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시인을 만나다
▣초청시인: 정소슬 - 김뱅상
•발제 및 토론-안성길 시인 •사회-오창헌 시인
▣일시: 2022년 2월17일(목) 오후 2시
▣장소: 울산 명지 갤러리
▣ 오창헌: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사이펀의 문학토크가 2월17일 울산을 시작으로 다시 열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시를 쓰는 오창헌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오늘 초청된 시인은 이곳 울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소슬 시인과 김뱅상 시인입니다. 오늘 행사는 좀 전에 먼저 사인회가 열렸고요, 토크는 지금부터 약 1시간 30분 정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사가 끝나고도 코로나로 인해 뒷풀이를 따로 잡지 않은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토크의 발제와 토론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시는 안성길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그럼, 시작에 앞서 초청된 두 분의 시를 먼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뱅상 시인의 시는 한영채 시인이 낭독을 해주시겠으며 정소슬 시인의 시는 김지나 시낭송가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시낭송: 한영채 - 김뱅상 시 「나팔꽃」, 김지나 – 정소슬 시 「시집은 한권만 낼 일이다」
▣오창헌: 네, 아주 잘 들었습니다. 낭독해주신 두 분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울산의 시인을 만나다> 사이펀 제8회 문학토크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초대시인의 간단한 인사가 있겠습니다. 정소슬 시인부터 시집 출간 소회를 말씀해주십시오.
▣정소슬: 네. 반갑습니다. 사실 이번 시집은 제 첫 시집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래저래 묵혀둔 시들이 많은데, 다행이 오창헌 시인의 도움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리가 어색하지만 좋은 시간 만들었으면 합니다.
▣오창헌: 네, 이어서 김뱅상 시인의 시집발간 소회를 듣겠습니다.
▣김뱅상: 반갑습니다. 김뱅상입니다. 먼저 문학토크를 마련해 주신 사이펀 발행인 배재경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어 자리해 주신 여러 선생님께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특히 부산에서 응원 차 와 주신 강은교 선생님과 권오주 선생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 코로나 상황임에도 기꺼이 자리를 허락해 주신 명지갤러리 관장님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오창헌: 네, 시집 소회를 물었는데, 두 분 다 소회보다는 오픈인사를 하시네요. 좋습니다. 이어서 두 분의 시집에 대한 작품적 의의에 대하여 간략한 발제를 안성길 문학평론가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안성길: 두 시집에 대한 발제문을 발표하다.
▣오창헌: 네, 두 분에 대한 발제문을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발제를 해주신 안성길 선생께서 정소슬, 김뱅상 두 시인과 질의와 토론을 직접 이어가겠습니다.
▣안성길: 네, 토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두 분께 공통되는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현실 생활인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에는 일정한 정도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둘의 간극이 어느 정도인지요? 그리고 이번의 시집을 기획하고 발간하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여러 곡절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는지요?
▣정소슬: 저의 두 번째 시집 ‘걸레’가 곧 저 자신인데요, 제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여 세상이 말끔해지길 바라는 저의 간절한 소망이지만 세상의 변화는 답답할 만큼 굼뜨기만 하고, 최저임금의 계약직 비정규 경비원이라는 ‘걸레’ 중 ‘걸레’인 엄연한 한계가 때때로 저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노동이 끝나 구석에 처박혀 고약한 냄새로 썩어가고 있는 제 몸피를 볼라치면 조급함만 자꾸 키워져 간극을 더 키우기 일쑤이지만, 그럼에도 역사 혹은 사회의 구조적 불의 앞에 용감해지는 자신을 볼 때면 자랑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그 힘으로 사는 거지요.
그리고 이번 시집은 15년 만에 복간 형식을 취한 세 번째 시집인데요, 당시 책 찍을 돈도 없었지만 ‘시집은 한 권만 낼 일이다’란 시의 서술처럼 시집 출판에 대한 회의가 심한 때였어요. 그 외 다른 큰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건 책 속에서 찾아들 보시지요. 잘 보이게 숨겨둬서 쉽게 찾으실 겁니다. (모두 웃음)
▣김뱅상: 일상에서 말은 엉뚱한 낚시질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미끼를 던지고선 어떤 고기가 걸려들까 기다리곤 합니다. 고기에 따라 힘을 주어 줄을 당겼다 밀었다 합니다. 팽팽한 줄다리기는 언제나 매혹적입니다.
