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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당시 멕시코 시민들이 폭력 근절 시위를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
- 70·80년대 중남미 배경
- 평범한 유학생 강경준
- '국민 영웅' 되는 과정 그려
나우칼판.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멕시코 감옥이 있었다. 파타고니아. 발이 큰 사람들의 고장이란 뜻이다. 주인공 강경준은 인생의 격랑에 휘말리면서도 '그곳(파나고니아). 언젠간 가고 말 테다'라고 거듭 다짐한다.
강경준은 소설 속에서 '미겔'이란 이름의 사파티스타 혁명군 저격수가 된다. 한국 청년인 그의 눈에 비친 중남미는 경이와 비참, 압제와 저항, 혼란과 신비가 뒤섞인 땅이다. '적당한 강우량에, 빗자루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비옥한 토양…고추 마늘 호박 토마토 감자 고구마 옥수수…. 지구상 과일과 야채 절반 이상의 원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 대목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부패한 정치가들 때문이다'.
나중에 도망자 신세가 된 강경준이 치아파스 지역 깊은 산골에서 원주민과 나눈 대화는 이렇다. "여기 사람들은 왜 신발을 신지 않는지요?" "딱딱한 신발들이 땅을 아프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 강경준이 묻고 원주민이 답한 장면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중남미 문학 전문가 울산대 구광렬(인문대학·사진) 교수가 장편소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새움 펴냄)를 내놓았다. 구광렬 작가는 멕시코국립대에서 중남미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스페인어 시집과 번역서 등도 많이 냈다. 몇년 전에는 EBS 세계탐방 다큐멘터리의 중남미편에 출현해 밀림에서 태연히 벌레를 씹으며 "음…이건 고소하군요"하며 담당 PD에게 권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설가 김영현은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의 표지에 쓴 짤막한 추천사를 이렇게 썼다. "구광렬은 분명 한국문학의 지평을 저 멀리 안데스 산맥에까지 열어놓았다." 이 언급은 구광렬과 그의 소설이 지닌 특징과 가치의 핵심을 잘 표현한다. 한국문학이 정체하지 않고,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평의 확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구광렬 작가가 중남미(1970, 1980년대 중심)를 들고 왔다.
유학 간 멕시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난한 유학생 강경준은 난데없이 멕시코 감옥에 끌려간다. 최악의 감옥으로 유명한 나우칼판이었다. 그는 죄를 지은 적이 없지만, 돈도 없고 순진했고 배신까지 당해 기결수가 되어 '흉악범'들과 같이 복역한다. 여기서 20대 중반 경준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인생이 바뀐다. 중남미 원주민과 민중의 아픔을 알게 되고, 타락한 정치와 기득권의 무게도 느끼게 된다.
한 원주민 노파에게서 그는 "열두 여자를 만나 열두 여자의 수명을 살게 되어 인생 말년에는 '빨리 죽었으면' 하고 기다린다는 (멕시코 원주민) 첼탈족 전사"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이는 강경준의 인생에서 언제나 사랑이 아프게 끝나게 됨을 암시한다. 그는 멕시코 민중과 함께하는 저항조직 사파티스타의 저격수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중남미 멕시코의 숨결이 살아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