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으로 최대한 나눠보겠습니다. 에휴. 너무 길게 썼어...
달을 쫓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것인가 참다운 행복인가 아닌가.
난 과연 6펜스를 버리고 달을 쫓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찾아야 될 것이 있다.
바로 나의 '달'이다.
과연 그것을 찾는 날이 있을까...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 저) 中에서.
[BL] I envy you.
짜악.
누군가, 뺨을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
하지만 아프게 만드려는 그 의도와는 달리, 소년에겐 간지러움도 주지 않는다.
단지 약간 귀를 자극한 정도.
"버릇이 없군, 종업원. 나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저,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를 하염없이 올려다 볼 뿐이었다.
보라색 눈동자. 냉소와 비웃음으로 뒤덮여있지만 언제나 아름다운 색채로 빛나고 있는 결정체를.
하지만 그 어느곳에도, 소년이 찾고 있는 희망은 없는 듯하다.
한쪽 입가를 비죽이 올리는 냉소가, 이토록 뼛속 깊이 추웠던 적은 처음.
"넌 해고다. 아니,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군. 나가."
카운터 앞에서 이 난리를 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거나 또는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손님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흥미롭게 구경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누가 말했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 있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는 말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소년은 아무런 반발이나 저항이 없다.
단지 번쩍 치켜들고 있던 머리를 밑으로 숙일 뿐.
새하얀 이마를 짧게 물결치는 황금머리가 베일처럼 덮는다.
그러나 얼굴표정을 가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듯.
끈질기게 구경하던 몇몇 사람들조차도 그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얼른 원위치시킬 정도였으니까.
"왜......죠?"
"킥. 꼭 알아야만 해?"
남자는 손을 뻗어 소년의 여린 턱을 거칠게 치켜올렸다.
호박색 눈동자에 연기처럼 스며드는 물방울.
한참동안 그것을 빤히 쳐다보던 그는 팽개치듯 손을 떨구었다.
마치 아무생각없이 벌레를 집어들었다가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리는 어린아이같이.
"너같은 자식은 이 카페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투욱.
지금 막 닦은 것처럼 반들반들한 대리석바닥에 눈에 맺힌 무언가가 떨어지자마자 소년은 쫓기듯이 그 카페를 뛰쳐나왔다.
그의 갈기갈기 찣긴 마음과는 달리, 햇살이 유난히 밝은 날.
얼마나 달렸을까. 소년은 멈춰서더니 다시 뒤를 돌아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흐릿해지는 시야 앞에 보이는 검은 톤의 카페.
그리고 세뇌적으로 반짝이는 하얀색 간판 글씨, I envy you.
처음에 그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것이 그 영어간판의 의미였다.
-그, 그런일이 있었어? 야, 야! 괜찮아괜찮아. 원래 그 주인 성격이 좀 괴팍해야 말이지. 그래도 너같이 착한 애가 고용된다면 고쳐질 거라는 모종의 희망을 품었었는데. 아무리 내 친구라지만 좀 너무하잖아?! 에, 그렇다고 널 이용했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라고.
솔직히 말해서 거기 종업원이 없어서 무지하게 한가했다는 것은 너도 잘 알던 일이잖아?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고 하길래, 내가 호기심상 널 추천해 준 건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어. 너, 아무리 아르바이트가 생겨서 좋았다고 해도 그렇지, 진작 말을 해줘야지 알거 아냐!
쩝, 여하튼, 내가 정말 잘못한 거다. 그래! 사과할께. 너 설마 그것같고도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알폰스? 너는 어떻게 된 게 너네 형보다도 더 눈물이 많으니... 내가 챙겨줘야 한다니깐?
"응? 아ㅡ. 걱정 안해도 돼. 괜찮으니까."
카페라고 해도 그렇지, 술집에 난데없는 꼬마가 오다니, 라면서 툴툴대던 마스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카페 이름,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왜 하필 칙칙한데다 흔치도 않은 'envy', 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거냐고.
사실 엄청나게 실례되는 질문이긴 했다.
처음 온 종업원주제에 주인에게 간판 이름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그는 알폰스의 그 질문이 마음에 들었단다.
왠만한 어른들도 못 견뎌 낸다던 그... 긴 이름의 양주를 10잔 원샷해야 하는 환영식도 취소시켜 줬으니까.
