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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게시판 ※ 스크랩 모두보세요...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노무현 시민학교 제6강 수강 후기
임광근(파킨스씨) 추천 0 조회 26 09.10.06 14:4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 노무현 시민학교 제6강 수강 후기
글쓴이 : 토지공개념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노무현 시민학교(제6강) 수강 후기
강사 : 유시민 / 前 보건복지부 장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화려한 강사진의 노무현 시민학교의 수업이 종강을 했습니다. 수료식도 했고, 제 이름이 적힌 노무현시민학교 제1기 수료증도 받았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종강파티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시민학교 마지막 강연은 알려진대로 15대, 16대 국회의원과 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입니다. 지금은 금은 지식소매상으로 지내며 조만간에 출간 할 '청춘의 독서' 라는 제목의 원고를 탈고중에 있으며, 곧바로 내년 4월까지 노무현 대통령님의 평전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교실에는 수강생들로 꽉 찼습니다. 최근 6개월 간 강의를 안 한 탓에 잘 못할 거라며 겸양의 표현으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요.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평가한다는 자체에 부담이 되고 난감한 주제였을텐데도 강의 전반에 걸친 냉소와 위트로 수강생들을 웃음짓게 하며 강의에 집중시켰지요.
맹자와 노무현, 진보와 보수, 정치와 종교, 사상과 신앙, 삶과 죽음(생과 사), 올바름과 이익(의와 이), 양심과 구원, 철학과 제도, 교훈과 예언, 존재와 본질, 인간과 역사, 과거와 미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화려한 언변의 강연을 하셨는데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이렇게 가장 어려운 주제를 수강생들이 매우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끔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그는 분명 언어의 연금술사라 할 만했습니다.
마치 무협지 속의 어느 한 장면처럼 산 속에서 은둔생활하며 유유자적 곧은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세월 낚고 있으나 강호의 고수들이 모두 두려워 하는 존재라고나 할까요?
유시민의 강연 요약은 이미 '노무현재단'에 출범에 부쳐 올렸던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을 기리며'라는 아래의 글로 대신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을 기리며 -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
글쓴이 : 냉정하게 날짜 : 09-09-27 18:11 조회 : 2061 추천 : 31 경고 : 0
트랙백 주소 : http://usimin.co.kr/2030/bbs/tb.php/ANT_T200/381369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을 기리며
- ‘노무현재단’ 출범에 부쳐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삶과 죽음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는 정신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또는 사리취의(捨利取義)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찍이 맹자가 말한 바, 올바름(義)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익을 버리고 목숨도 버릴 수도 있는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올바른 길을 걷고자 했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홀로 그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의를 실현하려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꼈을 때 홀연히 부엉이바위에 올라가 생명을 던졌습니다. 그는 삶보다 더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 하지 않는, 말 그대로 대장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로움보다 의로움을 따랐던 대통령
우리는 지금 대통령에서부터 평범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너나없이 이(利)를 말하고 이를 좇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가치를 경시하면서 오로지 물질적 복지, 그것도 GDP 성장률이나 화폐표시소득과 같은 가장 좁은 의미의 물질적 복지를 최고의 가치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약해도 좋고, 평등과 정의를 외면해도 되며, 한반도 평화와 국가안보를 적당히 훼손해도 괜찮고, 생태계 파괴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마디로 말해서, 이(利)를 위해서라면 의(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불의(不義)와 물신숭배의 시대적 탁류를 만난 것입니다. 역사는 이런 탁류에 뒤덮인 나라치고 위험에 빠지지 않은 나라가 없음을 되풀이 증명합니다.
그래서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을 따랐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 더욱 귀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국민이 그런 방식으로는 이조차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고 다시 의를 찾는 시기가 다시 올 것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식, 지혜, 글, 돈으로 참여하자
바람이 불면 사물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냅니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똑같이 의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도 선택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생취의의 정신은 같아도 그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이 더 많아지도록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는 것. ‘조직된 시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것. 이 모두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일들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 선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여기에 동참하면서 더욱 넓고 깊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노무현재단’이 더 많은 시민들을 깨우고, 그 힘을 조직할 수 있는 드넓은 광장이 되기를 바라며, 꼭 그렇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 글 잘 쓰는 사람은 글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이 광장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글과 시민학교에서의 강연을 조금 더 핵심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무현의 정신은 무엇인가?
인간, 정치인, 대통령, 전직대통령 전체를 관통해서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정신이다. 삶과 죽음 전체를 매우 명료하게 표현한다면 사생취의(捨生取義) / 사리취의(捨利取義) 이다. 올바름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목숨을 버리고 또는 이익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2. 우리 시대의 의(義)란 무엇인가?
여기서 맹자와는 의견이 갈린다. 올바름은 시대마다 좀 다른다. 표현방식과 구현방식이 다르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의는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서 추구해야 할 폭넓은 사회적 공감과 합의를 반영하는 사회의 최고목표 또는 가치다.” 유시민은 그 해답을 우리 헌법에서 찾았다.
3. 어떻게 의(義)를 이룰 것인가?
1. ‘최대주의’적 경향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2.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넓게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
3. ‘깨어있는 시민’이 많아 지도록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4.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기 위해 지역현안, 시민단체, 정당에 참여해야 한다.
5. ‘조직된 시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좌절감과 회의에 잠겨 있는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해 몇 권의 책에서 일부 대목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저는 자칭 지식소매상이 소개하는 저자와 의 책을 통해 "진보의 참담한 좌절을 체험한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4. 위로와 격려를 주는 이야기
다만 노무현 시민학교에서의 강연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강의의 핵심은 강사가 언급한 인물과 지식인을 찾아 보고 그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살펴 봤습니다. 질의응답시간을 포함해서 우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는데요.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맹자의 왕도정치', '소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슈테판 츠바이크의 카스텔리오' 그리고 자신도 공감하며 이해가 된다고 말한 '가수 정태춘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각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영역에서 진보의 꿈을 꾸었던 인물들입니다.
"진보의 참담한 좌절을 체험한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유시민은 강연 도중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은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로 시작하는 '어머니'라는 노래에서 나왔다고 말했는데요. 그 노래 가사는 막심 고리끼의 장편소설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고 하셨지요.
어머니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고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나간다
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향해 나간다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 위해
1988년 7월 8일 노무현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본인이 왜 국회의원에 출마했는지 말합니다. 유시민은 당시 본회의장에서 그 연설을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다고 표현하시더군요. 당시 노무현의 대정부 질문 전문도 붙입니다.
"존경하는 의원여러분,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청년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 해 먹으면서 바른 말 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까
그 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물으면 제가 그르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 살게 되고
임금의 격차가 줄어져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안 올라가도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
노무현 의원의 대정부 질문 전문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생활고로 일가족이 집단자살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늘어만 갑니다.

제5공화국 이래 지금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는 얼마가 되는지 관계 장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5공화국 이래 지금까지 노동자가 기업주의 비인간적 대우에 항거하거나 기업 또는 공권력의 탄압에 항거해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정권의 도덕성을 규탄하거나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또는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부르짖으며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청년 학생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같은 기간 농촌에서 소값 피해를 보상하라고 주장하며 자살한 농민은 몇 명이나 됩니까?

산동네 달동네에서 철거에 항거하다가 무너지는 집더미에 깔려 죽거나 자살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경쟁에서 뒤떨어지거나 경쟁의 부담이 과중해서 자살한 학생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이같은 가슴 아픈 일이 계속되는 동안 정부는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어떤 노력을 해왔습니까? 만약에 하였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건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년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해 먹으면서 바른 말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까 그 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를 않습니다. 물으면 제가 그르지요.

