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분쟁과 한국 반도체 대응 전략 긴급 토론회 개최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과 함께 지난 5월 11일 ‘미중 반도체 분쟁과 한국 반도체 대응전략’을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온라인(카카오TV, 네이버TV,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시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자 안보 자산으로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국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경제 버팀목이다.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늘 포럼을 통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도출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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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1일 ‘미중 반도체 분쟁과 한국 반도체 대응전략’을 주제로 긴급 토론회가 온라인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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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반도체, 우리나라가 정말 1등인가?
이날 주제발표는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가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과 전망’을 주제로 진행했다. 황 교수는 “인텔이 대만 TSMC에 외주를 주지 않고 파운드리(반도체 제조 과정만 전담하는 위탁 생산) 사업을 직접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이러한 선언과 더불어 미국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이 미국의 TSMC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 역시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에 앞서 메모리 반도체에서 여전히 독점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10nm(나노미터)급 공정을 도입한 4세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176단 낸드플래시 메모리 역시 독보적으로 가장 먼저 개발했다”면서 “이는 기술력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정말 1등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이어서 “물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이 바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기술 개발이 고도화되면서 1등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긴 어려워진 반면 2, 3등 기업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는 것은 가능해졌다”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황 교수는 “마이크론이 8년 전 엘피다를 합병하면서 엔지니어를 그대로 유지했고, 그 결과 마이크론은 D램 개발 엔지니어를 삼성전자의 2배 수준으로 갖게 되었다”고 강조하며 언제든 시장 점유율이 바뀔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한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국제 기업들은 전문화를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D램, 낸드플래쉬, 파운드리 등 모든 분야에 동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이는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어렵게 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황 교수는 “대학의 R&D를 위한 정부의 투자가 절실해진 상황이 됐다”며 “많은 반성과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전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인력 문제’
이어진 패널 발표에서는 김형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가 ‘시스템 반도체 및 설계’,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메모리 기반 지능형 반도체 소자’, 강창진 세메스 사장이 ‘반도체 장비’, 이윤종 DB 하이텍 부사장이 ‘파운드리’, 안현실 한국경제 논설위원이 ‘반도체 산업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대만 반도체의 선전이 계속되리라 예상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성과 시장성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시장 친화적인 가격 정책 등의 장점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반도체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인력 양성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물리학 쪽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고, 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도 갈수록 쉬워지고 있다. 반도체가 너무 어려워 전공하기 어렵다는 학생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범 교수는 “아이디어를 쉽게 구현하고 제품화하기 위해서 파운드리 활성화와 팹리스(Fabless, 무설비업체) 생태계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파운드리 인프라 구축 또는 표준화가 활성화되면 많은 학교와 기업에서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의 확장과 발전은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이로 인한 전기 소모량과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굉장히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을 위해서라도 적은 에너지로 뛰어난 계산을 해내는 사람의 뇌를 모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 교수는 “인간 뇌를 모방하는 것을 뉴로모픽(신경 모방)이라고 부르는데, 메모리 반도체 기술과 신경 모방 기술을 창의적으로 융합하면 인지 연산이 가능한 시스템 반도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우월성을 확장하여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 교수는 “메모리 기반 지능형 반도체 소자의 발전을 위해서 산·학·연과 정부의 소통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뉴로모픽 기술을 한국에서 시스템 수준으로 표준화해 주도한다면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전했다.
적극 투자, 제도적 지원, 인식 개선 등 절실
강창진 세메스 사장은 “반도체 장비 시장을 살펴보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업체들이 대부분 합병·인수되어 5개의 장비 업체가 시장 전체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굉장히 독과점적인 시장이 되었다”고 시장 현황을 분석했다.
강 사장은 “과거 반도체 공정 기술에서 앞서 나가던 미국이 한국과 대만에게 시장을 많이 빼앗겼지만 장비 기술은 여전히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며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장비를 만든다는 것은 이론과 논리 그리고 오랜 기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강 사장은 반도체 장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새로운 장비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수율이나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라인에서의 차별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서 강 사장은 “반도체 장비를 개발하는 데에는 5,000억 원에서 1조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수십 억 단위의 정부 사업으로는 기능과 성능 면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 사장은 “이제는 목적이 뚜렷한 탑-다운 과제를 칩 제조사나 반도체 장비 회사 등에 지원하고, 대학에서도 반도체 설계 인력, 소프트웨어 인력, 공정 인력이 길러질 수 있도록 과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윤종 DB 하이텍 부사장은 “2021년 파운드리 시장은 전년 대비 15% 성장이 예측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약 8.1%로 견고한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전 세계 대비 국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약 16%에 달한다”고 현황을 언급했다.
이 부사장은 “국내 파운드리의 육성 및 발전을 위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제조 시설과 R&D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제조 시설 건립의 패스트 트랙을 위한 일괄 행정 서비스 제공, 각종 규제 완화 및 반도체 펀드 등의 정책 금융 프로그램 확대 지원”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이 부사장은 특히 “반도체 분야 자체의 인력 수요 증가와 함께 자동차와 통신 등 타 산업 분야의 첨단화에 따른 전기·전자공학 전공자의 채용이 증가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반도체 소자 및 설계를 공부한 인력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지적하면서, “전기·전자공학부 정원을 늘리고,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반도체 계약 학과도 신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현실 한국경제 논설위원은 “기술 전략과 인프라를 바라볼 때, 보통 후진국은 유형 요소에, 선진국은 무형 요소에 집중한다. 무형 요소는 기술과 기업을 바라보는 사고, 인식, 태도, 문화, 분위기, 협력, 규제 등이다. 최근 반도체를 둘러싼 흐름을 보면 이런 무형 요소들이 한국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 부정적 인식, 과도한 부담 등이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또 안 논설위원은 “우리 사회는 잘하는 부분보다 못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면을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전략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서, “미·중 반도체 경쟁으로 인한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는 우리가 잘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확실히 굳혀서 전략 자산으로 삼은 뒤 형국을 살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어서 “대한민국이 언제부턴가 기술·산업 전략이 없는 나라가 됐다. 전략 없는 계획은 아무리 쏟아내도 의미가 없다. 미·중 충돌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내부의 인식·사고·분위기 등의 무형 요소들에서 오는 문제다. 정치인·시민단체·언론 등 제대로 공부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