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이론의 장방정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우주가 '열린'우주이거나 '닫힌'우주이거 나 상관없이, 과거 초기 우주의 모습은 거의 완벽한 '편평'우주에 다가가는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강력히 분리되는 대통일장 시기에 우주는 대략 10-52의 오차 범위 내 에서 '편평'우주가 된다. 이는 만약에 신(神)이 이 시기에 우주를 창조했다면 모든 물리상수들을 10-52 의 오차한계만 허용하는 '정밀성'을 갖고 작업을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초기조건이다. 신이 과연 소금을 10-52g더 쳐졌다고 해서 국의 맛이 확 변해 버리는 그런 우주를 선호했을까?
2) 우주지평선 문제(the horizon problem)
현재 관측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대략 1백억 광년, 우주의 나이는 대략 1백-2백억 년으로 추산된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나이가 10만년 정도일 때에 현재 우주의 크기를 계산해 보면 대략 1천 만년 정도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우주탄생 후 10만년간 달린 빛의 최대 주파거리는 10만 광년보다 클 수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배경복사선은 방향에 상관없이 거의 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빛이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서 발생한 이 복사선이 어떻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온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바로 우주 지평선 문제다.
3) 자기 단극자 문제(the monopole problem)
자기 단극자란 자석의 N극 또는 S극만 있는 반쪽자석을 말한다. 우주 상전이 현상을 피할 수 없는 귀결의 하나가 바로 이 자기단극자의 대량 발생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 지구상에서 실험 관측된 자기 단극자는 한 개로 없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양성자만큼이나 많이 존재해야 한 다는 자기 단극자들이, 지금 어디로 어떻게 사라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바로 자기 단극자 문제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 인플레이션 우주론의 등장
빅뱅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미국의 구스(Guth)가 내놓은 인플레이션(inflation)우주론이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우주 의 값이 많이 떨어졌다는 뜻이 아니고 태초에 우주가 갑자기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주가 처음에는 천천히 커지다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부쩍 더 빨리 커진 후 다시 느린 팽창 속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앞서 아인슈타인이 도입했던 우주 상수는 은하와 은하를 서로 밀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원인 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동안 아인슈타인의 실수로 여겨졌던 우주상수는 오늘에 이르러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이러한 난제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론에 따르면, 유일한 힘이었던 초강력이 오늘날 자연계의 기본적인 4힘, 즉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쪼개지면서 인플레이션이의 동력을 제공하였다. 이 과정은 창조의 특이점이 형성된 직후 10-34초가 경과할 때마다 두 배의 크기로 불어났다는 것이다. 예사롭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는 10-33초 후에는 우주가 처 음 크기의 210배가됨을 의미한다. 또 10-32초 후 에는 처음의 2100배 크기가 된다. 눈 한번 깜박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동안 양성자의 10-36정도의 크기를 가진 우주가 직경 10CM의 과일 크기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은 우주초기, 즉 우주가 극히 작은 세계였을 때 일어나서, 우주를 오늘날과 같은 차원 을 갖춘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즉 당시 우주는 아주 작고 균일한 상태여서 어떠한 불규칙성도 여기에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 바로 이 때 인플레이션을 거쳐 오늘날의 우주가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우주는 균일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때 공간의 팽창속도는 아인슈타인의 속도의 극한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는다.(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을 통해 움직이는 어떤 물체도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인플레이션에 의한 팽창은 빛의 속도를 능가한다. 우주의 팽창이란 공간 그 자체가 뻗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물질(혹은 에너지)과 마찬가지로 공간이란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고 그것이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쉼없이 팽창해오고 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 이론으로 앞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주어진 크기의 우주지평선은 원래 크기의 1028이상으로 자란다. 여기서 우주지평선이란 주어진 우주나이에 빛이 주파할 수 있는, 즉 물질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최대거리를 말한다. 이러한 대규모 팽창을 통해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곡선이 '편평'하게 퍼지는, 곡선의 직선화 현상이다. 예를 들면 50원짜리 동전의 굽은 테두리가, 그 동전이 지구만큼 커졌을 때는 수평선과 같은 직선으로 보이게 됨을 상기하자.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이 제공하는 초기 '편평' 우주에 대한 해답이다.
우주지평선 문제는 더 쉽게 풀린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현재 관측되는 우주란 인플레이션을 통하여 원래 크기의 1028배자란 '한 개'의 우주지평선 이내의 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같은' 우주 지평선 이내의 지역에서 발생된 우주배경복사선의 온도가 방향에 상관없이 거의 같은 온도를 지닌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마지막으로 상전이를 통해 발생된 자기 단극자는 주어진 우주지평선 이내에 한 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상기하자. 그러므로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 내에는(원래 한 개의 우주지평선이 1028배로 자란 지역)기껏해야 한 개의 자기 단극자가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1백억 광년 크기의 우주에 한 밖에 없는 자기 단극자를 지금 지구상의 조그만 실험실에서 포착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이것이 '사라진' 자기 단극자들의 행방에 대한 인플레이션 이론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