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조선문단>(1936, 1)
기旗는 흔히 '국가'를 표상한다. 그러나 이 시의 깃발은 특정 국가의 국기가 아니라 관념상의 '국가'라는 개념을 표상할 뿐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이상을 추구하고 이상국理想國의 실현을 동경해왔다. 그러나 지구상의 국가들은 많은 문제점을 간직한 채 존재할 뿐 아직 염원하는 이상은 실현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유치환은 이 시에서 근본적으로 국가 개념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다. 이것은 독일의 철학기 니체 F.W. Nietzsche의 허무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1920~30년대에 유행하던 아나키즘anarchism(무정부주의)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은 자기 한계를 초탈하여 이상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이와같은 인간의 허무적이고 비극적인 의지를 그림으로써 유치환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철학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