두번째 시집의 어려움은 방향성(색깔)의 문제였습니다. 2년 만에 나오는 시집은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고민하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쪽은 어느 쪽인지? 왜 두 번째 시집을 묶어야 하지라는 고민들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리를 하면서 지금은 불편하더라도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지 하며 시집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안성길: 네, 계속해서 공통적인 질문입니다. 나에게 있어 시란 무엇일까요?
▣정소슬: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는 불경 경구 ‘마하반야 바라밀다’ 중 ‘바라밀(波羅蜜)’이란 뜻이 “태어나고 죽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인 피안으로 건넌다”는 의미라 합니다. 이 ‘바라밀’을 인용한 시를 하나 썼는데 2년 전 ‘사이펀’에 발표하기도 했던 그 시로 답을 해볼까 합니다.
시는 바라밀이다
썼다 찢었다 수북히 쌓인 원고지의 비분 싸안아 들고
불당 공양 불로 보시하고 내려오는
길, 보았다 바위를 돌며
탑돌이 수행 중인
낙엽의
마하
반야
바라밀다, 바라밀 정진을! 감사합니다.
▣김뱅상: 저는 생각해 보았는데요. 아무래도 일인 것 같아요. 일처럼 게으름부리지 않고 하니까요.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은 메모라도 해요. 책과의 시간도 놀이의 시간도 산책의 시간도 늘 시와 함께해요. 시란 저를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개그콘서트 같은 것이기도 하고, 세상을 알아가는 백과사전 같은 것이기도 하답니다.
안성길 1
▣안성길: 두 분 다, 시의 경계와 함의에 푹 담궈 있는 듯 합니다. 그러면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소슬: 제 이상과 현실의 절절한 간극을 노래한 “용서해라!”로 시작하여 “용서 마라!‘로 끝나는 시집 77쪽의 ‘고해’란 시가 본 시집의 모토가 되었던 시라 애착이 많이 갑니다만 그 시는 책에서 읽어보시도록 하고요, 이 자리에선 포항 과메기 축제에 걸게시로 내걸렸던 시집 41쪽의 ‘과메기’란 시를 낭독해보겠습니다.
과메기
사람 속에서 사람이 그립다
비린 갯바람에 등창이 꿰여
거꾸로 매달려 살아온 내 청춘
이제 그 보채던 기름기도 다 빠져나가고
한잔 술 끝에 씹히는 무슴슴한 고독만이
얇아진 몸피 밖에 드러누웠다
젊은 한 시절 살 속에다 꾸역꾸역 구겨 넣었던
비린 언어들이 옆구리를 들쑤시며
호시절을 얘기하자는데 나는 오늘
바람막이가 달아나 버린 주막에 앉아
속절없는 배뇨에 전율하는
어느 여인의 미라를 헤집으며
사랑 속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김뱅상: 저는 시집의 3부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시들이 많아요. 그 중에서 ‘무빙’이 많이 애착이 갑니다. 무빙은 마음의 움직임인데 현대 사회에서 혼자 견뎌야하는 외로운 시간들을 시로 써 본 겁니다.
공원을 산책하다 고양이에게 과자를 주는 아이를 보았어요.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그 아이의 마음이 제게 전달 된 것이죠. 아이는 아마 해가 져도 혼자 견뎌야하는 저녁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 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먹이가 바닥나자 고양이마저 떠나버리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보고 쓴 시예요. 어릴 적저도 혼자 견뎌야하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토크에 참석해주신 보우 스님과 강은교 시인
▣안성길: 네, 정소슬 시인께 질의를 드립니다. 이번의 세 번째 시집 『내 속에 너를 가두고』에는 어린 날 첫사랑에의 기다림과 그리움, 여러 모순이 상존하는 현실에의 비판과 풍자, 전원에서의 자연에 몰입, 우리말 시어의 의도적 살려 쓰기 등 대략 네 가지 정도의 작품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첫 사랑인 시문학에 대한 강렬한 바람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완전한 사랑으로까지 치닫는 모습을 보입니다. 평소 선생님께서 시 창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소슬: 4년 전, 고인이 되신 광주의 문병란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을 귀한 기회가 있었더랬습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 1년여 80여 통의 서신이 오고갔는데 그 계기로 하여 가슴 뜨거운 시를 써야한다는 강한 자각이 있었지요. 이후 제 시는 반민족 행위에 대한 고발과 통일된 나라에 대한 염원을 실으려 애쓰게 되었답니다. 이후 저의 활동도 울산이 아닌 이 나라 중심 서울로 옮겨져 활동하게 되었는데 제가 요즘 주요 두 단체에서 활동 중인데 ‘민족문학연구회’란 단체에선 친일문학 청산 및 이 나라 정의구현을, ‘민족작가연합’이란 단체에선 통일 문학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단체랍니다. 두 단체 모두 ‘민족’이란 단어가 맨 앞에 내세워져 있는 그 이유가 제 의지와 정체성을 나타낸다 보면 될 겁니다. 저는 문학 입문 전부터 이미 ‘민족문제연구소’란 단체에 가입하여 꼬박꼬박 회비를 내온 30년 정회원이기도 합니다.