문교부장관!
교육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 교육이 가진 자의 지배의 도구, 권력자의 정치의 도구로 전락함으로써 생긴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시간이 없어 줄이겠습니다.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 살게 되고 임금의 격차가 줄어져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그리고 안 올라가도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그런 세상이 와도 지금처럼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해서 교육이 비인간화되고 어린아이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저는 교육의 문제 또한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난 7월 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15세된 소년근로자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직업병에 대비한 의료체계의 미비 수은중독임이 밝혀진 이후의 회사의 비정한 처사와 노동행정관청의 태만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또래의 제 자식놈은 아직 공부조차 힘이 들어서 온갖 투정이나 부리고 응석이나 부리고 있는 철부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 소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 나이에 멀리 서산에서 서울까지 부모 슬하를 떠나온 것만 해도 애처로운 일인데 그런 어린아이가 귀중한 생명이 좀먹어 가는 그 위태로운 작업장에 방치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한 책임은 결국 무능한 그의 부모만이 져야 되는 것입니까?

그 며칠 전에는 열네살 먹은 어린 소년이 하루 11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견디다 못해 자기가 다니던 공장에 불을 지른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의원 여러분!
가만히 11시간 앉아 계셔도 다리가 꼬이고 허리가 아프지요? 과연 그 철부지를 잡아다 방화죄로 처벌을 하고 나면 그만입니까?

노동부장관!
현재 전국적으로 미성년 취업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다시 안 묻습니다. 한국의 산재율은 세계의 몇 번째입니까? 해마다 산재로 죽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그 중 병신이 되는 수는 몇이나 됩니까?
좀 알기 쉽게 1천명을 기준으로 하면 한 해에 몇 명이 병신이 되거나 죽는가? 한 노동자가 40년 일한다면 산재로 죽거나 병신이 될 확률은 몇 명 정도가 되고 그 중에서 죽게 될 확률은 몇 %나 되는지 1천명을 기준으로 해서 역시 한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은 꼭 한번 정확한 수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내무부장관!
전국적으로 철거의 대상이 되는…
아... 이점은 우리 신상우 의원께서 이미 물으셨기 때문에 노점상과 철거민의 문제는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어떻든... (한숨) 이 나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비참한 삶을 더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입만 벌리면 외쳐대는 한 민족 한 동포라는 말이 과연 진실이라면 이들도 우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의 고통이 돈과 힘을 한 손에 모아 쥔 소수특권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기인된 것이라면 그들은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분배구조를 개선해서 빈부격차를 해소하겠다고 수없이 약속하여 왔습니다. 빈부격차의 해소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
우리 헌법을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해 놓고 있고 이를 위해서 국가가 하여야 할 여러 가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만 믿고 있으면 잘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 같은 규정 외에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다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의 규정은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에 의하지 않고는 확보된 일이 없다는 역사적 경험을 승인한 것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본주의구조 자체를 뒤엎어 버릴 위험이 있고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상대주의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민주주의제도마저 파괴될 위험이 있어서 이를 제도 안에 수용한 것 아닙니까?

권력분립이나 복수정당제도가 부인되었을 때 이를 민주주의라 볼 수 없듯이 노조와 파업의 자유가 부인되는 곳에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노조와 파업의 자유에 대한 도전은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되는데...같은 의견이신지 아니신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국무총리에게 묻습니다.
국무총리는 지난 6월 22일 이 자리에서 체제전복적 운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공언하셨습니다.
당시 총리께서 말씀하신 체제라는 말은 우리 헌법이 보장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뜻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온갖 부정을 자행한 권력자와 그 공범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해서 온갖 특혜와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 소수특권계급의 이익을 뜻하는 것입니까? 분명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총리가 말한 체제라는 말이 민주주의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 체제는 군부독재에 의해서 이미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체제라는 말이 자본주의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 체제도 이미 독점재벌들에 의해서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과 정부의 잘못된 노동정책이 그 반신불수의 체제나마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작년 7, 8월 이래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회수도 엄청났거니와 그 세력 또한 그것이 일정한 이념적 목표아래 조직된 힘으로 일시에 들고 일어날 경우 정부의 존립을 뒤엎어 놓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관측이 과연 타당한 것이라면 이들 노동자들에게 계급혁명의 이념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강요하고 노조활동마저 파괴해서 제몫의 일부나마 찾으려는 노력마저 봉쇄함으로써 이들의 가슴에 분노와 증오가 응어리지게 하는 사람들 또한 명백히 민주체제의 파괴를 재촉하는 집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양자 모두가 체제를 파괴하려는 세력이라 할지라도 전자는 뜨거운 인간애와 도덕적 이상에 불타고 있음에 반해서 후자는 이기적 탐욕에 눈이 멀어 있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전자가 외부에서 침투한 것이 아니라 후자집단이 만든 착취의 구조 속에서 자생한 세력이라는 점에서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은 후자의 집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동부장관!
나는 노조제도를 파괴하려는 기도는 그 자체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임을 전제로 다음 몇 가지를 물어봅니다.

87년부터 지금까지 기업주가 노조설립신고서류를 탈취한 사건은 모두 몇 건이나 됩니까?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해서 설립신고를 하려 하였으나 신고증을 제때 내주지 않거나 반려시킨 회수 또 설립신고서가 먼저 접수되어 있다는 이유로 소위 유령노조 때문에 신고서가 반려된 경우는 몇 건이나 됩니까?

노조활동을 이유로 부당 해고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며 부당하게 부서를 변경당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다 모르면 구제신청을 받은 건수 정도로 말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기업주가 노동자를 납치한 사건은 몇이나 됩니까?

파업은 사업장에서만 하게 되어 있는데 파업을 하였다 해서 통근차 운행을 중지하고 식당을 폐쇄하거나 단전 단수까지 하는 것은 과연 합법입니까?

이것이 합법이라면 과연 인간적인 조치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폐쇄한 식당에서 농성노동자들이 쌀을 꺼내서 밥을 해먹었다고 기업주가 노동자를 고소한 것은 또 몇 건이나 됩니까?

80년 이후 노동자의 귀책사유라 해서 해고당한 노동자는 몇 명입니까?
이 같은 사업주의 탄압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법무부 장관!
87년 이후 노사분규와 관련해서 구속된 사람 중에 노동자는 몇 명이고 사업주는 몇 명입니까?

뻔하게 사업주가 시킨 줄 알면서도 눈 딱 감고 행동대 몇 사람 구속한 것은 빼고 말씀하시는 것이 보다 양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주를 구속한 것은 한 건도 없지요?

그 엄청난 노동탄압에 사업주가 관여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는 말입니까?

얼마 전 현대정공에서 노동자가 문서탈취사건으로 구속된 일이 있습니다. 그 문서의 내용을 보면 경영자가 전 모라는 깡패의 신상이 적힌 메모를 가지고 구사대를 조직하려던 계획서가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런 계획서를 만든 사람은 멀쩡하니 돌아댕기고 그런 계획서를 뺏었다고 감옥 가고 너무 불공평 안합니까? 또 빙산의 일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월 부산 원창에서 한 여성근로자가 남자사원 3명으로부터 사설 고문실로 끌려 들어가서 폭행을 당했습니다. 당시 관리자들은 옷을 벗겨서 폭행을 하고 심지어는 청산가리를 억지로 먹이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 근로자는 진단서까지 첨부해서 검찰에 고소를 제기했습니다. 그에 대해서 검찰이 어떻게 했는지 법무부장관께서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너 말고 즉 니 말 말고 증거가 있느냐고 다그치기만 하고 아직 아무런 결말도 안내고 있습니다.

