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는 늙음의 길*
늙어 가는 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노년 누구나의 초행길
처음으로 가보는 길이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 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하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 할 때가 많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서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찿아 보기도 한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두려움이 없었는데
처음 늙어 가는 이 길은 너무나
두렵게 느껴진다.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은 많으나
정작 그 길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는다.
한편 늙음으로 향한 길 앞에
서있는 사람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곳에 가지 않으려고,
또 천천히 가려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그러나 그것도 공염불인 것을
어쩌랴......
한편 인생의 시간이라는 길은,
걷는 여행과도 비유해 볼 수도
있다.
시간이라는 길을 빨리 걷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떡국 한 그릇 더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 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떡국을
두 그릇이나 먹겠다고 칭얼 대기도 했으니 말이다.
노년들에는 늙어가는 길이 얼마나 두렵고 초라해 지고,
볼품없으며 허무해 지는 지를
자꾸 느끼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길이다.
가끔은 '항노화'(안티에이징~
노화 되는 것을 막음)라는
꼬드김에 넘어 가기도 한다.
'항노화'시선에서 보면,
노인은 실패한 사람에 불과하다.
늙음이 꼰대를 낳았다고
생각하는 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늙지 않는 것 뿐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다만 마음만은 늙어 감을
잊어야 한다.
70대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비결, 나이를 잊은 듯한 당당함,
여전한 활력과 같은 예찬은
수식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100세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해도 노년 공포증과 세대차별 주의적 세태는 늘어만 간다.
노년을 위로하기는 커녕
늙음을 조롱하고 가엽게 여긴다.
늙음은 죄가 없다
늙으면 모든 게 나빠질 것이라
겁을 먹고 있다면 매일 늙어가는 우리조차 어느새
연령차별 주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늙으면서 나빠 지지만 모든 사람이 늙었기에
추해지지는 않는다.
늙음은 추함의 원인일 수 없다.
추한 노인도 있지만 괜 찮은
노인도 있다.
괜 찮은 노인은 젊은 노인,
세월을 비껴간 노인이 아니며
노력하는 노년이다.
괜 찮은 노인이 되려면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게 아니라
초연해져야 한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 발 한 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길을 초연하고 느긋하게
가야 한다.
또 머무르고 싶어도 머물 수
없으며 가는 세월 막을 수 없으니,
그냥 쫓아 가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 가 있겠는가?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을 뿐이다.
옮겨온 글 《金福鉉/처음 가보는 늙음의 길》
ㅡ 붙이는 글 ㅡ
삶이란, 유한(有限)하며
숙명적이고 진리이다.
언젠가는 싫어도 그 날이 온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이별에 가까워 지고 있다.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떠나면 무한(無限)에
가까운 백겁, 천겁, 만겁의
세월이 흘러도 다시는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도 없거니와
이곳으로 다시 올 수 도
없다는 뜻이다.
백두산 천 개 만 개가 모래밭이
되어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치피 빈 손으로 돌아갈 인생.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사람을
길 들인다.
우리에게는 지나온 시간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중요 하다
노년의 삶은 때로는 이렇게
외롭고 아픈것이다.
청력이 약해져 말 귀를 빨리 잘 알아 듣지 못하자.
지인(知人)이 자기도
"말 귀가 어두어 보청기(補聽器)를 하고 있다"고 하기에
"귀가 잘 안 들리는 건 다 이유가 있다네. 듣지 말아야 할
말이 들리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편해서 좋은데 뭘"
"어지러운 세상에 귀는 밝아서
뭐 하게."
피의자(被疑者)가 총선에서
칼자루 하나 잡았다고,
바로 검찰에 쫓아가 으름장을
놓는 모습은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며, 대학교수, 법무장관
국회의원 당선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행위는 염체 없는 행동이라
말하고 싶다.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단 사표를 낸다고 한다.
고통 받는 환자들을 볼모로
의료대란을 일어킨 그들의
논리(論理)대로 하면
의사 과학자 양성도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면 그 민주주의는
이미 조종(弔鍾)을 울린 것이나
다름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담 해 진다.
이러한 적폐(積弊)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참 지질하고, 염치 없고, 보잘것
없는 행동임을 스스로 부끄러워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채찍을 들어야 한다.
수 차례 제안(提案)했던
국회의원도 선출식이 아닌
공채로 뽑아야 한다.
나는 그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둔 것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깊이 있게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국회의원의 특권과 횡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인재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지역적 편견도 자연스럽게 해소 되며
밤과 낮을 모르는 당파 싸움도
없어질 것이다.
인생을 흔히 부유(浮遊)
인생이라 하여 하루살이
삶이라 한다.
삶이란, 유한(有限)하며 숙명적이고 진리다.
언젠가는 싫어도 그 날이 온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이별에 가까워 지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뒤돌아 보면 회한(悔恨)없는
사람이 없고 후회(後悔)않는
사람 없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노을 처럼, 곱게곱게 물들어 가는 것이
노년의 길이며, 자연의 순리다.
내 삶 보잘것 없지만 작은 풀꽃
한 송이 피워 놓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봄편지
가을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것을
소소한 기쁨으로 생각하기에...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강물처럼 소리 없이 흘러 가고 싶다.
2024/4/14
九 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