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강연 전문> 정운찬 서울대총장 공개 경고 (1)
2002-10-05 오후 2:38:08 |
'경제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강도높게 경고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논문이 각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국내외의 돌아가는 경제정세를 일시적 불황이라고 치부하기엔 자못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이같은 경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금융센터(소장 정덕구) 주관으로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정총장은 ‘한국경제, 위기를 넘어서’라는 이 대회의 주제에 맞춰
<1997년 경제위기 전후의 한국경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일관적 관점을 고수해온 경제학자로 유명한 정총장이 총장 취임후 자신의 전공인 경제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경제위기의 본질과 그 대책에 대해 정총장은 쉬우면서도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어, 이를 두 번에 나누어 전문을 소개한다. 우선 1차로 경제위기의 본질에 대해 중점을 둔 앞 부분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한국 경제는 안정을 회복하면서 IMF 자금을 만기일을 훨씬 앞당겨 갚았을 뿐 아니라 1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를 쌓았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우려를 떨칠 수 없는 데에는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결함에 기인한다. 이 논문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성격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구조조정의 불가피성과 한국경제 개혁에 필요한 올바른 방향과 과제를 도출해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제2장에서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나 거시경제적인 불균형보다는 금융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경제체제의 미시구조적인 결함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전개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고, 제4장에서는 현재까지 진행중인 구조조정 과정을 평가할 것이다. 제5장은 결론에 해당한다.
한국경제는 30년만에 서구 제국들이 1백~2백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압축성장은 수많은 부작용을 수반한 것이었다. 실물경제분야에서는 중복투자로 인해 경제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손상시키고 생산설비 과잉이 초래됐다. 금융부문에서는 부실한 대출심사로 인해 막대한 무수익여신이 발생했다.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욕과 은행의 부실감사가 어우러지면서 한국의 기업 특히 재벌들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부채비율을 지니게 되었다. 존슨(2002)의 논문에서 볼 수 있듯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높은 부채비율에 의존한 경제는 안팎의 조그만 충격에도 매우
취약해 쉽게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이같은 미시구조적인 문제들이 바로 한국경제 위기의 독특한 성격을 규정해주고 있다. 한국경제위기는 거시경제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위기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1997년 위기를 이같은 미시구조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구조적 왜곡이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는 있어도
심각한 외환위기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삭스
1997, 라델레트와 삭스 1998). 구조적 왜곡 자체가 1997년 위기의 원인은 아니라는 주장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은 구조적
왜곡 또는 한국경제의 하드웨어적 문제가 한국경제를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위기상황에 빠져들게 만든 요인이라는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채택된 개혁정책들이 한국 경제에 구조적 왜곡을 초래하는 근원을 바로 잡는 데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에 조그만 충격이 가해지면 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그 뿌리에 대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한국
경제가 거둔 거시경제적인 성과가 비교적 좋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국내총생산(GDP)와 실업률 같은 경제변수가 좋게 나타났을 때도 금융부문의 무수익자산 같은 실물지표에서 상당한 문제들이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90년대 중반에 보여준 거시경제적 성과는 한국경제의 건전한 성장에 필요한 경제개혁을 단행할 시기를 놓쳤다는 점에서 비극이 내재된 것이었다. 다음에서 한국경제가 안고있는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 두 가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성장지향적인 정부의 보호 아래 확장일로를 걸어왔다. 한국의 경제는 그 대가로 효율성을 희생당하고 자기통제력을 상실할 만큼 너무 비대해졌다. 이, 유, 윤(2002)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재벌의 비교 효율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재벌은 수급조절에 실패해 시설투자비를
회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금흐름도 악화됐다.
이같은 과정으로 재벌이 무너지면서 1997년 경제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중복 과잉투자를 해결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고질적인 비효율의 늪에 빠진 이유는 어떤 것인가. 첫번째, 한국에서는 수익성보다는 규모에 따라 기업들의 등급이 매겨졌다.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경제에서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자금조달을 할 수 없다거나 기타 불이익을 받는 기업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기반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규모같은 외형적 요소가 정부나 금융기관을 상대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금융기관들은 수익성 같은 본질적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기업을 평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형적 기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재벌기업들은 담보 제공 능력이 더 크고 최악의 경우에도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대마불사’의 신화는 한국경제계에서 신속하게 철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두번째, 재벌기업들의 상호출자도 중복투자의 원인이었다. 재벌들은 상호출자를 통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상호출자 방식을 통해 극히 적은 소유지분으로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한 것이다. 재벌 오너가 계열사의 중요한 투자 결정에 대해 갖는 영향력은 계열사의 직접적인 지배권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재벌 오너가 투자를 결정할 때 효율성의 기준이 아니라 재벌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오너의 무제한적 욕망 같은 또다른 기준에 따른 경우가 적지 않다. 재벌 오너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장치 없이 중복투자는 불가피한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정부, 금융기관, 재벌들의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은행들은 위험한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어도 정부는 금융경색을 우려해 금융기관들의 손실을 메꿔주었다. 금융기관들이 점차 위험요인을 무시하게 되고 오직 매출 증대에만
신경을 쓰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때문에 프로젝트가 비효율적이고 위험성이 높아도 경제를 볼모 삼아 얼마든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풍토가 생겼다.
