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배나 더하는 은혜
성경본문|시편 73: 23~24
23.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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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석원태목사
해가 솟아오르는 이른 아침
나의 구주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시어
우리 죄에서 밤을 몰아내시니
빛과 기쁨과 생명이 되돌아 오도다. 할렐루야!
이렇게 종교개혁자들은 어둠의 흑암 권세를 깨뜨리시고, 인류에게 영원한 부활의 새아침을 가져다 주신 주님께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2017년 새아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현재보다 천 배나 더해주실 축복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신 1:11).
천 배라고 하는 말은 결코 숫자적인 개념에 얽매인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수한 축복, 말할 수 없는 은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2001년을 받은 우리에게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필요합니다. 1,000배나 더하는 은혜 없이는 이 2001년을 승리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세 가지 시제(時制;Tense)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Ⅰ. 우리는 과거 때문에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시편 73편 23절에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6편 3절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나를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시 116:6).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시 116:8).
여기 시편 성도는 자신이 과거라고 하는 시간의 한계 속에 살고 있는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과거는 참으로 위험천만했던 과거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영혼이 사망의 올무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발이 넘어짐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경우 그는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모두 다 무서운 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한 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인 사망의 형벌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입니다(롬 6:23).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인생된 피조물들은 사망을 언도받은 죄악의 과거가 있습니다.
행복하게도 선택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사죄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1,000배나 더하는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에는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라고 하는 고백적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영국에 사는 어느 한 노인이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예수를 모르고 살다가 60이 넘어서 죽을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에게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평생에 느끼지 못했던 미래에 대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사후의 일들에 대한 불안을 느꼈습니다. 말하자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불안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자기의 손녀를 급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듣는 중에 그의 죄책감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마음의 고통과 공포가 더하여갔습니다. 차라리 성경의 내용을 몰랐으면 좋을 뻔하였다는 후회감도 일어났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그의 손녀는 매일매일 그를 방문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경을 읽어주고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손녀가 요한일서 1장 8-9절을 읽어주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한 성경이었습니다.
이 성경을 듣고 있던 그 노인은 깜짝 놀라며 “얘야, 그런 말씀이 있느냐? 다시 읽어 보아라.”고 하였습니다. “예, 할아버지.” 손녀는 물론 다시 읽어 주었습니다.
“그런 말씀이 정말 있니?”
예, 예. 여기 있어요.”
노인은 또 다시 읽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손녀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또 다시 읽었습니다.
미쁘시고 의로우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노인의 맥박은 임종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손녀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1장 9절을 펼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손가락으로 그 성경 위를 짚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손녀가 그의 손가락으로 그 성경을 짚어주었더니 “내가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앞으로 갔다.”고 일러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바로 그는 1,000배나 더하는 은혜를 입고 그의 인생을 성공리에 정돈한 사람이었습니다. 1,000배나 더한 은혜란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의 은혜입니다. 그는 그렇게 과거 문제를 1,000배나 더한 은혜를 받고 해결하였습니다.
바로 주님은 「내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하는 은혜입니다(시 116:8).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하는 은혜입니다.
Ⅱ. 우리는 현재 때문에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시편 73편 24절에는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6편 5절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여기’라고 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역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입니다(시 23:4).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6:33).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행 14:22).
특별히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3:12).
예수 때문에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우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5:11).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여러 환경들이 있습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여러 환난의 변수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이라든지 돌발적인 사고, 국제관계의 악화… 등 정말 우리는 험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양의 옷을 입고 용(사탄)의 말을 하고 있는 거짓 권세들의 공격 때문에(계 12:11-18), 순진한 양들의 영혼이 언제 유린을 당할는지 예측을 불허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마 10:16).
문제는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이 현재를 승리로 성화시키는 비결이 되고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매시간마다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금년에도 실현될 것입니다(마 28:20).
1,000배나 더하는 은혜의 징조는 성령님이 우리를 덮어주심에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시고 품어주셨듯이, 2017년을 받은 우리를 성령님이 덮어주시는 데 있습니다(눅 1:35). 그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마리아와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눅 1:38).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나를 이기는 승리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요일 5:4).
1,000배나 더하는 은혜는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중보기도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2017년을 보장해주는 1,000배나 더한 은혜입니다. 우리의 사죄와 축복을 위한 주님의 기도가 바로 1,000배나 더하는 은혜입니다(눅 23:34).
