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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종묘안내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직접촬영 |
본격적인 종묘설명에 앞서 종묘입구에 있었던 종묘안내도 사진을 넣었다. 사진을 클릭하면 사진이 확대되어 앞으로 설명할 종묘의 각 건물들을 들린 순서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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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종묘의 풍경 *직접촬영 | 사진3)연당 *직접촬영 |
왼쪽의 사진은 종묘에 들어선 풍경이다. 위의 종묘안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종묘에는 나무가 즐비하다. 여기에서 종묘를 참배하는 예절중의 하나에는 종묘를 거닐면서 전각들의 모양과 울창한 숲을 보며 옛 임금을 떠올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나무와 건물 사이를 흐르며 지나다니는 영혼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써야 하고 그들의 속삭임을 듣기위해 긴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연못의 사진을 살펴보면(현재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으나 연못임.) 연못은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고 연못 한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이 있는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과 '음양(陰陽)사상"' 깃들어 있는 것이다. 네모난 모양은 땅을 상징함과 동시에 음(陰)을 의미하고, 동그란 모양은 하늘을 상징함과 동시에 양(陽)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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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오얏나무 직접촬영 | 사진5)개화한 오얏나무 출처:네이버 이미지 |
향대청이 있는 건물 입구쪽에 오얏나무가 심어져있었다. 오얏나무는 이씨 성(姓)을 상징하며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꽃이다. 아직 꽃이 필 때가 아니기에 개화한 사진을 따로 찾아 첨부하였다.
항상 별 생각 없이 오얏나무 이(李)라고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뜻이 숨어져 있다.
李를 풀이하면 木子인데,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천자(天子)라는 말이 있다. 나무란 자연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씨(李氏)는 곧 천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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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공민왕신당 외부 출처:네이버이미지 |
사진6)좌:노국공주 우:공민왕 영정 출처:네이버이미지 |
사진7)공민왕신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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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신당의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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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향대청 출처:네이버이미지 |
향대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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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어숙실 직접촬영 | 사진9)십이장복 직접촬영 |
사진상으로 맨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이 중앙이며 중앙에 있는 건물은 어재실이다. 중앙을 기준으로 맨 왼쪽에 위치한 건물이 세자재실 그리고 나머지 건물이 어목욕청이다. 어숙실은 재궁(齋宮), 어재실(御齋室)이라고도 한다. 어숙실은 왕이 목욕하고 재계하며 의복을 정재(淨齋)하여 세자와 함께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이다. 사진9)의 십이장복은 제례때의 복식으로 12가지의 수가 있어서 십이(十二)장복이라고 불린다. 또한 착용하고 있는 관은 12가지 구슬이기에 12류관이라고 불린다. 이는 황제격복식인데 고종때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의 예복이고 그 전에는 왕을 상징하는구(九)류관, 구(九)장복을 착용하였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십이장복만을 재현해 놓은것이 아쉬웠다. 아마 구장복보다는 상대적으로 십이장복이 멋스럽고 화려하기에 재현해 놓은 것 같았는데 고종 이전의 왕들의 예복을 알기 위해선 구장복의 재현 역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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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전사청과 전사청 앞의 왼쪽의 ‘찬막단(饌幕壇)'과 오른쪽의 '희생대(犧牲臺)' 직접촬영 |
전사청의 건물에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건물의 오른편을 보면 벽돌로 지어진 긴 곳이 보이는데 이는 굴뚝이다. 굴뚝이 있다는 것은 음식을 만들던 주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사청은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이다. 종묘에는 정치적 의미가 있으므로 제사음식을 준비할 때는'숙수'라 불리는 남자 조리장만이 출입가능하였다. 그 외에도 모든 종묘제사에는 남자만이 출입가능하였는데 예외로 세자빈이나 중전은 즉위식때 출입가능하였다.