장관이 검사로 재직했던 경험에 의하면 진단서와 피해자의 진술이 있어도 목격자가 없으면 공소유지가 안됐습니까?
저는 지금 그 청산가리가 묻은 옷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이것 또한 어디서 만들어 온 것 아니냐고 물을까 봐서 증거로 제출할 의욕을 잃고 저한테 가지고 왔습니다. 다른 아무 증거도 없이 공갈을 당했다는 사장의 말 한마디만으로 구속된 노동자의 사건과 비교하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내무부 장관!
소위 구사대와 노동자들이 부닥치는 곳에서마다 경찰이 구사대는 내버려두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만 경찰서로 끌고 가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지난번 대한광학 구사대 사건에서는 구사대가 폭행하는 현장에 경찰이 직접 지휘를 하였다고 노동자들은 주장하고 있는데 물론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일이겠지요. 답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조금 큰 사업장에 분규가 생기면 안기부, 보안대, 경찰이 함께 관여해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한다는데 안기부나 보안대가 노동문제에 관여하는 법적 근거는 어디 있습니까? 물론 이것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일입니다.

이 사건은 현대와 대한광학 통일 동아건설 등에서 구체적인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작년 8월 창원 주식회사 통일의 분규 시에 노무과에서 발견된 문서에 의하면 회사가 안기부 보안대 경찰 노동부에 연간 3,700만원의 뇌물을 주기로 하는 계획서와 그중 567만원은 6,7월 두 달 안에 실제 집행되었다는 것이 기록된 문서가 나왔습니다. 노동자들은 이 문서를 노동자 신문에 보도했고 보도지침으로 유명한 그 말 지에서도 역시 보도가 되었습니다.

저도 복사된 그 문서를 보았습니다. 보니까 그럴 듯 합니다. 남의 돈 그저 먹기가 미안해서 노동자들을 철저히 조져주는 것인지 아니면 관계기관에 뇌물 주는 회사는 주식회사 통일뿐이 아니라서 철저히 회사 편을 들어주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것도 역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뿐입니다.
사실여부를 조사는 한번 해보았습니까? 사실이 아니었다면 유언비어유포죄로 처벌이라도 했습니까?
무슨 단체에서 유인물 한 장만 만들어도 빠짐없이 수집을 해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말 지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노동자신문은 마침 못보셨기 때문에 아직 수사에 착수하지 않으셨습니까?

노동부장관!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데는 기업주나 공권력이나 모두 한 통속입니다.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기업과 공권력과 언론이 합세해서 노동자를 몰아붙인 사건 하나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시작된 울산 현대엔진의 노사분규가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 분규는 회사가 노조위원장을 해고한 데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자 회사는 식당을 폐쇄했고 전기와 수도까지 끊어버렸습니다. 그에 맞서서 노동자들이 주먹밥을 해서 날라다 주자... 가족들이 주먹밥을 해서 날라다 주자 깡패와 청원경찰로 구성된 구사대는 이 밥마저 빼앗아서 불질러 버렸습니다.

법원도 회사를 거들었습니다. 법원은 노동자 95% 이상의 지지를 받아서 당선된 노조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그것도 회사가 후보등록 효력정지신청을 한 단 하루만에 노동자는 불러보지도 않고 재판을 끝내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 노동자를 불러서 심신(심리의 잘못)을 하지 않은 경우는 그 사건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노동자들은 전투경찰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구사대에 가담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을 하지만 노동자의 말은 증거가 안되니까 그만 두고 다른 증거를 대겠습니다.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면서 무전기로 구사대간의 교신내용을 녹음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해보겠습니다.

"감 잡았다"
"전경들이 지금 진입하지 않은 전경들이 칼빈총을 반납하기 위해서 식사 후에 중대에 갔다 와야 한단다. 우리 버스 한대 우리 버스가 없으면 중공업 버스라도 한대를 보내라 운운..." 답입니다.
"버스 한대가 있습니다. 지금 전경들이 타고 있습니다"
"1번 이기철 반장 나오세요"
"여기는 S6, 나오세요. 현재 전경들이 돌을 던져야 하는지 판단을 못하고 있으니 지시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어제와 같은 효과가 날테니 백골단 현장 배치"
"전경과 백골단은 행동을 같이 한다"

교신 중에 나오는 전경을 청원경찰이라고 우길지 모르겠지마는 청원경찰은 청원경찰법 제8조2항에 의해서 경찰서장이 도지사의 승인을 얻어서 총기를 대여해주기 전에는 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칼빈총은 어디서 났습니까? 전경은 왜 끼어들고 돌은 왜 던집니까?

3월9일 역시 같은 농성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언론은 노동자들이 불을 낸 것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과연 노동자들이 불을 지른 것인지 구사대가 지른 것인지 한번 들어봅시다.

"신나라도..."
역시 교신내용입니다.
"신나라도 뿌려져 있으면 우리가 먼저 불을 놔가지고 없애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이다"
"바람도 불고 춥고 한데 5층 옥상에 있는 사람들..."

5층 옥상에 노동자들이 그 당시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5층 옥상에 있는 사람들 난방도 시키고 하기 위해서 불을 많이 지핍시다"

내무부장관!
즉각 이 구사대의 실체를 밝히고 이들을 방화죄로 구속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증거가 필요하시다면 녹음테이프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테이프에 나오는 음성은 우리 노동자들이 어느 이사의 음성 어느 부장의 음성 하나하나 다 집어내주실 것이고 음성을 감정하면 누구의 목소리인지 다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또 노동부는 또 무슨 짓을 했는지 봅시다. 3월16일에는 노동부 소장이 협상을 주선을 하겠다고 해서 노동측이 나가니까 납치를 했습니다. 나가니까 구사대가 노조간부들을 납치했습니다. 이 때문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청원경찰 1명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노동부가 회사의 납치를 도와주는 바람에 사고가 크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노동자 7명이 상해치사죄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법무부장관!
그때 돌을 던진 노동자는 수십 명이고 누가 던진 돌이 맞았는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한열 이석규는 최루탄으로 죽여놓고도 여럿이서 했는데 누가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이렇게 발표를 했는데 이 사건에서는 그 많은 노동자 중에 어떻게 용케 돌 던진 사람을 골라냈는지 참 용케 골라냈는지 경의를 표합니다.

민정당의원 여러분!
믿기지 않습니까? 안 믿어집니까? 지난번 선거날 울산 동구에서 일어난 일 하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동구 방어진 투표구에서 민주당 부녀의원 두 사람이 부정투표함 두 개를 발견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부정투표함이든 아니든 의심되는 투표함을 발견하고 항의를 했고 그에 의해서 민정당 후보마저 원천적 부정투표라고 하면서 선거무효를 선언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울산에서는 민정당도 별수 없는 모양입디다. 민정당원이 부정을 뻔히 보고도 백골단과 전경이 재계 후보 편을 드니 꼼짝을 못했다는 소문입니다.