▣안성길: 네. 실천적 창작자라 해야겠군요. 이번에는 김뱅상 시인께 묻습니다. 「2020, 일인무언극」, 「17:07:14:99 미소微小시간」, 「삐약 삐약」 등 이번 시집 어느 세계에 당도할 뭇별에는 일상 속 풍경을 묘사한 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시선은 가벼운 듯 가볍지 않고, 풍경을 보는 듯한 그 방향은, 「2020, 일인무언극」의 끝 행에서 “긁적이다 만 사각 창 속의 그림 콜라주가 되는 12월/의 창은 더욱 하얗게 다른 세상의 달”처럼 눈앞의 풍경을 보다가 그 풍경 속의 또 다른 풍경을 향하기도 하고, 「17:07:14:99 미소微小시간」에서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77이다 발작의 시간은 길다3이다 발이 묶인 난 민락동을 가야 하는데 내 눈은 1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안에 알 수 없는 등식에 빠져들고 만다”에서처럼 풍경 속의 미소한 시간을 바라보다가 어느 한순간 미지의 세계로 빠져버리는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합니다. 즉 풍경을 보기도 하고 그 속의 또 다른 풍경을 보기도 하고, 역으로 풍경 쪽에서 나를 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 “풍경”은 시적 상상력의 핵심 질료 중 하나로 보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뱅상: 네, 시적 메타포는 나는 무엇인가? 바로 나를 찾는 시간이겠지요. 분명 시간은 멈춘듯한데 흐르고 사람들은 시간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고 바쁜 시간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틈과 틈 사이에는 무엇인가 있어 말을 해요. 사이와 사이에 어떤 것이 놓이는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고 봅니다. 공간과 공간이 만나 또 다른 공간을 이루어내지요. 나팔꽃이 줄기를 타고 오르는 것을 보면 정지한 듯 보이지만 움직여요. 추운겨울 꽃을 피우는 것은 저에게 전하는 편지 같습니다. 아직 나팔꽃에게 답장을 해 주지 못했어요. 상상은 그 틈을 비집고 제게 말을 걸어와요, 그 말들을 저는 받아 적지요.
▣안성길: 김뱅상 시인의 시론적 답변이 상상을 던져 줍니다. 계속해서 정소슬 시인께 질의 드립니다. 이번 시집의 시를 보면 다양한 일상 속에서 시적 모티브를 얻고 계시고 시적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또 성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기에 이미지를 수용하여 표현의 다양화를 꾀해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정소슬: 제 시의 태생적 한계인 듯합니다. 제 본명의 이름자 중앙에 바를 ‘正’이 들어가 있는데 “거짓말은 나쁜 거”, “말을 비꼬거나 숨기는 건 더 나쁜 것”이라는 어린 날 집안 어른의 훈계가 평생 지배해온 탓인지 ‘은유’의 본질인 숨김이 잘 안돼요. 제 말과 글은 아무리 숨겨도 다 드러나는 걸요. 투명 거울을 두르고 있는 거 같아 많이 춥고 참으로 슬프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5분 휴식>
▣오창헌: 잠깐의 휴식 후 예정에 없던 2부 토크로 이어지겠습니다. 문학 토크 토론 진행에 앞서 초대된 두 분의 시를 음미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김뱅상 시인의 시집 54페이지에 있는 “봄물방울꽃”을 황나겸 시낭송가께서 정소슬 시인의 시집 71페이지에 있는 “가을 눈동자”를 박순희 시낭송가께서 낭독해주시겠습니다.
