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리처드 크레인(Portrait of Charles Richard Crane, 1909년)
1909년에는 사업가 찰스 리처드 크레인(Portrait of Charles Richard Crane)을 만났다. 그는 후일 체코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토머스 마사리크(Tomas G. Masaryk, 1850~1937)와 절친한 사이로, 슬라브 민족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크레인은 고향에 정착하여 슬라브 색채를 띤 예술 작품에 전념하고 싶다는 무하의 의지를 이해하고 그를 후원하기로 한다.
무하는 이듬해 가족과 함께 체코로 돌아와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리고 체코의 역사와 민족애를 담은 〈슬라브 서사시(Slav Epic)〉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슬라브 역사의 대변혁기를 단계별로 묘사한 것으로, 총 20점, 제작 기간 20여 년에 달하는 기념비적인 대작이다. 〈슬라브 민족의 원고향〉, 〈니콜라 즈린스키의 시게트 방위〉, 〈스반토비트 축체〉, 〈그룬발트 전쟁이 끝난 후〉, 〈얀 야모스 코멘스키의 마지막 날〉, 〈성 아토스 산〉 등이 대표적으로, 10작품은 체코의 역사에서, 나머지 10작품은 다른 슬라브 국가의 역사에서 제재를 선택했다. 그는 범게르만주의의 폭력적인 억압에 대한 저항 의식을 담아 슬라브 민족이 여기에서 벗어나 화합을 이루기를 소망했다. 그러는 와중 체코어를 가르치는 사설학교 설립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브르노의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연합 복권〉, 〈위협〉을 제작하기도 했다.
〈브르노에서 개최 된 슬라브 서사시 전시회 포스터(Slav Epic poster-Alfons Mucha)〉, 1930년.
1919년, 〈슬라브 서사시〉 11점이 프라하에서 공개되었으며, 이듬해 미 전역에서 열린 무하의 회고전에도 전시되었다. 총 관람객 60만 명에 달하는 전무후무한 전시회였다. 무하는 1926년에야 〈슬라브 서사시〉를 모두 완성했다.
No 1.The Slavs in Their Original HomeLand,1912, Tempera on canvas, 610 X810cm, 체코프라하 무하 미술관.
1. 고향 슬라브-투란 채찍과 고트족의 칼 사이에서 - ‘투르크 채찍과 고트식 검’은 슬라브족들의 평화로운 마을을 무력으로 헤집는 이방의 침입자를 상징한다.
별이 총총한 검푸른 밤에 유목민 집단이 약탈한 고대 슬라브 마을이 불타고 있다. 유목민들은 나이 들고 힘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무력을 행사하며 이들을 한꺼번에 몰아내고 있고, 젊은 사람들을 흑해 북쪽의 항구 오데사(odessa)에 서는 노예 시장으로 데려가려고 옷을 벗기고 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남녀 한 쌍이 앞에서 웅크리고 있다. 이 잔혹한 밤에 유일하게 붙잡히지 않고 목숨을 건졌지만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공포와 전율이 가득하다.
두 사람을 땅에 바싹 엎드리게 만든 두려움 속으로 증오와 복수심 그리고 평온히 살고픈 바람이 뒤섞여 스며들고 있다. 이들의 간절함은 침략으로 고통 받는 종족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도록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고대 민간신앙 속 사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제의 오른팔을 부축하고 있는 붉은 옷의 전사는 전쟁을 상징하며, 나뭇잎관을 머리에 쓰고흰옷을 입은 처자는 평화를 상징한다.
No 2. The Celebration of Svantovit in Rugen, 1912, 캠버스에 템페라 610 X 810cm, 체코프라하 무하 미술관
2. 루야나 섬의 스 반트 바토 축제, 신들이 싸울 때 구원은 예술의 - 그림의 신전에서 특사들과 화관을 쓴 대사제가 나오고 있다. 제물로 바쳐질 힘의 상징인 황소를 몰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 중앙 상단에는 슬라브의 마지막 전사가 숨이 다해 가며 신성한 백마 위에서 스반토빗 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앉아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게르만 민족을 상징하는 떡갈나무가 있지만, 스반토빗 신의 손에는 심장 모양의 잎이 달린 보리수나무 가지가 새롭게 자라나고 있다. 보리수나무는 슬라브 민족을 상징한다.
해변에 면한 가파른 벼랑 밑에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에 모든 사람들이 흥에 겨워 노래하며 춤추고 있다. 그림 중앙 아랫부분에 아이를 안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표정은 그녀의 종족에게 얼마나 애달픈 미래가 닥쳐올지 예감하고 있는 듯 음울해 보인다.
무하가 오늘날 독일 영토에 속하는 루야나 섬에서의 스반토빗 숭배를 작품으로 그려 낸 것은 슬라브족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과 초민족적인 영향력을 되살리고자 하는 자긍심의 발현이다.
No 3 Introduction of the Slavonic Liturgy in Great Morvia,1912, Tempera on canvas, 610 X 810cm, 체코프라하 무하 미술관.
3. 큰 보헤미아의 슬라브인 전래의 도입, 하나님을 찬양하다라는 뜻이다.(대모라비아 왕국에서의 슬라브 예배의식 도입) - 이 그림은 대모라비아 왕국의 수도 벨리그라트를 배경으로, 모국어 예배의 시작을 기리는 작품이다.
정 안마당의 높은 자리에 측근들로 에워싸인 스바토플록 왕(svatopluk, ?-894)이 앉아 있고 그 앞에 주교와 귀족들이 있다.
