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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禮(冠婚喪祭) 스크랩 유학에서의 예절
코끼리봉 추천 0 조회 25 09.07.22 15: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선 500년에 유학으로 우리나라의 생활예절이 굳어졌습니다.

어떤 점으로는 좀 고리타분한 부분도 있지만

이 예의범절로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하여도 예절바른 나라가 된다면

신용을 얻어 국제적인 투자가 많아지고 세계를 제패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이 많은 나라 중에 예의 바른 나라라는 인식으로 세계를 제패하였으면 합니다.

 

<유학에서의 예절>

인자오덕(仁者五德)에 대해서 다섯 가지의 정확한 내용(뜻)을 알고 싶습니다. 정확하고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유교(儒敎)의 오덕(五德)이란 온순(溫), 양순(良), 공손(恭), 검소(儉), 겸양(讓)입니다. 이 五德은 儒敎의 오상(五常) 에서 나온 것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 그 근본(根本)입니다. 그리고 五德에는 총명예지(聰明睿知), 관유온유(寬裕溫柔), 발강강의(發强剛毅), 제장중정(齊莊中正), 문리밀찰(文理密察)이 있습니다.

객지에 있는 아들이 자기의 부모에게 편지를 쓸 때에 봉투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요?
보통 보면 아들이 자기의 부모에게 편지를 쓸 때 봉투에 부모의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큰 실례입니다. 즉 부모의 이름자를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들 본인의 이름을 쓰고 '본집'이라고 쓰면 됩니다.(예를 들어 홍길동 본가에 [洪吉童 本家入納])

1세(世)의 시조(始祖)는 11세(世)된 손(孫)의 10대조(代祖)이고, 즉 대불급신(代不及身)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11세(世)가 10대조(代祖) 제사에 초헌관이 될 경우 10세손모(世孫某)라고 독축함이 사리에 맞는다고 생각되는데 이것이 맞는 주장인지 회답 바랍니다.
'대불급신(代不及身)'은 대(代)를 따질 때는 자기는 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와 아버지(父) 사이가 1대(代)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世)는 자기도 칩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버지(父)의 2세(世)가 되는 것입니다.
귀하의 논리 중 1세(世)인 시조는 11세(世)된 손(孫)의 10대조(代祖)가 맞습니다. 그러나 11세(世)된 자는 1세(世)인 시조의 10세손(世孫)이 아니라 11세손(世孫)이 맞습니다. 즉, 세불급신(世不及身)이란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1세손(世孫)이란 말은 안 쓰고 세손(世孫)을 쓰는 경우는 5세손(世孫) 이하부터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효자(孝子), 효손(孝孫)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또한, 11세(世)가 10대조(代祖) 제사에 초헌관이 될 경우에 10대손모(代孫某)나 11세손모(世孫某)라 독축함이 맞습니다.

축의(祝儀)나 부의(賻儀)시 단자(單子)를 작성할 때 '一金 ○○원整'이라고 써야 옳은지 '一'字와 '整'字를 쓰면 안되는지요? 그리고 상가에 조문시(弔問時) 단자머리에 '향촉대(香燭代)'라고 쓰는 것이 틀린지요?
축의나 부의시 금품(金品)을 보낼 때는 거래(去來)의 뜻이 아니므로 '일금(一金)'으로 쓰지 않고 다만 금품(金品)이므로 '금(金)'이라고만 쓰고 정(整)도 쓰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金 ○○萬원) 또한 상가 조문시 단자에 쓰는 용어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몇 가지만 예시하겠습니다. 부의(賻儀), 조의(弔儀), 근표상애도(謹表喪哀悼), 지촉대(紙燭代), 향전료(香典料).

조상의 휘자(諱字)를 부르려면 무슨 字, 무슨 字라고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때인지요?
부친의 호명(呼名)에 대하여 ○字 ○字라 아니하고 그대로 부를 때는 축문(祝文)을 대독(代讀)할 때, 임금님 앞에서 자신의 부친(父親)을 칭할 때, 전장에서 부친을 잃고 부르며 찾을 때 이상과 같다고 합니다.

부자상계일세(父子相繼一世)'는 부자(父子) 간에 일세(一世)이고 '부자상대역일대(父子相對亦一代)'는 역시 부자간에 일대(一代)로 해석이 되어 전자와 후자가 다를 바 없다고 해석되는 데, 일반인으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해석을 회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자상계일세(父子相繼一世)'에서 상계(相繼)란 서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뜻입니다. 즉 서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일세(一世)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준이 있어 기준이 되는 분이 일세(一世)가 되고, 그 다음은 서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이세(二世)가 되는 것입니다.
부(父)와 자(子)는 부(父)가 기준이 되어 일세(一世)가 되고, 자(子)는 이어져 내려왔으니 이세(二世)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상대역일대(父子相對亦一代)'에서 상대(相對)란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뜻, 즉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일대(一代)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 사이가 일대(一代)가 되는 것입니다.

전통의례의 축문을 보면 유(維) 다음에 연호(年號)를 쓰는데 근래에 보면 연호를 쓰지 않고 간지(干支)로 그 해의 세차(歲次)만 씁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요?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10년 그러니까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기 전에는 축문에 우리 나라의 연호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국권을 빼앗기니까 우리 나라의 연호가 없어 굳이 연호를 쓰려면 일제의 연호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일제의 연호는 쓸 수 없어 연호 없이 유세차(維歲次)로 축문을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광복이 되었고 우리의 연호로 단군기원이 있으니 축문에 '유단군기원(維檀君紀元) ○○○○년'이라 써야 합니다. 비록 공식으로는 서기(西紀)를 쓰지만 전통의례에서는 우리의 연호인 단군기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명절이나 혼·상·제례시의 공수법을 남녀별로 구분하여 설명하여 주세요.
남자의 평상시 공수법은 왼손이 위로 가도록 두 손을 포개어 잡는 것이고, 여자의 평상시 공수법은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두 손을 포개어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흉사시의 공수법은 반대입니다. 즉 남자의 흉사시 공수법은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두 손을 포개 잡는 것이고, 여자의 흉사시 공수법은 왼손이 위로 가도록 두 손을 포개 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흉사시란 사람이 죽은 때를 말합니다. 따라서 자기가 상주 노릇을 하거나 남의 상가에 조문할 때나 영결식에 참석하는 것이 흉사입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흉사시의 공수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엄격하게 말하면 흉사시의 공수는 사람이 죽어서 약 백일 만에 지내는 졸곡제(卒哭祭) 직전까지의 행사에 참석 할 때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절 때나 혼례·제례시는 길사이므로 평상시의 공수법을 해야 합니다.

설·추석 차례시의 공수법과 제사시의 공수법이 다른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같습니다. '공수(拱手)'란 어른을 모시거나 의식행사에 참석할 때의 공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방법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는 것을 말합니다.
설이나 추석 차례시의 공수법은 평상시의 공수법으로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올라오게 하고,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오게 하면 됩니다. 제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도 길사(吉事)이기에 평상시의 공수법을 하는 것입니다.

석전대제 봉행시 알자(謁者)의 구령에 '부르오'라는 말이 있는데 애매한 느낌이 듭니다. 홀기 모두가 한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만 한글로 되었는지, 혹자는 '부료(部了)'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요?
석전 때 홀기에 다른 '부르오' 구호의 근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진행에 대한 절차로서 우리말의 '부르시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굳이 한자로 표시한다면 '부호(復呼)'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관습상 종중이란 선조를 같이하는 후손들이 선영의 봉제사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자연발생적인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나 특별한 경우에는 어느 특정인이 自己死後에 직계 후손들이 특정 재산을 영구히 보존케 하기 위해 생존시 스스로를 한 종파의 파조(派組)로 하는 종중(宗中) 명칭을 사용하여 등기보존하는 경우가 있는지요? 이 경우를 무엇이라고 하며 종중(宗中)의 범위는 어떠한지요?
어느 특정인이 자기의 생존시에 자신의 아호나 직명 등을 종파의 명칭으로 한 종중을 소유함으로 영구 보존키 위해 등기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수성(守成)'이라 하며 여기서 '종중(宗中)'이라 함은 그 명의자의 직계 후손에 한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가족들의 의견도 참작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상님들의 산신제(山神祭)를 모시는 가운데 신위(神位)에 대한 독축(讀祝)이 있는데 어떤 가문은 제사를 모시는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세(世)로도 읽고 어떤 가문은 대(代)로도 읽습니다. 그 세(世)와 대(代)는 똑같은 연대를 칭하는 것인지요?
說文을 보면 '부자상계위일세(父子相繼爲一世)'라 하였으니 세(世)는 고조, 증조, 조(祖), 부(父), 기(己), 자(子)로 계승되는 수의 표시이며, 대(代)는 '부자상대역일대(父子相對亦一代)'라고 하였으니 고조대증조(高祖代曾祖), 증조대조(曾祖代祖), 조대부(祖代父), 대부기(父代己)의 뜻입니다.
축문(祝文)에 있어 어느 서식이나 다 좋습니다만 대(代)에 있어서는 선조(先祖)와 후세에게나 다 쓰는 것이므로 항용 대수(代數)로 합니다.

세(世)와 대(代)의 구분입니다. 족보에 있어서 시조로부터 몇 대 손이 맞습니까?
세(世)는 하나의 기준이 있어 기준도 계산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기준하여 자기는 1세가 되고 아들은 2세가 되는 것입니다. 대(代)는 '대불급신(代不及身)'이라 하여 자기를 세는 것이 아닙니다. 즉 사이가 1대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기 윗대를 따질 때는 몇 대祖라 하고, 조상을 기준으로 자기를 따질 때는 몇 세손이라 합니다.

인사(人事 : 拜禮) 방법을 문의하고자 합니다. TV를 시청하다 보면 절하는 방법이 통일되지 않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 성균관과 교육부와 문화부에서 공동 연구하여 표준화된 방법을 전국민이 혼동하지 않고 습득할 수 있도록 게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명절 때의 인사방법, 절의 종류, 형태, 방법 등등을 설명해 주십시오.
귀하의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배례법(拜禮法)의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성균관에서 『우리의 생활예절』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 배례법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귀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회신드립니다.

1. 구배(九拜)에 대한 설명(說明)
① 계수(稽首) : 극진히 존경하여 이마가 땅에 닿도록 몸을 굽혀 절함.
② 돈수(頓首) : 공경하여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함.
③ 공수(空首) : 상체를 굽혀 머리를 팔짱낀 높이만큼 숙여 하는 절, 또는 두 손을 잡고 땅에 댄 다음 머리를 손에
                      닿도록 무릎을 꿇고 하는 절.
④ 진동(振動) : 두 손을 마주치는 배례(拜禮)
⑤ 길배(吉拜) : 한번 절하고 다시 이마를 조아려 절함.
⑥ 흉배(凶拜) : 상인(喪人)의 절(稽首後에 절함)
⑦ 기배(奇拜) : 단배(單拜), 한 번 절함.
⑧ 포배(褒拜) : 재배(再拜), 두 번 절함.
⑨ 숙배(肅拜) : 서울을 떠나 임지(任地)로 가는 관리(官吏)가 임금께 작별을 아뢰던 일(편지 말미에도 씀) 
  이상의 구배(九拜)는 주례(周禮)에 나와 있는 절의 형태로 요즘에는 실용성이 없습니다.

2. 방향배(方向拜)
① 직배(直拜) : 바로 마주보고 하는 절.
② 곡배(曲拜) : 임금을 뵐 때에 하는 절. 임금은 남쪽을 향하여 앉고 곡배하는 사람은 동쪽이나 서쪽을 향하여 절함.

3. 도수배(度數拜)
① 단배(單拜) : 한 번 절. 동우간(同友間)에 서로 하는 절. 부모(父母), 존장(尊丈), 또는 평상시의 남자의 경우
② 재배(再拜) : 두 번 절. 父母와 尊丈의 생신 때 경사(慶事) 때 , 제례(祭禮)나 상례(喪禮) 등의 큰 의식(儀式)을 거행
                      할 때의 男子가 하는 절의 횟수, 또는 평상시 여자의 경우(현재는 여자도 평상시에 한 번 절함)
③ 사배(四拜) : 네 번 절. 왕이나 문묘에서 하는 절. 여자가 제례(祭禮)나 혼례(婚禮) 등의 의식을 거행할 때 하는 
                      절의 횟수.

4. 특수배례(特殊拜禮)
① 문묘배례(文廟拜禮) : 국궁(鞠躬)하여 무릎 끓고 앉은 다음 공수한 손은 앞을 짚고 이마가 손등을 닿을 만큼
    허리를 숙여 네 번 반복하여 절을 함.
② 문묘향배(文廟向拜) : 문묘를 향하여 서서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여 네 번 경례를 함.