그리고, 뭐라고 대답했더라.
내 이름이 엔비거든. 잠깐, 그럼 내 이름이 칙칙하다는 소리야?
곧바로 형의 영어단어 사전을 빌려 뒤져보았다.
envy [envi] 【F 「곁눈으로 보다」의 뜻에서】 n. (pl. vies) ... 1 [때로 pl.] 질투, 선망, 시기( jealousy ... ); 선망의 대상, 부러워하는 것[근거] ...
2 《폐어》 악의
왠지 그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해버린 이유는 뭘까.
-내가 정말 잘못했어. 하아. 15살 받아주는 아르바이트가 어디 그리 흔하겠냐? 이 형아도 가슴이 찢어진다고. 까짓거 잊어버려! 내가 좀더 봉급 빵빵한 아르바이트를 소개시켜줄께! 너 정도의 얼굴과 성품이면 어디에선들 환영을 못 받겠냐?
그래, 요 앞의 편의점 어때? 아니, 분식점도 괜찮겠네. 요리도 잘하니까 네가 오면 아주 껌뻑 죽을지도 몰라!
핸드폰에서 울려퍼지는, 하보크 형의 재잘거림을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그는 또다시 엔비에 대해서 생각했다.
확실히, 그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특이한 사람.
비웃는 듯한 특유의 말투때문에 사람들에게 싸가X가 없다는 심한 평판까지 듣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 일이 끝날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엉덩이까지 기르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사실 정말로 등의 대부분을 뒤덮은 검은 머리카락.
또 그것과 대비되어 흰 피부.
그의 형 에드워드가 '네다리의 동물에게서 나오는 저급음식이라고!' 라 강력히 주장해서 구경도 해본 적이 없지만, 친구들 말대로 정말 우유가 하앟다고 해도 그의 피부에는 비기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이국적인 색깔을 발하는 보라색 눈동자.
게다가 어찌나 옷 입는 것을 싫어하는지 모른다.
약간 타이트한 데에다 팔이 아예 안 달려 있는 웃도리, 치마인지 바지인지 약간 헷갈리는 하의만 입고 다니는데, 전부 검은색이다.
겨울에도 그런 옷차림만 고집하는 걸 보면 집에 그것 한 벌밖에 없는 건지, 아니면 똑같은 종이 여러개 있는건지.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한번도 물어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를 집에 들여놓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한번 놀러간적도 없고.
손님은 왕이래. 어쩔수 없지만 깎듯이 대해줘야겠지? 알군.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번도 지킨 적 없는 그 행동들.
그리고, 여태까지 봐왔던 종업원들과 키가 상당히 차이나서 불편하다는 말을 몇번이나 하면서도 따라다니던 기묘한 웃음.
알폰스군이라 부르기 귀찮다며, 간단히 줄여 알이라고 부를때의 그 목소리.
그리고 매일마다 벌레에 물리고 다닌다나, 온 몸에 가득 붙여놓는 반창고.
알폰스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높여 웃었다.
-왜 웃어 알폰스? 기분 좋아지기라도 한거야?
그러나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음성에 그는 금방 정신을 찾는다.
맞다. 자신은 방금 짤렸었다. 마스터에게, 아니. 엔비형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었다.
새삼 그에게 맞은 왼쪽뺨이 욱신욱신 쑤셔온다.
왜 웃어?
또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다.
-에에에에엑?! 내가 또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거야?
"괜찮아. 좀 아파서 그래. 미안. 아, 이제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지?
그럼.
이 한마디만 해 주면 되는데, 목구멍이 꽉 막혀서 말해주지도 못하고 그는 조용히 핸드폰플립을 닫았다.
수다스러운 분위기가 가시자 이제는 섬뜩해질 정도로 조용해진 집안.
소년은 몸을 가능한 한 잔뜩 웅크렸다.
어느새 뻐꾸기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6시.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에드 형이 올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할 시각.
이럴 때는 그 빌어먹을 아버지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몸을 더 움츠렸다.
아르바이트 하기 전, 무섭고 외로웠던 순간이 다시 찾아와 몸 속에 차디차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몇 분 동안을 그러고 있었을까.
