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같이 계를 하는 친구가 풍기온천 지구에 모텔을 신축하였다 하여 계원들이 몰려가 하룻밤을 머물렀다
친구가 현지에서 사귀었다는 선배의 전원주택에서 준비해 간 쇠고기를 구워 먹고 모텔 객실 안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어 아주 상쾌하였다
다음날 아침(그러니까 어제) 그 선배의 안내로 소백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등으로 배웠는데 이 용어는 일본인들이 쓰던 용어라고 하여 요즘은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썼다는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로 고쳐 쓰고 있다
하여튼 우리가 배우던 소백산맥은 소백산, 주흘산(문경), 속리산(보은), 황악산(김천), 대덕산(무주), 남덕유산(거창), 지리산(산청)으로 이어지며 윗쪽은 충청도와 경상도를, 아랫쪽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랐다
산은 교통에 큰 장해가 된다. 그래서 죽령, 조령, 추풍령, 팔랑치, 육십령 등이 소백산맥의 낮은 부분을 넘는 고갯길이 되었다
소백산은 소백산맥의 이름을 낳게 한 산으로 그래서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었다
20대 후반에 친구들과 희방폭포를 거쳐 희방사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등산이 보편화되지 않아 정상을 오르려고 배낭을 메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도로 내려올 걸 뭣하러 오르느냐"고 웃곤 하였다
대개 IMF를 등산 인구의 폭발적 증가의 계기로 본다. 요즘은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초등학생부터 70노인까지 소백산 같이 높은 산을 아무 저항감없이 오르 내리고 있다. 가히 '국민 등산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는 돌아와야 할 시간을 감안하여 삼가리에서 달밭골까지 일단 차로 올랐다
매표소에서 차량을 통제하였지만 그 선배가 풍기에서는 말발이 좀 통하는지 매표소 직원을 구슬러 차로 갈 수 있었다
올라가 보니 우리가 주차한 곳에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 의아하였는데 매표소가 문을 열기 전에 올라온 차들이라나.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달밭골에서 소백산 최고봉 비로봉까지는 3.4KM로 1시간 40분 거리란다
숲 사이 길이라 햇볕은 피할 수 있었지만 등산로가 짧은 곳은 경사가 급한 법. 평지 길은 거의 없고 끝까지 오르막길이라 도중에서 몇 번을 쉬었다. 잘 자란 적송들이 곧게 하늘로 치솟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었고 이름높은 소백산 철쭉은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는 거의 꽃들이 문을 닫은 이후였다. 도중에서 만난 양반바위는 양반이 가부좌를 틀고 앉은 듯 우람하였고 우리 일행 10여명이 앉아 쉴 만한 바위가 있어서 산 아랫쪽을 내려다 보며 땀을 잦히기에 좋았다
이 코스는 능선을 타고 가는 코스라고 하는데 유달리 계단이 많았다. 계단은 사람을 아주 지치게 하였지만 우리는 산을 즐기기 위하여 이 계단을 오르는 것이고 이 계단을 설치한 사람의 수고에 비한다면 이까짓 고생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며 올랐다. 티벳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고통을 맛보며 고통만큼 자신이 지은 죄업이 빠져 나간다고 생각한단다
사실 오래 사는 만큼 먹고 입고 사느라 자연을 훼손하고 다른 생물의 목숨을 앗으며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짓는 죄를 늘리는 것이다
정상 부근에 은방울꽃이 아주 많이 피어 있어 탄성을 자아내었다. 은방울꽃은 야생에서 잘 볼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은방울처럼 생긴 꽃이 조롱조롱 달려 있어 일행들에게 '이것 좀 보라'고 고함을 질렀다
붉은 병꽃나무도 한창 꽃을 피우고 있어 볼 만 하였다. 나무와 꽃에 대하여 지식을 쌓게 되면 산을 오르며 볼거리가 많아지므로 심심하지가 않다. 철따라 피고지는 꽃을 기다리고 즐기고 아쉬워 하다보면 1년이 금새금새 가는 기분이다
이윽고 정상. 좁지 않은 정상에는 사람들이 하도 짓밟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이었다
이 곳이 비로봉임을 나타내는 돌덩이 하나만 덜렁 서 있을 뿐.
돌덩이 뒤에는 조선 초기 서거정의 시 한 수가 새겨져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他百里押雲間
分明畵盡東南界 地設天成鬼破
(태백산에서 100리를 구름을 뚫고 구불구불 이어져 온 소백산
동남(경상도)의 경계를 분명히 그으며 하늘, 땅을 만든 형국에 귀신도 놀랄 만)
아마 서거정도 이 산을 경계로 경상도와 충청도가 갈라진 것을 보며 감탄한 모양이다
정상은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오르면 그 곳은 허탈하리만큼 있는 게 없다
내려다 보는 전망이 훨씬 낫다. 비로봉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연화봉과 제2연화봉이 보인다
연화봉에는 천문대가, 제2연화봉에는 기상관측소가 자리잡고 있어 찾기가 매우 쉽다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자리잡고 있는데 서양식 별장 모양으로 지어놓아 저런 곳에서 하루밤 머물렀으면..하는 기분이 든다. 그 옆으로는 잘 자란 주목이 수백그루 서 있다. 주목은 원래 높은 산에서 자라는 나무다
우리 밭에서 언젠가 전국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꽃집을 하는 친구가 축하 화환을 보내려고 하길래 나무를 한 그루 보내달라고 하였더니 주목을 한 그루 보내 주었다. 그 나무는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데 아직도 그 나무를 보면 그 친구의 호의가 생각난다. 소백산 정상에서 주목 군락을 보니 아주 반가왔다
동쪽을 바라보면 국망봉國望峰이 보인다. 국망봉은 신라의 마의태자가 금강산을 향해 가다가 이 곳 국망봉에서 마지막으로 나라(國)를 바라다 보았다(望)고 하여 국망봉으로 이름이 붙었다. 마의태자와 관련한 지명이 많은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사람들의 나라를 잃은 회한이 아주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래 와서는 경상도로 귀양온 선비들이 국망봉에서 서울을 바라보며 임금에게 마지막 하직인사를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경계>에 있던 산이라던 것.
정상에서는 할 일이 내려올 일 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그 일을 하였다는 이야기.
첫댓글 소백산을 다녀오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소백산 철쭉축제때에는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하는데 .... 올 해엔 꼭 갈려고 했었는데 시기가 지나 버려 또 못갔답니다. 은행나무님의 건강함이 산과 들에서 받은 정기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정상은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오르면 그 곳은 허탈하리만큼 있는 게 없다."
그런데도 다들 오르고 있지요. 우리네 인생사가 그런것도 같고요.....
달발골하면 저는 남다른 추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휴양가서 사시던 곳이지요. 저도 꽤많이 가서 살아 보기도 했었는데...
항상 그리움이 있는 곳인데 저는 빽도 없고 말빨도 없고 하니 매표소가 문을 열기 전에 올라가야 겠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하고요 그런데 매표소문은 언제 여나요? ㅎㅎ
전 5월26일에 천동매표소에서 비로봉을 거쳐 어의곡으로 산행~~철쭉이 피지않아 실망(작년에도 마찬가지) 정상에는 인증샷으로 인산인해/올때는 길이막혀 이래저래 짜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