친족회(親族會)의 명칭에는 문중회, 종회, 종친회, 화수회 등 많은 것이 있는데 어떤 것이 옳은지요?
우선 한자로 보면 '종(宗)'자는 동조위종(同祖謂宗)이라 한 할아버지의 후손을 뜻합니다. '문(門)'자는 가(家)의 뜻이며 '문중(門中)'이라 함은 한집안이니 곧 일가간(一家間)이 되는 것입니다. '화수(花樹)'라 함은 꽃나무의 뜻인즉 한 뿌리에서 나온 여러 가지에 달린 열매의 뜻이니 역시 동조위종(同祖謂宗)의 뜻입니다.
이상과 같은 뜻으로 볼 때 어느 것도 다 잘못은 아니며 다만 종친(宗親)이란 말은 왕족(王族)을 칭하는 종친부(宗親府)가 있어 조선왕조(朝鮮王朝) 때에는 일반인에게는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결혼과 혼인중 어느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까?
현재에는 일반적으로 결혼이란 용어를 쓰는데 결혼보다 혼인이란 용어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즉 혼인이란 '장가 들 혼(婚)'과 '시집 인(姻)'으로 남녀가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의미가 다 포함된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서원의 명칭에서 자신의 시호나 아호를 자신의 서원에 명호할 수 있는지요 ?
선생의 질문은 서원을 건립한 후생들이 서원의 명칭을 작성하는 것이므로 자기의 시호나 아호에 관계없이 지명이나 기타 상징적인 명칭을 붙이는 것이며 본인이 직접 관여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방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을 걸어 모셨는데 어떤 분은 돌아가신 분의 사진을 왜 걸어놓느냐 하고 어떤 분은 돌아가신 선조의 사진이니 안방에 잘 모셔 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있어 방안에 모셔 놓는 것은 당연합니다.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안방에 잘 모셔 놓고 항상 옆에 계신 듯이 정중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사조(四祖)'와 '오종(五宗)'이란 각각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사조(四祖)'란 부(父) · 조(祖) · 증조(曾祖) · 외조(外祖)로서 주로 과거를 볼 때 응시자의 신분과 문벌을 확인하기 위해 이름을 기록하는 곳에 기록하여 봉합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오종(五宗)'이란 고조(高祖) · 증조(曾祖) · 조(祖) · 자(子) · 손(孫)으로 되었습니다.

유교의 성인(聖人) 중 사성(四聖)은 누구인지요? 그리고 송조육현(宋朝六賢)은 누구인지요?
사성(四聖)은 안자(顔子) · 증자(曾子) · 자사자(子思子) · 맹자(孟子)이시고, 송조육현(宋朝六賢)은 주돈이 · 정호(程顥) · 정이 · 소옹(邵雍) · 장재(張載) · 주희(朱熹)이십니다.

친구가 집을 새로 지어 집들이 초청을 받았는데 기념품을 사서 예를 갖춘 표현으로 글을 써 준다면 무엇이라 쓰면 좋겠습니까?
'축 신영입택(祝 新營入宅)', '축 성조(祝 成造)', '축하설산(慶祝設産)'등으로 쓰면 무난합니다.

성년(成年)의 날 자녀에게 기념 선물을 할 때의 문구는 어떻게 쓰는 것이 좋습니까?
'하축성년(賀祝成年)'이나 '성년(成年) 됨을 축하(祝賀)한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다른 종교는 상징 표식이 있는데 (예를 들어 기독교는 † , 불교는 卍형), 유교는 어떠한 상징표식이 있는지요?
다른 종교와 같이 일정한 표식을 정해 쓰지는 않지만 천(天), 지(地), 건(乾), 곤(坤), 음양(陰陽) 표식(標識)으로 태극표식(太極標識)이 적절치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행단(杏壇)의 상징인 은행잎을 표식으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자님의 행장 중에 '가정(苛政)은 범보다 무섭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지요?
이 말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인데 가혹한 정치가 끼치는 해(害)는 범의 해(害)보다 더 가혹하다는 뜻입니다.

직장 상사가 형의 상을 당하였는데 직장내 조위회람문을 돌릴 때의 서식을 알고 싶습니다.
상을 당한 그분의 이름 밑에 그의 장형 아무개의 상을 당하였다는 조위 사실을 표시해서 직장내에 회람하면 좋겠습니다.

모친상을 치르고 조위에 대한 인사장을 내려고 하는데 자식들 이름 밑에 의례적으로 써야 하는 문투를 알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시고 어머님만 여의면 '애자(哀子)'라 하고 반대로 어머니는 계시고 아버지 복을 입으면 '고자(孤子)'라 하고 부모가 다 여읜 상중 자식은 '고애자(孤哀子)'라 씁니다. 단 졸곡제사부터는 '효자(孝子)'라고 씁니다.

삼촌 출계한 사람입니다. 생부 환갑 청첩에 자신의 표시를 어떻게 해야 양부 입장도 편할지 궁금합니다.
생부 환갑 청첩에 자신을 차례에 적되 '삼촌 출계'라 쓰면 좋습니다.

팔순(八旬)을 산수(傘壽)라고도 쓰는데 맞는지요?
우산 '산(傘)'자의 형태가 한자(漢字)로 팔십이라 쓴 것과 비슷하여 나온 말로, 될 수 있으면 안쓰는 것이 좋습니다.

회사 전무가 별세(別世)하였는데 부인과 딸만 있습니다. 부고 서식을 알고 싶습니다.
무슨 회사 전무 아무개가 몇월 몇일 급환(急患)으로 자택(또는 병원)에서 별세하였기 부고합니다.
상주 (주부가 됨)
장녀 (여러 딸을 열거한다)
친족대표
호상

혼사(婚事)에 특별히 수고하신 분에게 보답 사례 문구를 알고 싶습니다.
'포사례(蒲謝禮)'나 '사례(謝禮)'가 좋습니다.

부의(賻儀) 봉투에 이름을 쓸 때 이름 밑에 쓰는 적당한 文句는?
'근정(謹呈)', '곡배(哭拜)', '배상(拜上)'이 좋습니다.

팔순(八旬)이 된 분의 잔치에 가려고 하는데 의례를 표하는 문투를 알고 싶습니다.
'축 수연(祝 壽宴)', 또는 '축 만수무강(祝 萬壽無疆)'이라는 서식이 좋습니다.

석전(釋奠) 때 월대 위에서 연주하는 악과 신삼문 앞에서 연주하는 악의 이름과, 추는 춤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석전 때 연주하는 음악을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이라 합니다. 월대 위에서 연주하는 악(樂)은 '등가악(登架樂)'이라 하고 신삼문(神三門) 앞에서 연주하는 악(樂)을 '헌가악(軒架樂)'이라 하며 춤은 '팔일무(八佾舞)'라 합니다.

조선시대 성균관 문묘 석전에 임금이 나와서 헌작을 하였는지요?
성균관(成均館)의 석전(釋奠)은 친림석전(親臨釋奠)입니다. 즉 임금이 친히 나오셔서 제주(祭主)인 초헌관(初獻官)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 나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3년에 한 번씩은 꼭 납시어 작헌례(酌獻禮)를 하셨습니다.

소상(小祥), 대상(大祥) 때의 부조(扶助) 봉투(封套)에 쓰는 문구(文句)를 알고 싶습니다.
'부의(賻儀)', '전의(奠儀)' 등이 좋습니다.

회갑(回甲)에 부조(扶助) 봉투(封套)에 쓰는 문구(文句)를 알고 싶습니다.
'축 수연(祝 壽宴)', '축 화갑(祝 華甲)'이 좋습니다.

고희(古稀)나 미수(米壽)의 부조(扶助) 봉투(封套)에 '축(祝)'자를 쓰지 않는다는데 그런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꼭 '축(祝)'자를 써야 합니다.

회갑(回甲) 때 꽃을 보내려 하는데 쓰는 문구(文句)를 알고 싶습니다.
'축 수연(祝 壽宴)'이라 쓰면 좋습니다.

<가족간의 호칭>

동성동본(同姓同本)간에 행렬(行列)이 동행(同行)이라면 생년월일(生年月日)을 호형호제(呼兄呼弟)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혹 이름을 붙여 ‘○○동생, ○○형님’ 하고 부르면 안되는 것인지요?
일가(一家)간의 호칭, 특히 형제간의 호칭은 상호간의 두터운 친밀감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연령이 많아지면 아우 항렬이라도 너무 하대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며, 이름을 위에 붙여서 호칭하는 것은 타인에게 지칭할 때는 필요하나 직접 면대했을 때는 필요치 않습니다.

저는 늦은 결혼에 나이 어린 처를 얻다보니 처의 오빠가 2명 있는데 모두 저보다 5~7세가 적습니다. 그런데도 처가에 가면 어른들께서 처남에게 공대하여 형님으로 부르라 하십니다. 처남들은 제게 ‘여보게, 자네’라고 부릅니다. 처가 촌수는 어떻게 되는지요? 저는 촌수란 여자는 남편에 따라 맞추고 남자는 나이에 따라 맞춘다 하였으나 처가에서는 어디 그런 법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처남에 대해서는 자기 처의 자매관계에 구애됨이 없이 연령에 따라 대접하고 나이 어린 처남이 처의 위라 할지라도 처남으로 호칭할 뿐이지요. 형님이라고는 안합니다.

직계에 자기 처(妻)도 들어가는지요? 그리고 누님의 남편은 자형인가요, 매형인가요?
직계에 자기 처는 배우자로서 당연히 들어갑니다. 그리고 누님의 남편은 자형이 맞습니다.

자기보다 항렬이 높은 사돈의 칭호는 무엇입니까?
항렬이 높은 사돈의 칭호는 ‘사장(査丈)어른’입니다.

저의 손위 시누이의 남편에 대한 호칭관계를 질의합니다. 고모부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어색한 것 같고 손아래 시누이 남편에 대한 호칭처럼 ‘○서방’이라 부르면 안되는지요?
손위 시누이 남편이라도 ‘○서방’이라고 하고, 당사자 앞에서 직접 부를 때는 ‘님’을 붙여 ‘○서방님’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고례에는 처남댁과 시누이 남편 사이는 엄격한 내외가 있었으므로 서로간에 직접 부를 일이 없었는데, 요사이는 서로 부를 경우가 많은 데서 호칭의 혼란이 야기됩니다. 궁여지책으로 고모부라고 부르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고모부란 자기의 자녀가 부르는 호칭이므로 바른 호칭이 아닙니다. 물론 시누이 남편을 자기의 자녀에게 말할 때는 ‘너의 고모부’라고 해야 합니다.

여동생의 남편이 저보다 나이가 두 살 많습니다. 서로 어떻게 불러야 하고 말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사위에게 있어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일 뿐이고 기타는 일반 사회적 관계입니다. 귀하의 경우 손아래 매부라고 하여 반말을 하자니 매부가 나이가 많고, 존대를 하자니 손아래로 역시 난처할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배우자의 친척과 나의 관계는 배우자의 관계로 설정됩니다. 손아래 매부와 손위 처남은 남매간이지만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일 뿐이라는 전제로 그냥 친구입니다.
그리고 나이 차가 두 살이고 하니 ‘자네’, ‘○서방’이 호칭이고, ‘하게’의 말씨를 서로 쓰면 됩니다.

호칭에 있어서 ‘이숙’, ‘고숙’이라는 말이 있는데 누구를 칭하는 것입니까?
‘이숙(姨叔)’이란 이모부를 뜻하고 ‘고숙(姑叔)’은 고모부를 뜻하는 호칭으로 주로 편지글에 사용하며 부를 때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38세의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대단히 궁금한 점이 있어 두서없이 몇 자 올립니다. 드릴 말씀은 저는 다섯 번째 사위인데, 넷째 사위가 저보다 다섯 살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형님이라 불러 달라고 하는데 이치에 맞는지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자 손위 동서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 전통예절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속담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위에게 있어 처가의 어른은 아내의 직계존속뿐입니다. 기타의 아내 친척은 모두 사회적 사귐이지 서열을 따져서 위계질서를 지키지 않습니다. 처남이나 처형, 처제의 남편인 동서들과는 아내와의 관계에 따라서 ‘형님’, ‘동생’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대접합니다.
질문자의 경우 다섯 살 어린 손위 동서와는 당연히 벗을 터서 친구같이 지내야 합니다.

고종사촌 동생의 장인에 대한 칭호는 무엇입니까?
결국 사돈간이며 자기보다 항렬이 높으니 ‘사장(査丈)어른’이라 하면 됩니다.

형제간의 호칭에 대하여 이견이 있어서 문의하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5형제 중 막내 아들입니다. 저의 소생들이 맏삼촌을 호칭할 때는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셋째 큰아버지, 넷째 큰아버지라고 호칭하는 것과 맏삼촌만 큰아버지라고 부르고 그 밑의 삼촌들은 둘째 작은아버지, 셋째 작은아버지, 넷째 작은아버지 등 어떻게 불러야 올바른 호칭인지요?
아버지 형제간의 호칭법에 있어서 가장 큰 형님만이 큰아버지의 호칭으로 불리고, 그 동생들은 둘째아버지, 셋째아버지, 넷째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리고 막내만이 작은아버지로 불리는 것입니다.