무언가가 다리를 툭툭 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노란 눈동자에 약간 헝클어진 검은 털, 고개를 갸우뚱한 체 주인을 빤히 주시하는 검은 고양이, 나비.
원래 고양이는 나비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리거든. 아야! 이 자식이!!
'이런 걸 뭣하러 줏어오냐?' 라고 꾸중을 하다가도 잠시 후엔, 줏어온 당사자보다도 더 관심을 표하다가 손가락을 호되게 물렸었지. 그러고 보니.
나비를 가슴에 꼭 품고서 알폰스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마스터가 종업원을 해고하다.
너무나도 흔해빠져서 입에 담을 수조차 없지만, 엄청나게 요란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알폰스에게만은.
이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또 피식 웃어보였다.
"알폰스! 뭐하는 건가! 칠판에 문제를 적으라니까 왜 벽에 적고 있는 거야!"
"알폰스 엘릭, 정신차려 정신! 숙제를 도로 지우개로 지우면 어떡해?"
"에, 저, 알폰스? 체육복을 거꾸로 입은 것 같은데..."
"꺄악! 알폰스! 피나잖아! 그러게 왜 샤프를 손에다 찌르고,"
"알폰스 군, 조퇴 끊어줄테니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떤가?"
"어디 많이 아파, 알폰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렇게. 학교에서까지 멍하니 넋을 잃고 있던 알폰스에게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평범함에 질렸던 것이 아닐까하는.
원래 그런 이유로 종업원을 짜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원래부터 마스터틑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 아니던가.
확실히, 알폰스. 15살의 중학생이라는 것 이외에 그에게서 찾을 수 있는 유별남이라고는 거의 없다.
국가 무슨무슨 자격증이다, 국내 뭐뭐 상이다, 수학대회 우승상이다, 전국 먹기대회 최우승상이다, 해외에 있는 상을 빼놓고는 거의 싹쓸이를 해오는 데에다 인간관계도 완만해서 친구들도 많고, 운동도 많이 해서 반사신경도 엄청나게 빼어난 데에다, 남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연상의 애인까지 떡하니 있는 형하고는 천자만별인 것이다.
흠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키가 작다는 정도랄까.
그 둘이 다른 이유? 간단하다.
그들을 볼때마다 수군수군 대는 친척들의 험담 그대로,
이복동생이니까ㅡ.
그럴 때마다 에드워드 형은 주먹을 휘두를 기세까지 보이면서 그야말로 불같이 화를 낸 다음 그에게 더더욱 세심한 배려를 해 주기는 하지만 역시,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알폰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얼굴은 본 적이 없겠지만, 엄청 친절하고 자상하실 것 같으니까.
하여튼, 원래 평범한 사람과 특별한 사람은, 물과 기름사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생각해보니 그와의 대화마저 처음부터 끝까지 문답형식이었지, 아마.
그게 또 우스워서 풋, 하는 소리를 절로 내버리고야 만다.
하교길,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조금 심심해진 알폰스는 전봇대에 기대어 전의 일들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가게간판들 중에서도 단연 빛을 발하는 글자. I envy you.
"이렇게 먼거리에서도 보이네."
하지만, 역시 거리때문에 마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간판글씨와 조명빼고는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뒤덮여있는 저 가게에서 한창 일하는 중일 것이다.
종업원은 자신과 전혀 다른, 싹싹한 녀석으로 제대로 골라 잡았을까. 왠지 걱정된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실수도 많이 했었다.
손님이 양주 5병을 주문했는데도 실수로 한 병을 빼먹어서 '죽음의 숫자'를 만든 적도 있었고,
걸어가다가 실수로 나비의 꼬리를 밟아서 카운터를 한바탕 난장판을 만든 적이 있었다.
알폰스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날의 흉터.
안주를 집어먹다 들킨 적은 셀 수도 없고.
언젠가는 너무 졸린 나머지 계산에서 0하나를 빼먹어 100000짜리 양주를 10000원에 내 준 일도 있었다.
그땐 3시간의 잔소리를 듣고 집에 가야 했다지.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정지먹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마스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정말이지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지 누가 알겠는가.
수당도 시간당으로 착실히, 가끔씩 10000원 더 얹어서 준 적도 있었다.
결국, 결과는 엄청난 실례를 입었다는 건가.
