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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단 정 지 옥회장님 먼 -길 가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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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 오후 회장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바쁜지 오늘 성내교회에서 발인(영결식)예배를 드리는 영전에서 회장님의 삶을 잠시 돌아보았습니다.
회장님께서 제 3의 인생을 끝으로 삶의 여정을 마감하셨다면 제 1의 인생은 청소년기에 배움과 성장의 시기셨으며 제 2의 인생은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 일선에서 스승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제 3의 인생은 오늘까지 교회에서는 시무장노님으로, 사회에서는 전통문화창달을 위하여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에서 한결같이 회장님은 봉사의 현장에 계셨습니다.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고향에 내려와 풍기고등학교 교사로서10년, 교장선생님으로 15년... 이른 감은 있었지만 후임교사에게 자리를 물려주시고 퇴임하신 후 영풍군, 영주시 문화원장으로 15년,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장으로 12년, 그 직책으로 보면 화려할지 모르지만 보통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서 힘든 일을 맡아주셨습니다.
그래서 회장님의 호칭이 어려웠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 부르리까? 원장님으로 부르리까? 회장님으로 부르리까?
제가 고등학교 입학하고 1학년 담임을 맡아 주셔서 편하게 선생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일터 가 있는 곳에는 찾아가셨고 그 곳에서 저를 자주 불러 주셨으며 제가 일하는 곳에는 직접 오셔서 자문해 주시고 격해 주셨기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발인식 자리가 저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기도 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의 뜻이었기에 예배의식으로 간소하게 진행되었지만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이 허전했습니다.
굵고 알차게 살아오신 발자국을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컷습니다. 이 땅 곳곳에 선생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데, 선생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지난해 11월 대한광복단내에 노후건강을 관리하도록 게이트볼 구장을 준공하시던 날, 공교롭게 비가 내렸고 , 대회사를 하러 걸어 나가시는 모습이 불편해 보이셔서 걱정을 했는데 그 행사가 선생님께서 는 이승에서 마지막 흔적(痕迹)이 되었습니다. 그날이 이젠 쉴 터전으로 가라는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20일 전 중환자실에서 말씀은 못하셨지만 저를 바라보는 눈길은 고맙다는 표시였고 그 긴 투병생활에서도 늠름(凜凜)한 의지를 발견했습니다. 나의 영원한 선생님이시며 71년 동안 이 고장을 지켜주신 자랑스러운 풍기인이셨습니다.
죽음이 곧 새 생명의 시작이라는 선생님의 신앙을 일깨워 주셨고 참다운 삶을 실천하신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겠습니다. 큰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부족한 인간이기에 이 땅에서의 이별을 슬퍼할 수밖에 없는 유가족이 계십니다.
긴 고통의 터널을 함께 하셨던 사모님, 2남 1녀 자녀와 손자손녀들, 선생님의 자랑스러운 삶을 본받아 열심히 뒤를 이어 갈 것입니다.
때가 되면 저희도 선생님 곁으로 갈 것입니다.
소백산 아래 우리들, 늘 꿈틀거리며 열심히 살아 갈 것입니다.
부디 편히 가소서 영원한 안식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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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4일
애 제자 김 인 순 上
Sweet by and by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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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장선생님 영전에 깊이 머리숙여 弔意를 표합니다. 하느님 영전에서 길이 永眠하소서.
선생님의 門候가 每常 그리웁더니 召天소리에 가슴이 져며옵니다. 靈前에 업드려 弔意를 표합니다. 하나님곁에 永眠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