Ⅲ. 우리는 미래 때문에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본문에 시편 성도가 다시 말하기를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시 73:23-24). 시편 116편 12-14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1. 우리의 미래에는 하나님께 서원한 우리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 각자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을 때 감당하고 가야만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감당하는 데는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축복의 은혜가 1,000배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는 죽음과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시간은 우리를 여기 세상에 장구하게 머물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금년 2001년도에도 주님을 맞이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인류의 숙적이요 원수입니다(고전 15:25). 모든 인류는 도처에서 이 죽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죽음을 이기는 장수는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자는 1,000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뿐입니다. 사망을 호령하고 넉넉히 이기는 생명의 장수들은 1,000배나 더하는 부활 소망의 은혜를 입은 자들뿐입니다(고전 15:54-55, 57).
프랑스의 한 간호사가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둔 임종환자를 간호하라는 지시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간호사는 “그 분은 그리스도인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걸 왜 묻지요?”라고 하자 그 간호사는 대답하기를 “저는 무신론자 볼테르(Voltaire)를 간호하고, 또 그의 최후 죽어가는 모습을 본 사람입니다. 그 후 저는 전 유럽을 다 준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독하고 저주를 받아 죽는 사람의 최후는 다시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인생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은 심판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뿐만이 아니고, 죽음 후에는 영원한 심판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1,000배나 더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히려 그 시간이 영광의 시간이요, 쉬는 시간이요, 잠자는 시간이요, 행한 일에 상급이 따르는 시간입니다.
1,000배나 더한 은혜는 바로 예수를 믿는 믿음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히 보신다고 하였습니다(시 116:15).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3.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1,000배나 더한 은혜를 받은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영생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지 못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영생입니다(요 5:29). 영원한 영생의 영광은 1,000배나 더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2017년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간의 이정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2016년이라고 하는 과거 속에서 나온 현재입니다. 그리고 또 2017년이라고 하는 미래를 만들어내고 말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었다면 과거의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현재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대하는 미래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존재하고 있다는 실존 그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받은 1,000배나 더하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자입니다. 현재에 받고 있는 1,000배나 더하는 은혜에 대하여 안식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더욱이 각자가 맞이할 미래에 대하여 1,000배나 더하는 은혜 때문에 확실한 소망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신 축복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무한에 이르는 태양열과 대기자원, 여러 생존자원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측량불가능의 은혜입니다. 무진장의 은혜입니다. 그 중에 우리는 더 측량할 수 없는 은혜,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 바로 1,000배나 더하는 은혜를 약속받고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의 은혜, 구원의 은혜, 믿음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현재보다 1,000배나 더하는 은혜의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가까이 함이 복이라
성경본문 : 시편 73: 23-28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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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스물여덟살 청년은 5평 지하창고에 공장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상호는 ‘이레전자’. 가진 것이라고는 현금 50만원이 전부였고 백열등 아래 전선을 가공하던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좁고 캄캄한 지하공장은 10여년이 지나면서 2,500평 규모에 연매출 700억원의 대표적 벤처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다섯 평 창고의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2,000억의 매출을 올리면서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벤처기업 대상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레전자의 정문식 사장입니다. ‘다섯 평 창고의 기적’ 이란 저서에서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셨다고 정사장은 회상합니다.
“중학교 때 시골에서 올라와 옥탑방에서 힘들게 살 때입니다. 잠들기 전에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신앙훈련을 받은 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결혼 후에 공장에 다니면서 주일성수를 할 수 없게 되자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직장을 그만 두기도 하였습니다.
다섯 평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주일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에서 봉사를 합니다. 15년째 교회학교 교사를 맡아 봉사하는데 외국에 출장을 갔다가도 학생들을 위해 중도에 귀국할 정도로 충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보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옥탑방에서 힘들게 살던 자리에서 이레전자의 CEO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실 때 축복하여주십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이든지, 나라든지, 민족이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복을 주셨습니다. 특히 국기에 십자가가 그려진 기독교 국가 중에 가난한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달러에는 ‘We trust in God-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청교도 조상들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한 증거인데 이로 인해서 후손들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시편 73편은 아삽의 신앙 고백이요 찬양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악인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을 보고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난제들을 하나님의 성소에서 해결함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통해 해결 받고, 성령의 감화를 통해 기도함으로 참된 복이 무엇인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복중의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복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금생과 내세로 연결되는 무한한 것입니다.
아삽은 본문에서 증거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호흡이 있는 동안 날마다 주께로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조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복을 누린 주인공들입니다. 아삽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멸망의 시작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의 인도자 되시니
마더 테레사(Madre Teresa) 수녀에게 어느 기자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녀님은 무어라고 기도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듣습니다.”
기자가 의아해하며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수녀님이 들을 때 하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분도 들으십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꿈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무엇을 줄꼬?”
묻자 부귀나 명예, 장수 같은 것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성경은 지혜를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뿐만 아니라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믿음의 거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즐겨했습니다.