정부는 입만 열면 노사화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노조 한번 해보려고 하다가 전기도 끊기고 수도도 끊긴 공장바닥에서 '스치로폴' 한 장 깔고 앉아서 생라면을 씹고 있는 이 노동자가 가족이 가져다 준 주먹밥마저 빼앗아서 불태우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노동자가 그리고 끝내는 감옥에 갔다가 해고되어서 길거리에 내쫓긴 이들 노동자가 그들을 내팽개친 기업주와 이 땅위에서 서로 화합해서 살기를 기대하십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부산 대륙 레미콘 공장에서는 40여명의 노동자들이 80일이 넘도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임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분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노조 한다고 월급을 오히려 깎으려 하다가 분규가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공장에는 부지 1천평 위에 10층짜리 호텔을 짓겠다는 사장의 원대한 꿈이 그려져 있는 조감도가 서 있습니다.

제주 새한병원 고려남훈병원 6개월이 넘도록 노동자들은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직장을 폐쇄한 사장이야 재산도 많고 경찰에 끌려갈 염려도 없으니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노동자들은 먹을 것도 없고 걸핏하면 경찰에 끌려가야 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도움을 요청받은 국회위원은 이럴 때 뭐라고 대답을 해 주어야 되겠습니까?

국회의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파이'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돼야 됩니까?

앞서 말한 문송면군 사건 이미 지난 2월 조사결과 그 공장 바닥에 수은이 떨어져 있었던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밸브'에서 수은이 새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친구와 본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중대한 과실이 될 만도 합니다.

왜 구속하지 않습니까? 춘천에서는 사람이 죽지를 않아도 구속을 했는데 서울사람은 힘이 세니까 구속을 안 하시는 겁니까?

거꾸로 노동부 산재과라는 데서 장례대책위원회를 해체하면 보상해주겠다고 망발을 부리고 있는데 장례대책위원회가 무슨 틀린 소리 합디까?

정말 슬픈 사건, 정말 치가 떨리는 사건, 바로 <대림산업 '이란' 정유소>에서 노동자들이 참사한 사건입니다. 이제 밝혀진 바에 의하면 1주일 전부터 '이라크'는 공격을 예고했고 같은 날도 역시 방송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에게 외부의 출입을 금지하고 철조망을 치고 감시인을 고용해서 감시를 했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에도 공습경보가 두 번이나 울렸음에도 작업을 강행하도록 강요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대피하면 수당외 지급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명백한 살인행위입니다. '파이'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이래야만 되는 겁니까?

월남전 생각이 납니다. 월남전에 대해서 온세계가 비난을 하고 민족의 자율성을 들어서 비난하는 견해가 있었을 때 정부는 슬그머니 여론을 이렇게 조성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여해서 벌어온 돈으로 우리의 경제가 발전됐노라"고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려 했습니다.

바로 이 발상이야말로 돈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나라 백성 몇만 명이든 죽일 수 있다는 끔직한 발상입니다.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파이를 크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바로 당신들의 자식을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킵시다."

노동부 장관에게 묻겠습니다.
해외파견 노동자의 안전근로조건에 대해서 정부가 사전에 점검을 할 수 있는 통제정책은 있었는가요? 만일 없었다면 새로 만드실 의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관련해서 적어도 대림의 책임자는 구속을 하고 정부의 외교관계담당자 건설부 노동부장관은 모두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국무의원 여러분! 아직도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줄 돈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입니까? 증권시장에서 주식값이 상한가가 되면 하루만에 30억의 재산이 늘어난다는 어느 재벌 총수가 있고 하루 이자만 7천만원이 생긴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어느 노동자들의 모임에서 60년 이래 누적된 손해를 계산하면 1인당 5천7백만원이 된다는 어느 대학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동부 장관!
믿어지지 않아서 장관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이 말이 사실입니까? 비슷한 계산이라도 나올 수 있습니까?

국무총리!
지금 우리 경제는 근본적 개혁 없이는 경제 민주화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까? 재벌을 해체하실 의향은 없습니까?

어제 경제 분야 질문에서도 나타났듯이 우리나라 경제 각 분야에서 재벌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재벌은 해체돼야 합니다. 재벌총수와 그 일족이 독점하고 있는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서 노동자에게 분배합시다.

이 말은 대기업을 해체한다는 뜻과는 다른 뜻입니다. 매수와 분배 모두 2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 정도면 노동자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 없는 서민들 중소상공인 농민들을 위해서 부채탕감과 아울러 토지도 같은 방법으로 분배를 합시다.

법무부 장관에게 한 번 물어 봅시다. 방금 제가 한 제안이 우리 헌법 안에서는 불가능한 제안입니까.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는 불가능한 제안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제5공화국 부실기업 정리와 관련해서 탕감해 주거나 15년 거치 15년 상환으로 유예해 준 돈이 6조 원이라는데 국민의 부담으로 특정인에게 엄청난 이익을 주는 것이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허용되고 국민들에게 연불로 불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85년 국제그룹을 해체할 당시 인수자를 선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청와대에서 인수자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재산평가도 인수자 일방적으로 하게해서 평가과정에서 연합철강 기업에서만 부정감사로 270조의 부당이득을 주었다는 데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자본주의입니까?

부실기업 정리할 때 은행이 인수자에게 융자해주고 이자 유예해 주고 종자돈 주고 한 정도의 혜택을 주면 지나가는 거지라도 재벌 못되라는 법 없을 것입니다. 부득이 정리를 할 양이면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혜택을 좀더 주고 힘이 좀더 들더라도 그 기업 경영진과 관리자 노동자에게 주식을 분배해 주어야 합니다. 담보를 얘기하시렵니까? 담보 없는 대출이 5조원이라는 것이 어제 보도되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노동자의 양심이 담보가 될 수 없습니까? 돌멩이도 참 담보가 되는데...

지금 제가 하는 주장은 공연히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 정부는 기를 쓰고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을 한 번 보면 임시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 한 건도 없습니다.

제가 바로 재벌 해체와 토지 분배 등을 경제정책으로 주장한 것은 임시정부의 정강정책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민족 자립경제의 기반을 확고히 세우고 경제적 정의를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의 절대빈곤층을 없애고 상대적 빈곤의 폭을 줄임으로써 앞으로 북한에 대한 개방에 대비하자는 뜻도 역시 있습니다.

다음은 권력형 부정의 수사와 재산환수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처음 저는 이 부정부패 재산을 환수해서 토지개혁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어제 농촌사정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런 욕심은 차마 못 부리겠습니다. 농촌 좀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돈을 어디 쓰거나 간에 반드시 그 규모를 밝혀서 환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 !
검찰은 증거가 없어서 수사를 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 국회가 고발을 해오면 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증거가 나타나면 수사 개시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까? 전 국민이 보는 신문과 잡지가 혐의 사실을 연일 보도해도 수사의 단서로서 부족합니까? 검찰이 국회를 물 먹일 일이 있습니까? 검찰 말대로라면 국회가 검찰에 수사의 단서나 제공하는 검찰의 하위수사 기관입니까? 국회가 수사기관에서 수사의 단서조차 안 되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어서 조사특위까지 만들었으니 여야 국회의원들은 모두 정신병자들입니까? 장관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현행범이 아닌 한 재임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수사와 소추의 대상이 되고 죄가 있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장관이 차마 자기를 장관으로 임명해 준 사람을....(발언제한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발언시간 제한으로 발언을 마치지 못한 부분)