처남(妻男)의 아내에 대한 호칭에 있어서 ‘처수(妻嫂)’라고 하거나 ‘처남(妻男)의 댁(宅)’이라고 하는 등 논쟁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요?
‘처수(妻嫂)’라는 칭호는 없고 처남의 댁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 자매의 배우자 칭호◆
아주머니, 형수님 : 시동생이 형의 아내를 부를 때
아주미, 아지미 : 집안 어른에게 형수를 말할 때
형수씨 : 남에게 자기의 형수를 말할 때
제수씨, 수씨 : 동생의 아내를 직접 부를 때
제수 : 집안 어른에게 제수를 말할 때
제수씨 : 남에게 자기의 제수를 말할 때
언니 : 시누이가 오라비의 아내를 부를 때
올케, 새댁, 자네 : 시누이가 남동생의 아내를 말할 때
○○댁 : 집안 어른에게 남동생의 아내를 말할 때
매부 : 누님의 남편을 부를 때와 자매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
자형, 매형 : 누님의 남편을 부를 때와 남에게 말할 때
○서방, 자네 : 누이동생의 남편을 부를 때
매제 : 누이동생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
형부 : 여동생이 여형의 남편을 부를 때와 말할 때
○서방 : 여형이 여동생의 남편을 부를 때

평상시에 ‘이(李) 생원, 박(朴) 생원’하는 호칭을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호칭을 부르는 것이 망발인지 아니면 존칭인지를 해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생원이란 조선조 때의 과거제도의 하나로 생원시를 시행하여 그 합격자를 일컫는 말인데, 진사와 더불어 성균관에 입학하는 자격 및 하급 관료에 취임하는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입니다. 즉 생원은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선비로서의 사회적 직위를 공인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후에는 나이 많은 선비를 부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생원시라는 과거제도가 없으므로 생원이라는 어휘는 부르는 어감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학식 높으신 어른을 존칭하는 말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몇 해 전인가 KBS 1-TV 시청 중 처남의 며느리에게 존대하는 장면이 나오기에 처음으로 알게 되어 이 예법을 주위 여러분들에게 말했더니 하나같이 그런 法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으면서 틀린 말이라고 합니다. 처남의 며느리에게 존대하여야 옳은지요.
처남의 며느리라 하면 자기에게는 처질부(妻姪婦)로서 아래 행렬(行列)이므로 공대(恭待)는 아니합니다. 연령적으로 차이가 심할 때는 하대(下待)는 하지 않고 ‘하소’체로 할 수 있습니다. 누이의 며느리는 생질부(甥姪婦)로서 처질부(妻姪婦)의 경우와 같습니다.
◆ 처가(妻家) 가족에 대한 칭호◆
장인 어른, 장모님 : 아내의 부모를 부를 때
빙장, 빙모 : 아내의 부모를 남에게 말할 때
처남댁 ○○어머님 : 처남댁을 부를 때
처형, ○○어머님 : 처형을 부를 때
처제, ○○어머님 : 처제를 부를 때
처남, 자네 : 손아래 처남을 부를 때
기타 처가 가족의 호칭은 사회적인 호칭으로 한다. 아내의 직계 존속과 부인들을 제외한 남자는 사회적 사귐이기 때문이다.

소생은 자식 3명을 혼인시킨 후에 장남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남과 3남은 같은 시내에서 자녀 2명씩을 출산하여 각각 거주하고 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2남과 3남의 자녀들은 장남에게 큰아버지로 호칭하고 있으나 3남의 자녀는 2남에게 큰아버지 또는 작은아버지 등 어떠한 호칭으로 해야 하는지요? 혹자의 말에 의하면 큰댁은 하나인데 큰아버지는 안되고 작은아버지로 호칭해야 한다고 하며, 또 혹자는 3남의 자녀는 위로 두 분 다 자기의 부모보다 윗분이니 큰아버지로 호칭해야 한다는 등 각각 해석이 틀리니 교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형제에 대한 호칭에는 한자어로 백부(伯父), 중부(仲父), 숙부(叔父), 계부(季父) 등이 있습니다. 귀하의 질문의 요지에 있어서 3남의 자녀가 2남에게 부르는 호칭으로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 둘 다 해당이 안됩니다.
한자어로 중부(仲父)라고 하며 부를 때는 둘째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요즘 형님이라는 호칭에 대해서 궁금증이 많아 졌습니다. (1) 손위 처남에게 매제가 부르는 정확한 호칭과 형님이라는 호칭이 맞는지, (2) 손아래 매제에게 손위 처남이 부르는 호칭, (3) 친동서(남자)들 사이에 서로 부르는 호칭, (4) 자매 사이에 언니의 남편이 나이가 적고 동생의 남편이 나이가 많을 때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1) 처남에 대한 호칭에는 손위나 손아래에 따른 별다른 호칭은 없고 연령이 많을 때만 호형(呼兄)하는 것입니다. (2) 손아래 매제(妹弟)에게 손위 처남이 부르는 호칭은 ‘매제(妹弟)’ 또는 ‘매부(妹夫)’입니다. (3) 친동서 사이는 서로 동서로 부르며 맏동서 등 차례에 따라 부르는 것도 좋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간과 같습니다. (4) 동서간은 3항과 같은 사이입니다. 동서간을 친구로 보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성씨(姓氏)를 남에게 말할 때와 자기의 성(姓)을 남에게 말할 때 어떻게 합니까?
모친 성(姓)을 남에게 말할 때 어느 성씨라 하고 자기의 성을 남에게 말할 때는 무슨 ○가라 합니다. 그러나 문중 성씨를 말할 때는 ‘씨’자를 써야 합니다.

남자 동서간에도 처의 형제 서열에 따라 형님, 동생할 수 있는지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친하게 지내며 연치가 높으면 경칭을 써야 합니다.

여동생의 남편이 나보다 두 살 아래입니다. 어떠한 호칭이 좋을까요?
‘매제’나 ‘매부’라 하면 좋습니다. 남매간에는 친구처럼 지내면 좋습니다.

흔히 ‘직계존속’, ‘비속’하는데 그 뜻은 무엇이고, 할머니의 둘째 아들 손인데 그 할머니는 직계가 되는지요?
‘지계존속(直系尊屬)’이란 조상으로부터 직선적으로 계속하여 자기에 이르는 사이의 혈족으로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입니다.
‘직계비속(直系卑屬)’은 자기로부터 직선으로 내려가서 후예에 이르는 사이의 혈족으로 아들, 딸, 손자, 증손, 현손 등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둘째 아들의 손으로 그 할머니는 직계가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나의 할머니의 직계입니다. 직계는 자손, 자기, 부모, 조부이며, 방계는 삼촌, 사촌 등으로 계통이 갈라져 생기는 혈통을 말합니다.

누이동생의 남편 되는 사람의 적당한 호칭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누이동생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는 ‘매제’라하고, 누이동생의 남편을 부를 때는 성씨(姓氏)를 넣어 ‘○서방’. 또는 ‘자네’라고 합니다.

장인이 사위를 부르거나 찾을 때 적정한 호칭은 무엇인지요?
성씨(姓氏)를 앞에 붙여 ‘○서방’ 또는 이름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자기 남편을 다른 사람에게 호칭할 때 경어를 써야 하는지요?
경어로 호칭해야 합니다. 가문을 대표하는 사회적 신분으로 스스로 존경받아야 할 존재이며, 자녀에게는 다시없는 귀한 분으로 그 남편이 존경받아야 그 아내도 존경되며, 남편도 그 아내를 호칭할 때 경칭을 써야 함은 이치가 같습니다.

시동생이 장가를 갔는데 부를 호칭과, 남편의 형님에 대한 적정한 호칭을 알려 주십시오.
시동생이 장가 갔을 경우는 ‘서방님’이라 부르고, 남편의 형님을 부를 때는 ‘아주버님’이라 하고, 남편의 형님을 남에게 말할 때는 ‘시숙’이라 합니다.

사촌 형님을 제 아들이 무엇이라 호칭하며, 제 아내의 이모부를 제가 무엇이라 호칭하는지요?
‘아저씨’나 ‘당숙’이라 부르고, 아내의 이모부는 ‘처이모부’입니다.

자기 남편을 호칭할 때 ‘아빠’ 또는 ‘아저씨’하는데 선도할 방법은?
젊은층의 분별없는 호칭 버릇입니다. 가정, 사회, 언론에서 계속적으로 계도하고 학교에서 생활예절의 일환으로 교육하며, 차세대 교육차원에서 범국민적으로 관심을 갖고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의 자부에게 대한 말씨를 알고 싶습니다.
친구의 아들은 말을 놓을 수가 있으나 그 자부는 보통 사이가 아니면 아랫사람이라도 대접해야 하는 상대에게 쓰는 말씨인 보통 말씨(하게)를 쓰면 됩니다.

시아버님께 며느리의 자칭과, 남편을 칭할 때 적절한 호칭을 알고 싶습니다.
자칭은 ‘저요’, 또는 ‘몇째예요’, 자식이 있으면 ‘○○에미’라 하면 되고, 남편을 지칭할 때는 사랑 또는 ‘○○애비’라고 칭합니다.

아내의 오빠가 나보다 나이가 적습니다. 손위 처남이나 나이가 적으면서 나이 많은 매제에게 ‘해라’ 등 하대를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처남과 매부지간에는 서로 경칭으로 친할 뿐 형, 아우의 개념이 없습니다.

친구가 혼인한 후 그 부인에게 어떻게 불러야 되는지요?
친구의 부인을 그대로 ‘부인’이라 부르는데 젊은이 정서로 보아 ‘아주머니’라 하든지, 친구도 나이가 많으면서 형·아우를 가리는 사이면 ‘형수’라는 칭호도 무방합니다.

78세된 아저씨 항렬을 가진 사람으로서 80세된 조카 항렬을 가진 분에게 적당한 호칭은?
당내 집안이 아닌 듯합니다. 연갑 사이인데 친해지면 ‘아저씨’, ‘조카’도 좋겠지만, 사회적 체면이 있는 사이면 서로 ‘족장’이라 하면 좋습니다.

손위 처남에게 형이라 불러도 되는지요?
처남, 매부로 정다운 사이나 형이나 아우니 하지는 않습니다.

자부를 본 후 딸의 남편(즉 사위)에 대한 적정한 호칭을 알고 싶습니다.
자부는 아들의 아내이고, 사위는 딸의 남편이니 남매사이입니다. 자부는 남편 형제에게 서방님이라 호칭하니 자연히 시누이의 남편도 성을 붙여 ‘○서방님’이라 하면 됩니다.

<복 식>

   한복을 입고 외출할 때나 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할 곳에서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초에 웃어른에게 세배를 할 때는 두루마기를 입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벗고 해야 하는지요?
   논의가 구구합니다만 두루마기는 일반인의 예복이므로 室內外를 막론하고 다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女子의 두루마기는 방한용이지 예복이 아니므로 실내에서나 의식에서는 벗어야 합니다.

   부모 사망시 남좌여우(男左女右)로 부사망시(父死亡時)에는 오른쪽 두루마기 팔만 끼고 왼팔 두루마기 소매는 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지요? 그리고 부모사망(父母死亡)시에 시신 머리쪽에서 조객(弔客)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맞는지요?
   성복(成服: 죽은이의 근친들이 각기 정한 상복을 입고, 상복을 입은 복인(服人)끼리 죽음을 슬퍼하는 조상(弔喪)을 하며 손님의 조문을 받는 데까지의 절차) 前에는 ‘삽임(揷 )’이라 하여 남자 자손이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을 때 아버지의 喪에는 왼쪽 소매, 어머니의 喪에는 오른쪽 소매에 팔을 꿰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제는 조객의 조문을 받을 때 동쪽에서 서서 조문을 받습니다. 시신의 머리를 동쪽으로 모시기 때문에 시신의 머리쪽에 서서 조문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현재 문묘 출입의 모든 의식이 남자 중심(男子 中心)으로 되어 있는 바 이번에 여성유도회가 조직되어, 여성이 의식에 참여할 경우 복식착용, 헌관 가능여부, 몇 번 절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여성도 의식에 참여하여 분향할 수 있고 제관도 할 수 있습니다. 복식은 궁중내명부의 예복인 당의(唐衣)·원삼에 민족두리, 평복일 경우에는 옥색 치마저고리를 착용합니다. 여성은 음에 해당되므로 기본적인 수가 2이므로 남자가 4배(拜)할 때는 8배이나, 과다하니 4배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문묘나 서원 또는 가정제의 행사 때 한복 정장을 갖추지 못하고 양복만을 입고 참사하는 경우, 유건을 써야 옳은지 안써야 옳은지 의견이 구구하니 통일된 견해의 회답 바랍니다.
   유건은 유생들이 쓰던 검은 베로 만든 예관(禮冠)으로 도포를 입을 때 쓰던 것입니다. 현재도 도포를 입을 때 쓰는 것으로 유가(儒家)의 예복입니다. 귀하의 질문, 즉 문묘나 서원 또는 가정제의 행사 때 양복만 입고 참사하는 경우 유건을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즉 유건은 도포를 입는 경우에 쓰는 건입니다. 양복 위에 갓을 쓰는 것과 같아 제격이 아닙니다.

