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동 계곡으로 들어
칠월 중순 주말이다. 근일에 와서 나라 안 강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그나마 내가 사는 생활권은 비가 잦아도 얌전히 내린다고 봐야 할 정도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이른 아침밥을 먹고 비가 와도 밖에서 보낼 일정을 구상해 길을 나섰다. 장마라 사람이 덜 찾을 온천장 대중탕에 몸을 담갔다가 나올까 해서다. 현관을 나섰더니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 15층에서 계단을 걸어갔다.
온천장을 찾으려는 뜻은 무릎이 시큰거리고 종아리가 욱신거려 장마철이지만 온천수에서 풀어보려는 뜻도 있었다. 고층 아파트를 걸어 1층까지 내려갔더니 통증의 정도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은 듯해 마음이 달라졌다. 마침 날이 밝아오는 하늘은 구름의 양이 적어 아침나절은 비가 참아줄 듯도 해 생각이 바뀌어 북면 달천계곡으로 들어가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가볼까 싶었다.
원이대로로 진출해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외감리 앞에서 내렸다. 보름께 전 장맛비 틈새 외감 마을 뒤 수로에서 걷어간 돌나물로는 물김치를 담가 삭혀 잘 먹고 있는 중이다. 동구 밖에서 남해고속도로가 창원터널 입구로 들면서 세워진 높다란 교각을 지나 달천계곡으로 드니 날이 훤히 밝아왔다. 도롯가 산소 앞에는 한 할머니가 무덤 가장자리 들깨 이랑 김을 매주었다.
주차장을 지나다 서울 아들네들이 걱정할까 봐 창원은 비가 적게 내렸고 그리 덥지도 않아 지낼만하다는 문자를 남겼다. 오토캠핑장에는 궂은 날씨에도 텐트 속에서 밤을 보낸 이들도 보였다. 미수 허목 달천동 유허지 빗돌을 지니니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장마철 수량이 불어나 흐르는 우리 지역 청정 계류로 엊그제 용추계곡에서 봤던 폭포수와 다른 분위기였다.
계류를 건너는 다리 부근에 세워진 정자와 전망대를 지나 나무 평상에 앉아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냇물을 바라봤다. 바윗돌을 비집고 휘감아 흐르는 물의 규모에서 그 웅장함을 견줄 수 없겠지만 해인사 들머리 솔숲길 홍류동을 연상해 봤다. 당시 최치원은 홍류동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속세에서 들려오는 혼탁한 소리를 막아준 방음벽으로 여기고 감사해하지 않았던가.
평상에 양말을 벗어두고 물살이 제법 센 냇물로 내려가 두 발을 벌려 중심을 잡고 버텨 서 있었다. 바윗돌이 내뿜는 지자기와 폭포수가 튕기는 음이온을 온몸으로 받았다. 한동안 냇물 가운데 서 있다가 바깥으로 나와 신발을 챙겨 신고 임도를 따라 걸었다. 길섶에서 잎줄기 세력을 불려 키워가는 물봉선이 피운 꽃송이를 하나 찾아냈다. 비가 그쳐 배추흰나비는 여러 마리가 날았다.
약수터와 잣나무 삼림욕장으로 가는 길을 비켜 함안 경계 고개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인부들의 예초 작업으로 길섶 풀이 정리되어 바짓단이 젖지 않아 좋았다. 칠원 산정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이르기까지 멱이 잘리지 않고 남은 원추리꽃과 응달 수풀에 가려 핀 산수국꽃을 만났다. 고갯마루 쉼터에는 조경용으로 심어 가꾼 듯한 개미취는 망울을 달아 꽃이 피기 시작했다.
고갯마루 갈림길 몇 개 선택지 가운데 무난하고 안전한 길인 임도를 따라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천주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을 비켜 천태샘 약수터에서 천주암으로 내려섰다. 아까 들어섰던 달천계곡으로 나가기보다 지름길로 하산한 셈이었다. 천주암 아래 정류소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중앙동 오거리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인근 대형 할인매장을 찾아가 커피믹스를 샀다.
용호동 상가에서 용지호수를 향해 가 호숫가 둘레길을 걸었다. 호수 수면에는 수련 꽃봉오리가 보이고 가장자리는 부처꽃이 화사했다. 가늘게 줄기를 세운 부들도 핫도그와 같은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손에 든 커피믹스는 용지호수 작은 어울림도서관을 찾아 사서에서 안겼다. 내가 그간 도서관을 찾아 시간을 보낼 때 사서가 몇 차례 타 준 커피를 되갚았더니 마음이 가벼웠다. 23.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