수사하고 소추하기가 곤란하다면 스스로 자리를 물어날 용의는 없습니까? 굳이 자리가 아깝다면 전직 현직 대통령에게 건의하십시오.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전두환씨 스스로 국민 앞에 부정의 방법, 규모와 내용을 밝히고 부정하게 빼 돌려놓은 재산을 모두 내놓은 다음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국민들 사이에 사면을 해주자는 여론을 은근히 조성해 보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장관이나 노태우씨의 입장을 이해는 합니다. 노태우씨는 전두환씨와 목숨을 함께 걸었던 거사의 동지이고, 그동안 해마다 떡부스러기에 탐이 나서 모여든 사람들과 덕유산에 모여서 평생 동지임을 거듭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씨가 전국에 뿌린 2조원이 넘는다는 그 엄청난 돈도 줄 전두환씨가 준 것이라 들었습니다. 노태우씨가 전두환씨를 차마 조사 할 수야 있습니까? 범죄 조직도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한다는데 명색이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 의리를 저버릴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의리를 지키고 수사를 않겠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리 국민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우리 농민들은 당신네 평생 동지들이 부정하게 긁어모은 돈이 그들의 피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국회의 조사특위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 혐의자의 평생 동지들은 증인의 구인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국정조사법을 반대하고, 거부권까지 들먹이며 엄정한 조사를 방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정치군인들은 전 대통령을 소환하거나 구속할 경우 가만히 안 있을 거라는 방자한 말로 국민을 은근히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우리 국민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전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라도 맞서 싸울 것입니다. 일부 정치군인을 제외한 나머지 애국적 군인들도 국민들과 뜻을 같이할 것입니다. 아니 벌써 경고성 투쟁은 시작되었습니다. 3년째 계속되고 금년 들어 이제 100일째로 접어드는 연합철강 노동자들의 투쟁은 권력의 부정과 비리가 바로 그들 자신의 생존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인식한 투쟁입니다.

이 국회에서조차 권력의 부정과 비리를 밝혀내지 못할 경우 연합철강 노동자들의 오늘의 저 투쟁은 전 국민에게 확산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 둡니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은 플로레타리아 혁명을 하자는 말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즉 생산적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었다고 보여집니다. 민주공화국의 깨어있는 시민으로 우리들 스스로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맹자의 왕도정치(王道政治)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입니다. 전국시대 추(鄒)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가(軻)이고,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입니다.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공자가 죽은 지 100년쯤 뒤에 태어났으며 그가 활약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4세기 전반입니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立, 行天下之大道
거천하지광거, 입천하지정입, 행천하지대도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득지여미유지, 부득지독행기도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부귀불능음, 빈천불능이,위무불능굴
此之謂大丈夫.
차지위대장부.
(천하의 넓은 집인 인(仁)을 거처로 삼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큰 길(大道)인 의(義)를 실천하여, 관직에 등용되었을 때는 백성들과 그 길을 걸어가고 관직에 등용되지 못했을 때는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해져도 마음이 동요되 않고 빈천한 상황에 처해도 의지가 변함이 없고, 위세와 무력에도 나를 꺾을 수 없어야, 비로소 대장부(大丈夫)라한다.(맹자, 등문공 하 2편)
그래서 맹자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대인 혹은 대장부와 같은 말이다)는 아래와 같은 마음을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단서(端緖)로 보았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나쁜것을 멀리 하려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남을 배려하여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

백성의 고충을 돌아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거둘 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럴 때 인(仁)한 마음은 자동적으로 민생고(民生苦)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따뜻한 배려와 은혜의 정치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군자는 백성의 기본 생계를 보장해주고, 형벌과 세금을 가볍게 하여 백성의 이득을 보장하고, 그들이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끔 해주는데, 맹자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옳음(義)'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백성의 기본생활 보호[保民]는 인정의 핵심이다. 맹자가 그것을 다른 말로 ‘왕도(王道)’라 하는 것은, 그가 인정을 행할 수 있으면 민심을 얻을 수 있고, 민심을 얻을 수 있으면 반드시 천하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깊이 믿었기 때문이며. “생계수단이 든든할 때라야 든든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恒有産 恒有心)” 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맹자 양혜왕(양나라 혜왕)편에 보면 첫 페이지에 하필왈리(何必曰利)가 나옵니다.
孟子見 梁惠王
맹자견 양혜왕

王曰?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왕왈수불원천리이래 역장유이리오국호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맹자대왈 왕하필왈리 역유인의이이의
王曰何以利吾國 大夫曰何以利吾家 士庶人曰何以利吾身
왕왈하이리오국 대부왈하이리오가 사서인왈하이리오신
上下交征利而國危矣
상하교정리이국위의
萬乘之國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弑其君者 必百乘之家
만승지국시기군자 필천승지가 천승지국시기군자 필백승지가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
만취천어 천취백언 불위불다의 구위후의이선리 불탈불염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미유인이유기친자야 미유의이후기군자야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왕역왈인의이이의 하필왈리

양나라 혜왕이 맹자를 맞았는데요.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맹자를 맞은 혜왕은 맹자를 만나자 기뻐하며 어떻게 하면 자기 나라에 큰 이익이 있을 것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냉정하게 왕에게, "왕은 어찌하여 인의(仁義)를 이야기 해야지 하필이면 이로움(利) 대하여 말하느냐?" 며 면박을 주는 내용입니다.
왜 하필(何必) 말하기를(曰) 이(利)냐는 것인데요. 만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사람은 언제나 천승의 녹을 받는 대신 집이고, 천승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사람은 언제나 백승의 녹을 받는 대신 집이라고 말하면, 만에서 천을 받고 천에서 백을 받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참으로 의를 뒤로 하고 이를 먼저 하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나라가 올바로 될 수 없다는 이치를 설명한 글이지요.
오늘날 같은 자본주의시대, 특히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한 우리 국민이 참으로 새겨 들어야 할 고전이라고 여겨집니다. 어쨌든 국민이 대통령이니까요.
그런데 맹자도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2300년이 훨씬 더 지난 오늘날 또 한 분의 사상가였던 노무현 대통령님을 통해 다시 맹자를 되새김질 하게 됩니다.
소스타인 버블렌의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년7월 30일 - 1929년8월 3일)은 노르웨이계의 미국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존 커먼즈와 함께 제도경제학의 선구자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유한계급론(有閑 階級論)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An Economic Study in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1899) 있습니다.
경제학의 계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단적인 학자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주류 고전경제학의 전통을 깡그리 무시했고, 대항 학문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의 연구 태도는 경제학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회학적이다. 20세기가 막 시작되기 진전 펴낸 <유한계급론>은 베블렌의 첫 저작이자 그의 대표작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책 제목과 하나로 묶어버린 이 유명한 저작은 그의 학문적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또한 책 제목과 함께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 와 같은 말은 오늘날 일상용어가 될 정도입니다.
그는 유한계급론를 통해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없이 행해진다"고 하는 '과시적소비'를 지적합니다.
<유한계급론>에서 베블렌이 당대의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바라보는 태도는 신랄하고 냉소적입니다. 그는 유한계급이 왜 노동을 천시하는지, 왜 비실용적인 옷을 입는지, 왜 터무니없는 낭비를 일삼는지를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그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인류학·역사학·심리학의 여러 방법론을 끌어들입니다. 특히 유한계급의 역사적 탄생을 인류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독창적이며 유한계급의 행동양식 본질을 ‘명예의 획득과 과시’에 있다고 봅니다.

베블런은 이 약탈문화의 습속이 산업사회에서도 변형된 채로 유전된다고 말합니다. 약탈활동이 생산활동으로 바뀌면서 약탈물·전리품을 대신해 축적된 금전이 고귀함과 우월성을 대표하는 지시물이 된다고 표현합니다..

