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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서울 태생
- 아이돌의 원조이자 80년대 만능 엔터테이너
- 포크 싱어송라이터, 청춘드라마의 단골 주연이었던 하이틴 스타
- 락, 발라드, 포크 등 폭 넓은 장르를 소화, 수많은 히트곡이 있음
[가족]
아버지는 영화배우 황해
(2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었고, 70년대 초반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제,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유명한 영화배우)
어머니는 가수 겸 영화배우였던 백설희
(봄날은 간다, 물새 우는 강언덕, 샌프란시스코 등의 노래를 불러 유명했고
2010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 공로상 수상, 2010년 고혈압으로 사망)
- 부모님의 영향으로 전영록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끼가 있었지만 부모는 오히려 연예인이 되는 것을 반대함
보통의 연예인 부모는 고생시키기 싫어서 반대를 한다는데, 오히려 자식이 연예인이 되어서
부모 망신을 시킬까봐 반대를 심하게 했다고함
-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다닐 때 술에 취해 학교 벤치에서 자고 있으면 지도교수가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데리고 가라고 했었는데, 아버지는 배우로서의 자존심에 자식이 흠집을 냈다고
생각해서 학교에 못가게 했고 중퇴를 하게됨
- 부모의 이름에 먹칠하기 싫어서 유명해진 뒤에도 대마초, 마약 등을 조심했었다고 함
-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연기자,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였기 때문에 평생을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DJ도 하고 MC도 했다고 함
부모는 못하는데 나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 데뷔 20년 후 윤시내씨와 같이 듀엣을 했었는데 그 방송을 보고나서 아버지가
‘이제 좀 가수 같다’라고 인정해줄 정도였다고 함
전 부인은 배우 이미영
미스해태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
친오빠가 코미디언 이창훈
전영록과 이창훈은 대학 동기,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2년간 연애 끝에 결혼 12년만에 이혼함
전영록이 비디오 대여점 사업을 하다가 많은 빚을 내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혼했고
이혼한 뒤 잠실의 아파트와 현금 등을 다 전처에게 주고 10평짜리 아파트에서 두 아이들과 살았음
이혼 뒤 돈을 모으려고 부산으로 공연을 다녔었는데 이 때 팬이었던 임주연과 재혼을 함
전처와 이혼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고 재혼시기, 16살의 나이차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음
장녀 전보람은 티아라의 멤버, 차녀 전우람은 디유닛에 출연했던 보컬
전보람 전우람은 이미영과의 딸이고 임주연과 재혼 후 두명의 아들이 있음
[데뷔]
- 1971년 기독교방송 ‘영 페스티벌’로 첫 방송을 탐
- 본격적인 활동은 1973년 MBC 드라마 ‘제 3교실’ 삽입곡 ‘편지’를 부르면서 가수로 데뷔
원래 노래만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영화를 하더라도 연기보다 연출을 하고 싶어했는데 아버지를 따라
MBC에 가게 됐고 이병훈 PD(허준, 대장금 연출)를 만나게 된 계기로 <제3교실>에 출연하게 됨
드라마 극중에서 <편지>를 불렀는데 지구레코드 사장이 보고 전속계약을 하자고 함
- 1975년 <내 마음의 풍차>로 주연 데뷔
아버지가 음악하는 걸 반대하셨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어서 영화에 삽입하려고 데모 테잎을 들고 갔음
얼굴을 보고 생긴게 돌아이 같은데 한번 출연해보라고 해서 첫 주연을 맡음
- 70년대 후반 연예인 대마초 파동이 있었을 때 아버지가 강제로 군대(최전방)를 보냈고
군시절 중 고참들이 노래를 많이 시켰는데 가요는 절대 안부르고 군기 잡고 군가만 불렀었음
그 때 별명이 돌아이가 됐는데, 이걸 계기로 나중에 <돌아이> 영화의 시놉을 쓰게 됐다고 함
[연기]
-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음
영화는 한번 보면 끝이고 소장할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쉬워서 상영관에서 녹음을 하고
나중에 소리를 들었다고 함
특히 액션,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공포영화만 3만편을 봤을 정도로 영화광이었음
- 영화가 너무 좋아서 40년동안 제시간에 잠을 자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도 하루에 네다섯편은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함
- 대단한 영화 마니아로 3만개가 넘는 비디오 테잎을 수집했다고 함
90년대 중반 비디오 대여업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는데 인터넷으로 비디오 대여업이 망하면서 사업 실패
좋아하는 비디오들을 모은 ‘길라잡이, 비디오 5000편’이라는 책도 썼었음
-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많이 했었는데 실제로 당랑권을 배웠다고 함
당랑권의 계보에 있는 고수에게 직접 정통무술을 배웠음
- 키가 작아서 비슷한 스턴트맨을 구하기 어려워 모든 액션 장면을 직접 연기했음
- 액션 연기를 하다가 죽을 뻔한 적이 종종 있었는데 실제로 수상스키 씬을 찍다가 물속에 빠져
죽을 뻔 했고, 차끼리 부딪히는 장면을 찍을 때 차가 세번을 굴러서 위험했던 적이 있었음
- 같이 출연했었던 동료 여배우 임예진, 이미숙과 동거설이 있었고 양수경과 열애설 등 스캔들이 있었음
[노래]
- 80년대 초반에는 <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를
히트시키면서 특히 여중고생들의 우상이 됨, 한국 가요 아이돌의 원조 우상
포크 음악을 주로 불렀던 때보다 <불티> 같은 락 장르를 선보이면서부터 젊은층의 팬들이 급격하게 늘었음
- 노래 <종이학>은 청소년들에게 종이학 접기 열풍을 가져왔고 히트곡들로 가요 차트를 석권해
조용필의 1인 독주에 제동을 걸었음
- 80년대 후반에는 <그대 우나봐>, <내사랑 울보>, <하얀 밤에>, <저녁놀>로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렸고 86년 87년 2년 연속 ‘KBS 가요 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함
- MBC 10대가수상 10번 수상으로 이부문 최다수상자로 기록
- 긴 목을 가리기 위해 깃을 올렸고 옷이 커서 소매를 걷어 올린 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음
- 싱어송라이터로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서 히트시켰음
+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 <사랑은 창밖의 빗물같아요>,
김희애의 <나를 잊지말아요> 를 작곡
- 90년대 초반 서태지가 데뷔한 뒤부터 모두 랩이 있는 노래만 해서 노래하기가 싫어졌고
비싼 장비를 사용하는 장르가 싫었고, 노래도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함
- 자연스럽게 앨범을 내지 않게 되었고 이혼 후 라디오 DJ를 하며 TV에서도 멀어짐
- 데뷔 20주년, 30주년 기념으로 후배 가수들로부터 두 번의 헌정 앨범을 받았음 (국내 최초)
[여담]
- 팝송 마니아, 음반 수집가로도 유명함. 팝 지식이 해박하고 3만 장이 넘는 소장 앨범이 있음
라디오 DJ를 할 때 한국인들이 좋아할 팝송들을 많이 선곡했고 우리나라에서만 인기 있는 팝송이 되기도 함
이엘오(E.L.O.)의 'Midnight Blue', 버티 히긴스의 'Casablanca', 조지 베이커 셀렉션의
'Jane' 등을 많이 틀어서 한국에서만 유명해지는데 기여함
- 당시 전영록이 레코드가게에 뜨면 난리가 났음, 한번 나타나면 몇 백 장의 LP를 사가는 일이
많았음. 생기는 돈 모두를 음반 사는데 쏟았다고 함
- 2010년 직장암, 대장암이 동시에 발견돼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완치 상태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