그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쫓겨날 것도 무리가 아닌 짓을 너무나 많이 한 것이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그' 사건까지 합치면 훨씬 더하겠지.
다시는 이 골목으로 올 일이 없을거라 다짐하며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어이, 귀염둥이! 술 좀 더 내와 줘."
"엣? 이제 더이상은 안돼요. 마스터에게 혼날지도 모른다구요."
"걱정마! 오늘은 외상으로 안 낼테니."
그렇게 말하시면서 언제나 외상으로 내시잖아요.
저절로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이 말을 그는 억지로 꾸역꾸역 쑤셔넣었다.
가뜩이나 손님이 적은 이 가게에서까지 골든카드 쓰고다니는 고객이야.
그냥 무시하고, 술시중은 절대 들어주지 않으면 돼. 그럼 자기가 알아서 꺼내 먹는다고.
...이게 정녕 한 카페의 책임자인 마스터의 말로 들리느냔 말이다.
여하튼, 언제나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린다고 볼이 부어서 불평했을 때, 마스터도 알고 있는 듯 한숨을 쉬면서 했던 말이다.
게다가 평상시엔 혼자서 오던 손님이었는데, 이번에는 친구까지 껴앉아 부어라마셔라 하고 있는 것이다.
저 친구들에게 카페 홍보를 팍팍 시켜준다면, 마스터의 고객이 더 붙게 되겠지.
그는 심호흡을 하며 양주 3병과 손에 잡히는 양주를 아무렇게나 집어들었다,
하지만 역시, 앞에 다가갈 때마다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좀 간격을 둬야지, 하고 다짐하며 카페의 테이블 정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알폰스였다.
"맛있게 드세요."
먹다가 식중독에나 걸려 다 죽어버려라.
이런 무시무시한 저주를 걸어놓고는, 쟁반을 놓고 얼른 돌아서서 마스터에게 가려는 순간이었다.
"냉정하잖아, 귀염둥이. 잠시만 있어보라고."
"에에엑?!"
갑자기 남자의 굵다란 손가락이 대뜸 그의 허리를 부여잡는 것이 아닌가.
워낙 가느다란 허리라서 한 손으로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반 이상을 덮어버린다.
그러니 아무리 버둥거려도 빠져나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주물럭거리는 그 불쾌한 감촉에 이성을 잃은 알폰스가 골든카드 손님이고 뭐고간에 다 내팽개쳐버리고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버리려 입을 따악 벌리는 그 순간.
"어이, 이봐요들! 지금 내가 꼬실려고 하는 이 카페의 귀염둥이! 초 세쿠시한 알폰스 군을 소개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세쿠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물어보기 전에 시.선.집.중 되어버렸다.
그날따라 테이블도 초만원으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는지라 30명 정도, 그러니까 60개의 안구에 그대로 꽃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안구들보다도 더 신경쓰이는 것은, 왠일인지 손님들 앞에서 칵테일 묘기에 열중하던 마스터조차도 알폰스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
'골든카드 손님'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을 돌자, 그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아니꼽고 징그럽기까지 하지만 이'분'은 여하튼 마스터의 손님.
그는 손톱이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있는대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손님?"
무엇이 그렇게도 웃긴지, 깔깔깔대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손님들, 아니 골든카드와 그 친구들.
알폰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그저 그들이 빨리 자신의 허리를 놓아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마스터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모두 낚아서, 그마저도 깜짝 놀랄 정도의 솜씨를 보여주리라.
"뭐, 큰일은 아니고, 안주나 먹고 가라고."
게다가 어쩐지, 오늘은 가볍게 넘어간다.
친구들 앞이라 그런지 그다지 수상한 낌새도 보이지 않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마스터가 보고 있지 않은가.
이마에 줄줄 흐르던 진땀을 닦으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안주만 먹으면 이거 놔 주시는 거죠?"
"흐흐. 그래그래, 착하지."
무언가 아주 의미심장한 골든카드의 웃음소리를 그는 애써 무시한 체 쟁반에 있는 안주 중 가장 조그만 것을 찾아 헤메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모두 큼지막한 과일들 뿐.
