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목요일>
하느님(라 Deus, 영 God)
1. 하늘(天): 하느님이란 하늘(天)의 존칭어이다. 하늘은 종교적 궁극자, 최고의 원리 등을 상징한다. 중국 고유 사상에서 하늘(天)은 천도, 천리의 개념으로, 최고의 신 내지는 절대 원리로서, 인간의 인격 형성과 상벌의 궁극적 규범으로 존재하였다.
갑골문의 최고의 신인 제(帝)나 상제(上帝)는 서주시대 들어오면서 천(天)으로 불렸다. 상제란 높은 천상의 임금이라는 인격적 표현이라고 한다면, 천이란 창공 자체를 일컫는 천공 신으로 절대 원리였다. 마테오 리치는 상제 혹은 천은 하느님과 같은 절대적 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야훼 하느님을 “천주(天主)”라고 하였다. -> 상제상서
한국사에서 하느님 사상은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환인은 천상 세계의 최고의 신으로,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낸다. 그는 나라를 세웠고, 그의 아들은 도읍을 옮긴 후, 어린애를 양자로 구해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셨도다.”하며 기뻐하였다.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와 최시형은 인즉천(人卽天)을, 손병희는 인내천(人乃天)을 주장하였다. 이모든 것들은 한국 고유의 핵심을 이루는 하느님 사상을 수용하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기독교 사상 1980년 7월호).
2. 하느님의 본성: 하느님의 본질은 유일하시며(이사 45,18), 자존하시고, 영원(無始無終)하시며(애가 5,17-20: 이사 40,28),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만물을 초월하신다(예레 32,17, 시편 135). 또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신다.
하느님의 속성은 완전한 사랑이시고 정의롭고 거룩하시다. 무량한 영체이시며(지혜 1,6-7), 시공을 초월하시고(1열왕 8,27, 예레 23,24), 살아 계신다(여호 3,10).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히브 1,1-2),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분(갈라 4,4), 예수께서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이시다(마르 14,36). 그렇기에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3. 야훼와 여호와: 야훼(Yahweh)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호칭 하던 고유 명사이다. 그 뜻은 ‘나는 항상 그대로 있다.’(탈출 3장)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야훼 대신 ‘아도나이(Adonai, 주님), 혹은 ’엘로힘(Elohim)’이라고 하였다.
야훼는 1년에 한 번 (대속재일)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10회 정도 외치는 정도였고, 더구나 신자들은 이 소리를 들어서도 안 되었다. 야훼는 자음자 Yhwh로 구성되어 있고. 이의 단축 형은 ‘야(YHW)’로 ‘이사야’처럼 이름의 끝에 붙거나, ‘알렐루야’처럼 전례용 문구에서도 사용되었다.
개교에서는 야훼를 ‘여호와(Jehovah)’라고 한다. 야훼의 영어식 표기인 지호바를 음역하여 여호와로 부른 것이다. 개신교 측 ‘새 성서대사전’에도 ‘후기에 와서 자음자에 아도나이의 모음자를 인위적으로 붙여 사용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바뀔 때, 잘못 발음되었거나(誤讀) 잘못 쓰였을 것이라고 했다(이성호 편, 성지사, 1640쪽, 1749쪽)
4. 하느님과 하나님: 하느님을 개신교 측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피조물인 ‘하늘’은 하느님의 이름이 될 수 없기에 하나(-)만이 유일신을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 유일신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하나만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예; 해, 달 등). 따라서 하나(-)라는 숫자 역시 하느님을 정확히 지칭할 수는 없다.
국문법에 따르면 ‘하나’라는 말은 수사(數詞)로 ‘님’이라는 존칭 접미사를 붙일 수 없으나, ‘하늘’에는 ‘님’을 붙일 수 있다. 따라서 하늘은 ‘하늘님’이 되지만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나지 않는 대로 쓴다는 한글 맞춤법(28항)에 따른다면 ‘하느님’이 옳다고 하겠다.
다만 ‘하늘’이든 ‘하나’이든 유일한 절대자 창조주 그 분을 지칭하며, 존경과 흠숭과 찬양을 드린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절대자 그 분을 결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애국가에 하느님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 민족이 하느님을 창조주로 일컬어왔음을 말해준다. -> 삼위일체
입당송
하느님, 당신 백성에 앞장서 나아가실 제, 그들 가운데 사시며 길을 열어 줄실 제,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이 되어 쏟아졌나이다. 알렐루야.
제1독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사도 13,23)
화답송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나는 나의 종 다윗을 찾아내어,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노라. 내 손이 그를 붙잡아 주고, 내 팔도 그를 굳세게 하리라.
내 진실 내 자애가 그와 함께 있으니,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이 들리리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알렐루야.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영성체송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알렐루야.
<복음의 기쁨 –9항>
진리와 선에 대한 참다운 경험, 그 자체가 내면에서 자라나게 하소서.
진정한 해방을 맛본 자의 태도처럼 타인의 요구에 더욱 민감할 수 있게 하소서.
선이 더욱 퍼져 거대한 뿌리가 되어 자라게 하소서.
타인의 선익을 추구하는 품위 있고 충만한 삶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라고 바오로 성인께서 하신 말씀 가슴에 새겨 실천하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을 제대로 알아가도록 이끄시는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파견된 그리스도의 선물인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교회를 이끄는 힘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 당신 안에서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보살펴 주소서.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귀로 들을 수 있고, 말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사지를 움직일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분에 넘치는 평온, 유지 할 수 있는 이 행복, 마음 정리하고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저를 도우시는 하느님, 사랑합니다. 아멘
2019. 5. 16 (목) 이진희 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