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주의 세상이야기]
축복일까? 저주일까?
1885년, 제물포로 들어 왔던 미국의 선교사가 서울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였으나 초기에는 괄목할만한 선교의 결실이 없었다. 장로교가 평양에 선교본부를 세우고 선천과 재령에 지부를 세웠다.널다리교회를 장댓재로 옮겨 장대현교회를 그리고 장로회신학교를 세웠다. 감리교는 남산현교회를 중심으로 관서지역의 전도활동에 주력하여 한국 기독교 역사 부흥의 장을 열어간다. 더우기 숭실학교와 더불어 장로회 신학교는 한국기독교의 영적 요람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만열의 <북한교회사>에 따르면 당시 관서지역 장로교회의 경우 전국 세례 교인의 80 퍼센트에 다다른다. 기독교가 들어가면 마을이 발전하고 문명의 혜택도 늘어나 인구 3천을 헤아리던 용천과 선천의 경우 학교와 고아원이 세위지며 인근 지역의 인구 이동까지 가져와 10년을 넘기기전 경천동지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어졌던 선천 사람들이 피난하여 한국 YMCA 운동을 만들고, 조만식장로의 영향을 이어받은 실향민 장사군들이 피폐된 한국경제를 일으킨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이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던 1984년. 한국 기독교 실업인회원 6500개 기업중 95 퍼센트가 장로교인이었고 85 퍼센트가 이북 출신이었다.
부흥의 열정은 1939년, 이성봉목사가 집회를 열었던 동평양 동대원교회등으로 요원의 불길로 한반도 전체로 누룩같이 번져 나갔다. 피난 시절의 부산은 말할 것도 없고 대구지역의 복음화가 이북 출신 성도들의 몫일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이북에서 내려와 저들이 일터를 중심으로 살아 온 결과 시장 가까운 곳에 교회를 지음으로 교회 중심의 성장 골격이 이루어졌다. 피 땀 흘려 번 돈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전도하고 신학생들을 양성한 결과 글자 그대로 북한을 흔들어 이들을 통하여 남한을 번성케 하신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실향민들이 세운 교회는 교회 성장의 이정표가 된 반면 교회당이 교회가 되어 버린 교회론의 본질적 변질도 가져 왔다. 화려한 교회, 좀 더 큰 교회에 대한 열망이 주님에 대한 헌신으로 잘못 인식된 것이다. 한국교회에 주님에 대한 열정과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기독교 신앙을 지속시킨 새벽 제단이 이북 출신 신앙인으로 부터 심겨진 공이라면 성전 위주의 삶이 경쟁적으로 변형되어 이북 출신 교회들의 대형화 바람이 소모적인 양상으로 발전한 것은 기대하지 못한 부작용이라고 할 것이다.
사학의 90 퍼센트 이상을 기독교가 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키워 나갔다. 재계와 교육계 그리고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함태영부통령,백낙준박사,정일영의원, 황성수박사, 김영삼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목사와 장로등 수 많은 기독교인이 정계의 핵심으로 자리 매김 하였으나 이들은 삼일 독립운동을 통하여 여명기의 한국사회의 등불과 소금 역할을 해온 기독교 지도자들의 영성을 뒤따르지 못하였다. 가난했을 때의 기독교가 민족의 소망이 되어 준 것과는 달리 누린자, 기득권 층의 수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된 기독교의 모습으로 반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성령운동의 본산으로 성장한 순복음이나 광림교회와 충현교회등이 감리교와 장로교의 최고 영예를 얻었으면서도 세습과 독선적 족벌 경영으로 대형교회의 장점을 대부분 잠식하고 말았다.