   군수, 군의회 의장, 지방대표 유지 세 분이 제관이 되어 제천행사를 할 때 착용하는 관, 복장, 요대, 그리고 가슴과 등 부분에 수놓아진 문양 형태, 버선과 신발 등에 대한 색상 및 제작모형도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 분이 각각 다른 규격과 색상을 갖추어야 하는지 아니면 복장을 통일해도 좋은지요?
   제사(祭祀)를 지낼 때 제관(祭官)의 복식(服飾)은 제사를 지내는 대상에 따라 다릅니다. 나라에서 주관하는 제사(사직대제(社稷大祭), 문묘대제(文廟大祭), 선농제(先農祭), 선잠제(先蠶祭), 산천(山川)에 대한 제사 등)에는 제관의 복식은 금관제복(金冠祭服)을 착용(着用)하고, 일반(一般) 서원(書院), 사우(祠宇)의 제정(祭享)에는 유건도복(儒巾道服)을 착용합니다. 그러나 귀(貴) 군(郡)에서 주관하는 순국선열(殉國先烈)에 대한 祭祀에 군수가 참여한다면 관복(官服)을 입어야 합니다. 즉 군수(郡守)는 공직에 있는 자로 공복(公服)인 관복(官服)을 입는 것입니다. 관복(官服)을 입을 때는 사모(紗帽)를 쓰고 대(帶)를 띠고 목화(木靴)를 신는 것입니다. 군수(郡守)는 종4품(從4品)에 해당되므로 관복(官服)은 청포(靑袍)로 하고 가슴과 등에 다는 흉배(胸背)는 단학흉배(單鶴胸背, 학이 한 마리 수놓아진 흉배)이고, 대(帶)는 흑각대(黑角帶)이며, 홀(笏)은 상아홀(象牙笏)을 사용합니다. 버선은 흰색이고 목화(木靴)는 흑색(黑色)입니다.

   금관제복(金冠祭服)이란 금관(金冠)제복과 사모관대(紗帽冠帶), 유건도복(儒巾道服) 등 3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착용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요?
   금관제복(金冠祭服)은 군주(君主)의 제례 때 군신지예(君臣之禮)로서 헌관이하 제관들이 착용합니다. 석전 때 헌관이 금관제복을 착용하는 것은 공자(孔子)를 왕(王)으로 보아 군신지예(君臣之禮)로 착용하는 것이고, 유생(儒生)들은 孔子를 스승으로 보아 사제지예(師弟之禮)로 유건도복(儒巾道服)을 착용합니다. 관복(官服)은 예전 관직의 평상집무복이며 평상시 예복으로도 대용(代用)합니다. 유건도복(儒巾道服)은 우리 유교의 상징적인 복식(服飾)으로 선비들의 예복이므로 각종 의식 때 많이 착용합니다. 각종 문화행사 때는 유건도복(儒巾道服)을 하는 것이 옳으며 왕에 대한 의식일 때는 금관제복이나 관복을 착용합니다. 또한 전통혼례식에서 신랑 신부에게 관복과 궁중의 의상을 입도록 하는 것은 평생에 단 한 번 입는 것으로서 은혜를 베푼 것이라 합니다.

<수연례>

  육순, 칠순, 팔순 잔치를 할 때의 나이는 몇 살 입니까? 그리고 회갑 때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육순, 칠순, 팔순의 나이는 세는 나이로 계산됩니다. 즉 육순은 세는 나이로 60이고, 칠순은 세는 나이로 70, 팔순은 세는 나이로 80입니다. 그리고 회갑은 자기가 태어난 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니 만으로 60세인 것입니다.

  한국 사람 연령 중에서 77세는 희수(喜壽), 88세는 미수(米壽), 90세는 졸수(卒壽), 99세는 백수(白壽)라 한다는데 희수(喜壽), 미수(米壽), 졸수(卒壽), 백수(白壽)란 문구의 뜻을 몰라서 그러니 그 뜻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희수(喜壽)는 77세의 생신을 말하는데  ‘희(喜)’자를 초서로 쓰면 칠십칠(七十七)이 되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미수(米壽)는 88세의 생신을 뜻하며, ‘미(米)’자가 팔십팔(八十八)을 뒤집고 바르게 쓴 데서 유래되었으며, 90세의 생신을 졸수(卒壽)라고 하는 것도 역시 ‘졸(卒)’자가 초서로 쓰면 구십(九十)이라 씌어지는 데서 졸수(卒壽)라 하는데 졸(卒)이란 끝나다, 마치다의 뜻이므로 그만 살라는 의미가 되어 자손으로서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99세의 생신을 백수(白壽)라 하는데 여기서 ‘白’자에서 一(하나)을 뺀 글자이기 때문에 99세를 白壽라고 하는 것입니다.

  회갑 때나 제사 때 절은 몇 번 해야 되는지요? 회갑 때 보니까 3번 절을 하는데 맞는지요?
  회갑 때나 제사 때 공히 남자는 재배(再拜), 여자는 사배(四拜)를 합니다. 즉 이 절의 횟수는 음양의 이치에 의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양(陽)이기 때문에 최소 양수인 한 번, 여자는 음(陰)이기 때문에 최소 음수인 두 번이 기본 횟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집안의 큰 의식행사인 관혼상제례 때, 수연례 때는 기본 횟수의 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갑 때나 제사 때 남자는 재배(再拜), 여자는 사배(四拜)를 하는 것입니다.

  환갑 때 아들, 며느리가 절을 하는데 남, 녀 공히 두루마기를 입고 절을 해야 되는지요?
  남자의 경우에는 예복이 두루마기까지 입는 것으로 당연히 두루마기를 입고 절을 하는 것이고, 여자의 경우 두루마기는 방한복이지 예복이 아니기 때문에 두루마기를 벗고 절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오래 전 운명하신 모친(母親)의 회갑이 당도하는 바 사모하던 어머님을 생각, 경건한 마음으로 회갑 준비를 하고자 하였는데 주위의 의견이 분분하여 ‘죽은 사람의 회갑은 생략하는 것이 원칙’, ‘허례허식’이라는 등 차리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타당한지요?
  사자(死者)의 회갑을 통칭, ‘사갑(死甲)’이라 하여 추모하는 뜻의 행사가 있습니다. 축하의 뜻보다는 추모의 심정의 표현이며 ‘사사여사생(事死如事生)’한다는 효심에서 우러난 회갑상을 차리고 헌작을 하는 바 생신(生辰) 날 아침에 봉행하고 인근 친지들에게 청첩도 합니다. 따라서 사진이나 지방을 모시고 제례에 의해 헌작은 가족이 전원 단작으로 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회갑(回甲)을 맞이하였는데 회갑 당사자의 父母가 살아계십니다. 회갑 당사자가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되는지요?
  먼저 회갑 당사자가 부모님께 술을 한 잔 올리고 절을 한 다음 자손들의 헌수를 받습니다.

  혼례(婚禮) 때 시부모님께 폐백을 올릴 때나 부모님 회갑 잔치에서 헌수(獻壽)할 때 부모의 위치는 자녀를 향하여 男左女右인지 그 반대인지요? 그리고 서모(庶母)의 제사는 적자(嫡子)와 서자(庶子) 중 누가 제주(祭主)가 되어야 하며, 庶子가 없을 때는 嫡子가 제사를 올려야 하는지요?
  현구고례 때의 앉는 위치는 시아버지가 동쪽이고, 시어머니는 서쪽이며, 수연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자 어른이 동쪽이고, 여자 어른이 서쪽입니다, 그러니 자녀를 향하여 男左女右가 되는 것입니다. 庶母의 제사에 있어서 庶母가 정식으로 혼인하여 호적에 있는 경우에는 嫡子가 祭主가 되어야 하나, 庶母가 정식 혼인이 아닌 妾인 경우는 庶子가 되어 祭祀를 지내야 합니다. 만일 庶子가 없는 경우에는 嫡子가 지내도 무방합니다.

  진갑이 환갑 다음 해입니까? 아니면 전 해입니까?
  진갑은 다시 60갑자가 펼쳐져 진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환갑 다음 해의 62세 때의 생신인 것입니다.

  70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80세, 90세, 91세는 무엇이라 합니까?
  70세는 고희(古稀)라 하며, 80세는 팔순(八旬), 90세는 구순(九旬), 91세는 망백(望白)이라 합니다.

  환갑의 연치와 칠순의 연치는 얼마인가요?
  환갑은 61세(만60세)되는 해 생일이고, 칠순은 70세 되는 해를 말합니다.

  부모 수연잔치에 헌수배례할 때 남자는 재배, 여자는 사배하는 것이 원칙이나 부모님께서 단배로 하라 하시는데 어떠할지요?
  괜찮습니다. 받으실 분이 정하신 것이니 후손으로서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자손 교육상 반드시 설명이 있은 후 행하십시오.

  연치 70세, 80세, 90세 되는 분의 의례용어를 알고 싶습니다.
  70세는 고희(古稀), 80세는 팔순(八旬), 90세는 구순(九旬)이라 합니다.

  별세하신 분의 환갑을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사갑(死甲)’이라 하며 생일 아침에 상을 차려 제사 형식으로 자손들이 지냅니다.

  77세를 희수라 하는데 ‘희’자를 어떻게 쓰는지요?
  ‘喜’字를 씁니다. ‘기쁠 희(喜)’, 목숨 수(壽)‘로 ’희수(喜壽)‘라 합니다.

  진갑은 몇 살이며 무슨 자를 쓰는지요?
  진갑은 62세이며 ‘나아갈 진(進)’과 ‘첫째천간 갑(甲)’字를 써서 ‘진갑(進甲)’이라 합니다.

  88세, 99세를 무엇이라 합니까?
  88세는 미수(米壽)라 하며, 99세는 백수(白壽)라고 합니다.

<혼 례>

   딸의 혼인(婚姻) 날짜를 정한 후에 부모의 제사가 돌아와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괜찮은지요? 특히 딸애도 같이 참례(參禮)시키려고 합니다. 누구는 혼사를 앞두고 제사를 안지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
   혼인 예식의 절차에 보면 신랑의 사주를 주고받을 때, 그리고 신부 댁에서 택일을 하여 주고 받을 때, 혼인하는 날의 아침 등에 신랑집이나 신부집이 모두 조상에게 고하는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의 절차는 명절 차례 지내듯이 조상에게 고하는 것인데 혼인 날짜를 정했다고 조상의 기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정성들여 조상을 받드는 기제사나 차례를 지내야 합니다.

   납폐시(納幣時) 혼서지(婚書紙)에, ‘후인(后人)’이라 되어 있는데 무슨 뜻인지요?
   ‘후인(后人)’이란 후세의 사람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본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경주 이씨면 ‘慶州 后人 李○○’라고 쓰면 됩니다.

   폐백을 드릴 때 신부만이 절을 하는지요? 그리고 형제 항렬이면서 손위의 경우는 상석(上席)(남향)에 앉게 하고 절하는지요?
   현구고례(폐백례)에서는 원칙적으로 며느리가 시부모를 뵈며 폐백을 올리는 예(禮)이기 때문에 신부만 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가 신랑의 형과 형수에게 절을 할 때는 형과 형수가 동쪽에서 서향하고, 신부는 서쪽에서 동향해 서서 평절로 정중히 맞절을 하는데 신부가 먼저 시작해 늦게 끝나고 형과 형수는 늦게 시작해 먼저 끝냅니다. 전화질의

   혼서지 쓸 때 ‘후인(后人)’이란 무슨 뜻인지요?
   조상에 대한 후손이란 뜻으로 본관을 앞에 넣고 쓰는데, 예로서 전주 이씨면 ‘전주 후인’이라 씁니다.

   전통혼례 때 신랑이 신부 댁에 가서는 손님이 되니 서쪽에 서야 맞지 않는지요?
   대례에 임해서는 신랑은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서동부서(壻東婦西) 원칙에 따라 동쪽에 서야 합니다.

   자식을 장가들이는데 납폐(納幣)의 예제를 알고 싶습니다.
   예물 물목을 쓰고 함에다 예물별로 포장해서 넣은 뒤 그 위에 물목을 얹어 함을 싸서 전하며, 혼서 편지를 같이 보냅니다.

   전통혼례 초례상에 꿩을 사용하였다는데 무슨 연유가 있는지요?
   꿩을 사용했다는 말은 있으나 지금은 닭을 많이 쓰는데 닭이나 꿩이 사람과 가까이 있는 동물로 친근함을 표시하고, 자웅은 남녀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약혼한 여자가 남자의 부모에게 인사를 드릴 때 갖추어야 할 예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단정한 차람에 화장을 옅게 하고 약혼 남자와 함께 집에 도착한 후 약혼 남자의 안내로 그 아버지께 먼저 한 번, 그 어머니께 한 번 절을 한 후(부모에게 한꺼번에 한 번만 할 수도 있음) 다시 무릎을 꿇은 채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드린 후 ‘편히 앉아라’라시면 편히 앉은 채 어른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음 안내대로 따르면 됩니다.

   자녀 혼사 택일을 받으면 조부모의 기제를 지낼 수 없는지요?
   집안에 혼사 날이 잡혔으면 일부러라도 먼저 조상님께 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 됩니다.

   폐백(현구고례) 드릴 때 신랑도 같이 절을 하는지요?
   폐백은 새로 시집온 신부가 시부모에게 인사드리는 것으로 신랑은 신부를 인도한 후 옆에 물러나 있는 것이나, 요즘은 부모 품을 떠나 직장생활 등으로 친면(親面)할 기회가 적은 점으로 보아 같이 절을 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상 례>

   사람이 죽었을 때 자손들이 '아이고'함은 애(哀)로 아오나 제3자들은 '어이-'하고 곡(哭)을 하는데,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알고자 문의합니다.
   사람이 죽어 곡(哭)을 할 때 '아이고'라 함은 自己의 직계존속(直系尊屬)에게 할 수 있는 哭으로 한자로는 '애고(哀孤)'라고 쓰고 이것은 고애자(孤哀子)에서 유래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외의 경우에는 '어이-'하는 곡(哭)을 하는데 한자(漢字)로는 '여의'라고 씁니다.