▣시낭송: 황나겸 – 김뱅상 시 봄물방울꽃
박순희 시낭송가 – 정소슬 시 가을 눈동자
▣오창헌: 네, 두 분의 낭송 아주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든 김에 본 사회자가 질문을 하나씩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소슬 시인께 하겠습니다. 이번의 세 번째 시집 내 속에 너를 가두고에는“어린 날 첫사랑에의 기다림과 그리움”,“여러 모순이 상존하는 현실에의 비판과 풍자”, “전원에서의 자연에 몰입”, “우리말 시어의 의도적 살려 쓰기” 등 대략 네 가지 정도의 작품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첫 사랑인 “시문학”에 대한 강렬한 바람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완전한 사랑”으로까지 치닫는 모습을 보입니다. 평소 선생님께서 시 창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필명에 대한 에피소드를 듣고 싶습니다.
▣정소슬: 고사성어 중에 수구초심(首邱初心)이란 말이 있는데요,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뜻”이라는데, 저 또한 그 심정이지요. 범서읍 망성리는 제가 태어나 자란 안태 고향이랍니다. 그곳에 손수 집을 지으셨던 아버지는 일찍이 떠나셨고 홀로 사시던 어머니마저 치매 발병으로 요양원으로 떠나시는 바람에 집이 비게 되어 부랴부랴 올라갔지요. 특히 촌집의 경우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면 금방 무너지고 마는 걸 많이 봐왔거든요. 어쨌든 50년 전 나갈 때 그 돌싱이 되어 돌아오니 좋아요. 시골이라는 여러 불편한 만큼의 만끽을 향유하며 그걸 즐기는 중이랍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제 시를 이루는 근간이자 지향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명 ‘정소슬’은 제가 문학에 발을 들여 여기저기 시들을 발표해오다 기성 문단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아 신청을 했는데 얼마 후 전화가 와 받았더니 제가 신청한 ‘정정길(본명)’이란 시인은 이미 등록되어 있어 ‘정정길2’로 등록해도 괜찮겠냐는 겁니다. 차 넘버도 아니고 행인1,2 같아 이상하잖아요. “그건 안 돼죠! 무슨 상품번호도 아니고……”, “그럼 선생님, 곧 심사 들어가야 하니 2주일 내 다른 이름을 지어 통보해주세요!”. 그러고 끊었는데 깜빡 잊었어요. 어느 날 전화가 울려 받았더니 그 분이더군요. 아차! 했지만 다른 이름을 생각해보질 못했거든요 그때가 늦가을이었고 열어둔 창으로 휙! 하고 바람이 내 낯짝을 때리는 겁니다. “선생님, 다른 이름을 지으셨는지요?” 하는 다그침에 “아, 아, ‘소슬 바람’요!” “‘소.슬.바.람’ 네 자로 말입니까?” “아니, 제 성이 정이니 ‘정소슬’이요!”. 그래서 ‘정소슬’이란 필명을 쓰게 되었답니다. 편지 중에 문병란 선생님께서도 제 필명이 좋다고 칭찬하신 적이 계셔서 더욱 고무되어 흡족히 쓰고 있답니다.