자신의 통큰 마음씨에 저주를 퍼부으며 그는 그나마 제일 조그마한 거봉 한 알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얼른 입 속으로 삼키려던 바로 그 때,
갑자기 그의 오른손에 잡혀있던 거봉이 좀더 크고 노오란 과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순간 울컥하여 남자를 째려보았다.
여전히 그의 친구들은 키득키득대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가끔씩 속삭임이라고 하기에 조금 큰, 귀엽잖아! 라는 소리까지.
정말이지, '댁들에게 귀염받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요!' 라고 쏘아붙여주고 싶다만.
"이걸로 먹어봐, 귀염둥이."
이제는 골든카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헤드벵잉을 시도하는 중.
역시 먹을 수밖에 없는 건가. 없는거다.
그는 바나나껍질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샤샤샥 벗겨냈다.
그리고 한동안 쩝쩝쩝 맛있게 먹고 있는데, 있는데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갑자기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그 순간부터.
고개를 살짝스레 들어서 바라보니, 모두가 그의 바나나 먹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잔에서 흘러넘칠 때까지 와인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심지어는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가 아닌 바지에다 부벼놓고 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 정도.
그 불가사의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골든카드, 그 손님이었다.
"너, 너 원래 바나나를 그렇게 먹니?"
"에? 바나나 사이에 있는 농약떼려는 건데요? 왜요?"
".........."
그렇다.
에드의 당부와 훈련, 강요가 있었기에 과일을 먹을 때는 농약을 철저히 씻어내고 먹는 게 습관화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바나나를 씻어먹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럴때의 방법은? 간단하다. 몇개 구석에 남은 농약덩어리들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먹으면 그래도 안전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생각해보라.
앵두같이 빨간 입술 안 미백을 드러낸 체 열심히 바나나를 위아래로 훑고 있는 우리의 알폰스군을.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는 천상적인 황홀함이요, 이 세상의 모든 쇼타콤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점이라.
눈에 불을 켜고 헐떡이기 시작하는 늑대들의 위기 속 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알폰스가 마침내 농약 한꺼풀을 다 벗겨내고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아, 쓰읍! 진짜 못참겠네!!"
"무슨.........?!?!?!"
내 이런 일 벌어질 줄 알았다.
여태까지 조용히 있던 어떤 남자가 골든카드보다도 먼저 일어나더니, 알폰스의 입술에 찐한 딥키스를 하는 것이 아닌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혀에 제대로 반항해보지도 못하고 그는 그저 멍하니 있을 뿐.
손에 들고 있던 바나나를 바닥에 떨어뜨릴 즈음,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이해하게 되어버렸다.
첫키스를, 그것도 저런 중년 아저씨한테 순순히 빼앗겼다는 사실에 그는 통분하며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발정난 남자도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듯.
아니, 오히려 더 의기를 충전시켜준 결과가 되버렸다.
"읍읍! 으으으으으읍!!"
휘익휘익 휘파람까지 불며 열광하는 몇몇 사람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까지 보이며 알폰스의 등을 더듬던 그가, 마침내는 바지호크까지 내려버렸다.
지이익.
틀렸어!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친다.
절망에 빠져서, 이젠 눈까지 꼭 감은 알폰스에게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검은 잔상.
마스터.
뻐어억!!!
"크아아아악?!"
그리고 무언가 뒤집어지는 소리, 고함. 누군지는 모르지만 약올리듯 점점 더 커져가는 휘파람소리. 의자가 내팽개쳐지는 소리. 문에 달린 종이 정신없이 딸랑딸랑. 나비의 우렁찬 비명소리. 그리고 엄청 둔탁하고 경쾌하게 들리는 구타음.
만류하는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뒤섞여 이래저래 시끌벅적하다.
기절하기 직전의 몸을 억지로 추스리며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어느새 중앙에서 유리창 끝까지 밀려나 누군가의 인정사정없는 주먹과 발길질을 받는 남자가 보인다.
우선은 덮쳐질 염려가 없다는 것에 잠시 안도... 를 했다만 흘러내리는 양주와 섞여서 더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핏물과, 이빨 몇개를 보자 알폰스는 다시 앞을 바라다보았다.
뒷모습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옷차림을 보건대 틀림없이 마스터이다.
물론, 명치고 허벅지고 관절이고 머리이고간에 남자를 온통 피떡으로 만들고 있는 저 가해자말이다.
