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다 퇴직했다.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평생 기계같이 회사로 갔는데 안 가니까 이상하다고 했다. 그 생활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얼마 후 아버지는 내게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게 안 되면 길거리에서 만두를 만들어 팔아 보겠다고 했다.
정년퇴직은 인생의 경사진 언덕 아래로 굴러내리는 것이었다. 그게 우리 사회 소시민들이 가야 하는 내리막길 이었다. 그 다음엔 아파서 요양병원에 있고, 그리고 죽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연구직에 있던 동창이 있다. 그는 연구소를 퇴직한 후 교회의 경비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는 어느 날 주차금지 지역에 차를 댄 장로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했다. 평생 법과 원칙을 공부하던 버릇이 남아 장로의 특권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목이 잘렸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다.
그는 주민센터에서 주는 노인 일자리를 신청해서 갔다. 거의 여성들이었다. 그는 팀장이라는 여성이 어떻게나 갑질을 하는지 그 마음을 풀려고 별 짓을 다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야 일당 오만 원을 벌 수 있었다고 했다.
어제 저녁 아파트 경비원의 경험담을 듣는 기회가 있었다. 무역회사 사장이었던 오십대 후반쯤의 남자였다.
" 부도가 나서 백수로 있었어요. 우연히 친구가 주유소에서 기름총을 들고 알바를 하더라구요. 과거에 큰소리치며 살던 그의 변신을 보고 존경스럽더라구요. 출세 했었거든요.
나도 아파트 경비원을 하겠다고 결심했죠. 그런데 그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자격증이 있어야 하더라구요. 사흘 동안 경비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교육장에 가보니까 십이만 원을 내라고 하는 거에요. 돈도 카드도 없는 내 신세에 그 돈이 작은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사정했죠. 친구는 내가 그렇게까지 됐는지 몰랐다고 하면서 한동안 말을 못하더라구요.
이력서에도 졸업한 대학을 숨겨야 했어요. 일 시키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니까요. 석 달짜리 파리목숨이지만 운 좋게 경비원 제복과 모자를 받았죠."
이어서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 경비원의 일은 하루하루 참아나가는 것이었어요.
동 대표라는 분이 불법주차를 하더라구요. 경비원은 투명인간이 돼야지 말을 하면 안 돼요. 삿대질을 하는 입주민도 있고 아들뻘 되는 젊은이가 턱으로 심지어는 발로 지시를 하더라구요. 다양한 형태의 갑질을 겪으면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한 경우도 있잖아요?
엉뚱한 일을 시키는 입주민도 있었어요. 순찰을 도는데 한 입주민이 옷장을 옮겨달라고 하더라구요. 무거운 옷장 이었어요. 그걸 하고 나와서 가는데 다시 불러요. 아무래도 원래 위치가 나을 것 같다고 원상회복하라는 거에요. "
그 말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정보기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 조직은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압구정동에서 성남으로 가는 버스 안 승객들의 대화내용을 녹취했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부자촌인 압구정동에서 파출부를 하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매일 부자들을 보면서 가지는 박탈감과 모멸감 그리고 증오가 가득했다. 그들은 세상이 뒤엎어지는 경우 갑질하던 그 사모님들의 집을 빼앗고 그 자리에 있고 싶어 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사회적 겸손과 사랑이 있어야 증오의 독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장 출신 경비원의 말을 계속 조용히 듣고 있었다.
" 낮아지니까 전에 안보이던 게 보이더라구요. 환경미화원 대리기사 등 경제적 약자들이 이 사회의 밑바닥에 강물같이 깔려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내가 사장이고 아파트 입주민으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죠.
그렇지만 갑질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높은것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고 따뜻해요.
어느 날 밤 열시경 이었어요. 내가 있는 초소의 창이 살며시 열리고 한 고등학생이 붕어빵이 담긴 봉지를 넣어 주었어요.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그리고 또 한번은 밤 늦게까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입주민 아주머니가 포도 한 송이를 주더라구요. 보니까 비싼 고급 청포도였어요. 두 송이를 사가는데 그중 한 송이를 저에게 주는 거에요. 그 마음이 고맙더라구요.
낮아지니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친구들 중에는 건강이 받쳐주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저는 아직 일을 할 기회가 있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