   (1) 초상시(初喪時) 시체(屍體)를 입관후(入棺後) 성복시(成服時) 성복 축문(祝文)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문(禮文)을 보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祝文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2) 상여(喪輿)가 출발시(出發時) 발인제(發靷祭)를 지낼 때 그 절차법을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3) 세월이 변천함에 따라 사망후(死亡後) 백일제나 49재로 탈복제(脫服祭)를 지내는 예가 많습니다. 백일 사십구제 탈복제 축문(百日 四十九齊 脫服祭 祝文)을 알려 주십시오. (4) 묘제시(墓祭時) 산신제(山神祭)를 먼저 지내는 데가 있고 묘제(墓祭)를 지내고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데가 있는데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요? (5) 산신제(山神祭)에는 분향(焚香)을 안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1) 성복례(成服禮)란 주상, 주부 이하 모든 복인들이 슬픔에 젖어 아직 서로 조문하지 못했으므로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고 각기 정한 상복을 입은 뒤에 서로가 복인(服人)이 된 것에 대해 인사하는 예(禮)이지, 죽은 이에게 제사 지내는 성복제(成服祭)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복례(成服禮) 때는 축문(祝文)이 있을 수 없습니다.
(2) 발인(發靷)의 절차는 상여(喪輿, 또는 영구차)앞에 영좌를 설치하고 차례를 지낼 때와 같이 상을 차리고, 주상 이하 모두가 정한 자리에 선 다음 집례가 술을 따르고 아뢰는 것입니다.
(3) 현재 가정의례준칙에는 백일탈상(百日脫喪)으로 나와 있고 49재는 유교의 제사가 아니라 불교(佛敎)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므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백일탈상(百日脫喪)을 할 경우에는 대상축문(大祥祝文)에서 '엄반대상(奄反大祥)'을 '엄반탈상(奄反脫喪)'으로 고쳐 쓸 수밖에 없습니다.
(4) '산신제(山神祭)'란 산소에 가서 묘제(墓祭)를 지낼 때, 또는 산역(山役)을 할 때에 그 묘소를 무사히 보살펴 주십사 하는 기구(祈求)로 그 토지를 주관하는 토지지신(土地之神)에게 지내는 제사입니다. 묘제와 산신제 중 어느 것을 먼저 지내는가 하는 문제는 각 문중마다 서로 다릅니다. 어느 문중은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또 다른 문중은 묘제를 먼저 지냅니다. 그러나 산신제란 조상의 묘소가 있는 토지를 주관하는 신에 대한 제사이므로 산신제를 먼저 지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5) 산신제에서 분향(焚香)을 안하는 이유는 원래 향(香)을 사르는 것은 상천(上天)에 계신 신령이 신위에 임하기를 인도하는 절차인데 토지(土地)의 신(神)은 지하에 계시지 하늘에 계실 까닭이 없다고 여겨서입니다. 따라서 분향은 하지 않고 강신뇌주만 하는 것입니다.

   (1) 발인제 지낼 때 발인축을 독축합니다. 축문 끝부분에 '영결종천(永訣終天)'이라고 하는데, 어느 문중은 남편이 살아 있는 상태의 부인상에는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요? (2) 상여 앞이나 뒤, 널판에다 '(아)亞'자를 지어 들거나 달아매고 가는데 그 '亞'자가 무슨 뜻이고 그 유래가 무엇인지요?
   (1) 발인(發靷) 축문(祝文) 끝에 '영결종천(永訣終天)'이라 하지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남편이 살아 있는 상태의 부인 상(喪)에는 쓰지 않습니다. '昊天罔極'은 父母의 기일제사(忌日祭祀) 祝文에 쓰고, 조부모(祖父母) 이상에는 ‘불승영모(不勝永慕)'로 쓰고, 아내에게는 '불승비염(不勝悲念)'이라 쓰고, 방계친족 기타에는 '불승감창(不勝感愴)'이라고 씁니다. (2) '亞'자 형상을 그린 널판을 '운아삽(雲亞 )' 또는 '운불삽(雲 )'이라 하며 운삽과 불삽으로 나눕니다. 운삽(雲 )은 발인(發靷)할 때에 영구(靈柩) 앞 뒤에 세우고 가는 구름 무늬를 그린 부채 모양의 널판이고, 불삽( )은 발인(發靷)할 때 상여(喪輿)의 앞뒤에 들고 가는 제구(祭具)로 亞자 형상을 그린 널판에 긴 자루가 달렸습니다.

   (1) 세일사(歲一祀) 홀기(笏記)에 대하여, 초·아·종(初·亞·終) 헌관(獻官)이 三人 이온데 초헌례(初獻禮)에 祝文과 같이 ‘기대조(幾代祖) 신위(神位)'라 창홀(唱笏)하고 아헌관(亞獻官) 위주로 '기대조고(幾代祖考) 신위(神位)'라 창홀(唱笏)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제주(祭主)가 초헌관이니 초헌관 위주로 창홀해야 하는지요? (2) '제(祭)'字와 '사(祀)'字의 구분이 어떻게 다른지요? (3) 가묘(家廟)에 神位 봉안(奉安)함에 位의 위패(位牌)도 명봉(各奉) 아니면 동일한 位牌에 병서(竝書)하는지요?
   (1) 세일사(歲一祀) 홀기(笏記) 등 모든 홀기(笏記)와 축문(祝文)은 초헌관인 제주(祭主) 위주로 작성되고 창홀(唱笏)합니다. (2) '제자(祭字)'와 '사자(祀字)'는 같은 뜻입니다. 관례에 따라 '제자(祭字)' 또는 '사자(祀字)'를 쓸 수 있으나 그뜻은 같습니다. (3) 제주(題主, 신주(神主)에 글씨 쓰는 일)는 돌아가신 후 장례(葬禮)가 끝난 후(성분(成墳)을 마치고 산신제(山神祭)를 지낸 다음에 만들고 봉안(奉安)합니다. 즉 각봉(各奉)합니다. 그러나 개제주(改題主)일 때는 동일한 위패(位牌)에 병서(竝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각처에는 어느 때 어찌어찌하신 충신, 장군, 유명하신 유학자의 사당이 있는데 매년 1회 내지 춘추로 정해진 날에 제사를 올립니다. 그런데 경남, 충남, 경기 지방에 한 곳씩은 참석하여 보았고 이 곳 철원지방의 사우에도 매번 참석하지만 곳곳이 조금씩 다르므로 다음 몇 가지를 알고자 합니다. (1) 변두의 수는 몇으로 해야 됩니까? (2) 삼헌관은 서향립(西向立) 해야 하는지 북향립(北向立)해야 하는지요? 삼헌관은 관복 착용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유건 도포를 착용해야 하는지요?
   (1) 변( )과 두(豆)의 수는 사변사두(四 四豆)로 합니다. (2) 사우에 모신 대상이 군왕(君王)이 아니기 때문에 북향립(北向立)합니다. 그리고 삼헌관의 복식은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직 행정관서의 장이 헌관을 할 경우 가끔 관복을 입는데 그것은 현재의 품계가 있으니 그 품계에 맞는 복식을 입는다는 취지지만, 원래는 모시는 대상에 따라 복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즉 대상이 왕이나 하늘, 땅 등의 천신지신(天神地神)일 경우에는 헌관들의 복식은 금관제복(金冠祭服)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생존중(生存中)인 모친(母親)이 사망(死亡)하였을때 선고(先考)의 묘소(墓所) 옆에 母親의 墓所(雙墳)를 마련할 수 있는지요? 관습상(慣習上) 선산(先山)에는 사망즉시(死亡卽時)의 조묘불가설(造墓不可說)이 의식(意識)되어 문의합니다.
   선산(先山)에 사망(死亡) 즉시의 조묘불가설(造墓不可說)은 전혀 근거(根據)가 없습니다. 모친(母親)이 사망(死亡)하였을 때 선산(先山)에 있는 선고(先考)의 묘소(墓所) 옆에 모친 묘소(母親 墓所(쌍분(雙墳))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부모(父母)님의 60세 정도이시고 자(子)가 30세 정도, 손(孫)이 10세 정도입니다. 부(父)가 생존(生存)하시고 모(母)가 사망(死亡)했을 때 상주(喪主)는 누가 되는지요? 그리고 부음(訃音)을 알릴 때 부고장은 누가 내며, 또 상사 후 인사장을 낼 때는 누가 내는지 궁금합니다.
   父가 생존하고 母가 사망했을 시는 父가 상주가 되고 母가 생존시 父가 사망했을 때는 장자(長子)가 상주가 됩니다. 부고와 인사장은 상주가 내는 것이니 이에 따르면 됩니다.

   형제간의 묘지 배열에 관하여 질의합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합장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십시오.
   (1) 사자이서위상(死者 以西爲上, 죽은 사람은 서쪽이 상석(上席)이다.)이기에 일남(一男)을 가장 서쪽에 모시고, 동쪽으로 가면서 2,3,4,5男을 모시는 방법, 즉 좌(左)로부터 右로의 방향이 맞습니다. (2) 부인(婦人)이 2人인 경우에는 남편을 가장 서쪽에 모시고, 동쪽으로 제 1부인(婦人), 제2부인(婦人) 순으로 모십니다. 부인(婦人)이 1人인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남편을 가장 서쪽에 모시고, 동쪽으로 부인(婦人)을 모십니다.

   조상의 산소에 묘비를 세우려고 하는데 묘비에 남자 조상과 여자 조상을 쓰는 위치에 관해 질문합니다. 일반적으로 지방은 고서비동(考西 東)에 의하여 남자조상은 서쪽, 여자 조상은 동쪽에 쓰는데 묘비에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요?
   산소 앞에 세우는 묘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비석과 표석입니다. 비석의 뒷면에 음기 까지 기록하는 것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종서로 된 문장을 쓸 때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그러므로 비문도 오른쪽에서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으로 남자 조상은 오른쪽에, 여자 조상은 왼쪽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석은 단지 이 산소가 누구의 산소인지를 나타내는 표지석으로 이때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의 방법에 따라 남자 조상은 좌측, 여자 조상은 우측에 쓰는 것입니다.

   예문(禮文)에 있어, 부상(父喪)에는 고자(孤子) 모상(母喪)에는 '애자(哀子)', 부모구상(父母俱喪)에는 '고애자(孤哀子)'를 쓰라고 했는데 父母俱喪이라 함은 부친상과 모친상을 겹쳐 만났을 때라고 믿고 있사온데 요즘 부친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후에 모친상을 당해도 '孤哀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지요?
   부모상을 당했을 때 부상(父喪)에는 '고자(孤子)', 모상(母喪)에는 '애자(哀子)'라 하며 부모구몰(父母俱沒)한 상주는 '고애자(孤哀子)'라 하는바 父母께서 별세(別世)하신 지 오래더라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사우(祠宇)에 위패봉안(位牌奉安)함에 있어 2,3,4위(二,三,四位)가 될 경우 순서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1) 주벽(主壁)을 모실 경우에는 소목(昭穆)으로 모십니다. 즉, 主壁을 가운데 모시고 그 다음 위차(位次)되는 분을 昭(동쪽)에 모시고 , 그 다음은 穆(서쪽)에 모시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位牌를 昭, 穆, 昭, 穆 順으로 모시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군신지간(君臣之間)이나 사제지간(師弟之間)일 경우에 적용됩니다. (2) 또 다른 방법으로 이서위상(以西爲上)으로 位牌를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以西爲上은 서쪽이 높은 자리라는 뜻으로 같은 문인(門人)이나 가묘(家廟)에 4대(四代)까지 조상(祖上)의 위패(位牌)를 모실 때 적용됩니다.

   묘비를 세우는데 묘의 어느 쪽에 세워야 맞는지요?
   집사자(執事者)가 묘(墓)를 향하여 계절(階節) 안으로 오른쪽에 세웁니다.

   하관할 때 홍대라는 나무판자의 호칭이 맞습니까?
   '횡대(橫帶)'라고 합니다.

   49재로 탈상하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49재는 불교의식입니다. 불교에서는 49일째 되는 날에 재를 올리고 탈상을 하니 유교의 탈상의식인 대상의 의식입니다.

   친정 모친상에 유교식 장례를 하고 49재로 탈상하라는 주변 의견에 대하여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49재는 불교식 의제이니 가정의례준치에 나와 있는 100일 탈상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어 산소를 모셨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어머니 상이 나면 다른 곳에 산을 사서 같이 모시고자 하는데 하관시 선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먼저 아버지 산소 앞에서 계묘고사(啓墓告辭)를 하고, 아버지 산소를 파묘해서 유골을 개렴하여 새로 모실 묘지에 모셨다가 광중을 마치면 자손이 올려 바라보는 왼쪽에 먼저 아버지를 모시고, 오른쪽에 어머니를 모시고 난 후 간략한 제수를 차려 계장우제축문(啓葬虞祭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예절입니다.

   초우, 재우, 삼우를 일진에 따라 지내야 한다는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초우제는 장례를 치른 날에 지내고, 재우제는 초우제를 지내고 처음으로 맞는 유일(柔日:일진에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가 드는 날)의 아침에 지내며, 삼우제는 재우제를 지낸 다음 처음으로 맞는 강일(剛日:일진에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이 드는 날) 즉 재우 다음날에 지내는 것입니다.

