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관 문집용 작품

글님문학 작품 (가나다순) 나  무 김정희  내가 사는 집 뒷산에 아름드리 나무가 있습니다. 오며 가며 기웃거리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도 가늠해 보곤 했습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큰 나무 가운데쯤 구멍이 보였습니다. 껍질이 벗겨지고 거무튀튀하게 변한 구멍을 보며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나무들도 상처 천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게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살아가라며 나의 약한 마음을 많이 보듬어 주었습니다. 이 계절에 나는 나뭇잎을 봅니다. 철따라 옷 입고 쉬임없이 변화하며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잎사귀를 봅니다. 도란도란 속삭이는 잎사귀 소리를 들으며 다정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기억나게 합니다. 봄날의 싱그러움도, 여름철의 푸르름도, 가을의 숙연함도, 겨울의 텅 빈 공간도 같이 생각나게 합니다. 자신을 제때에 맞춰가면서 살아가면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라고 나뭇잎은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 순간에 나는 나무 뿌리도 보았습니다. 큰 뿌리가 나무를 휘감고 땅에 굳세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뻗은 뿌리가 땅 속의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리고 줄기에서 수액으로 변하여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땅에 대해 감사하고 물에 대해 감사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뿌리는 나를 향해 꿈틀꿈틀 움직이며 자신 있게 저를 보여 주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나무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면서도 서로 방해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 속에서 숲이 이루어지고 새들의 안식처도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조화로움 속에서 내 마음이 얼마나 포근하든지 졸음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작다고 크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를 용납하며 나무처럼 올곧게 잘 서있는 것이 잘 살아 가는 것이라고 나무는 나에게 숲을 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 방의 바퀴벌레                         박재근 내 방안에 있다 내 방안에 그의 세계를 꾸미며 한발 한발 내게 다가왔다 바퀴벌레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문득 그 작은 것에게 공포를 느꼈다 우리는 너무나 작은 것에게 모든 걸 빼앗기며 살았고 나는 그 작은 것 또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바퀴벌레가 입은 갑옷 위에 내 검은 두 눈동자가 비추어진다 나는 애써 놀라지 않았다 바퀴벌레는 고래의 숨쉬기처럼 내 앞에 나타나 얼마간 거리를 두고 서둘러 사라진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따라나서지만 아무도 저녁이 오기 전에는 새벽을 건널 수 없다 다시금 돌아와 바퀴벌레가 들어가버린 장농 밑으로 잃어버린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다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언제나 그가 있다. 아벨리아에게                                  박종경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지난 날을 반추해야 하는 계절의 끝자락  아벨리아여,  너는 누굴 맞으려 그토록 끊임없이  매혹의 향기를 내뿜느냐?  박각시나방이 부럽구나!  이제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숫딱새도 파르르 떨며 쉰 소리로 우는 데………  나는 네가 있어 이 갈병을 견디나 보다  만만한 내 누님 같은 아베리아여 자동차                  소 영 섭 먹물처럼 시커먼 아스팔트길을 미친 듯 핥고 간다 성큼성큼 다가와 널름널름 집어 삼키곤 그대로 깔기고 가버린다 때론 혼자서 때론 떼로 산허리를 휘감아 돌고 마을은 내팽개치며 강은 날듯 뛰어넘어 그렇게 사라진다 괴물이 모래성                             안정희 가슴에 모래성 하나있다 부서질까 두려워 조심조심 쌓아올린 작은 모래성 먼 바다 이야기 전해줄 작은 조가비랑 파도에 다듬어진 조약돌도 넣어서 정성스레 만든 예쁜 모래성 때때로 저 멀리 가슴 밑바닥에서 거센 포말이 밀려와 그것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알싸한 공허만이 가슴속을 채워도 주섬주섬 아픔을.... 