▣오창헌: 필명이 그리도 갑자기 만들어지기도 하는군요. 일전에 김뱅상 선생님은 울산광역시 동구 명덕동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을 보이셨는데요.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뱅상: 특별한 이유는 우리의 것이잖아요. 아끼고 사랑하고 오래도록 간직해야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오래도록 함께 한 것에 애착을 많이 가지고 소중하게 여기지요. 이곳 문학토크에 오신 선생님들도 저의 기억에 오래도록 머물 것입니다. 동구 지역에 30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저 몸담는 곳이 아니라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산이 변해도 뿌리는 남아 있을 것이 분명 합니다. 옛날에는 산이었던 곳이 단지 바뀐 모습으로 있는 것이겠지요. 도시재생사업은 기존을 보존하면서 가꾸어 가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사업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아가게 되고, 현재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오창헌: 네, 잘 들었습니다. 사회자 직분의 질의를 마치고 이제 마이크를 안성길 시인께 넘기겠습니다. 토크를 계속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안성길: 네, 김뱅상 시인의 이번 시집 어느 세계에 당도할 뭇별에는 또 작고 아주 사소한 시간이나 틈, 사물들을 주목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들을 특히 세세히 살피는 이유가 있겠지요?, 또 「3은 둥글고 4는 뾰족하다」에서 “사각의 모든 꼭지는 빨아보고 싶어”, 「포스트잇」에서 “둘 셋 다리들이 비틀린다 점심을 나누고 커피를 기다린다 한 잔의 비엔나커피로 답답함을 날려볼 요량이다 오전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기도 전이다 달콤한 오후가 부풀어 오른다”, 「남바람꽃」에서 “허리 왼편으로 돌리며 휘지/우린 처음부터 탱고를 추고 싶었을지도/천진난만하게 젖힌 목선 윤곽/몸을 흔드는 뒤태의 곡선/피날레를 장식할 낭떠러지 무대”, 「뭉클, 페니스」에서 “문어 한 마리 산다 내장을 뺄까 말까 고민하다…비닐에서 꺼내는 순간 손바닥에 느껴지는 거시기 근육ᄋힹ 맛, 비명도 치지 못하고 문어를 훑는다 남편이 달려오면 별스럽다 할 것이다 문어 다리가 팔을 감아돈다 감아 돌 때마다 힘이 들어가는 그 롤링의 맛 잊어버렸던 근육의 맛이 살아난다 이 근육의 맛을 간직하고 싶다…단단하게 잡혀지는 근육의 맛, 무엇으로 생기는 거니”, 「벚꽃 시그니처」에서 “안쪽 깊숙이 숨겨둔 거시기찌는 초록 씀바귀 잎 위에 처녀 젖꼭지 같은 분홍 몽우리 단다” 등 “성애적 표현”이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데 매우 건강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해서 시인의 또 다른 한 특징으로 읽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많이 구사하는 의도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김뱅상: 저는 시를 쓸 때 무대 위의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움이나, 시가 커질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단어나 문장들은 시가 갖는 성향에 따라서 몰고 가는 것이겠지요. 독자들은 평범한 것에 매혹되지는 않는다고 봐요. 이미 많은 문인들이 시를 써 왔고 얘기들은 독특하지 않으면 흥미를 잃으니까요. 읽을거리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거칠지만 새로움을 추구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 안성길: 정소슬 시인께 질의 드립니다. 이번 시집에서 우리말 시어의 의도적 살려 쓰기를 꾀한 작품들이 여럿 보였는데요, 앞으로는 또 무엇을 새롭게 시도하실 건가요? 앞으로 추구하실 작품세계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소슬: 우리의 좋은 말들을 찾아내는 게 문학을 하는 모든 이들의 소명이라 여깁니다. 일제와 미 군정을 거치면서 우리 말 훼손이 너무 심했어요. 그걸 바로 잡아야지요. 작으나마 그 밀알이 될 수 있다면 시인이란 무거운 타이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일 아닐까 여깁니다. 그리고 앞으로 추구해갈 작품 방향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습니다. 보다 밀착된 사회 저변의 아픔이라든지 역사적 사회적 정의 회복을 독려하는 글을 계속 써나갈까 합니다. 내 자식과 후배들은 우리와 같은 싸움을 더는 안 해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간절한 희망이며 소망입니다.
▣안성길: 김뱅상 선생님은 이번 시집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또한 앞으로 추구하실 작품세계도 아울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뱅상: 코로나로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시집을 정리하면서 보니 코로나 시가 많았어요. 몇 편만 시집에 담았어요.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함께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를 읽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음 작품세계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아서 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생각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싶은데 생각처럼 글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다니며 나를 불러 세워 봅니다. 아직 저는 눈에 보이는 것뿐이고 글은 아직 멀리 있기만 한 듯합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합니다.
안성길: 네, 두 분 시인의 답변을 잘 들었습니다. 준비한 질의는 아직 몇 개가 더 남았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이만 토크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창헌: 네,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울산의 시인을 만나다’ 문학토크를 진지한분위기에서 진솔한 답변으로 의미 있게 치루어 낸 것 같습니다. 오늘 행사 내용은 정리하여 3월에 나올 계간 <사이펀> 봄호에 두 시인의 대표시 및 시집 서평과 함께 게재될 예정입니다. 계간 <사이펀>은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해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사이펀 문학 토크>는 4월 하순 경 대구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