   모친상중에 100일 탈상을 하고자 합니다. 그 절차를 알고 싶습니다.
   원래는 100일 탈상이 아니고 부재모상(父在母喪)일 경우는 일년상(一年喪)이고 아버지도 돌아가신 경우는 삼년상(三年喪)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현재 가정의례준칙에 보면 100일 탈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0일 탈상을 하실 경우는 100일째 되는 날에 대상제를 지내고, 축문을 대상축문에서 '엄반대상(奄反大祥)'을 ‘엄반탈상(奄反脫喪)'으로 바꾸면 됩니다.

   부친상을 당했는데 삭.망예와 생신이 곧 닥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식'이라 하여 조석으로 생전에 진지드리듯 상을 차려드리는 것이 전례 예법이고, 초하루와 보름은 특별히 안주를 차려 술을 한 잔 드리고 모든 자손들이 산소까지 다녀오는 예법이 있으며, 생신은 상식상을 특별히 차려드리고 모든 자손들이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탈상 전의 삭망 상식을 제사로 보는지요? 절은 몇 번 해야 맞는지요?
   삭(朔)은 매월 초하루, 망(望)은 보름을 말하며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면서 일어나는 현상의 뜻이며 의례를 갖추는 단위로 후한서에서 대부인(大夫人)의 안부를 묻는 제도로 부모 복상에도 그 기간을 원용한 것 같습니다. 제사로 볼 수 있으나 단헌무축이고 절은 재배로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후 탈상 전의 생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탈상 전의 생신은 아침 상식상을 더 차려드리면 됩니다.

   부재모상(父在母喪)에 기년 탈상하려면 소상(小祥) 기일을 어떻게 정해야 되는지요?
   아버지가 계신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1년 만에 탈상을 해야 하므로 죽은 지 10개월 만에 날을 받아 소상을 지냅니다.

   졸곡으로 탈상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졸곡축문(卒哭祝文)에 '효자(孝子)'로 쓴다고 하는데 맞는지요?
   졸곡 때 탈상을 하고자 할 때는 卒哭祝文을 쓰지 말고 탈상축문(脫喪祝文), 즉 대상축문(大祥祝文)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卒哭부터 길사(吉事)라고 보아 '孝子'로 써야 합니다.

   외사촌 동생이 목숨을 잃었는데 조문 예절을 알고 싶습니다.
   분향한 후 추모의식을 묵념으로 하고 절은 하지 않습니다.

   백모님 초상에 조문하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어버이 격이 되시니 영좌에 가면 상제의 안내로 빈소 안에 고인의 얼굴을 보게 할 것입니다. 곡하면서 뵈온 후에 상제와 같이 나와 상사의 협조사항을 협의해야 할 것이고 이미 염습을 한 후라면 곡하면서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린 후 재배하고 상주와 한번 절로 인사하면 됩니다.

   일 년으로 탈상코자 하는데 축문서식과 제례의식을 알고 싶습니다.
   탈상은 대상이니 대상축문을 써야 하고 의식은 전날 저녁때 상식을 올리고 그날 밤 12시를 지나 다음 날 밝기 전 제사와 같이 지내고 복을 벗고 소복한 채 산소에 나아가 성묘하고 마치면 됩니다.

   친구의 아들이 변고를 당하여 문상하려 하는데 하는 의식은?
   지극히 위로해야 하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의례는 손아래 사람이니 분향, 추모 정도로 정중히 하고 절은 하지 않습니다. 그 부형에게 위로를 거듭 하시면 됩니다.

   한시묘제도가 시행될 예정인 모양인데 성균관의 의견은 어떤지요?
   국토의 이용관리라는 대전제하에 국책으로 시행하려 한다면 단계적 수용이 어쩔 수 없을 것이나 현재 국토상 무연고 묘지의 정리 등의 효율적인 국토관리로 타개책이 가능할 것이고, 또한 아직은 국민정서상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모친상의 표식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직장에 근무하고자 하는데 예제상 어떨지요? 그리고 상청을 고향에 모셨고 산소도 모셨기에 토요일마다 내려가 곁에서 거처하려 합니다.
   검은 양복에 상표(喪表)를 부착 착용도 가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정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내려가 산소에서 지낸다고 하는데 경의를 표합니다. 옛날에는 당연히 시묘살이를 했지만 지금은 여건상 어려운 처지입니다. 어려운 여건 하에 매주 토요일마다 내려가 어머니 산소 옆에서 지낸다고 하니 가상합니다.

   출가 1개월 만에 병사한 딸의 장례를 친정 부모주관으로 치르고 우제 및 기타 인정에 맞는 행례를 해도 무방한지요?
   괜찮습니다. 다만 손윗분들의 분향추모는 가능하고, 손아래는 절을 해야 합니다.

   연갑(年甲) 족하초상(族下初喪)에 가서 문상(問喪)하는 격식(格式)을 알고 싶습니다.
   분향(焚香)과 곡(哭)은 하되 절은 하지 않습니다. 상제에게 위로 격려도 可합니다.

   견전예(遣奠禮) 때 고유(告由)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상여 앞에 영좌를 설치하고 차례를 지낼 때와 같이 제수를 진설하고, 주상 이하 모두가 정한 자리에 선 다음 집례가 술을 올리고 축을 읽은 후 상주 이하 극진히 곡하고 재배(再拜)하면 됩니다.

   脫喪 절차와 의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탈상 기일 전날 저녁에 상식을 올리고 손님을 받은 후 그 다음날 아침 해뜰 무렵에 기제사와 같이 차리고 기제사 절차와 같이 지냅니다. 대상을 지내고 난 뒤 상복을 벗고 소복으로 갈아입은 후 산소에 가서 분향, 뇌주 후 재배한 다음 마칩니다.

   석관 장례 때 석관과 시신 사이 공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요?
   깨끗한 흙을 종이에 싸서 채우되 시신이 움직이지 않게 채워야 합니다.

   장례 때 석회를 쓰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석회를 흙에 일정 비율로 배합하여 관 밖에 채우고 덮으면 광중을 튼튼히 할 뿐 아니라 외부의 침해와 나무 뿌리 등의 침범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장례 때 남자, 여자는 서로 어떤 위치가 바른 위치인가요?
   후손은 남자는 우측, 여자는 좌측에 섭니다. 그러나 신위는 자손 입장에서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이 바른 위치입니다.

   상을 당한 상제의 입장에서 친구가 친상을 당했을 때 문상을 해도 되는지요?
   시대의 정서는 생활상으로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부모상을 입고 있는 중에 친구가 친상을 당했을 때 그 친구는 당신의 상에 와서 문상을 하고 도와 준 것을 생각하면 당장 달려가 조문을 하고 싶으나 현재 당신의 입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하니 다른 사람으로 대신 부의나 하고 마음이 허락하면 문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졸곡(卒哭)이 지난 후에는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인사가 부상후(夫喪後) 49재를 사찰에서 거행하면서 사회에 알리려 하는데 보좌인 입장에서 바람직한 보좌하는 의례는?
   초상시(初喪時)에 그 직위(職位)를 세워 조위금(弔慰金)을 받은지 49일 만에 다시 탈상예의 부조(扶助)를 받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삼가는 것이 좋겠고, 아주 가까운 척분이나 친지 정도는 알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제 례>

   저는 몇 해 전 할머님을 여의였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음력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별세하신 날이 공교롭게도 윤5월 초하룻날이어서 제사를 모실 때 음력으로 며칠을 잡아야 하는지요? 어떤 이는 평년의 경우에는 4월30일(5월 초하루 자시)에 제사를 모셔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윤달은 속칭 공달이므로 개의치 말고(5월 본달은 생존하였으므로) 5월 그믐달 밤(6월 초하루 자시)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질의하신 기제일(忌祭日)은 윤5월 초하루라 하셨는바 윤 5월이라도 5월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므로 5월에 기일로 모셔야 합니다. 다시 윤5월이 올 때까지는 본(本)5月 초(初)1日 새벽 자정(子正)이 지난 후 세시(三時) 이전에 지내시면 됩니다.

   여자들도 제사에 참여합니까?
   네, 당연히 합니다. 예서(禮書)에 보아도 주부가 아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차례를 지낼 때 강신례를 하는데 향을 사르고 술을 모사기에 붓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것을 '강신분향(降神焚香)', '강신뇌주(降神 酉)'라고 합니다. 향을 사르는 분향은 향긋한 향을 태워 하늘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의 신령이 향기를 타고 오시라는 상징적인 행사이고, 술을 모사기에 붓는 뇌주는 향기로운 술을 땅바닥에 부어 적셔서 지하에 계실지도 모를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절차인 것입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벌초, 금초를 하는데 금초가 무슨 뜻인지요? 그리고 벌초하러 산소에 가서 인사를 먼저 하는지요? 아니면 벌초를 먼저 하는지요?
   벌초란 무덤의 잡초를 베어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금초도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벌초, 금초(禁草)란 성묘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묘 가서는 먼저 인사를 올리고 벌초를 하는 것입니다.

   기제사를 돌아가신 날 첫새벽(자정이 지난 후)에 지내다가 여건이 맞지 않아 초저녁에 지내려고 하는데 어느 날 초저녁에 지내야 하는지요?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 첫새벽(자정 이후)에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의 경우처럼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 초저녁에 지내야 합니다.

   기제시(忌祭時) 읽는 祝文 중 '모일간지(某日干支)'는 기제일(忌祭日) 당일의 일진인지 忌祭日 다음날(사망일) 일진을 적용하는지 하교하여 주시옵기 바랍니다.
   귀하가 알고 계신 忌祭日이 死亡日 前日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忌祭日은 死亡日 當日 입니다. 祝文에 '휘일부림(諱日復臨,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이란 말이 있듯이 忌祭時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니 祝文 일진(日辰)에는 당연히 돌아가신 날 日辰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기제사일(忌祭祀日)에 대한 문의합니다. 옛날에는 忌日 전날 시작하여 忌日 자정이 지나서 새벽1~2시에 지내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초저녁에 지내니 어느날 초저녁에 지내야 합니까?
   예절문답으로 가장 많은 질문이 오는 것이 忌祭祀日입니다. 귀하가 아마 질문을 하게 된 동기는 전통 예법상 忌祭祀는 돌아가시기 전 날의 밤중에 지내기 시작한다고 생각되니까 초저녁에 지낼 때도 전날 초저녁이 맞다고 생각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제례도 준비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중에 했지만 실제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돌아가신 날의 첫새벽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정적이 초점은 祝文 중에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諱日復臨)'라고 쓴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시는 지내는 시간이 낮이든 밤이든 돌아가신 날에 반드시 지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이 맞습니다.

   신문 등에 보도되는 차례상 예시도에서 좌우 표시 의문이 있는데 내용을 설명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절에서의 동서남북의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에서 상좌를 보는 쪽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제례에서의 동서남북은 조상의 신위를 모신 곳이 상좌이니까 신위가 북쪽이고 신위의 앞이 남, 신위의 좌측이 동, 우측이 서가 됩니다. 이것을 참사자 본위로 말하면 참사자는 남쪽에서 신위, 즉 북쪽을 향해 서게 되므로 참사자의 좌측이 서쪽이 되고 우측이 동쪽이 되는 것입니다.

   장남이 선고(先考)의 기제시(忌祭時) 신병(身病)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라 부득이 長孫이 제사를 모실 때 지방(紙榜)이나 축문(祝文)에 현고(顯考) 운운(云云)함이 옳은지 자기로서는 조고(祖考)이니 현조고(顯祖考) 云云함이 옳은지요?
   제주(祭主)가 신병(身病)으로 병원에 입원했더라도 다른 자손(子孫)이 있으면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다른 자손이 지내더라도 입원한 큰아들의 명의로 지내는 것입니다. 장남(長男)이 입원하여 장손(長孫)이 대신 제시를 지내더라도 지방이나 축문(祝文)에 '현조고(顯祖考)'라 쓰는 것이 아니고 '현고(顯考)'라 씁니다. 다만 축문(祝文)에 '효자○○는 병으로 입원했기 때문에 아들 ○○를 시켜 아버님 신위께 아뢰나이다'로 고쳐 쓰면 됩니다.

   (1) 기제를 지낼 때 초헌·아헌·종헌 때마다 정저를 하는지요, 아니면 유식 때에만 정저를 하는지요? (2) 초종시 우제에 있어 초우는 낮에 지내는 제사가 맞는지요? 그리고 재우와 삼우는 낮에 지내는지요, 아니면 밤에 지내는지요? (3) 초상집에 문상을 갔을 때 문상하는 사람보다 명인, 즉 고인이 나이가 많을 때 무조건 곡을 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고인이 문상객보다 나이가 적을 경우도 곡을 해야 하는지요? (4) 처, 즉 아내의 상을 당했을 때 소상은 몇 개월 만에 지내며 대상은 몇 개월 만에 지내는지요?
   (1)기제를 지낼 때의 정저는 유식 때 합니다. 즉 주인이 첨작을 하고 주부가 삽시정저를 하는 겁니다. (2) 초종시 우제에 있어 초우는 평토제를 끝낸 후 신주조성하여 집에 돌아와 지냅니다. 즉 장례를 다 끝낸 후에 지내므로 낮도 될 수 있고 밤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우는 아침에 지내며 삼우도 집에서 아침에 지낸 후 산소에 성묘갑니다. (3) 곡은 문상하는 사람이 슬픔을 나타내는 수단이니 고인이 아랫사람이든 윗사람이든 다 곡을 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문상객보다 항렬이 낮거나 나이가 적으면 절은 하지 않습니다. (4) 아내의 상에는 소상은 10개월 만에 지내고, 대상은 1년 만에 지냅니다.

