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2008년 1월 19일
쥐띠해의 첫 동계 정기산행이다.
45인승 대형버스의 좌석이 모자라 안내양 자리까지 찼다
“안내양이 없어 졌길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한사람 못 갈 뻔 했네”
한 사람 못가거나 말거나
“ 이쁜 안내양이 자~아 떠나자! 오대산으~로~오!를 외치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속의 새벽공기가 매서운 모양이다.
달리는 차창으로 자꾸 성에가 달라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일 모레가 대한이니 계절이 엄동설한의 중심이 아닌가
십분쯤 왔을까
버스가 갑자기 도로가로 정차한다
무슨 일이 생겻나
백은주님이 멀미로 동행이 어렵다고 하차 하셨단다.
잠설치며 이른 새벽부터 고생했을 텐데... 여기까지 오다 그냥...
이럴 때 쓰는 말이 “오호 통재”라 인가
하여튼 아쉽고 안타까울뿐이다.
무려 3시간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
생각보다 날씨가 사납질 않다
“오 총대장 너 오늘 날씨덕 무지 본다”
“엄청 추웠으면 여기부터 너 죽고 나 죽자고 GR 난리 뽀갰을 텐데...”
멀리서 모처럼만에 왔다고 봐주는 걸까
아님 오 총대장 살리려고 그러는 걸까
울님들 45인이 등로에 들어서니 비교적 넓은 등로지만 꽉찬다.
상원사로 오르는 등로 좌우로 아름드리 전나무가 밑으로 흰 버선을 신고 푸른 하늘로 머리를 치 솟앗다.
얼마 오르지 않아 도착한 적멸보궁
“적멸보궁이 뭐여”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성전이라고 카페 운영부장 미소지움이 알려 주신다.
“적”자를 잘 모르겠다하니 유 부국장님이 “고요하다”라고 알려 주신다.
그럼 난 아는게 뭐가 있어 이그, 이 불쌍한 중생아,무식의 극치를 달려라
이제 배울만큼 배웠으니 요기부터는 유식 좀 떨어보자
그렇다
겨울산은 조용한 것이다
식물들의 그 치열한 생명활동도 안거에 들고
새들도 짝을 찾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적멸”
삶의 시글벅적함이 마치 고승의 해탈처럼 고요하고 적막하게 쉬는 것이다.
적멸보궁
불심이 옅은 우매한 중생이라 그 깊고 오묘한 불가의 세계야 잘 모르지만
겨울산의 속성과 기가 막히게 맞질 않는가
그래서 우리가 오늘 오대산을 찾았나 보다
맨날 꼬랑지만 붙들던 나였는데...
오늘은 앞으로 치고 싶다.
“강대장은 꼬랑지를 지키기로 해놓고 배신 때린다고 빈정댄다.
“왜냐구요”
글세요,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반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멸보궁에 대자대비로 베풀어 주신 떡 한 조각의 힘때문일까
아님 비로봉이 뭔가 특별한 게 있으니 빨리 오라 재촉해서 일까
횟님들을 뒤로 하고 발 빠른 선두를 쫒아 오른다.
숨이 가파 온다
이마에 비지땀이 흐른다.
다리도 뻑적지근 하다.
그 무엇이 나를 이리 바삐 몰아친단 말인가
한 달음에 오른 비로봉
눈 덮인 산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뛴다
힘들어서 뛰는 심장이 아니다.
오대산 비로봉
다섯 개의 “臺”(봉우리의 평편하고 넓은 터)중에서 제일 높다더니
과연 빈말이 아니엇구나
저 멀리 머리끝만 살짝 내민 노인봉
흰 바다의 검은 조각배인가
주인은 어디가고 흰구름만 노니는가
끝없이 뻗어내린 능선들아
흰 이불을 덮어서인가
부드럽고 포근하기만 하구나
어디서 날아왔나
작은새 한 마리야
겨울에 갇힌 네 모습이
외롭지만 않은 것은
곧 다가올 사랑이 있기 때문
“여기서 점심 먹는다고 안 그랫습니까”
“아니오, 저쪽 상왕봉이오”
“어~어! 그럼 아닌데”
그럼 이 연약한 심장과 부실한 다리를 다그쳐 선두를 따를 이유가 없었는데...
한참을 기다리니 후미가 도착한다.
모두들 지치고 힘든 표정이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순간 하나같이 “와~아!”하는 환성과 함께 노고는 저 산을 넘는다.
“고생들 하셧습니다.”
여기서 단체 사진 박고 저쪽 상왕봉으로 밥 먹으러 갑시다.
“식기당번 내지는 취사병 앞으로”
“어~라!”
“여성회원 내지는 누님들 앞으로가 아니네”
그래 맞다
오대산도 식후경인데 카사노바는 밥 먹고 하자
나는 이제 정말로 마음이 바빠 아니 KTX보다 더 빨라 졌다.
양치기 소년 안되려면 카페 출석란에 떠벌린 기상천외의 이벤트를 준비해야 한다.