갈래갈래 흩어진 마음을 모아 또 다시 쌓아올릴 안타까운 상념속의 금빛 모래성 자갯골에서                            이점순 산허리를 휘돌아 온 세상을 감싸 안을 듯 넌 내 가슴에 오려므나! 살며시 피어올라 아무것도 볼 수없는 세상 오직 너 뿐이로구나! 피웠다 사라지고 흔적 없는 넌 저 멀리 달아나고 손을 펼치고 팔을 내밀어도 아!  내 마음에 담을 것은 마음속 비경일 뿐~ 자갯골의 물 흐르는 우렁찬 소리일 뿐~ 이맘 때 오시는 임은                                   이홍주 전어 하나 훔쳐 물은 고양이가 사뿐한 걸음으로 꼬리를 감춘 들국화 향기처럼 검게 그을린 얼굴 부끄러워 노랑 수건을 두른 해바라기 손을 잡고 오시는 임은 따가운 햇살에 잘 버무려 담가 두었던 농익은 포도주 항아리를 이고서 처마 끝 풍경을 흔들어 청량한 소리로 주인을 부르십니다. 산적(散炙)                                   鄭文朝  한가지 재료만을 버무리면 어쩐다고  복잡시리 그리도 덕지덕지 넣어서  새악시 서투른 손이 저물도록 노대네  부침은 늘지 않고 소쿠리는 홀홀한데  오늘따라 시엄씨 시누이는 손도 빨라  반나절 움쩍도 않고 간보기만 바쁘네  아서라 미운 눈초리 보낸들 무엇하리  괜시리 매운맛 묻히어 지져내면  젖무덤 더듬어대는 서방 손만 매워라  마음부터 달려가는 친정집에 들어서면  우리엄니 정성이 곳곳에서 묻어나도  지짐은 아니 먹으리 나물이면 족하네. 詩人의 마음                           최신일 요즈음 낙엽이 뒹구는 시골길에 빠알간 코스모스 다가오는 추억의 계절이라 그런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마음 한켠에 허전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한번쯤 내가 詩人이 되어 몇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비록 서툴긴 해도 왠지 모를 허전함보다는 오곡백과 휘어지는 충만함과 풍요로움 속에서 오늘도 한 페이지의 시집을 엮어 나가기 위해 초가을의 시상을 두들기게 된다. 수숫대  최춘자 산그림자 누운 저너머 수숫대가 있다 살점 하나 없는 어설픈 몸짓 그리움에 목말라 산허리 걸친 해를 부른다 여름내내 시퍼런 칼날같은 성질 아직도 남아 존재함을 온몸으로 비벼대며 울부짓는다 붉은 눈동자 산허리 해를 부른다 길게 누운 산그림자 여유를 닮아가리 저리 부대끼며 저만 고달픈 것을, 아직 수숫대와 마주하고 있다. 冊을 생각하는 마음 김을림 나는 책을 참 좋아한다. 오래된 책에서 피어나는 눅눅한 냄새도 좋고, 새로운 책에서 따끈따끈하게 풍기는 잉크냄새도 좋다. 활자로 인쇄된 책을 보면 무조건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빛바래고 오래된 책이 많이 있다. 남편과 내가 연애시절 주고받았던 시집에서부터 잡지, 계간지, 월간지, 에세이, 소설, 역사책,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보았던 아동문학잡지에 이르기까지 책들이 방마다 가득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필요한 사람한테 줄까도 생각했지만 손때문은 책을 준다는 것이 책을 배신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만 두었다. 남들이 보면 고리타분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책을 모우는 것이 취미이며, 농익은 오래된 벗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집안 곳곳에 있는 책은 대부분 나를 심심하게하지 않으며 마음 상하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대로 지켜봐주고 갈등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내손길이 한번쯤은 스쳐갔지만 다 읽은 책도 있고, 읽다가만 책도 수두룩하다. 물론 책을 정리하다보면 불필요한 책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책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버리는 것은 오래된 벗을 걷어차는 기분이 든다. 돈 많은 부자보다는 정신적으로 큰 부자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 두어야 한다. 노후에 외롭지 않게 하려면 정신이 건강하고 맑아야하지 않을까? 남의 집을 방문 했을 때도 장신구보다는 서재에 책이 가득하면 부럽고 샘이 난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지금에 나이가 되었어도 궁금한 것이 많고, 모르는 것투성이다. 나의 독서법은 책을 한권씩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을 한꺼번에 놓고 재미있는 부분부터 찾아 읽는다. 밑줄도 그어가며 읽다가 재미없으면 얼른 덮어버린다. 나는 입시를 치루는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부러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된다. 빌려보는 책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스스로 사서 모우는 편이다. 