   선조(先祖) 제사(祭祀) 때마다 지방에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라고 기술합니다. 그러나 생시(生時)에 향교(鄕校) 전교(典校)를 오랫동안 하신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재하려면 어떠한 방법이 좋은지요?
   귀하의 선고(先考)께서 향교 전교(鄕校 典校)를 역임하셨다면 지방에도 그 직표을 쓰는 것입니다. 즉, '顯考 ○○鄕校 典校 府君 神位'라 쓰는 것입니다. 이때 선비(先 )의 경우는(즉 돌아가신 어머니) '顯 夫人 ○○○氏 神位'라 쓰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자선망(子先亡)에 손(孫)이 유아로서 父가 제주가 되어 장례 또는 기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는지 안하는지 궁금합니다.
   자선망(子先亡)으로 父가 상주 또는 주제(主祭)할 때 분향은 하나 불배(不拜)입니다.

   조상의 묘지에 성묘를 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묘지가 있습니다. 어느 분의 묘지부터 성묘를 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성묘를 명절을 앞두고 미리 하려고 하는데 예절에 맞는지요?
   조상 묘지의 성묘와 차례의 순서는 원칙적으로 웃대 조상, 남자 조상, 여자 조상의 순서여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명절날에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성묘를 미리 앞당겨 하거나 명절에 가까운 다른 날에 지내는 것도 안지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제 처가 무남독녀 외동딸이서 돌아가신 장인. 장모는 아들이 없습니다. 이처럼 아들이 없는 경우에 사위인 제가 장인.장모의 제사를 지내도 됩니까?
   사위가 장인 장모의 제사에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혈손인 딸이 있으니 딸이 지내는 것입니다. 귀하의 부인인 딸이 제주가 되어 지내다가 귀하의 아들인 외손이 장성하면 외손이 지냅니다.

   제수 진설시 시저(匙箸) 위치가 신위(神位)의 어느 편에 놓여야 하는지요?
   제상에 제의음식을 차리는 것을 '제수진설'이라 하는데, 옛 예서에 보더라도 제수진설이 통일 되지 못하고 각양각색입니다. <국조오례의>의 진설도는 반(飯) 갱(羹) 시저(匙箸) 순으로 신위 좌편(神位 左便)에 놓여졌고,<제의초>(栗谷 李珥)의 진설도는 시저(匙箸) (반잔반)飯盞盤 순으로 시저(匙箸) 신위 우편(神位 右便)에 놓여 있으며, <가례집람>(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진설도는 반(飯) (잔반)盞盤 시저(匙箸) 초접(醋 ) 갱(羹)의 순으로 匙箸가 중앙에 놓여졌으며, <사례편람>(도암 이재(陶菴 李縡))의 진설도는 반(飯) (잔반)盞盤 시저(匙箸) 초접(醋접) 갱(羹)의 순으로 匙箸가 중앙에 놓여진 것으로 보아, 匙箸의 놓는 위치는 일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에 예시한 각 예서의 진설도를 보면 飯과 羹을 산사람의 경우와 반대로 놓았습니다. 그리고 시저를 그 사이에 놓았는데 이것은 좌우의 균형을 고려한 합리적인 진설법이라 보아 匙箸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게 놓는 것이 아니라 飯과 羹의 사이에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제사에 희생(犧牲)을 쓰는 데가 있는바 여하한 경우에 희생(犧牲)과 생물(生物)을 쓰는지 명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희생과 생물을 쓰는 이유는 고례의 제도를 존중하기 위해서 쓰는 것으로, 올리는 대상에는 나라제사로 즉, 종묘. 사직. 석전. 선농제. 선잠제 등의 제사나 서원, 사우에서 선현(先賢)에 대한 제향에 사용합니다.

   금년에 세일사를 지내려 하는데 세일사를 지내는 조상께도 명절 차례를 지내는 것입니까?
   세일사란 1년에 한 번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기제를 지내지 않는 5대조 이상을 지내는 것입니다. 즉 매년 음력 10월에 좋은날을 정해 기제를 모시지 않는 5대조 이상의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일사를 지내는 조상은 기제나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명절(名節) 차례(茶禮) 기제사(忌祭祀) 時 초헌관(初獻官)에 대하여 문의합니다. 장손(長孫)이 있으면 당연히 장손이 초헌관이 되지만 장손은 예수교를 믿기에 제사에 불참합니다. 그럴 경우 어찌해야 하나요?
   명절(名節) 다례(茶禮)나 기제사(忌祭祀) 시, 초헌관(初獻官)은 당연히 장자(長子)나 장손(長孫)이 합니다. 이처럼 제사(祭祀)를 장자손(長子孫)이 지내는 것은 가통(家統)을 중시해서입니다. 그러나 귀하의 질의처럼 종교적인 갈등 때문에 장자손이 제사(祭祀)를 못 모신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손(子孫)이 초헌관(初獻官)이 되어 제사를 모실 수밖에 없습니다.

   소생은 선대로부터 하시던 대로 제주(祭主)로 봐서 좌측에 갱(羹)을, 우측에 반(飯)을 진설하여 왔습니다만 그 반대로 좌측에 飯을, 우측에 羹을 놓아야 옳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제사에 대하여 깊이 아는게 없어 교시(敎示)를 바랍니다. 확고부동한 무슨 원칙이 있는지요?
   飯, 羹의 진설 방법은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 하여 飯은 서쪽에, 羹은 동쪽에 진설합니다. 즉 제주가 보아서 좌측에 飯을 진설하고 羹은 우측에 진설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국은 오른쪽, 밥은 왼쪽에 놓고 먹습니다. 신(神)은 음계(陰界)이기에 반대가 됩니다. 그래서 神이 앉은 자세에서 飯이 오른쪽 羹이 왼쪽이 됩니다. 그러니 제주가 보아서는 飯이 좌측이 되고, 羹이 우측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飯, 羹의 진설은 과일의 진설과 같이 가례(家禮)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음력 10월에 시제를 지내려고 하는데 어느 날이 좋을까요?
   음력 10월에 지내는 시향, 즉 세일사는 각 문중에서 협의하여 정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날이 없으면 예로부터 정일(丁日)과 해일(亥日)이 제일(祭日)이니 음력 10월 중 정일과 해일을 택하여 정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음력 10월 보름 이전의 날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사후(死後)에 지방, 비문 등에 관직명(官職名)을 표기하는데 있어 옛날 같으면 영의정 판서 등을 역임한 분은 그대로 표기하였고 現今에 있어서는 국회위원, 군수, 박사 등도 그 나름대로 쓰고 있는데 고급 공무원의 범주에 들 수 있다고 보아지는 중앙부서의 과장직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현대에도 관직(官職)이 있는 경우 지방이나 비문에 품계와 직위를 쓸 수 있습니다. 즉 귀하의 질문에 정부 부서의 과장직이라면 과장의 품계는 서기관이므로 '顯考 書記官 ○○부 ○○課長 府君 神位'라고 쓰면 됩니다. 그리고 부인의 경우에는 옛날에는 부인들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봉작(封爵)을 했으니까 지방에 封爵된 명칭을 썼지만 현대는 일체 부인의 봉작제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균관(成均館)에서는 전국 유림(儒林)들의 결의에 따라 현대의 벼슬이 있는 분의 직위(職位)는 품계의 구분없이 '부인(夫人)'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顯 夫人○○○氏神位'로 쓰면 됩니다.

   고려초 품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와 직함에 한성판윤이 있는지요? 만약 위 벼슬제도가 없었으면 조선조에 고려 현신에게 이러한 증직(贈職)을 줄 수도 있었는지요?
   嘉善大夫는 조선조의 종2품에 해당하는 품계로 고려조에는 없습니다. 한성부(漢城府)의 판윤(判尹)은 조선조의 수도인 한성부의 으뜸 벼슬로 정2품관입니다. 아울러 한성부는 조선조 태조3년 (1394년)에 부여된 명칭으로 역시 고려조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조 때 고려 현신에게 贈職을 줄 때는 조선조의 품계에 의하므로 가선대부의 품계와 한성부 판윤의 직함을 贈職으로 줄 수 있습니다.

   제사 제수를 진설시 '이서위상(以西爲上)'이라 함은 신위본위인가요, 참사자 본위인가요? 그리고 조율시이는 참사자의 왼쪽 아니면 오른쪽인지요? 겸하여 홍동백서의 좌우구별에 대하여 답해 주시고 제례참사 시간이 종래는 亡日의 첫새벽 영시, 즉 삼경 이후에 행사하였는데 가정의례준칙법 시행 후에 대개의 가정에서 전일 초경(8시경)에 행사하고 있는데 이는 착오가 아닌지요?
   ''이서위상(以西爲上)'이란 죽은 사람은 동쪽과 서쪽에서 서쪽이 상석이라는 뜻입니다. 제사를 모실 때 신위를 가장 높은 자리인 북쪽에 모십니다. 여기서 북쪽은 자연의 동서남북의 북쪽이 아니라 신위가 놓인 자리를 무조건 북쪽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북쪽이 결정되었으니 동쪽과 서쪽도 결정됩니다. 조율시이는 서쪽이 상석이기에 서쪽부터 진설하는 것이고, 홍동백서는 말 그대로 붉은색 과일은 동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기제사를 전일 초경에 지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망일(亡日) 첫새벽(자시(子時)에서 축시(丑時) 사이)에 지내는 것입니다. 초경에 지내려면 칠일 초경에 지내야 합니다.

   소생(小生)의 선조는 강릉성씨(江陵成氏) 규자(規字) 할아버지이십니다. 시조로부터 34代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小生은 35代손입니다. 평화롭던 마을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토지도 잃고 선조의 묘도 간수할 길이 없어 80년경에 가문회의를 열어 선산군 묵어동에 약간의 야산을 마련하여 소실된 선조의 묘는 결국 찾지 못하고 부모와 숙부님들의 묘만 겨우 이장을 하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희 가문은 묘사 한번 차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위대에 없던 묘사를 지금 새삼스럽게 지낸다는 것은 예법 어긋난다고 하기도 하고 차라리 1년에 한 번 추모제를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요?
   선생(先生)의 선조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선조님의 묘사를 사정상 중단하였던 것을 다시 봉사하겠다는 일은 백번 찬성합니다. 선조님들께서도 무한히 기뻐하실 일이며 자손들에게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동안 궐사한 죄를 용서받고 다시 자손된 도리를 다하는 기쁨으로 성의껏 제사를 지내십시오.

   (1) 추석 차례와 설 차례는 반·갱을 놓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탕을 놓아도 되는지요? (2) 이 지방에서는 향교대제나 서원행사에 촛불이 집사자의 앞에 켜는 것으로 되는데 성균관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신위 앞에 켜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어느 쪽이 정확한 것인지요? (3)과일 순서를 홍동백서라 했는데 실제는 조율시이로 적혀 있어 혼동이 됩니다. (4) 제수에 혜라는 것은 젓혜로서 향교대제나 서원행사에는 생선을 어려서 놓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례에는 식혜를 놓는다고 하였으니 어느 것이 정확한지요?
   (1) 추석 차례와 설 차례에는 飯(밥), 羹(국)을 놓지 않고 대신 추석 차례에는 송편,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립니다. 비록 반, 갱은 놓지 않는다고 해도 탕은 당연히 올리는 것입니다. (2) 촛불을 켜는 이유는 어둠을 밝히고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향교대제나 서원향사에서는 제상이 크고 높기 때문에 촛불을 켜기 쉽게 집사자 쪽에 촛대를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지내는 제사의 경우에는 제상이 작기 때문에 촛대를 신위 쪽에 놓습니다. 일반적으로 촛대는 신위 쪽 양 끝에 놓습니다. 그러나 제사의 여건에 따라 집사자의 앞쪽에 놓을 수도 있습니다. (3)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둘 다 과일을 진설하는 방법입니다. 각 가문에 따라 홍동백서 혹은 조율이시로 진설 할 수 있습니다. (4) 제수에는 해( )와 혜(醯)가 있습니다. 해는 젓해로 고기나 생선을 발효시켜 올리는 것이고, 혜는 단것혜로 식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제사 때는 해를 올리고 명절 차례 때는 식혜를 올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을 위해 20년간 병간호를 극진히 했을 때 열녀(烈女)라는 명칭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烈女란 고난이나 죽음을 무릅쓰고, 남편을 위하거나 절개를 지키고 용감한 행동을 하여 남의 본보기로 될 만한 여자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남편을 위해 20년간 극진히 병간호를 하였다면 당연히 열녀의 칭호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혹은 열부라고 하여도 됩니다.

   (1) 여러 윗대 조상의 지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모시는 순서는 어느 쪽부터 모시면 됩니까? (2) 그리고 여러분을 한꺼번에 모실 경우에 메와 갱을 내외분에 한 그릇식 올려도 되는지요?
   (1) 조상의 위패나 지방을 모시는 순서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의 방법으로 모십니다. 즉 가장 윗조상을 서쪽에 모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순서대로 서쪽에 동쪽으로 내려오며 모시면 됩니다. (2) 아무리 많은 분을 합사하여 제상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메와 갱, 잔반, 시접은 한 분 한분 따로 올려야 됩니다. 아무리 내외분이라 하더라도 따로따로 올리는 것 입니다.