급하게 다다른 상왕봉밑의 대
“오대산에 왔으니 이벤트도 점심도 대에서 해야 맞제!”
오총대장 불러 찌개 끓이기전
부실한 체력으로 간신히 메고 올라온 정종 대병(한잔씩이나 돌아 가려나) 따닷하게 뎁히고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안주...
김후곤님이 들고 다니더니 순식간에 없어졌다.
마파람에 게눈 감춘다고 하더니 내 오늘에야 이말이 진짜임을 알았다.
점심 자~알 먹고 기상천외의 이벤트하니
가슴 따닷해지고 기분 살살 살아나는데 까지는 좋았는데....
“오메 클났다!”
그렇치 않아도 토산횟님들 눈만 보면 전의가 꿈틀거리고 광기가 번득거리는데...
특히 윤0숙,박0숙,김0숙... 이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오대산 산디사방 무기고 전투장인디
이 일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아니라 다를까 앞에서 퍽,튀에서 툭, 얼굴에 “미싱 하우스” 심지어 목줄기에서 배곱까지
“에~고! 에고! 만신창이 됐다.”,“완죤 새 됐다!”
아까 비로봉에서 작은새한테 뭐 잘못 한것도 없는데...
내가 오대산에서 쵝오로 쪽팔린 겨울새가 될 줄이야...
더더욱 큰일은 앞으로 이다
지금부터는 눈이 지천인 하산길이고 윤,박,김
이 트리오는 아직 힘도 무지하게 남아 있는 것 같고 기상천외의 가을 안주를 먹여 놨으니 언제 어디서 튈지,날아 올지를 모르니 방어도 안되고...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쬐끔 고상하게 얘기하면 속수무책
자포자기,두자로 줄이면 抛棄
포기 이 한자 무지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자 죽어도 안 잊어 버립니다요
왜냐고요
내가 옛날에 미팅할 때 무지 이쁜 여자가 나한테 이렇게 써서 쪽지로 줬는데 나를 좋아한다는 에프턴 줄 알고 얼마나 헛물 켰는지 모릅니다요
그러니 횟님들도 잘 기억해 두시면 저처럼 베스트 쪽팔림은 안 당할 겁니다.
얼마를 무사하게 잘 내려왔다
잠시 소강상태인 모양이다.
“어 뭠!”
파란 곰 한 마리가 눈속에 박혀 잇는디...
“죽엇나봐,숨도 안 쉬어”
살살 들어가 살펴보려는데...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나를 눈속에 쳐박고...
나도 눈속에 얼굴 쳐박고 숨죽이고 음흉떨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흰눈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는 것이 야릇한 감정까지 들어라고요
임도에 이르니 앞으로 흰눈길이 굽이 굽이 돌며 펼쳐진다.
여기부터는 조용하다.
아마도 오대산과 이눈길을 뒤로 하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어느 문학가가 말했듯이 “눈에게 눈인 시간이 얼마나 되겟는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린인 시간이 아쉽지만 그리 길지가 않다
오늘 이 시간의 오대산의 눈싸움,눈길 산행,그리고 우리들의 웃음과 이야기도 이 임도가 끝나는 상원사 주차장에 이르면 과거로 흐를 것이다.
이 눈길이 다하기전 까지 긴 여운을 더 하고 싶다.
오늘 기상천외한 이벤트로 본의 아니게 눈세례 받으신 분들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혹시 손해배상청구 하실분은 저한테 살짝 언질 주시면 수수료 없이
오대산이든 하늘이든 눈이든 청구해 보겠습니다.
오늘 오대산 산행 계획하신 집행부 및 산행부 수고 많으셨습니다.
동행하신 횟님들 눈 전쟁치르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토산회 처녀 산행하신 횟님들 즐거운 산행이 되셧나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었으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고
오대산에서 얻은 맑은 기운 일주일의 생활 에너지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2월 20일 황호순
황감사님의 문학적 글을 자주 보고싶은데 어캐 안되겠는지요?~산행후 짤막하게라도 자주 부탁 드립니다... 저도 오대장도 쓰긴 쓸테니까요!~네에
내 마음을 나도 모릅니다.
난 오대산에 다녀온 후유증으로 심히 마음과 몸이 앓고 있슴다. 왜냐구요 지 연약함니다. 이런 나에게 무섭다니요 앙앙앙~~~~~~~ 한참 갈것 가튼디 우째 풀어주이소 황감사님 글을 오대산 눈길 미끄러내려오듯 쓰셨군요. 대단하십니다.
두번만 연악하시면 천지개벽 할 듯 합니다./오늘 눈 많이 오니 요번 토욜 배방산에서 "연약"의 진수를 보여 주시죠
황 감사님 글을 읽으며 감동 백배였습니다. 재미있는글 잘 보고 갑니다.
후기로 오대산을 다시올랐습니다.지도 오대산 후유증 중입니다.좋은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