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120806_thumb.jpg)
완벽했던 대흥사 단풍 여행
대흥사에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대흥사 경내를 충분히 둘러보고 천불전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찬찬히 훑어볼 수 있었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성보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아 대흥사가 소장한 불상과 괘불을 보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계속해서 맑았고 단풍도 절정인 상태라 대흥사 여행은 너무나 완벽했다. 일찍 일정을 시작해 대흥사에서 가파른 길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북미륵암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충분히 있었다. 이번 여행기는 대흥사 경내에서 등산을 시작해 북미륵암을 거쳐 정상인 가련봉까지 오른 뒤 다시 대흥사로 돌아오는 일정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46 - 사명대사 유정 (惟政)
유정은 7세 때 할아버지로부터 『사략』을 배우고 13세 때 유촌(柳村) 황여헌(黃汝獻)에게 『맹자』를 배웠다. 비명에는 이와 같은 세속학문의 한계를 느껴 출가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실은 출가 사유가 그뿐만은 아니었다. 유정은 15세 때 먼저 어머니를 잃고 16세에는 아버지를 잃어 황악산(黃嶽山) 직지사(直指寺)의 신묵화상(信默和尙)에게 출가하게 된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720916_thumb.jpg)
출가한 후에 『전등록(傳燈錄)』을 배웠는데 배운 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 뜻을 깨우쳐 나이가 많은 승려들이 오히려 유정에게 와서 물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출가 전에 유정이 얼마나 학문적 이력과 소양을 깊이 쌓았는지 시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유정은 출가한 지 불과 2년 만인 18세에 신유년(1561, 명종 16) 선과에 합격하였다. 유정이 갖추었던 이러한 식견과 재능으로 인해 당시의 여러 저명한 유학자 문인들, 예컨대 박순(朴淳), 이산해(李山海), 고경명(高敬命), 최경창(崔慶昌), 허봉(許篈), 임제(林悌), 이달(李達) 같은 인물들과 교류하게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유성룡(柳成龍)의 문집인 『서애집』에서는 유정이 시에 능하고 해서와 초서도 잘 써서 승려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700030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55110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701237_thumb.jpg)
이후 유정은 직지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선종본사인 봉은사 (奉恩寺) 주지로 천거되나 이를 사양하고 32세의 나이에 묘향산 보현사에 은거하고 있던 서산대사 휴정 (休靜(西山大師))을 찾아가 3년간 참선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에는 팔공산, 청량산, 태백산, 금강산 등을 유력하며 수행하였으며, 1586년(선조 19) 옥천산 상동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스승 휴정과 함께 관아에 갇히기도 하였으나 지역 유생들의 상소로 무죄 석방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터졌을 때 유정은 금강산에 머물고 있었다. 전세가 급박해지고 급기야 선조가 궁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정은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군 천오백 명을 모아 순안 법흥사(法興寺)로 갔다. 휴정에게 합세한 오천여 명의 의승군 세력은 그 여세를 몰아 명나라 군대와 함께 왜적에게 함락되었던 평양성을 수복하였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39795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40050_thumb.jpg)
이 과정에서 승군이 보여준 조직력과 혁혁한 성과는 임금과 조정 대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유정은 휴정의 수제자로서 전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충의의 승려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유정은 휴정을 대신하여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고 군량 조달 및 산성 축조 등 전쟁 지원 사업과 관련하여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일본군과의 강화교섭 과정에서 조정을 대표하여 파견되었고 정세를 분석하여 대비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승병장의 역할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왜로의 사신으로 파견되어 국교 재개와 잡혀간 조선인 포로 송환 등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도총섭을 역임한 유정의 공로는 선조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 선교양종판사의 직책과 종 2품 당상관인 가선대부와 동지중추부사 등을 제수받았다.
승려에게 당상관을 제수하는 일은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조처였으며 임진왜란에서 유정과 불교계의 공로가 컸음을 조정에서 인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25704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25665_thumb.jpg)
1610년(광해군 2)에 세수 67세, 법랍 53세로 입적하여 해인사 서쪽 기슭에 다비하였다. 18세기에 임진왜란기 의승병장의 활약을 높이 평가받아 휴정과 유정 등을 향사하는 국가 공인 사액사가 지정되었다. 유정을 향사하는 곳은 밀양 표충사로 1739년(영조 15) 왕명으로 사액되었다. 이후 스승 휴정을 향사하는 사당으로 1789년 해남 대흥사와 1794년 묘향산 수충사가 사액되자 유정도 휴정 옆에 배향되었다.
