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부동산 투자자들이 제주도에서 라온레저개발이 조성 중인 ‘라온 프라이빗 타운’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제주도청 해외투자 유치 담당 부서원은 요즘 서복(徐福)이란 옛 중국인 이름을 입에 달고 산다. 서복은 중국의 첫 통일 왕조를 연 진시황(秦始皇)이 불로장생하기 위해 약초를 찾으라며 동방으로 보냈다는 인물. 그는 제주도까지 와서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제주도 공무원이 서복 이야기를 하는 건 중국 투자자들 때문이다. 제주에 차이나 머니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제주도청 공무원들은 서복 이야기를 하며 이들과 친밀감을 다져나간다.
지난해 5월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본사를 둔 펀마(奔馬)그룹은 제주 이호랜드와 제주 이호유원지 조성에 관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다른 현장인 제주시 한림읍 라온 프라이빗 타운. 라온레저개발이 휴양단지로 조성 중인 이곳은 아예 처음부터 중국 자본을 겨냥해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라온레저개발은 지난해 중국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쑤저우(蘇州)를 돌며 제주도와 공동으로 투자유치설명회를 개최했다. 라온레저개발이 중국에서 끌어모은 돈은 모두 500억원가량이다.
중국 자본이 한국으로 밀려오고 있다. 구한말인 1882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체결 이후 최고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정희 정권 때 자장면 값을 동결해 국내 화상(華商) 자본의 성장 기반을 꽁꽁 묶어두었다는 일화는 이미 흘러간 말이 됐다. 최근에는 중국의 돈을 끌어오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정책 인센티브를 고안해낼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부터 특별자치도인 제주도에 적용되고 있는 이 제도는 제주도의 휴양콘도, 리조트, 펜션, 별장 등 휴양목적 체류시설에 미화 50만달러, 또는 한화 5억원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노리는 투자 유인 대상은 물론 중국 부자들이다. 까다로운 한국 비자 제도에 골머리를 앓던 중국인들은 이 제도 시행 이후 제주도를 또 다른 안식처로 삼기 위해 돈을 싸들고 제주도에 몰려오고 있다.
또 지식경제부와 코트라(Kotra)는 지난해 5월 중국계 화상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에 ‘차이나 데스크’란 투자유치조직도 발족시켰다. 지식경제부는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을 국내에 투자한 중국계 기업인을 네트워크화할 ‘차이나 클럽’을 오는 3월 중으로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 직접 투자금액은 모두 15억8300만달러(약 1조7400억원). 이는 2009년보다 414만달러 증가한 수치다.<그래프 참조>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직접투자(FDI) 금액 128억7600만달러의 12%를 조금 웃도는 수치다. 이밖에 금융감독원 증권시장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이 사들인 국내 주식은 9799억원, 채권은 4조697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투자이민제 확대 적용
중국 자본 유입의 대표적 수혜주는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다. 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알펜시아 리조트는 그동안 건설·운영 주체인 강원도 개발공사와 강원도의 애물단지였다. 알펜시아 리조트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시설을 지어놓았으나 동계올림픽 유치가 두 번이나 무산되면서 빚더미만 안겼다.
강원도는 그동안 지방채를 발행해 알펜시아 리조트 건설에 그야말로 돈을 쏟아부었다. 강원도 입장에서는 당장 오는 3월과 올 하반기에만 2500억원의 지방채 원금을 상환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애물단지 알펜시아 리조트가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열기와 화상 자본의 유입을 타고 다시 회생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알펜시아 리조트에 결정적 회생 가능성을 뚫어준 것은 지난 2월 14일 법무부가 고시한 ‘평창 알펜시아 지역 부동산투자이민제도’다. 알펜시아 리조트 지역의 콘도 및 빌라에 미화 100만달러 이상 또는 한화 10억원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자격을 부여하고 5년 이상 체류 시 영주권을 주는 게 제도의 주된 골자다. 알펜시아 리조트의 투자 금액은 앞서 부동산투자이민제가 적용된 제주도의 두 배에 달한다.
그동안 강원도는 제도 시행 여부에 그야말로 목을 매왔다. 알펜시아에 투자 물꼬를 틔우기 위해서는 이런 제도적 인센티브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인 투자자들은 제주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부동산투자이민제를 ‘담보’로 알펜시아에 투자를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알펜시아, 중국 자본 3500억원 투자유치
강원도는 지난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위선(鈺深)투자관리유한공사(대표 자웨이화)와 알펜시아 지구에 총 3500억원을 투자하는 투자합의각서(MOA)를 맺었다. 당시 협약에서 위선 측은 오는 3월 초에 1차 투자금 650억원을 국내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나머지 2850억원은 오는 8월까지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위선 측에서 투자의사를 밝힌 3500억원은 역대 관광분야 외자 유치 중 최대 규모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위선 측에서 “중국 투자자에게 한국 영주권을 부여해 달라”는 전제조건을 내건 것이다. 3500억원의 화상 자본을 목전에 둔 강원도 입장에서는 부동산 투자이민제의 확대 시행 여부가 알펜시아 리조트의 사활을 좌우할 키로 떠올랐던 것이다.