소금이 없어 세상에 소금을 빌려야 할판
이와같이 교단과 교파를 막라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해 온 한국교회는 과거 영국 교회가 교회당에 주님을 갇우어 놓고 영적 부흥의 황금 같은 추수기를 놓쳐 버렸던 전철을 밟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교회당 위주의 선교사역에 목을 매달고 있는 한인 선교 현장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사유화된 교회 지도자들의 치매증세는 치유불능의 한계 상황을 노출하고 있다. 미디어와 인공위성을 동원한 공격적 경영 마인드가 21세기를 시작하는 신개념의 한국교회 철학이 되었다. 아흔 아홉을 가진 부자가 이웃집의 한 마리 양을 제 것으로 취하여도 이를 나무라던 나단은 보이지 않는다. 에클레시아의 이상과 본령을 회복해야 할 성서속의 교회론은 이제 고전의 낡아빠진 책장으로 남아 우리를 질식케 한다.
대형교회의 목회자는 백성을 위해 무릎꿇고울어줄 지도자가 되기에는 호텔 식단에 길들여졌고 가가호호 방문하며 시린 손 잔등을 비벼가며 인격과 사랑의 전령으로 존중받던 목회자는 TV속에서나 만날 인기 스타의 전형이 되었다. 예수 공동체를 지향하며 작은 교회 운동을 벌리던 목자들의 탄식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영혼을 위한 목마른 이상으로만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성경 말씀의 이상을 향한 교회 갱생이 더 이상 어렵다면 한국교회의 지형과 철학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도행전 29장이 새로이 써야 할 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어라, 소금이어라”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의 도덕 불감증은 이제 기대할 것없는 부자 목사님의 면피처럼 성장 일변도의 그릇된 교회관으로 무디어진 편이다. 소금과 빛이 되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릴 짓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기독교가 되었다.
세상의 향한 교회당의 조명을 낮추어라.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살륙과 부정이 밖으로 새어 보일까 걱정이다. 소금이 지나치면 갑상선 항진증이 걸리니 아예 소금같은 짓은 하지 말지어다?
교회당과 목사가 우상단지가 된 한국교회
평양에 폭탄 44만개가 떨어졌을 때 40만의 평양 시민이 폭탄 하나씩 안고 죽었다. 한국교회의 자랑이었던 평양 장대현교회,남산현교회, 산정현교회가 미군의 폭탄에 흔적조차 사라졌다. 평양신학, 성화신학이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찌기 남하한 기독교인들의 남은 가족들을 자강도와 양강도, 함경도 등지에 분산 유배를 시켰다. 김일성의 충동 감정으로 피난 가지 못한 가족들과 믿음의 그루터기들을 평양이 쑥대 밭이 되기 전 분산시켜 놓으셨는지도 모른다.
6.25를 통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깨닫고 있을까?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진정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나 할까?
간 이식 수술을 통해 거듭난 명망있는 목회자가 오사카에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선교적 차원에서 열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자못 컸다. 북한에 대한 충성심에 목을 매는 조총련을 복음화시켜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한 전략이라도 세울 줄 알았다. 북한에 자영업이나 기업 형태로 들어가 사업을 하는 이들의 95퍼센트가 조총련이기 때문이다. 조총련과 중국 조교들의 복음화가 북한의 복음화를 앞 당기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이웃 교회의 성도들을 자기 교회로 수평이동시켜 오사카의 한국교회를 천하 통일 시킨 모래 장사판 흥행만 벌리고 말았다.
목사라는 직업이 세상적으로 이름 값을 하게 되다보니 너도나도 목사판이다. 그것도 모잘라 명예 신학박사는 필요조건이 되었다. 관자노리에 닭벼슬 목회박 박사가 지천에 깔려있다. 그야말로 목사라는 직업이 신개념의 우상으로 둔갑하였다. 교회는 간 곳없고 교회당만 남은 사막에서 황폐한 교회당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복 신앙으로 미궁을 헤메고 있다.
교회당과 목사가 우상이 되었을 때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고 광야의 소리가 들려왔다.
주님의 나라의 회복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그리운 때이다.
“주여, 여기가 좋아오니 이곳에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아마 2천년 전의 주님이 우리 한국교회를 보셧더면 어찌하셨을까?
“아니다, 한국이 좋으니 교회당에 멍석깔고 복채나 받을 것이다.
애써 십자가를 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구나”
양국주(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국제대표)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신문-업코리아(upkorea.net)] 출처:경향닷컴/업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