 당당히 세계무대를 누빌 수 있을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8권에서 다룬 '한국전쟁' 부분은 가히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것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알지 못했던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 내용을 일일이 거론하기 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난 뒤에 세세한 내용을 되새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먼저 미국은 세계대전을 성황리에 마치며 경제대국에 걸맞는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미소 간의 '냉전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냉전의 갈등은 고스란히 '한반도'로 쏠리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아픔은 전세계의 경제부흥을 안겨주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미국은 한국전쟁 특수를 통해 명실공히 '초일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며 풍요로움의 극치를 누리게 되었고, 유럽과 다른 나라들까지 경제성장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만큼 대박을 터트린 나라는 없었다. 경제호황을 넘어 '전범국가'라는 이미지까지 벗어던지며 미국의 소개를 받아 세계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물론 이로 인해 일본은 미국의 '꼬붕'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 꼬붕인 나라가 '경제대국 2위'의 반열에 오르니 꼬붕 노릇을 마다할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공산주의' 때려잡기에 열을 올리며 풍요로움을 한껏 누렸다. 미국의 정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문화, 거의 모든 점에서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며 나쁜 일도 따라오는 법이다. 그렇게 떵떵거리던 미국이 '한국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휴전 협정'으로 한 발 물러서려 했다. 초강대국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희생자는 점점 불어났으며, 그로 인핸 피로감은 점점 누적되었고, 이제 슬슬 전쟁이 지겨워질 때가 된 것이다. 미국인들의 참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고, 급기야 미국대통령은 정당이 바뀌고 말았다. 트루먼(민주당)에서 아이젠하워(공화당)로 말이다. 무려 20년간 민주당에서 배출하던 대통령을 공화당에게 빼앗기도 만 것이다. 그것도 '한국전쟁 종식'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에게 말이다.
이렇게 한국전쟁은 끝이 보였다. 그리고 이를 환영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과 중국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북한은 38선 이북지역이 서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미국은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뽐내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폭탄세례를 안겨준 것이다. 그래도 북한은 낮에는 땅굴속에 숨고 밤이면 게릴라전을 펼치며 끝도 없는 공방전을 펼쳤다. 이는 인해전술을 펼치던 중국군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피로감이 쌓여 전쟁을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 미국과 유엔군이었다. 계속 전쟁을 하기 바란 것은 오직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는 이승만 뿐이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사람들을 총동원시켜서 북진통일을 세뇌시켰으며, 1000만 학도병이 통일을 위해 준비되었으니 미국은 '무기' 지원해달라, 우리는 '승리'를 가져오겠다는 구호를 앞세워 미국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아이젠하워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을 피해다닐 정도였단다.
그래도 미국은 '휴전협정'을 서둘렀다. 그러자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주면 휴전을 받아들이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렸고, 미국은 통제할 수 없는 이승만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 조약을 맺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자 이승만도 조약 없이는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으름장을 내놓았다. 졸지에 모두가 원하는 '휴전'을, 대한민국만 바리지 않는 꼴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국군과 한국인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거졌다. 그래도 이승만은 오직 '북진통일론'만 내세우며 국민들을 시위에 동참하도록 내몰았단다. 그렇게 '휴전'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이승만은 기습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만다. 이 사건은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전쟁을 종식하고 포로교환을 성사시키려던 미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마저 '석방포로'를 재수용을 요구하며 진정시키려 했는데, 이승만은 결사반대를 외치며 휴전협정을 완강히 거부하고 만다. 그럼에도 휴전은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조인하게 되었다.
휴전이 성립되자 북한의 김일성은 '승리'한 것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더이상 전쟁을 치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8선 이북 전지역이 초토화 되었고 희생자는 날로 늘어나고 미군의 포격은 끝도 없이 이어지니 하루도 편히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투는 지리멸렬하게 막상막하의 공방을 이루었다. 고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날마다 땅따먹기하기가 일쑤였고, 그로 인해 수 만의 전사자가 날마다 나왔고, 수십 만의 전사자가 매달 나왔으며, 수백 만명의 전사자가 해가 넘어갈수록 넘쳐났으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한국전쟁'을 애초에 시작한 이가 '김일성'이었단 것이다. 그가 시작한 전쟁인데 이기지도 못하고 휴전을 하면서 '성공'이라고 자축하고 있으니 '한국전쟁'이 얼마나 오판에서 시작되었는지 알만 하다.
이승만의 무능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전쟁이 발발할 조짐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도망을 갔으며, 국민들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통령 자리보존'에만 열을 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하자 모든 권한을 '위임'해버리는 무능을 자행하였다. 그럼에도 깽판을 놓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는지 가는 곳마다 '트러블메이커'로 톡톡히 일을 해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전쟁을 빠르게 종식할 수도 있었는데, 북진통일을 외치며 한국군 단독작전으로 북진을 했다. 흥남철수와 일사후퇴로 마무리 되었는데도 미군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북진통일'을 외쳤고, 서울재수복을 하고 난 뒤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모든 권한을 위임해버려 할 일이 없음에도 국민들을 선동질시켜 '반공정신'만 투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온국민을 '희생양'으로 삼고서 얻고자 한 것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온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으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오죽했으면 미국이 앞장 서서 '이승만 암살'을 논의했겠는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이고, 예측불허의 사람으로 타고난 협잡꾼 노릇만 일삼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온 국민들은 이승만 편을 들었다. 이승만의 말이 백 번 옳다고 두둔했다. 이승만이 원하면 무슨 일이라도 따랐다.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국민들이 정말 대단할 뿐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어디 갔는가? 이승만이 내세운 '북진통일론'을 온국민의 90%가 찬성하고 지지했단다. 행여나 반대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현실속에서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리 전쟁통이라고는 하나 '자성의 목소리'는 귀 기울일 법도 하다. 전세계가 바라는 '휴전'인데, 당장에 죽어나가는 국군과 한국민간인 들은 안중에도 없었단 말인가? 끝내 휴전에 반대해서 이승만은 '휴전협정서'에 사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종식되자 북한 김일성은 매년 7월 27일을 '승전기념일'로 삼아 대대적으로 축제를 벌이고 공휴일로 삼았단다. 미국의 오바마는 7월 27일을 '한국전쟁참전용사의 날'로 정해 조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아끼지 않았음을 기억하자며 성조기를 조기로 달며 매년 기념을 한단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무런 입장 발표가 없다. 휴전에 이르기까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국군장병들의 희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 이승만은 그토록 '북진통일'을 바라며 온국민들을 전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는데, 왜 그들의 공로와 아픔을 치하하지도 보듬어 주지도 않았느냔 말이다. 이승만의 뒤를 이은 정권들도 묵묵부답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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