결국 강원도의 계속된 건의로 지난 연말 대통령 업무보고에 이 제도를 포함시킨 법무부는 검토 끝에 시행을 결정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11일 알펜시아 리조트를 직접 찾아 ‘부동산투자이민제’를 확대시행키로 했음을 밝혔다. 부동산투자이민제 확대시행으로 이미 알펜시아 리조트에는 회생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청 외자유치과 외자유치1담당 정운신씨는 “제도 시행 이후 하루에 한두 통씩 투자를 주선하겠다거나 직접 투자유치 가능성을 타진하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아직은 대부분 중국 투자자 유치 전화지만 동남아 등으로도 투자선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4월 27일 재보궐 선거에서 이광재 지사의 후임이 선출되면 도 차원에서 투자유치단을 구성해 해외 세일즈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하이 위선 - 강원도 투자협약
화상 자본 투자유치의 물꼬를 튼 상하이 위선 측은 당초 2월 15일 투자자들을 이끌고 직접 알펜시아 리조트를 둘러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강원도 폭설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투자단 방문을 일단 3월로 연기한 상태다. 강원도 측은 “위선 측이 이끄는 투자단이 직접 시설을 둘러본 후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투자를 약속대로 집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위선 측은 일단 투자금으로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빌라 30채를 매입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테이트 빌라는 알펜시아 리조트 내 188만4300㎡(57만평)의 골프 및 빌라지구에 자리잡은 시설이다. 최소 271㎡(82평)부터 최대 552㎡(167평) 규모의 빌라 268세대로 구성돼 있다. 국내 최초의 ‘골프코스 홈’을 표방하는 이 빌라의 가격은 한 채당 30억원에 이른다.
강원도청 외자유치과의 한 관계자는 “이번 투자로 최소 10명의 중국인 투자자가 영주권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알펜시아에 적용되는 부동산투자이민제는 10억원 이상의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일단 5년짜리 거주 비자를 주고, 이후 규정된 조건을 충족하면 영주권을 부여하도록 돼 있다. 거주기간 중 며칠을 국내에 머물러야 영주권을 부여할지 등 세부 규정은 강원도와 법무부가 향후 협의해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향후 강원도는 상하이와 장쑤성(江蘇省), 저장성(浙江省)의 투자자가 중심이 된 위선의 1차 투자단 외에도 베이징, 허베이성(河北省) 등에서의 2~3차 투자단도 유치할 계획이다. “2조원을 투자해 강원도 동해안을 동북아 최고의 복합 휴양단지로 개발하고 현재 방치된 양양국제공항의 활성화 등을 이끈다”는 것이 강원도의 목표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입소문 타고 올 객실가동률 68%
현재 강원도와 강원도개발공사 측은 부동산 투자이민제 확대시행으로 물꼬를 튼 알펜시아 리조트의 외자 유치가 앞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오는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릴 IOC총회에서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는 낭보만 날아들면 알펜시아의 미래는 순식간에 ‘쨍’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알펜시아 리조트의 입지 조건과 시설이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 들어서는 내국인을 상대로 한 영업도 작년보다 훨씬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스키 피크 시즌이 포함된 지난 1월 말 알펜시아 리조트에는 올해 들어 모두 12만80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객실 가동률은 평균 68%에 이르렀다. 2월 말까지 주말 숙박 예약은 이미 100%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특히 알펜시아 리조트에는 국내 최초로 스노보드 전문 슬로프가 설치돼 이번 스키 시즌에 스노보더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한다. 알펜시아 리조트 측도 IOC 현지 실사 기간인 지난 2월 14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민에 한해 리프트 종일권을 1만원에 할인해 판매하는 등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열기를 타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강원도 개발공사의 한 관계자는 “알펜시아 리조트는 건강과 생체리듬에 가장 적합한 해발 700m 지역에 스키장, 컨벤션센터, 워터파크, 콘서트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최고의 종합 리조트”라며 “특히 눈구름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습기가 빠져 내리기 때문에 설질(雪質)이 국내 최고일 뿐더러 총 7면의 슬로프로 구성된 스키장은 총연장 5535m, 슬로프 면적 20만6000㎡(약 6만2000평)으로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말했다.
알펜시아 리조트는 어떤 곳?
하루 이자 1억원… 한때 애물단지 전락
강원도 개발공사를 한때 ‘지급 불능’ 지경으로 몰아넣었던 알펜시아 리조트 건설 계획은 기사회생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동안 무모하게 추진돼 온 것이 사실이다. 알펜시아 리조트 건설은 200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박세훈 강원도개발공사 사장 주도로 시작됐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와 수하리 일대 약 489만㎡(약 148만평) 부지에 골프 및 빌라 지구(약 188만㎡·57만평), 리조트빌리지 지구(약 73만㎡·22만평), 동계스포츠 지구(약 228만㎡·69만평)를 건설한다는 계획으로, 재정자립도가 20%대에 불과한 강원도가 1조3000억원의 돈을 투입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반대와 우려가 적지 않았다.
충분한 자본 없이 시작한 데다 잦은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는 2000억원 이상 불어났다. 또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실적도 저조해지자 우려는 현실화됐다. 급한 돈을 지방채를 발행해 틀어막은 결과, 하루 이자만 1억원이 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예정대로 문을 열었지만 알펜시아 리조트의 미래는 여전히 암담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곽영승 강원 도의원은 “알펜시아 리조트 공사비로 인한 빚은 9000억원으로 1년 이자만 163억원”이라며 “골프빌리지를 분양해 8000억원을 조달해야 하는데 분양이 제대로 안돼 자금난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에 비해 매출액이 턱없이 부족해 이자와 운영적자를 합할 경우 연간 최소 600억원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망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들어오는 3500억원의 투자금은 알펜시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생명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