또 부의 소유가 명성과 존경을 부르는 근거가 되기에 중요한 것은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음이 어떤 식으로든 바깥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금력을, 다시 말해 우월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과시적 여가’와 ‘과시적 소비’라고 말합니다. 두 생활양식의 공통점은 ‘낭비’입니다. 차이점은 ‘과시적 여가’가 ‘시간’을, ‘과시적 소비’는 ‘금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노동할 필요가 없음을, 노동과 무관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과시적 여가’입니다. 여기서 여가(leisure)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논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적인 일과는 무관하게 시간을 쓴다는 뜻입니다.

유한계급은 생산적인 노동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된다고 여깁니다. 과시적 여가는 자신이 스스로 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음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과시적 소비는 돈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일에 큰 돈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값비싼 사치품은 아무런 실용성이 없기 때문에 과시적 소비의 좋은 소재가 됩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선물을 하거나 화려한 축제를 벌이는 것도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과시적 소비의 적절한 대상이 됩니다.

베블런은 과시적 여가든 과시적 소비든 유한계급의 지위를 입증하는 증거물 노릇을 하는 것은 똑같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부를 과시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편이 될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시골 오두막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 생각하며 죽습니다. 죽은 이후 그의 유서에서 "나를 기념하는 아루런 행사도 하지 말고 죽은 이후 가장 값싸고 신속하게 장례를 치러고 기념비도 세우지 말고 모든 미완성 원고는 불태워라" 는 유서를 남깁니다. <위키 백과사전과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글을 부분 인용했습니다.- 작성자 註)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
헨리조지는 1839년 9월 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합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후부터 계속해서 많은 독서를 했으며, 분명하고 힘차고 감동적인 글을 쓰기 위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면밀히 연구하고 힘들여 글을 쓰는 연습을 했습니다.
조지는 1860년대 후반에 뉴욕에 갔다가 사회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것을 보고 크게 각성하게 됩니다. 미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한편에서는 거짓말 같은 부자가 있었으나 다른 편에서는 빈곤이 너무나 심해서 그 희생자는 빈곤에서 벗어날 희망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음을 보게 됩니다.
이후 신문기사와 사설을 쓰게 되었고, 오버랜드 먼스리(Overland Monthly)라는 잡지에서 처음으로 토지문제에 관한 견해를 밝힙니다. 그후 주지사 어윈(Irwin)에 의해 내무부 공무원으로 임명되어 비교적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진보와 빈곤'을 집필합니다.
그는 "어느 사회의 발전이 모든 문명사회가 지향하는 쪽으로 이루어지고 물질적 진보의 규모가 커지면 예를 들어, 주거밀도가 높아지고 다른 지역과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노동절약적인 기계가 많이 이용되어 생산과 교환의 경제성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총량적 및 일인당의 부가 증대되면 빈곤도 증대된다.
일부 사람의 생활은 무한정으로 개선되고 편리해 지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힘들게 된다. 기차가 생기면 부랑자도 따라서 생기고,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지면 고급주택, 상품으로 가득 찬 창고, 거대한 교회가 생기지만 빈민구호소와 감옥도 틀림없이 생기게 마련이다." 고 말합니다.
그는 이처럼 진보에 빈곤이 수반하는 현상은 우리시대의 큰 수수께끼라고 말하며 정치, 종교, 교육이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 사회, 정치적 문제의 근원이 되는 핵심적인 사실은 토지사유와 독점의 폐해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아래는 유시민이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한 대목으로 발췌하여 강연한 진보와 빈곤 제25장 '현대문명의 쇠퇴' 요약본입니다.
현대문명의 쇠퇴
글쓴이 : 지공 날짜 : 07-11-11 22:30 조회 : 107 추천 : 0 경고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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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찾아낸 법칙에서 보듯이 사회 진보의 조건은 어울림과 평등이다. 현대문명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암흑시대에 싹이 튼 이래 정치, 법적 평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의 철폐, 신분의 폐지, 세습적 특권의 일소, 자의적 정부 대신 의회 제도의 도입, 종교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 판단의 권리 보장, 지위의 고하, 강약을 막론한 신체와 재산의 평등한 보장, 거주이전, 직업선택, 언론출판의 자유 확대 등이 있다.
현대문명의 역사는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된 역사였고, 개인, 정치, 종교적 자유의 투쟁과 승리의 역사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면 문명이 발전하고 이러한 경향이 압박받아 뒤로 밀리면 문명도 억제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진보의 일반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부의 평등한 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치는 부패한 독재정치보다(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겠지만) 국민성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부랑자, 극빈자 등 노동의 기회가 극히 제한된 계층 또는 구걸하지 않으면 훔치거나 굶어야 하는 계층이 선거권을 갖게 되면 파괴가 발생한다.
가난에 의해 고통받고 타락한 계층의 손에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마치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 옥수수밭에 풀어 놓는 것과 같으며 삼손의 눈을 빼고 국민생활이라는 기둥에 팔을 비끌어 매는 것과 같다.
공화정을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전제정으로 바꾸는 데는 헌법을 고치거나 보통선거제도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씨저 이래 수세기 동안 로마 황제들은 원로원의 권위에 따라 통치권을 행사하는 척했지만 실제로 원로원은 황제에게 꼼짝도 못하는 기관이었다.
형식은 실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에 의한 정부는 자유라는 실질이 가장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형식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보통선거에 의한 정부 및 이론상의 평등은 일정한 조건만 있으면 간단히 전제체제로 변할 수 있다.
이때 전제체제는 국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국민의 힘에 의해 진전되며 이러한 힘의 원천이 일단 확보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특권을 못 누리는 계층에게는 설득이 통하지 않으며 또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법이 없다. 이렇게 되면 홍수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도 없고 홍수를 피할 높은 언덕도 없는 상태가 된다.
권력의 승계가 세습이나 추첨(고대 공화국에는 추첨제가 있었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현명하고 정의로운 권력자가 더러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심이 타락함으로써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예가 장구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어진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이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국민에 의한 정부가 최악의 전제정부로 변화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는 결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이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눈 앞에서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권을 분별없이 행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워졌으며 개혁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정치적인 견해차는 이제 근본 원칙의 차이가 아니게 되었으며 추상적인 사상은 힘을 잃고 말았다.
정당은 과두적 내지 독재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것이 모두 정치적 쇠퇴의 증거이다.
이 시대의 근본 흐름은 우리가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구시대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봉건제도가 보편화되어 삼위일체의 삼위 중 두 가지 위가 영주와 봉건지주라고 생각할 정도의 시대도 있었는데 기술자 계층과 상인 계층의 발달로 인해 봉건제도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토지가 사유화된 현재의 사회조직속에서는 공업과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개별 노동자가 또 다시 주인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마치 로마제국이 붕괴될 무렵 자유민이 지주에게 예속되었던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경향에는 예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산업에서 한 사람은 주인이 되고 나머지는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 사람이 주인이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봉사할 때 그 한 사람은 나머지를 통제하게 되며 투표와 같은 경우에조차 이러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철도, 일간신문, 전보 등을 지니고 있는 현대문명이 파괴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지만 사회의 기초는 우리 눈 앞에서 서서히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문헌은, 우리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현재와 미래에도 미개상태에서 자꾸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믿음을 불어 넣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과거의 미개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를 피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완성단계에 도달한 민주제도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한때 국가적 행복의 근원이라고 신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생각있는 사람들도 민주주의의 위험을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에는 와 있으나 아직 그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한다. 일반 국민은 부패의 증가에 익숙해져 있다.
특히 불길한 징조는, 사람들이 청렴한 공직자가 없다고 생각하며 또 청렴한 공직자가 있다면 이는 자기의 기회를 이용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국민 자신이 부패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추세의 결과가 무엇이 될지를 분명히 알 것이다. 부패가 만성화되고, 공공심이 상실되고, 명예와 선행과 애국심의 전통이 약해지고, 법이 무시되고, 개혁이 가망없게 되면, 고통받는 대중 속에서 화산과 같은 힘이 생겨 어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사회를 산산조각내고 만다.
이런 와중에서 강력하고 분별없는 자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맹목적인 대중적 욕구 또는 흉포한 대중적 열정을 대변하게 되며 이미 활력을 상실한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제쳐 놓게 된다. 이렇게 되면 칼은 펜보다 강해지고 야만적인 힘과 거친 광기가 교차하면서 문명은 혼수상태에 빠져 쇠퇴하고 만다.
(Progress and Poverty 中에서, Henry George, 1839년~1897년)
헨리 조지는 뉴욕 시장 선거에 두 번 출마합니다. 한번은 1886년, 유권자 34,000명의 서명으로 후보 지명을 받아 노동단체 후보로 뉴욕 시장에 출마합니다. 선거는 애브럼 휴위트와 후에 미국대통령이 된 루즈벨트와 치렀는데요. 비록 낙선했지만 당시 60,435표를 얻은 루스벨트 보다 더 많은 68,110표를 얻습니다.
두번째는 1897년 다시 노동단체의 후보가 되어 태머니 홀과 선거를 치릅니다. 그러나 계속된 집필과 강연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져 선거 4일 전에 세상을 마감합니다. 그는 운명하기 전날 저녁에 선거 연설회에서 사회자가 헨리 조지를 "노동자의 위대한 친구" 라고 소개하자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본인은 노동자의 특별한 친구라고 자처한 적이 없습니다. 노동자에게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지는 맙시다. 노동자는 특권이 필요없습니다. 본인은 노동자 계층을 위해 특별한 권리나 특별한 이해를 옹호하거나 요구한 일이 없습니다. 본인은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대변할 뿐입니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년 ~ 1982년)는 영국의 정치학자·역사가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16년부터 20년간 외교관으로 활약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1961년에 ‘역사란 무엇인가’의 제 1판을 내놓게 됩니다. 카는 이 책에서 그 전까지의, 사실을 복원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던 실증주의적인 역사관을 강하게 비판했고, 과거 사실 자체에만 몰두하는 복고적인 역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없다’는 결론에 봉착할지 모른다. 역사가는 사실의 노예도, 주인도 아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와 비슷하다. 역사가는 늘 잠정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합니다.
양차 세계 대전이나 1930년대 대공황을 보면 역사는 확실히 사회적 힘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군주나 반란자 또한 개인이 아닌 그 시대의 특수한 조건의 산물일 뿐이라고 표현합니다.
역사란, 어떤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간주하는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 볼 때에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고 현재는 과거의 빛에 비추어야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일반화에 집착하면 인간은 역사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이렇게 도출한 교훈을 다른 경우의 사건에 꿰맞추려고 합니다. 향후 전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 사회는 모두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현존 세대가 감수하기를 요구하고 그것을 '진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최종 목적지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가는 끊임없이 방향을 제시합니다.
과거를 해석하는 열쇠는 미래 속에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진보하는 과학입니다. 동시에 진보는, 역사를 쓰기 위한 과학적 가설입니다. <위키백과사전과 옮긴이의 리뷰 인용 - 작성자 註>
슈테판 츠바이크의 카스텔리오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1881년 ~ 1942년) 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붕괴되어가는 유럽 문화를 애틋하게 지켜보고 이를 기록하였던 사람이며 유럽 문화의 전통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인물입니다. 특히 전기 작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츠바이크는 히틀러의 독재가 확고해지고 세계 전쟁으로 치닫던 당시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유럽의 문명에 깊은 연민을 가졌고 그 상태를 야기한 야만의 파시즘을 환멸했습니다.
파시즘의 야만 시대에 그는 자신의 모든 정신적, 문화적 자양분이 되어 준 빈과 짤츠부르크를 떠나 망명을 떠납니다.
츠바이크는 얄팍한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전기 기록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랑으로 글을 씁니다. 그의 글 속에는 역사에 대한 사랑과 인물에 대한 연민이, 노골적이지 않게, 그러나 읽어가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확인되는 방식으로,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도덕적, 종교적, 예술적 신념이라는 내면세계에 국가가 끼어드는 것은, 침범할 수 없는 개성의 권리를 침범하는 것이며 월권이다.
국가권력은 의견 문제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다른 의견, 다른 세계관을 갖는다고 해서 거품을 물고 미쳐 날뛰는 일이 왜 필요한가.
어째서 끊임없이 경찰을 부르고, 살인에 이르도록 미워한단 말인가.……혼자만이 옳다는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오직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탄압과 박해들이 일어난다.
……카스텔리오는 단 한 가지만이 야만성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관용이다. 우리의 세계는 단 한 가지가 아니라 수많은 진리들을 위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서로 나란히 모여 살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신념을 판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본문 내용 中에서>
이 책의 주인공 카스텔리오는 역사의 패배자로 철저하게 잊혀진 인물입니다. 반면 그의 맞수인 칼뱅은 종교개혁을 이끈 인물로, 또 개신교 신앙의 아버지로 오늘날에도 추앙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맞서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관용을 부르짖었던 카스텔리오는 그 존재조차 희미합니다.
카스텔리오는 루터와 더불어 대표적인 종교개혁가로 손꼽히는 칼뱅의 최후의 적수였습니다.

