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밀라노시의 줄리아노 피사피아(Giuliano Pisapia) 시장은 피아죠(Piaggio) 사의 Mp3 스쿠터를 타고 밀라노 시내를 누볐다. 밀라노의 랜드마크인 두오모 성당 앞에서 출발한 그는 상습 교통체증 구간이었던 밀라노 도심지를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서 밀라노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피사피아 시장의 스쿠터 탑승 모습. <출처: 일간지 『일조르노(ilgiorno)』 홈페이지>
스쿠터 셰어링(Scooter Sharing)은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에니(ENI) 사에서 운영하는 카 셰어링업체 엔조이(Enjoy)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현지 언론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에니 사는 밀라노에서 시작한 카 셰어링의 인기가 기대 이상으로 확산되고, 독일을 비롯한 외국기업의 셰어링 사업 시장 진출이 활발해지자, 환경을 생각하는 개념 소비자에게까지 서비스의 폭을 넓히기 위해 스쿠터 셰어링 도입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최근 새로운 소비모델과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는 공유경제는 생산된 제품을 여러 명이 공유해 사용하는 ‘협력소비’에 근간을 둔 경제 방식이다. 2008년 미국의 하버드대학 로스쿨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가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공유경제는 산업화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주를 이루던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주창되었는데, 모든 물품과 생산설비, 서비스 등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서로 빌려 쓰는 경제활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공유경제가 이익창출을 위한 경제활동의 개념을 넘어 최근에는 경기침체와 환경오염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으로까지 개념이 확대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활동을 위한 도구로서의 차를 ‘셰어링’이란 사회운동과 결합시킨 카 셰어링은 유럽 주요 도시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단시간 내에 서비스로 안착됐다.
환경 단체 레가암비엔떼가 '스모그와 교통정체로부터 콜로세움을 살려내자'는 취지로 'No somg' 배너를 걸고 집회를 하고 있다.(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2013.1.31)
밀라노시는 환경 단체 레가암비엔떼(Legambiente)와 함께 2001년부터 카 셰어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차량 3대와 차고지 1곳을 확보하는 등 초기 인프라 부족과 미비한 홍보로 카 셰어링 인식 확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카 셰어링은 초기에 공유경제의 의미보다 셀프 렌터카의 의미로 더욱 강하게 인식됐다. 시내의 부족한 주차공간을 강조하며 시내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이용할 것을 권장하는 식의 홍보로, 매년 조금씩 성장하여 2005년에는 차고지 13곳을 확보한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다.
카 셰어링이 밀라노 교통공사(ATM) 독점으로 운영되며 시장이 더 이상 확장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쯤, 유럽의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서의 공유경제가 확산됐고, 독일 및 유럽 주요 도시에서의 카 셰어링이 성공함에 따라 밀라노시는 카 셰어링 서비스를 민간 기업에 오픈했다. 그 결과 독일 다임러 그룹의 카투고(Car2Go), 이탈리아 에니 사의 엔조이 등이 시장에 진출하여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카 셰어링 서비스를 출시했고 사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밀라노 카 셰어링 차량, 카투고와 엔조이. <출처: 카투고 사, 엔조이 사 홈페이지>
엔조이는 이탈리아 국민차인 피아트(Fiat)의 500 모델을 기본 차량으로 하고 있으며, 홈페이지 혹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사용 차량의 예약이 가능하다. 별도의 가입비 없이 서비스 사용에 따른 금액만 지급하면 되고, 간편한 조작법과 1Km당 25센트라는 저렴한 요금으로 청년들과 비즈니스맨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며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밀라노 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차량은 정해진 곳에서만 차량 반납이 가능하여 목적지와 반납지 간 거리가 멀 경우 실용성이 떨어졌지만, 엔조이의 차량은 별도의 반납지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목적지에서 차량을 반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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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조이 사의 셰어링 앱. <출처: 엔조이 사 홈페이지> 2 피아죠 MP3 스쿠터와 헬멧. <출처: 제너럴 밀스(General Mills) 홈페이지> |
엔조이 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계 최초로 스쿠터 셰어링이라는 서비스를 도입해, 이를 기존의 카 셰어링 개념에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 카 셰어링 서비스로 구축된 인프라에 스쿠터를 추가하고, 서비스 사용 가능 연령을 21세 이상, 스쿠터 운행이 가능한 면허증 소지자에게 대여함으로써 기존 승용차 고객보다 서비스 이용 가능 고객의 폭을 넓혔다.