그리고 전시청 앞을 보면 두개의 단이 있는데 왼쪽 천막단에는 준비된 제사음식을 올려 놓으면 왕이 하나하나 살펴보았고 오른쪽의 흐생단은 살아있는 상태로 데려온 소, 양, 돼지등을 데려오면 역시 마찬가지로 왕이 상태를 살펴보고 제물로써 정합한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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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정전신위봉안도(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직접촬영 | 사진11)신주 직접촬영 |
사진10)은 정전의 신위봉안도이다. 다음과같이 정전에는 임금님 19명, 정실인 왕비30명이 모셔져 있다. 왕비가 30명이 모셔져 있는 경우는 첫째왕비가 돌아가시면 계비를, 계비가 돌아가시면 차비를 두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진11)의 신주는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나뉜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백은 땅에 묻히지만 혼은 머물공간이 없기에 혼이 머물 공간으로 만든것이 신주이다. 신주는 조상의 혼이 머물러있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는데 실제로 임진왜란때 의주로 피난갈 시에 모든 신주를 다 챙겨서 피난갔었고 하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은 이렇듯 신주를 소중히 여기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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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동문에서 들어가며 찍은 정전 직접촬영 | 사진13)정전의 정중앙 직접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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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4)정전의 왼편 직접촬영 | 사진14)정전의 오른편 직접촬영 |
종묘의 정전을 마주하자 건물에게 압도된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정전은 무려 가로길이가 10m인데 우리나라 목조건물중 가장 가로길이가 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좀처럼 사진 한번에
그 모습을 담기가 힘들었다.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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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5)영녕전의 신위 봉안도(클릭하면확대됩니다.) 직접촬영 | 사진16)영녕전 직접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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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7)영녕전2 직접촬영 | 사진18)영녕잔3-박석 직접촬영 |
정전 서편 일곽에 영녕전 일곽이 따로 조성되어 있다. 영녕전에는 중앙 건물 4실에 태조의 고·증·조·부와 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서쪽 협실 6실에 13위, 동협실6실에 12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사진17)의 기단의 용도는 영녕전에 신주를 안치할 시에 바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신탑을 세워 기존에 영녕전에 안치되어 있는 선조들에게 인사드리고 가는 곳이다.
또한 사진18)의 박석은 종묘의 이곳저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데 매우 울퉁불퉁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영녕전에 비하면 건물의 규모가 작으나 역시 건물자체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에 사진셔터를 누르는 것 조차 민망할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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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악공청 직접촬영 |
종묘에서 마지막으로 악공청에 들렀다. 이곳은 악공들이 연주를준비하던 곳인데 전쟁시에 소실되었었기 때문에 사료에 나온 곳까지만 복원되어 현재 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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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나가는길-신로 | 사진21)나가는길-신로2 |
종묘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였지만 1시간의 시간제한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나가야 했다. 나가는 길에 이렇게 신로가 있는데 조상들의 혼백이 다니는 길이다.
이렇게 안내표지판이 있음에도 몇 사람들이 종묘를 다니면서 신로를 밟고 다니는 것이 안타까웠다.
3.마치며
종묘 답사 이후 내가 느낀 점은 '아쉬움' 이었다. 처음에 종묘를 들어설 때 앞의 공원에는 종묘로 들어서는 안내표지판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아 종묘를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종묘입구 곳곳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명상이나 기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였다.. 조선왕조500년을 대표하는 종묘인데 그 문화적의의에 비하여 주변이 너무 번잡하였다. 행여 사람들이 이를 보고 종묘의 가치에 대해 폄하할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직접 종묘에 들어사고 나니 종묘를 돌오다다니는 내내 느낀점을 요약해보면 종묘는 근엄함과 웅장함의 교차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국내의 많은 유적지를 돌아보았으나 숙연한 마음이 들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게 되는 곳은 종묘가 처음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 5대궁은 모두 돌아보았지만 항상 종묘는 뒷전으로 미루어 사실 이번 답사가 처음이였다. 1시간의 시간제약이 있어 더 심도있게 보지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오늘 하루 조선 속에 흠뻑 빠져있다 나온 느낌이였다. 조선시대로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공간 종묘- 선조들의 생각을 엿보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영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곳 종묘로 가길 추천하며 이번 종묘 답사기를 마무리 한다.
4.참고문헌
김동욱, 『종묘와사직』, 빛깔있는책들, 1990
지두환, 『세계문화유산 종묘이야기』, 집문당, 2005
신영훈, 『한국의 고궁』, 도서출판 한옥문화, 2005
첫댓글 역사학도로서 저도 종묘를 가지 못했는데 이번 글을 보고 종묘를 가봐야겠다고생각했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종묘였다니 우리가 역사학도로서 더 관심을 가져야겠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당~~
조선시대 왕을 모시는 종묘에 '공민왕'과 그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를 모셨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네요... 관련 문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와 종묘라니... 서울에 오고 나서 매일 가야겠다 생각했었지만 못가본 곳인데 정말 부럽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