츠바이크는 서문에서 " 감히 카스텔리오를 에밀 졸라, 볼테르, 로크, 흄 같은 사람들과 함부로 비교하려 들지 말라. 예컨대 카스텔리오가 벌인 싸움은 칼라 사건에 대한 볼테르의 항변이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졸라의 항변과는 한마디로 차원이 다르다."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의 운명을 위해 자신의 명성과 안락만을 걸고 싸웠을 때 카스텔리오는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것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단자에 관하여>와 같은 저서를 통해 "관용"에 대한 카스텔리오의 외침은 유럽에서 거의 선구적인 것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없었던 존재인양 지금까지 부당하게 취급되어 왔다고 말합니다.

칼뱅은 가톨릭과의 싸움을 빌미로 제네바시 전체를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이 관철되는 파시즘적 광기로 채웠던 사람입니다. 성서정치(Bibliokratie)라는 명분으로 제네바시를 장악합니다. 칼뱅의 신정 통치 5년 동안에 13명이 교수대에 매달리고, 10명이 목이 잘리고, 35명이 화형당하고, 76명이 추방당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감방마다 죄수로 가득차서 간수장이 시 당국에 단 한 명의 죄수도 더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할 정도로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칼뱅의 공포정치는 지속됩니다.
칼뱅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필코 제거해야 속이 시원했던 지독한 독선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세르베투스라는 박식하고 창의적인 신학자를 단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단자로 몰아 화형시킵니다.
화형을 당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지 '영원하신'이라는 형용사를 '하나님', '아들' 두 명사 중에 어디에 붙였느냐는 것 뿐이었습니다.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한참 수세에 몰려 있던 칼뱅은 세르베투스를 처형함으로 모든 반대자들을 잠재워 버립니다.