말씀 듣기를 즐거워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영광으로 영접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말씀과 교훈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리” 흑암을 헤매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빛이 되고 소망을 주는 것은 주의 교훈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말씀에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라고 본문을 뒷받침하며 증거합니다.
좌절하고 낙심되었을 때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지혜가 흐려집니다. 나아갈 바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깊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며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의 교훈을 통해 인도하여 주십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까? 앞이 캄캄하십니까? 하나님께로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교훈으로 인도하시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나의 반석이 되시니
로렌드 헤이스 (Roland Hayes)는 유명한 흑인 음악가였습니다. 명성이 전 구라파를 진동할 때 독일 음악계에서 헤이스를 초청하였습니다. 음악회는 1924년 베토벤 홀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 우월감을 가진 독일인들은 흑인 헤이스의 베토벤 홀 입장을 독일의 수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앙의 사람 헤이스였지만 진퇴양란의 어려움을 당할 때 심중에 심한 번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헤이스는 약속 시간에 베토벤 홀 스테이지에 기어이 나타났습니다. 청중들은 박수로 환영한 것이 아니라 모욕의 언사로 아우성을 쳤습니다. 헤이스는 조용히 피아노 옆에 손을 맞잡고 섰습니다. 5분 10분, 계속하여 헤이스는 기도로 묵상하였습니다.
얼마 안 되어 청중의 아우성 소리는 고요해지고 수라장이던 장내는 정숙해졌습니다. 숙였던 헤이스의 머리는 들려졌고 피아노 소리와 함께 헤이스의 아름다운 음성은 홀을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청중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흔들리는 순간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강력하게 붙들어 주심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흔들림이 없는 반석이 되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6절입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우리의 마음이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하며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시편기자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이 될 때 반석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흔들리는 마음이지만 치유하시며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더 이상 요동치 않도록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시편기자는 육신과 마음이 쇠잔한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염려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반석 되심을 믿었습니다. 염려할 이유가 없음은 반석이 되신 하나님을 믿고 맡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바울도 감옥에 있으면서 흔들림 없이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고백한 근거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반석위에 세워지는 강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반석과 분깃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의 피난처 되시니
루마니아의 한 목사가 공산당에 의해 투옥되어 16년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악랄한 세뇌도 받았지만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투옥 생활 후에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번은 죄수들에게 가족의 방문을 요청하는 엽서를 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세수와 면도를 하고 죄수들마다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그 역시 면회실에서 기다렸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엽서가 집에 도착되지 않았던 것을 그가 알 리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스피커에서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그들은 더 이상 네게 관심이 없다”는 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감옥에서 나온 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감옥생활이 그렇게 길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본문 28절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복된 소식을 전파하리라는 경의에 찬 시인의 강력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지만 주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영광의 손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밖에 보이지 않을 때 세속적 풍요로움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눈을 들어 영원의 가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둘 때는 마음이 흔들려 원망과 불평이 생겼으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소망을 두니 하나님이 피난처 되심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로저 봅슨(Roger Bobson)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였을 때입니다. 대통령이 말합니다.
“남미는 지하자원이나 기후 조건이나 자연 환경이 훨씬 북미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북미는 잘 살고 남미는 왜 얻어먹는 나라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봅슨이 대답을 못하자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말합니다. “단 한가지입니다. 남미는 스페인 사람들이 황금을 캐러왔습니다. 그러나 북미는 청교도들이 하나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적이 다르고 삶의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 북미가 잘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황금만 캐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찾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공간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차의 백미러 (Back mirror)를 보면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하나님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예수께서 멀리 계시는 하나님을 가까이에 두셨습니다.
곁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계시는 ‘나의 아버지’ 라고 불렀습니다. 가까운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 복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범사가 잘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무거운 짐이 벗겨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승리합니다.
부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악인의 형통
시편 73편
1. 악인의 번영(1-14)
①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1)
② 악인에 대한 질투(2-3)
③ 악인의 상태(4-9)
악인의 번창(4,5)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
④ 악인의 영향력(10-11)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며 시험한다.
⑤ 시인의 한탄(12-14)
악인의 영향력과 권세
하나님만 바라보던 자신과 비교하여 회의에 빠졌다.
2. 악인과 의인의 운명(15-28)
① 디딤돌(15-16)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위치
② 승리(17)
성소에서 깨달았다.
③ 깨달음(18-20)
하나님의 공의 - 악인에게 곧 닥칠 하나님의 심판
④ 자신에 대한 반성(21-22)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회의에 빠진다.
⑤ 시인의 변화
하나님에 대한 고백 - 주님이 나를 붙드심
부빡에 사모할 이 없음
⑥ 새로운 결단(27-28)
주를 멀리하는 자는 멸망,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복
그러므로 하나님만 피난처 삼고, 주의 행사를 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