   작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제사(忌祭祀)를 작은 집에서 모시다 금년 추석부터 장손(長孫)인 제 집에서 차례를 지내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차례는 어떻게 지내는지요?
   忌祭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그날 돌아가신 조상과 그 배우자에게만 지내는 것이지만, 차례는 명절에 忌祭를 반드는 모든 조상에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례는 기제(忌祭)를 지내는 모든 조상의 제상을 내외분마다 따로 차리되 한 번의 절차로 지냅니다. 따라서 교의, 제상, 제기 등은 조상마다 내외분씩 따로 차리되 향안, 주가, 소탁 등은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옛날에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당에서 차례를 지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 사당이 없어 집에서 차례를 지낼 경우 4대 봉사를 하는 집안에서는 제상 차리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4대의 지방을 모셔 놓고 한꺼번에 제상을 차려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럴 경우라도 시접, 잔반, 송편(추석의 경우)은 각 위마다 따로 올려야 합니다.

   6.25사변 때 월남하여 부모형제를 이산한 채 살면서 부모의 연세로 보아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되어 매년 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내오다가 미국에 살게 되면서 북한의 동생과 연락이 되어 부모님의 생사를 알아보니, 10년 전 2월 15일에 돌아가시어 산소에 잘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남한에서도 제사를 지내도 됩니까?
   우선 북한에 있는 동생과 연락이 되어 부모님의 기일을 정확하게 안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제사란 조상님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여 공경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손은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하의 경우 부모님의 제사는 남한에서든 미국에서든 상관없이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각 가정을 보면 선조님들의 존영(尊影, 독사진)은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식들의 사진과 가족사진은 그야말로 멋지게 좋은 액자에 넣어 방안과 응접실 등에 부착하여 장식을 겸하고 있는 실정인바, 저는 조상 없는 자손은 없을 터인데 이러한 사회풍조는 숭조사상(崇祖思想)에 위배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작고하신 선조(先祖)님들의 尊影은 몇 대까지 보존을 하여야 하는지요? 그리고 직계 先祖님들의 尊影에 대한 보존방법과 보존 구분은 어떠한지요?
   작고하신 직계 先祖님의 尊影은 보존을 몇 대까지로 한계지을 수는 없습니다. 尊影이 있다면 영구히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직계 先祖들의 尊影에 대한 보존방법은 어떤 일정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 집안 여건에 맞게 보존하면 됩니다. 특히 先祖들의 유물을 보존하는 장소를 마련하여 그 장소의 적처(適處)에 尊影을 보존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尊影의 뒷면에다 선조의 휘자(諱字)를 반드시 기록해야 합니다.

   보통 4대 봉사라 하는데 친진한 조상의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되는지요?
   친진, 즉 4대가 지난 조상의 제사는 묘제로 해야 합니다. 1년에 한 번 음력 10월에 날을 잡아 묘소에서 세일사를 지내면 됩니다.

   저는 현재 79세인데 1990년도에 저의 아우가 죽고 금년 5월 14일에 제수마저 죽어 슬픈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6월에 저의 先考기제사가 있습니다. 저는 애달픈 마음을 달래려고 시골에 내려가려 하는데 저의 先考기제사를 제 아들이 대신 지내도 되는지요?
   귀하의 어려운 심정 충분히 이해갑니다. 그러면서도 제사를 빠뜨리지 않으려는 귀하의 효성에 감복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귀하 대신 귀하의 아들이 제사를 지내도 됩니다. 단 귀하의 명의로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도 ‘할아버님 신위’가 아니라 ‘아버님 신위’로 쓰고 축문에 ‘효자 ○○는 무슨 일이 있어 아들 ○○을 시켜 아버님 신위께 아뢰나이다’로 고쳐 쓰면 됩니다.

   제례에서 축문의 크기는 종횡으로 얼마인지요? 그리고 기제사 때의 축문과 묘사 때의 축문의 크기는 틀리는지요? 또한 독축자의 위치는 신위를 향하였을 때 좌측과 우측 중 어느 쪽인지요?
   축문은 일정한 규격은 없으나 대개 쓰기 좋은 범위에서 길이는 6~7촌 정도이고 폭은 축문 내용에 따라 적당히 조절할 것이며 제사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다. 독축자는 제주의 좌측에서 동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독축(讀祝)합니다.

   제관이 신위를 향해 섰을 때 오른편이 동쪽입니까, 서쪽입니까? 그리고 제수로 조기를 올리는데 배 부분이 어느 쪽으로 갑니까?
   제의에서는 신위를 모신 곳이 북쪽입니다. 즉 자연의 동서남북과 관계없이 예절을 하는 장소에서 제일 윗자리(상석)가 북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관이 신위를 향해 섰을 때 오른편이 동쪽이 되고 왼편이 서쪽이 됩니다. 그리고 뉘어놓은 어적과 조기젓은 배가 신위 쪽으로 가게 담습니다.

   재실(齋室)이란 무엇이며 묘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현감을 지낸 분의 무덤 앞에 재실을 지을 수 있습니까?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의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은 집이며, 묘실은 무덤 가까이에 지은 묘지기가 사는 작은 집입니다. 그리고 재실은 후손들이 조상의 품계와 관계없이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 추석에 친정어머니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고 난 후에 차린 음식을 싸가지고 오려고 하는데 어떤 이는 그 음식을 다 버리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요?
   성묘(省墓)할 때 주과(酒果)상을 차려 예를 표하는 것이 자손된 도리입니다. 그리고 성묘가 끝난 다음 차린 음식은 후손들이 그 자리에서 다 먹고 오는 것입니다. 혹시 음식이 남으면 싸가지고 올 수 있어도 버리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제를 돌아가신 날 새벽에 지내오다가 형편상 초저녁에 지내려 하는데 어느 날 초저녁에 지내야 하는지요?
   돌아가신 날 밤 11시 이전에 지내면 됩니다.

   차례 등 제사에서 4대조까지 합설 제향하려면 축문식과 봉사손 문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윗조상부터 차례로 내외분씩 열기하여 부모가 끝이 되게 쓰고, 봉사손은 ‘孝玄孫 ○○ 敢昭告于’로 쓰면 됩니다.

   지방이나 축문에 면의원도 직함으로 쓸 수 있는 지요?
   직함으로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고 어느 지역 면의원 부군 신위)

   제사에 메(밥)와 갱(국)을 쓰는데 산사람과 놓는 위치가 같은지요?
   유명이 달라졌으니 산사람의 경우와 반대로 놓으면 됩니다.

   영남지방에서 행례할 때는 신위 중심이 아니고 자손 중심으로 좌동우서(左東右西)로 진설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예절에 있어 동서남북은 누구를 중심으로 하는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절에서 말하는 동서남북은 자연의 동서남북과 관계없이 예절을 하는 장소에서 제일 윗자리(상석)가 북쪽이고 상석의 앞이 남이며 왼쪽이 동이고 오른쪽이 서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자손을 중심으로 동서를 구별한다면 우동좌서가 맞는 것입니다.

   생전에 학위를 받았거나 공인 직책을 가진 분의 제사에서 지방을 쓸 때 그 사실을 표현해도 되는지요?
   됩니다. 가령 아버지의 경우 ‘顯考文學博士○○大學敎授 府君神位’라 쓰면 됩니다.

   사당에 모신 신주를 제사할 때 강신 여부를 알고 싶습니다.
   사당 제사에도 당연히 강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먼저 참신을 하고 뒤에 강신을 했는데 이것은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신주가 신의 상징이라면 먼저 신을 모신 다음 신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묘소에서나 지방 제사는 먼저 강신하고 뒤에 참신으로 행례합니다.

   숙부님께서 모시던 제사를 종손이 모시려 하는데 무슨 격식이 있는지요?
   조상님 신주가 없을 경우 지방으로 모셔 강신토록 분향·뇌주·재배하고 축문에서 삼촌이 모시던 것을 종손이 모시게 된 사유를 써서 밝히면 됩니다.

   개업이나 기공식 같은 경우에 기고(祈告)를 할 때 몇 번 절을 해야 맞는지요?
   조상(祖上)이나 신명(神明)에게 祈告할 때 절은 두 번 해야 하며 하늘이나 왕에 대한 제사는 네 번 하는 것 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부인이 두 분이신데 제사 때 지방 쓰는 법과 제수차림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자손 입장에서 왼쪽 첫줄에 할아버지, 오른쪽으로 가면서 가운데에 큰 할머니, 그리고 오른쪽 끝에 작은 할머니를 써서 모시고, 제사상에도 그런 순서로 잔, 시접, 메, 갱을 각각 놓아야 하고 다른 제수와 진행 절차는 같습니다.

   기제사 때 며느리도 참제해야 하는지요?
   제주의 부인이 아헌하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고 나머지 자부들도 같이 참여하여 절할 때 같이 절을 해야 합니다.

   자녀나 본인이 명예스런 일을 얻었을 때 종손이 아니더라도 자기 집에서 조상에 사실을 고유하는 의례를 행할 수 있는지요?
   참 좋은 말씀입니다. 고유하고자 하는 사실을 고유문으로 작성하여 목욕재계하고 의관 정제한 후 제수를 장만하여 지방을 모셔서 분향?뇌주?강신하는 제사의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음력 5월 30일 돌아가신 분인데 금년은 5월 29일까지만 있으니 30일 기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돌아가신 해는 30일이 말일이었으나 금년은 29일이 말일이면 말일날만 지내면 됩니다. 즉 29일 밤 11시 전으로 지내시면 됩니다.

   아버지 제사를 한 달 앞두고 장형의 상을 당하였습니다. 기제를 지내야 되는지요?
   제주인 장형이 돌아가셨고 그 형제 초상에 같이 하셨으니 지내지 못합니다.

   기독교를 믿으며 제사를 추도식으로 지내오다가 문제가 생겨 전통식 제사를 지내고자 합니다. 될 수 있는지요? 그리고 유교경전을 한글판으로 하여 가정에서 볼 수 있게 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제사는 다시 전통식으로 지내시면 됩니다. 유교경전을 한글판으로 집대성하여 가정에서 볼 수 있게 『유림교양전서』를 만들었고 더 노력하여 증보판을 만들겠습니다.

   부조묘(不 廟)를 모신 종가(宗家) 상중(喪中)일 때 묘사봉향(廟祀奉享)을 할 수 있는지요?
   종가(宗家)라면 門中에 항렬이나 연치가 높은 경복자 중심으로 향사(享祀)하되 祝文은 종손명의(宗孫名義)로 써서 독축(讀祝)해야 합니다.

   모친상 중에 할아버지 기제사를 맞이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아버지 제사면 손자의 입장인데 본인이 모친상으로 제사할 수 없으니 삼촌이나 사촌이 지낼 수 있으나, 축문이나 지방은 장손자 명의로 해야 합니다.

   아내의 제사가 돌아오는데 그 아들이 어리면 누가 제주가 되어야 하나요?
   원래 아내 제사의 제주는 남편이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장성하고 남편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경우 아들이 제주가 될 수 있습니다. 위 질문의 경우 아들이 어리니 당연히 남편이 제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 제사 때 어머님도 같이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지요?
   그렇습니다. 어머님 제사 때도 아버님을 같이 써서 지냅니다. 지방은 자손이 볼 때 왼편이 아버지, 오른편이 어머니가 되며 술잔, 메, 갱 시저, 면, 병을 각각 차려야 합니다.

   고조까지 기제로 모시는데 사정에 의하여 조부이상은 묘제로 모시고자 하는데 가능한지요? 그리고 종손이 아니더라도 제사를 모실 수 있는지요?
   자손들의 합의에 의하여 모실 수 있으며 맏자손이 아니더라도 제사를 받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묘제는 산소에서 모시는 것입니다.

   장형이 돌아가시고 장조카가 어리면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되는지요?
   장형수 중심으로 장형님 댁에서 장조카 명의로 제사를 지내야 됩니다.

   종가에 종손이 별세한 후 그 자손이 위선심이 없어 봉제사를 받들지 못할 지경에 그 차차 손이 모셔도 의례에 어긋나지 않는지요?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행례를 할 때는 축문에 그 사유를 밝히고 모시면 됩니다.

   고조까지 8위분을 기제로 모시다가 고조, 증조는 다른 예제로 모셨으면 하는데 방법이 있는지요?
   집안회의를 열어 묘소에서 세일사로 모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제사 등 헌작할 때 술잔을 향로 위에서 돌리는데 몇 번을 어느 편으로 돌리는지 알고 싶습니다.
   관행적으로 술잔을 향로 위에서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예제에 없는 경우입니다. 하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맏며느리를 맞이하고 나서 조부의 첫제사를 맞는데 자부의 참제의식을 알고 싶습니다.
   아헌 때 헌작을 시키고 네 번 절을 하도록 지도하십시오.

   기제사 때 제주 외에 헌작할 사람이 없을 때나 여러 형제가 있어 아헌, 종헌, 차례하고도 또 작헌하고자 할 경우 행례를 알고 싶습니다.
   내외간이 살면서 제사를 지낼 때는 남편이 초헌, 부인이 아헌, 또 남편이나 자녀 중에 종헌을 하면 되고 형제가 많아 작헌할 사람이 많으면 부인이 양보하여 형제가 차례대로 하고, 또 할 사람이 있으면 사신 전에 또 잔을 올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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