그러나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독재와 그의 측근들의 위선이 시 전체를 망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까놓고 문제제기를 하다가 결국 제네바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쫓겨난 카스텔리오의 삶은 비참합니다. 칼뱅보다 훨씬 위대한 학자가 칼뱅의 입김으로 일정한 직업도 얻지 못한 채 구걸을 해야할 정도가 되었고, 기껏해야 바젤의 오포린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에 카스텔리오는 침묵을 깨고 <이단자에 관하여><칼뱅의 글에 반대함>과 같은 글을 써서 이에 목숨을 걸고 맞서고자 하였습니다. 카스텔리오는 그의 글에서 빈틈없이 치밀한 내용으로 칼뱅의 잘못을 낱낱이 공박하고 있는데요. 다음은 세르베투스 사건을 말하는 카스텔리오의 명쾌한 문장 한 대목입니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
제네바 사람들이 세르베투스를 죽였을 때,
그들은 교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희생시킨 것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
단지 신앙을 위해 불에 타 죽음으로써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카스텔리오의 이와 같은 빛나는 명구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그의 글은 칼뱅에게 별로 큰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칼뱅의 명령에 따라 미리 행해진 검열에 의해 카스텔리오의 글들이 인쇄조차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나중엔 카스텔리오가 이단자들과 어울렸다고 하여 화형에 처해질 뻔했던 일도 벌어집니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적 폭력과 광기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떤 단일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고 조작, 지배되는 사회가 얼마나 끔직한 파시즘을 낳게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똘레랑스(관용)'를 말할 때 그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입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이념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속합니다.
그러나 분단과 냉전의 광기가 서슬 퍼렇게 살아 지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도 그러한 가치들은 지금까지 제멋대로 무시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사상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간첩', '빨갱이', '용공좌경분자'가 되어 고문받고 투옥되어 야 했던 숱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당장은 놀라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지만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양심과 자유는 철저히 유린당하고 맙니다.

그래서 츠바이크는 결말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언제나 진보를 위해서 싸워야 하며, 극히 당연한 것도 새로이 의심받는다. 우리가 자유를 습관으로 여기고 더 이상 신성한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순간에 충동세계의 어둠 속에서 신비한 의지가 자라 나와 그것을 유린하려고 드는 것이다. 인류는 너무 오래 너무 근심 없이 자유를 누리고 나면, 언제나 힘의 도취에 대한 위험한 호기심, 전쟁에 대한 범죄적인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츠바이크는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외국으로 망명하여, 최후의 대작인 《발자크》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브라질에서 젊은 아내와 같이 자살하였다. <서울신문 정병진 기자의 서평 및 슈테판 츠바이크의 <폭력에 대항한 양심> 인용 - 작성자 註>
유시민의 함께사는 세상
유시민은 자신이 주로 ‘함께사는 세상’ 이라는 싸인을 하는데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람사는 세상'을 따라한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 질문에 대해 정태춘씨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합니다.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정태춘 답변의 내용인즉슨 “좋은 노래 만들어서 들려 주기 싫다.”는 것이더라. 동감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인터뷰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 노래는 사회적 발언, 대중과 대화 단절 느껴 접은 것이다.”

“내 노래는 사회적 발언이었다. 이젠 접었다. 내 노래의 사회적 기능성은 다했다.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기도 싫고 싸우고 싶지도, 싸울 열정도 없다. 변화 속으로 진입하는 세상의 대열에서 나는 스스로 이탈했다. 새로운 문명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신자본주의에 불복종하는 나의 방식이다.”

-사회적 발언을 닫았다고 했는데 그동안 노래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까.

“음악회나 행사 초청공연은 다녔습니다. 그동안 침묵했다는 것은 노래를 쓰지 않았던 것이고 대중콘서트를 통해 이전에 하던 방식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던 것들을 접었다는 의미입니다. 엄밀히 말해 노래 만드는 것을 접은 것이지요. 세상이 변하면서 노래를 만들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정태춘의 사회적 발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있겠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제가 활동할 공간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너무 소수입니다. 대중은 많이 변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평택 대추리 사태와 관련해 교보문고와 보신각 옆에서 매일 거리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철저히 무관심했고 저는 외면당했습니다. 현실이었지요. 새로운 세기의 대중, 당대의 공동 선(善)에 관해 아무런 관심도, 행동도 없는 대중 말입니다. 이 같은 대중을 만나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관계로 만나는 대중을 의미 있게 생각할 수 없었지요. 이제 문화는 산업화의 일부분일 뿐, 문화로서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중은 가수를 상품으로만 볼 뿐이고 그 이상으로 보지 않지요. 저 역시 그들의 취향을 배려한 상품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노래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초기엔 나를 발산하는 일기였다면 이후에는 사람들과의 대화였습니다. 그렇지만 대화상대를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이 너무 다른 쪽으로 변해가면서 과거에 내가 만나던 대중이 변했습니다. 산업화의 천박한 변화 속에서 그 과실을 따 먹으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상황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도 있고…. 다들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커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사회 변화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대화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 공연이 새로운 음악인생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완전히 돌아왔다고 할 수는 없고 일시적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해두지요. 저는 이 공연을 통해 새로운 지형을 생각합니다. 과거 운동진영에서 대중과의 소통공간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소비해줄 팬층을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의 문화소통 메커니즘 이외에 새로운 상상력과 방식이 시도될 수 있는 자리를 모색한다고 할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노래를 새로 만들 수도 있겠지요.”
-이 시대는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까.

“단순히 이 시대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살면서 세상을 변화 시켜 왔는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지요. 그걸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 생각은 인간 자체에 대해 가졌던 희망의 상당부분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인간이 그동안 성취하고 일궜던 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게 됐지요. 인간이 과연 지구상에서 가장 우월하거나 선하거나 지혜로운 종(種)일까 하는 질문에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고, 이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그다지 희망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마무리
유시민은 아직 내면의 확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이 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원망만으로 공직에 도전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궐선거나 지방선거에 나가느냐 그렇지 않는냐는 고민은 본인에게 내면의 확신이 생긴 뒤에서야 비로소 던져질 질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에서의 정태춘씨의 절망과는 달리 국민들이 이(利)를 버리고 의(義)를 찾는 시기가 다시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희망을 전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정치를 해야겠다는 내면의 확신과는 상관 없이 역사적으로는 희망을 가지고 그 시기를 기다린다는 말이겠지요.

제도는 인습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진보를 싫어한답니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 진보라면서요. 이것이 진보의 운명이고 슬픈 숙명이랍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지금 7년 전 그 자리로 돌아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식소매상이었던 그 시절로요.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과연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지구상의 어떠한 힘도 운명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All the power on earth can't change destiny)." <대부 III>의 대사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개인에 있어서의 운명이란 사회를 놓고 보면 역사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 유시민이 위로와 격려를 위해 줄곧 언급했던 맹자, 소스타인 버블렌, 헨리조지, E.H.카, 슈테판 츠바이크, 그리고 최근의 노무현 대통령님까지 모두 실현되지 못한 꿈을 안고 생을 마감하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상 사회를 꿈 꾸었던 그러한 개인들로 인해 역사는 진보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염세적으로만 본다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역사라는 큰 강물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깨어있는 시민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제 내면의 확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시민 개인에 있어서의 운명은 사회를 놓고 보면 분명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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