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놀이 3 / 황선영
증명사진을 찍으려면 머리카락을 다듬어야 할 것 같다. 길이가 어중간해 답답해 보이고 웨이브가 다 풀려 푸석하다. 나한텐 미용실과 사진관 가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계속 미루며 껄적지근한 걸 매달고 지내는 건 더 힘들어 얼른 해치워 버리는 게 낫긴 하나, 정말 싫다. 크고 깨끗한 거울 앞에 앉으니 커트보로 몸을 두른다. 얼마큼 자를 거냐는 물음에 '적당히'라고 대답했다. 미용사가 나에게 온 집중을 다 하는 걸 보기가 싫어 눈을 감았다. 머리를 정성스럽게 감겨주고 두 명이나 달라붙어 말린다. 저 사람들이 나만 보고 있는 이 시간이 어서 지나길 바랐다. 사진사가 "허리 펴고 고개 살짝 드세요. 아니, 너무 들었어요. 살짝, 아주 살짝만. 어어, 입술 붙여요."라고 주문한다. 눈을 안 감으려고 부릅뜨나 찰칵 소리가 나고 빛이 번쩍일 때마다 감겼다. 온통 내 얼굴로 채워진 커다란 모니터 앞으로 나를 부른다. 맘에 드는 걸로 고르란다. '누구냐, 넌?' 알고 생각했던 얼굴이 아니다. 사진이 된 내가 낯설다. 자세히 보기가 힘들어 대충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목이 집중되는 걸 못 견딘다. 모두가 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가쁘다. 대학 때도 발표 많이 시키는 교수님 수업은 수강 신청을 안 했다. 비싼 등록금 내고 좋은 수업은 다 놓쳤으니 참. 원래 기질인지 기억 안 나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어렸을 때 대단한 울보였는데 이쁘다 해도, 밉다 해도, 급기야 쳐다보기만 해도 울어서 어른들한테 "너한텐 아무 소리도 못하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단 한 편 남았다는 말이 서운하다.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더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데 이제 그만 입을 다물라는 것 같다. 똥, 오줌 누는 일상조차 예사가 아니니 할 얘기는 넘쳐난다. 이걸 구성할 능력과 의미를 담을 철학이 없다는 게 문제일 뿐. 주목받는 거 싫으면서 글은 왜 자꾸 써서 내놓는 건지, 왜 이 글쓰기는 잘하고 싶은지 세 학기를 쓰면서도 이유를 못 찾았다. 남편 자식 다 팽개치고 여기에만 매몰돼 지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 행복해 미칠 지경이다.
화요일 수업이 끝나면 또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제일 먼저 올라온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기분이 약간 설레면서 나쁜데 이 느낌이 좋다. 기대와 절망이 양쪽에서 나를 호위하는 것 같다. 다 쓸 수 있을 것 같아 호기롭다가도 아무것도 쓸 수 없어서 운다. 그러면 내키는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며 나, 황선영을 생각한다. 지금은 내 정보가 많이 필요하다. 과도하게 예민해져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남편이랑 얘기하다 별 것도 아닌 데서 눈물을 쏟고, 여럿이 있다가 아무도 웃지 않는 데서 혼자 큰 소리로 웃었다. 왜 그런 제정신 아닌 행동을 하는지 천천히 생각해 본다. 이런 건 사실 사타구니에 난 종기를 내보여야 하는 일처럼 불편하고 민망하다.
김건희 여사가 허위 이력으로 질타받을 때 앞에 나와 '돋보이고 싶어서.'라고 해명했다. 잔주름 하나 없는 여사의 얼굴과 '돋보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들어왔다. 2년이 지나고 이 말이 왜 나한테 남았는지 알았다. 옆머리를 들춰보니 흰머리가 장난 아니다. 아무래도 글 쓰느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 같다. 아주 백발이 된다 해도 계속 쓸 것이다. 주목받는 건 거북하지만 돋보이고는 싶다. 이 욕망을 그냥 두련다.
첫댓글 독보적이세요. 전 미용실에서 머리 만져 주면 잠 오던데...
하하하하하. 저는 자는 척해요.
진짜. 작가. 인정.
부럽네요. 쓸거리가 그리 많다니.
더불어 반성합니다. 그 열정을 배워야 하는데...
아닙니다. 열정은 무슨. 그냥 재밌어요.
열정이 충만하신 선영 선생님, 마무리까지 완벽합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어떤 글감이 주어져도 척척 써내시는 선생님은 곧 작가가 되실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그런 말 여러 번 들었는데 작가가 되지 못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 행복해 미칠 지경이라니 경이롭습니다.
날마다 그런 건 아니고.
지금 글을 다니 보다 너무 오버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우리 글쓰기 반의 촉망받는 인재라는 것, 인정합니다.
도전하세요.
끊임없이 샘솟는 그 열정이라면 무엇이든 못 해낼 게 없습니다.
도전!
고맙습니다. 선생님.
교회에 다니셨다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네요.
왠지 하나님은 양선례 선생님은 더 이뻐하실 것 같은 느낌.
하하하.
읽고 쓰는 게 그렇게 좋으시니, 좋은 글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
계속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팹입니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면서도 마술같은 힘에 이끌려 또 쓰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예, 너무 어려워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아직 선생님 얘기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앞으로 선생님이 풀어낼 얘기 엄청 기대해도 되죠? 이번 글도 황선영 선생님 글이네요.
하트.
션생님, 대단하십니다. 1학기 종강이 서운하다니요.하하. 앞으로도 재밌는 글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네요. 저 맨날 하는 선생님 글 평이랍니다
. 오늘도 잘 읽고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