북미륵암을 거쳐 두륜산 정상 가련봉에 오르다
두륜산의 등산로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등산로를 꼽는다면 대흥사에서 북미륵암에 오른 뒤 오심재와 능허대를 거쳐 정상인 가련봉 (700m)에 오르는 것이다. 가련봉에서 남쪽을 향해 계속 걸으면 두륜봉이 나오고 능선은 도솔봉과 연화봉으로 이어지지만 현재 이 길은 자연휴식제로 인해 막혀 있어 갈 수가 없다. 이 코스는 5.9㎞이며 5시간 정도 걸린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03477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12546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604382_thumb.jpg)
두륜산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상당히 가파르다. 두륜산이 대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대흥사에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를 수밖에 없다. 고생 끝에 북미륵암에 오르면 숨 돌릴 틈이 생긴다. 북미륵암은 국보 1점과 보물 1점을 보유하고 있는 암자라 대흥사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이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531389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539933_thumb.jpg)
바위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 있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이다.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518167_thumb.jpg)
본존불의 육계(肉髻)가 뚜렷한 머리는 언뜻 머리칼이 없는 민머리(素髮)처럼 보이나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단정한 얼굴은 살이 찌고 둥글넓적하여 원만한 상이다. 그러나 눈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입을 굳게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귀는 큼직하니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유난히도 굵고 짧아진 목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삼도(三道)를 나타내었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512782_thumb.jpg)
손(手印)과 발은 항마촉지인에 오른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냘픈 듯 섬세하고 가지런히 묘사하여 사실성이 엿보임과 더불어 곱상한 느낌을 준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그 주름은 거의 등간격으로 선각화(線刻化) 하여 사실성이 뒤떨어지고,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마치 키를 드리운 것처럼 늘어지는 등 도식적(圖式的)인 면이 강하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시대로 이행해 가는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505466_thumb.jpg)
대좌(臺座)는 11 엽의 앙련(仰蓮)과 12 엽의 복련(覆蓮)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대좌로 두툼하게 조각되어 살집 있는 불신(佛身)과 더불어 부피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다른 예에서와는 달리 자방이 높게 솟아올라 있어 특징적이다. 머리 광배(頭光)와 몸 광배(身光)는 세 가닥의 선을 두른 3 중원(三重圓)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火焰紋)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위·아래로 대칭되게 4구의 천인상을 배치하였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58726_thumb.jpg)
둔중한 체구로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본존불과 달리 경주 석굴암 내부 감실(龕室)의 보살상을 연상케도 하는 4구의 천인상은 날렵한 모습으로 부드러움과 함께 세련미가 엿보인다. 천인상들의 조각표현은 이 당시의 거의 유일한 예이자 우수한 조형미를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1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39321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50000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42084_thumb.jpg)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은 두륜산 정상 부근의 북미륵암에 세워진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밑면의 단의 수가 층에 따라 다른데,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한반도의 남쪽 끝인 해남에 이처럼 구성이 가지런한 탑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양식에서 일부 간략화된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36931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37221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29049_thumb.jpg)
북미륵암의 흔적은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전부였으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암자를 이루고 있었다. 마애여래좌상이 국보로 지정된 이후에는 북미륵암의 중심건물인 용화전이 확장되어 불상이 마모되는 걸 방지하고 있다. 마애여래좌상의 중심인 본존불 외에도 그 주위에 새겨진 천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과연 국보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삼층석탑과 함께 두륜산을 장식하고 있는 걸 보니, 칠불암 마애여래좌상과 수많은 석탑이 여기가 불국토라는 걸 알리고 있는 경주 남산이 떠오른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12820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22391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22397_thumb.jpg)
북미륵암의 환상적인 문화재를 보고 다시 힘을 내어 두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오르면 오심재에 도착하게 되며, 여기서 시작하는 능선길은 포근하여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대흥사 계곡은 단풍이 한창이지만 두륜산 상부는 이미 단풍이 사라지고 없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나무들이 헐벗은 모습을 보니 이제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00354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2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400895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52387_thumb.jpg)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서인지 정상인 가련봉에 오르는 길도 아주 잘 되어 있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해남에도 산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멀리 해남 앞바다도 보이며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듯한 능선인 달마산도 보인다. 월출산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해남 인근은 바다를 찾는 이들뿐 아니라 산악인들에게도 등산을 즐기기에 좋은 여행지라 할 수 있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39490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48293_thumb.jpg)
부처님의 오른손에 해당하는 가련봉에서 내려가면 노승봉이 나오고, 노승봉에서 조금만 걸으면 부처님의 머리에 해당하는 두륜봉이 나온다. 대흥사에 서서 능선을 바라본 모습이 영락없이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능선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내장산처럼 내장사를 가운데 두고 능선을 한 바퀴 도는 등산을 하고 싶지만 도솔봉과 연화봉으로 향하는 길은 막혀 있어 아쉽기만 하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31517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40770_thumb.jpg)
두륜봉에서 하산길을 따라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로 하산했다. 내려가는 길은 잘 포장된 임도와 등산로가 섞여 있어 오르는 길만큼 풍치가 있지는 않다. 표충사를 보면서 조선을 구한 두 승려의 업적을 기리고 오늘 등산을 무사히 끝냈음에 감사함을 표했다.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31057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33216_thumb.jpg)
![제46화 - 북미륵암, 대흥사의 숨겨진 보물3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21%2F20230121162325230_thumb.jpg)
두륜산은 봄이나 여름에 다시 찾고 싶은 산이다. 다시 찾을 때는 대흥사의 성보박물관이 문을 열어 대흥사가 소장한 문화재를 마음껏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대흥사 앞 유선여관에서 하루를 묵으며 대흥사의 환상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