골든카드와 그의 친구들이 그를 만류하려 팔다리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데도 불구하고 끄덕도 없는지, 여전히 손과 발을 멈추지 않는다.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마스터가 손님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지호크를 추스린 다음 알폰스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생각같아서는 같이 협력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 이 이상 팬다면 정말 사람 한 명을 죽이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만류해야 할지는.
"저, 마스터?"
퍽퍽빠각퍽파각슉.
"마스터?!"
퍽빡아득쿠콰악콰득콰과광.
"마스터어?!?!?!"
퍼버벅콰닥잘근잘근쿠직뿌콱뜨드득.
틀렸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골든카드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버리는 데에는 성공해버렸다만.
그들의 표정과 몸짓과 눈으로 해가는 온갖 제스처를 보건대,
"직접 가서 말리라고요?"
끄덕끄덕!
알폰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불안스레 마스터의 뒷모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주먹에 잘못 맞으면 불귀의 객이 될 판인데.
그래도 역시,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잘못했으니.
...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타는 듯이 강렬한 눈빛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여하튼 그는 열심히 뛰어 엔비와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체육대회에서도 이렇게만 했다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속도로.
"그만해요, 마스터!"
끼이이이익!
마치 자동차가 브레이크 밟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슬아슬하게 알폰스를 스쳐가는 주먹.
"비켜."
안면을 시원하게 스치고 가는 싸늘한 말투가 그의 피부를 섬찟하게 만들었다.
왠지 화가 난다.
"어차피 마스터가 잘못한 거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
아, 감정에 복받쳐 쓸데없는 말까지 해 버리고야 만다.
그는 후회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으며 살짝 위를 올려다보았다. 물론 너무 겁이나서 눈매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입술만.
비웃음이건 천진난만한 웃음이건 언제나 올라가있었는데, 지금은 수평을 유지하는 입꼬리.
역시ㅡ, 어린애의 버릇없는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한건가.
그렇다면 뭐라고 화라도 내주면 좋을텐데, 꼭 다문 입술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 때, 정신을 차린 몇몇 손님들이 뒤늦게 수습해 준 덕분에 상황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두고보자!'라는 악역의 삼류대사를 남긴 체 물러가는 골든카드 외 친구들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무사히 집에 귀가할 수 있었고. 다음날이 되어도 어떻게 된 건지, 손님들마저 전혀 줄지를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 날 아르바이트가 끝나가도록 엔비의 침묵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별, 이 정도랄까.
그만두자.
집에 돌아오자마자 알폰스는 쓰러지듯 방바닥에 뻗어버렸다.
원래 이쯤이면 아르바이트 끝났을 시각인데.
언제나와 똑같이 오늘도 카페의 불빛만 먼 발치서 쳐다보다 그냥 나와버렸다.
다른 종업원을 뒀는지, 어떤 양주를 새로 구입해놓았는지, 아무것도 모를만한 거리에서.
알아버리면 너무 슬퍼서 미친 듯이 울 것만 같으니까. 변해가는 것이 한없이 두려워서.
자신이 없는 체로 변해갈 모든 것이 증오스러워서.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가슴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어차피, 네 주제에 감히 우러러볼 수 없는 사람을 짝사랑해 버린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었던가?
우스워.
그것도 같은 남자를? 제정신인가 몰라.
누군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린다.
아프다.
"알폰스! 너, 너 사실이야?!"
누군가 세차게 그의 어깨를 쥐고 뒤흔든다.
감고 있던 눈을 화들짝 들어올린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검은 색이 아닌, 자신과 똑같은 황금빛의 머리칼.
한순간 마스터... 인 줄 알았다.
그는 파리한 얼굴을 애써 웃음으로 일그려뜨렸다.
"뭐가 말이야?"
"너 교납금, 아르바이트 해서 낸 거라며?!"
아.
물론, 처음에는 그런 의도였다.
아버지가 통장에 다달히 돈을 내주기는 하지만, 워낙 아슬아슬한 까닭에 빚도 만만치 않은 데에다 생활비에 쓰이기도 빠듯한 편.
아르바이트 돈으로 교납금을 대신해 빚을 차곡차곡 갚아온 결과, 이제 거의 다 채워가던 참이었다.
이자가 붙지 않았던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떻게 그렇게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는지.