스바토플록은 로스티슬라프 왕의 아들이다. 부사제는 교황이 메토디우스를 대주교로 임명하고 스라브어 미사 집전을 허용하는 교서(Industriac Tuac),'그대의 열망‘이라는 뜻을 읽고 있다. 상단의 가장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프랑크족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의무적으로 확산됨을 상징한다.
그 아래 모자가 달린 흰옷을 입고 머리 주변에 후광을 두른 사람은 형 메토디우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천상에서 대모라비아 왕국을 수호하는 찌릴콘스탄틴이다.
원형 건물인 로툰다 맞은 편에 있는 제자 행렬의 선두에는 메토디우스가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부축하는 부사제들을 양 옆에 두고 서 있다.
공중에 비잔틴미술의 이콘처럼 묘사된 네 사람은 9세기 중엽에 그리스도교를 수용한 제1차 불가리아제국(681-1018)의 보리스 1세 부부와 9세기에 키예프 러시아를 세운 이고르1세 왕 부부이다.
작은 배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앙 상단의 두 인물은 988년 키예프 공국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성 블라지미르의 아들 글렙과 보리스로, 이들은 선원들의 수호신이자 상인들의 보호자로서 슬라브 민족 사이에 그리스도교가 닻을 내리게 됨을 상징한다.
앞에서 오른손에 원을 들고 왼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는 젊은이는 슬라브 민족이 바라 마지 않는 힘과 화합의 상징이다.
NO 4. Tsar SimeonⅠof Blgaria, 1923, Tempera on canvas, 405 X 480cm, 체코 프라하 무하 미술관.
4. 불가리아 황제 시메온, 슬라브 문학의 샛별(불가리아제국의 황제 시메온) - 이 작품을 통해 무하는 시메온 황제의 계몽적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경은 발칸 반도 북부에 있는 시메온 황제의 도시 벨키 프레스라프이다. 이 그림은 비잔틴 양식으로 장식된 황궁의 모습을 훌륭히 재현했다.
황실의 서기들은 비잔틴 문헌들의 주옥같은 사상을 모아서 기록하거나 연장자들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과거로부터 전해 오는 삶의 지혜를 받아 적고 있고 수도사들은 문학작품을 손수 베껴 쓴다.
시메온 황제는 학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이들의 의제를 주관하며 조언을 건넨다. 스승과 책을 찾아 도래하는 다른 나라의 특사들도 맞이하고 있다.
No 5. King Premisl OtakarⅡof Bohemia, 1924, Tempera on canvas, 405 X 480cm,체코 프라하 무하 미술관.
5. 보헤미와 왕 뿌세미스르·오타카르 2세(슬라브 왕조의 통일) - 프레미슬 오타카르Ⅱ는 1253년 부터 1278년까지 보헤미라를 통치했다. 그는 또한 군사적으로 철의 왕으로 알려졌고 쿠트나 호라(Kutna Hora)의 은광에 재산을 축적해 '황금왕'으로 불린다.
그는 보헤미안 후손들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13세기 슬라브 군주들 사이에 긴밀한 연계를 구축할 책임을 맡았다. 브란덴부르크의 조카 쿤 후타가 항가리의 벨라 4세의 아들과 결혼한 것을 계기로 오타카르 Ⅰ는 참석자 전원과 지속적인 동맹 맺기 위하여 슬라브 통치자들을 초대하였다.
이 작품은 13세기 보헤미아 왕국의 가장 강력한 통치자가 모라바 강 (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를 걸쳐 흐른다) 과 다뉴브 강(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걸쳐 흐른다)이 합류하는 곳에 세워진 도시에 나와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속 채플은 프르제미슬 왕가에 귀속되는 곳으로, 벽면에는 왕가의 문장, 즉 날개를 펼친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프르제미슬 오타카르2세는 그림 한가운데에 결혼식이 거행되는 휘장 안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주변에는 귀족들이 서 있다. 헝가리의 벨라4세도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No 6. The Coronation of the Serbian Tsar Stefan Uros Dusan as East Roman Emperor,1926, Tempera on canvas, 405 X 480cm, 체코 프라하 무하 미술관.
6. 세르비아 왕 슈테판 두샨과 그의 대관식(슬라브 법전) - 슈테판 두샨은 1346년 부활절에 오늘날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세르비아 황제로 즉위하는 대관식을 치렀고, 이로써 고대 로마를 계승하고 있음을 선포했다. 이 작품은 대관식 직후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투구, 허리띠 그리고 검을 받쳐 든 유력자들이 행렬의 선두에 서고 행정관은 국새를 들고 있다. 호화로운 대관식 가운을 입은 황제는 손에 권력의 징표인 곤봉 모양의 비잔틱식 권표(權標)를 들고 있다. 황제와 황후가 가는 길에 꽃잎이 달린 잔가지를 손에 든 처자들이 꽃을 뿌린다. 황제의 아들이 그 뒤를 따르고 바로 뒤에는 대관식을 거행한 세르비아 정교회 장로가 따르고 있다. 성직자, 유럽 황실의 특사들, 귀족과 하객들이 행렬 후미에 있다. 호화롭게 차려 입은 귀부인들이 높은 연단에서 새로운 황제를 환영한다. 성당 앞쪽에 나란히 선 기사들도 황제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행렬 속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통치자 카렐 4세의 특사도 있다. 카렐 4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했고 슈테판 두샨은 동로마제국을 계승한 황제였다. 무하는 신성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의 영광이 슬라브인들의 손에 있었던 시대를 이 작품에서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