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연인, 친구와 함께 찾던
'추억의 영화관'으로안내
합니다 ...(1)
■아름다웠던 그날의 추억을 회상( 回想)
면서......
■ 대한극장 김태훈 논설위원
▶ [만물상].조선일보. 2022.08.19
1958년 서울 충무로에 등장한 대한극장엔 창문이 없었다. 영화 볼 때 빛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설계한 대한민국1호 ‘무창 (無窓)영화관’이었다 .
성능 좋은 공기 정화 시설을 갖춘 덕분이었다. 70㎜ 필름 영화를 소화할 수 있는 대형 와이드 스크린도 이 극장밖에 없었다.
알프스의 드넓은 초원에서 ‘도레미송 ’을 부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대한극장은 오늘날로 치면 3D 화면과 좌석 진동 장치까지 갖춘 첨단 멀티플렉스였다.
▶이후 대한극장은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등 대작 상영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3개월 장기 흥행작이 속출했고 ‘벤허’는 6개월이나 스크린을 차지했다.1970년대 극장 애니메이션 붐도 이끌었다 . ‘로보트 태권V’ 와 ‘철인007′ 을 보려고 어린이 관객 수십만 명이 이 극장을 찾았다.
많은 이가 그 시절 대한극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기억한다. 매표소에서 시작해 극장을 한 바퀴 돌아 한국의 집까지 수백 m 이어지곤 했다.
▶대한극장은 ‘로보캅’ ‘백 투 더 퓨처 ’등이 흥행하며 1985년부터 8 년 연속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다 . 혼자만 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다.
단성사· 서울 · 명보· 중앙· 스카라 · 국도· 피카디리· 아세아 · 허리우드도 ‘10대 극장’으로 꼽히며 잘나갔다 .
방학 때면 학생들도 가세해 조조할인 표마저 구하기 힘들었다.극장 앞엔 암표상이 들끓었다 . 신작 영화를 개봉관 한두 곳이 차지하는 단관 극장 전성시대의 풍경이었다.
▶대한극장이 조조할인 시간대를 오후 1시로 옮겼다고 한다.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 CGV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와의 오전 할인 경쟁에서 밀리자 취한 선택이다 .
영화 한 편을 1000곳 넘는 스크린에서 동시 상영하는 시대가 되면서 자본이 부족한 옛날식 극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는 멀티플렉스로 변신했지만 역부족이었다 .
온라인 동영상(OTT) 서비스와 거실을 차지한 80인치 대형TV는 각 가정을 영화관으로 만들었다. 대한극장의‘ 오후 조조’는 그런 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한 분투일 것이다 .
▶추억은 대개 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남는다. 극장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극장에 얽힌 추억도 묻힌다.
가수 이문세는 ‘조조할인 ’에서 그 시절 청춘 남녀가 아침 일찍 영화관에서 만나는 모습을 노래했다. ‘아직도 생각나요 그 아침 햇살 속에/ 수줍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 중략)/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10대 극장 중에 서울과 명보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이제 대한극장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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