등단이후에는 문인협회에서 간간이 시집과 에세이 문학이론서까지 덤으로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고를 때 제목을 보고 차례와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첫 장을 넘긴다. 저자는 누구며 생존했는가, 출판사와 년도를 구분하다 보면 묘한 저자에 대한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어떤 사람일까? 본문을 읽으면서 공감 가는 글에 때로는 감상문을 쓰기도하고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고맙다는 답글도 오지만 대부분은 나 혼자서 보내는 연서가 더 많은 편이다. 책을 읽을 때 나는 저자와 똑같은 제목을 가지고 생각해보고 써보기도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기에 따라해 보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한 줄고 못쓴다. 그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문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막연한 호기심이 지금에 나를 존재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지금도 나는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외롭고 고독하다. 외롭고 고독한 삶을 자청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접고 편안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이 마음의 병인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 책을 읽으면 그 병이 좀 차도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벗 삼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수강생 수기> 나와 광양평생문학관 문예창작반 안정희  적지 않은 나이에 무엇을 배운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 될 줄이야!  항상 배움에의 열망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 물 흐르듯이 세월에 나이를 맡기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안타까운 일상들을 반복하고 있던 어느 날, 문예창작 반 반장이자 동아리 회장이신 정 문조님의 평생교육관 가입 권유는 내게 설렘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광양에 와 산지 16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대부분의 외지인이 그러하듯이 진정으로 광양시민으로서의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시민들의 배움터인 교육관이 있기나 한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관심조차 없었는데 지인의 문병 차 들른 병원에서 환자로 만난 반장님의 소개로 광영에 위치한 평생교육관과 개설강좌 등을 소개받았고 올해1월 처음으로 이곳을 찾게 되었다.  접수사무실에서 머뭇거리며 접수하는, 나와 비슷한 이들을 성의껏 안내하는 분들에게서 친절함을 느꼈고, 개강식 날 각 강좌별 강사진의 훌륭하신 면면들과 배움의 의지를 갖고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의 열정적인 눈빛에서도 감동을 받았지만, 그냥 지나쳐 다니던 이곳 광영에 이렇게 전남도내 최고의 좋은 시설을 갖춘 배움의 전당이 우뚝 서 시민들에게 많은 공간들을 제공하는 것에 처음으로 광양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껴보기도 했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는 내가 제일 기쁘게 기다리는 시간 ,문예창작 반 수업이 있는 날이다. 삼십대 초반부터 오십대 중반까지 폭넓은 나이대의 문예창작 반 학생들이 각자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모여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박행신 선생님의 열강에 흠뻑 젖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매번 마쳐야할 시간을 넘기곤 한다.  옆 교실에선 외국어 강좌가 있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고 늦은 시간에 각기 다른 강좌들을 듣느라 강의실마다 배움에의 열기가 후끈하다.  이렇게 좋은시설이 가까운 곳에 있어 이제라도 글쓰기에의 열정을 만끽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각계각층의 좋은 분들을 알게 되어 더욱 기쁘다.  문예 창작반외에도 수많은 강좌들이 요일별 시간별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이 좋은 시설에서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정서함양과 배움에의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육관 운영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