또한, 안전을 위해 스쿠터와 헬멧 동시 대여를 가능하게 했으며, 위생을 위해 헬멧 대여 시 1회용 머리덮개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였다. 엔조이 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스쿠터 셰어링에 이용되는 피아죠의 MP3 모델 스쿠터는 기한을 두고 점차 전기 스쿠터로 교체할 예정이라, 환경을 생각하는 공유경제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니 사는 이탈리아 최대 기업으로 가스 및 석유 등 에너지개발 전문기업이다. 포천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 드는 에너지 기업인만큼 신재생에너지와 환경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쿠터 셰어링 협력업체 로고. <출처: 에니 사 홈페이지>
이러한 사업의 연장선으로 밀라노 카 셰어링 서비스 사업에 진출한 에니 사는 엔조이 서비스 개시 후 모기업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경쟁 업체보다 더욱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유럽 중에서도 주유비가 높기로 소문난 이탈리아에서, 1Km당 25센트의 카 셰어링과 1Km당 35센트의 스쿠터 셰어링의 서비스가 가능한 것도 바로 에니 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애니 사의 피아트 500 셰어링.
그러나 이러한 에니 사의 성공 뒤에는 조력자들의 도움이 컸다. 엔조이의 초기 카 셰어링 서비스에는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가 역대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인 500 클레식과 500L을 제공해 셰어링 차의 품격을 높이며, 사람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좋아하는 차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또 스쿠터 셰어링 서비스에는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제조회사로 불리는 피아죠 사가 직접 스쿠터를 공급하여 가성비를 넘어 최고의 제품들로 라인업을 해 사용자의 만족도를 극대화시켰다. 이처럼 사용자의 만족을 위해 이탈리아 최고의 기업들이 함께 뭉친 것이다.
밀라노는 대기오염 수치를 조절하기 위해 종종 시내 차량 운행을 통제할 정도로, 대기오염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밀라노 도심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1일 기준 5유로(한화 약 6,500원)의 도시교통세(Area C) 를 내야 하며,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등급을 정해 통행을 철저히 규제한다.
따라서 일찍이 카 셰어링에 관심을 가지고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보급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일단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은 만족도가 높았으나 효과적인 서비스망 구축을 위해서는 초기 대대적인 지원은 물론, 광고를 통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밀라노시는 시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보급 확대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민간 기업에 서비스를 오픈했고, 이탈리아 최대 기업인 에니 사와의 협력을 통해 밀라노시에 가장 적합한 셰어링 서비스 제공에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지자체의 요구에 대기업이 호응하여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대기업은 이익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를 누리고, 시민들은 보다 좋은 서비스로 가치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미지가 곧 브랜드 가치와 직결되는 현실에서, 에니 사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회적 서비스에 참여함으로써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가치 실현을 이루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브랜드 가치 상승까지 얻은 것이다.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전체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삭감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따른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가전제품을 포함한 전 제품에 에너지 효율 등급 표기,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등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만 봐도 유럽인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환경 관련 정책들은 대개 정부 주도형 정책이었지만, 스쿠터 셰어링은 기업 주도형 환경 사업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환경을 보호하며 새로운 형태의 소비모델을 보여주는 공유경제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기업 주도형 사업인 엔조이의 스쿠터 셰어링 <출처: 엔조이 사 홈페이지>
환경 상품은 새로운 기술 혹은 초기 인프라 구축의 문제로, 공적 자금이나 대기업의 초기 투자 없이는 성공적으로 상품을 개발하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밀라노시 역시 한계를 느끼고 민간 기업을 유치하여 서비스 보급 확대를 꾀했고, 이탈리아 국영 기업 에니 사가 이에 부응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어떻게 지자체와 대기업이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바로 환경이 인류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시 산업 발달에 비례하여 환경오염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더 이상의 오염을 막고 좀 더 나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밀접형 환경 상품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대기업 주도하에 지자체와 연계한 서비스 공급으로 보다 효과적인 환경 상품을 안착시킨 이탈리아의 사례를 참조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환경 상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016 한국이 열광할 12가지 트렌드' 시리즈 보기 (29/36)
- 출처
- 2016 한국이 열광할 12가지 트렌드
- 전 세계 85개국에 흩어진 KOTRA의 주재원들은 2015년 한 해 지구촌 곳곳에서 새롭게 떠오른 시장과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던 상품과 서비스, 기발한 소비자들을 목격하고 취재한 정보를 담은 책. 주재원들이 직접 각 나라의 시장에서 뜨고 지는 상품을 접하며 그 나라 소비자들과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세계의 지금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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