거의 망각하고 있었던 처음의 목적.
새삼스럽게 에드워드에게 미안함을 느낀 알폰스는 무언가 변명할 거리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역시 솔직히 말하는 게 최고일 것 같다고 판단.
"그러니까 형, 그게.."
"알아알아. 술집에서 아르바이트 했었다며?"
그렇게 잘 알았으면 질문은 왜 한거야? 이렇게 묻고 싶은 심정을 알폰스는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술집이 아니라 카페야. 술을 판다는 것 뿐이지.."
"가자."
간다고?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그는 한참후에야 그 뜻을 파악했다.
"술 파는 가게에서 왜 미성년자를 쓴 건지, 가서 이유나 알아보고 오자고!"
가고 싶어.
"싫어!!!!!!!"
에드는 놀라움에 커진 동공으로 그의 동생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벌떡 일어나있는 알폰스조차 자신이 왜 그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괴롭힘이나 놀림을 당해도 자기 주장을 못하는 동생의 성격때문에 그렇잖아도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에드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렇게 큰 소리를 낸 알폰스는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한번도.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라도 생겼던 걸까.
"후우. 아직도 그 가게 계속 다녀?"
"...짤렸어."
어색한 침묵. 둘이 있을때는 한번도 이렇게 조용해진 적이 없었기에 그 낮설음은 더해간다.
에드가 먼저 헛기침을 두어번 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르바이트 같은 거, 이제는 하지 마라."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러나 알아듣고는 있는지, 어깨에 보이는 약간의 반응.
문득 그런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만약 그 상황에 빠졌던 것이 형이었다면 일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마스터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한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빚은 갚을 수 있었는데, 그, 로이에게 500일 선물 주느라고...큼큼. 여하튼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네 생각이 어떨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해서. 여하튼, 돈이 필요하면 아르바이트는 차라리 내가 할 테니까, 아직 돈이라던가 하는 것에 신경쓰면 안된다고. 그럴 나이도 아니고. 내 말 알아들었지?"
"알아, 형. 이제 다시는 가지 않을께."
다시는.
여하튼, 조금 전보다는 화목해진 듯한 분위기에 완전히 안도하고 있는 에드였다.
동생의 미소가, 비관과 절망감으로 온통 뒤덮여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아마 그래서, 무심코 한 말이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 될 수도 있는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술집 아르바이트라니, 이 형이 얼마나 놀랐는 줄이나 알아? 그것도 게이카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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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알X엔비를 처음 시도해봤는데, 이게 로이X에드와는 또다른 맛이네요.
릴레이소설도 써야하는데.. 뭣하러 쓴건지... (어이 아직 허락도 못받았어!!!)
여튼 힘내서 완결까지 쭈욱~! 가겠습니다! 아자아자분발!!
삭제된 댓글 입니다.
=_=기리기리님 소설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죠; (아아 나이를 헛먹었어...) 님도 건필!
아;ㅁ; 멋집니다! 乃[척!] , 정말 글을 잘쓰세요-! , 건필하세요^-^ 잘보고 갑니다-
허허 무슨 과찬의 말씀을!! 이러시면 저 완전...좋아 죽습니다 젠장-_-;
아아- 잘보고 갑니다 ;ㅁ;
=_=(왠지 감동 만빵.)
허, 허어억 게.... ;; 아아 잘 읽었습니다;ㅁ; 다음 거 기대할게요;ㅁ;)/
=_=왜 눈물흘리시는 겁니까 이 분.
에엑. 루안씨? 그 18세(..)루안씨? ...가 아닌가. 에에. 건필하시와요<- (덤) 루안상 소설 너무 잘써!(이봐)
맞아요!!!! 감상평 좀 해달란 말이야!!! (옷자락 붙들기.)
게이카페;ㅁ; 다음편 얼른 보고 싶습니다~ 건필하시고요, 릴레이 소설 정말 기대됩니다+_+/
아아, 기대하시지 말라니까요!!! (슬금슬금.)
오오, 알X엔비라니 새로운느낌입니다:) 잘보고가요!
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 (짱돌던지는 거 아닌가 내심 걱정했음.)
게이까페-...;;;....은근슬쩍 놀랐어요 -┏,,,, 여하튼...역시 최고입니다...(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