그러나 자율적인 대출심사의 중요성은 지난 30년간 장밋빛 경제성장론에 가려졌다. 금융부문이 경제성장지원에 내몰리면서 자금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실물부문에서도 비건전한 투자가 만연했다. 부실대출이 계속되면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부실한 투자계획을 밀고나간 기업들 탓도 크지만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부실심사를 일삼은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경제의 구조적인 왜곡뿐 아니라 정부가 정확한 통계치를 발표하는 것을 꺼린 것도 무수익여신(NPL) 문제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커져가도록 만든 주범이었다. 금융위기 전까지 한국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공식 통계로는
2~3%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회수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원리금과 추심계획이 요구되는 ‘회수의문’등 ‘추정손실’ 범주만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일본처럼 6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나 담보대출을 포함하면 부실비율은 7~8%에 달했을 것이다. 미국 기준처럼 ‘요주의’나 3개월 이상 연체대출을 포함한다면 부실비율은 20%가
넘었을 것이다. 미국식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미국의 경우 무수익여신비율은
1~2%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융위기에 닥치는 순간까지 한국의 정부와 은행들은 통계치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금융위기 와중에 한국 금융기관들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불신을 증폭되어 상황이 악화됐다.
GDP 디플레이터는 1980년 이래 1990년과 1991년(모두 10.8%)을 빼고는 한자리 숫자를 유지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경제가
이같이 눈부신 거시경제적 수치를 장기간에 걸쳐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산업화 초기 단계에 있는 경제가 미시구조적인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팽창성장을 지속하는 것은 가능하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소련과 1978년 개혁
이후 중국이 그 예다. 한국 경제에서 구조적 비효율성이 존재했던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실물부문의 수익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제조업체들의 자산수익률(ROA)은 꾸준히 떨어져 8.5%에서 1.4%로 낮아졌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은 편이다. 실물부문에서 수익성이 이처럼 낮은 원인으로는 금융기관들의 부실대출로 얻은 자금을 재벌들이 과잉투자한
것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초 이후 정부, 금융기관, 재벌간 권력균형이 이동하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과 중복 과잉 투자는 때마침 1993년
금융자유화조치로 상징되는 시장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만연되면서 위험수준에 도달했다. 1993년 금융자유화 조치는 재벌이 수익성과 관계없이 한국경제에 있어서 재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소기업들은 좋은 사업계획을 갖고 있어도 투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었다. 비효율적인 재벌의 사업자금으로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씨앗은 이같은 잘못된 금융자유화 시기에 뿌려졌다.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비재벌보다 높은 반면, 수익성은 훨씬 낮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1997년 전후로 부도가 난 6개 재벌의 평균부채비율은 무려 1천8백77%에 달했다. 은행들의 사전사후 감시가 사실상 실종된 상황에서 이처럼 엄청난 부채비율을 지녔기 때문에
안팎의 조그만 충격에도 취약한 경제가 된 것이다. 실물부문의 이같은 문제가 금융부문으로 번져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상업은행들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매우 높았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은 기술발전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자원집중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일본의 경제부흥과 대조적으로 아시아의 신흥경제의 고도성장은 자원집중 특히 자본축적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경제가 안고있는 미시구조적 약점을 시정하지 않고서는 과거의 거시경제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원활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경우에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고질병의 주요원인인 재벌은 자기교정 능력을 상실했다. 과거 한국은 몇 가지 이유로 구조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첫번째, 1960~1980년대에 걸쳐 기술도입이 쉬웠다. 두번째, 값싼 우수노동력이 풍부했다. 세번째, 기업경영이 비교적 단순했다. 외부여건도 유리했다. 1960년대 한국의 경제는 유엔의 ‘10개년 개발’ 계획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 덕을 톡톡히 보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중동건설붐과 오일달러 효과가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낮은 국제금리, 원화가치하락, 저유가 등
소위 ‘3저 효과’를 누렸다. 냉전으로 인한 지정학적 요인도
한국이 미국의 지원에 기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같은 요인들로 인해 한국 경제거품의 붕괴가 지연된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말 이후 선진국이 기술이전에 제동을
걸면서 기술도입이 점차 어려워졌다. 노동력, 특히 고급노동력도 더 이상 풍부하지 않았다. 임금은 대폭 올랐고
기업경영도 매우 복잡해졌다. 크루그먼(1994)이 지적했듯 대대적인 자원투입으로 이룬 고속성장은 어느 순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 경제에 딱들어맞는 얘기다.
종금사들은 위기의 촉매 역할을 했다. 한국의 종금사들은 대부분 지하자금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한 1972년 8.3조치에 따라 투자금융기관으로서 설립됐다. 1994년과 1996년 금융기관합병과 전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24개 기존 투자금융기관은 종금사이 되었다. 그러나 6개 기존 종금사와 달리 24개 후발 종금사들은 외환운용 경험이 없었고 영업기반이 취약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위험성 높은 사업에 손을 댔다. 국내 시장에서 종금사들은 재벌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할인해 사들였으며 이를 종금사의 신탁계좌에 되팔았다. 수익을 내기 위해 불법거래를 하기도 했다. 1995~1997년 종금사들의 CP 할인매입과 매각은 각각 42조와 35조에서 90조와 75조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97년 재벌의 연쇄부도로 종금사들은 엄청난 빚더미에 안게 됐다. 30개 종금사들이 떠안은 무수익자산은 1996년 10월 1조2천6백40조원이었으나 1997년 10월경에는 3조8천9백70조원으로 2백% 이상으로 증가했다. 대외적으로는 종금사들이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 고금리로 장기대출을 해주고 있는 홍콩으로부터 저금리의 단기
일본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때문에 심각한 만기 불일치가 발생했다. 부채의 80%가 단기자금인 반면 자산의 70%가 장기대출이었다. 만기 불일치가 발생했더라도 종금사들이 건전한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만기 연장이나 단기부채를 이월시키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국제신용등급이 곤두박질치면서 한국 종금사들은 홍콩지점에서 단기부채를 이월시키기 힘들어졌다. 이들은 시중은행으로부터 원화표시 콜자금을 받아 외환시장에서 외화를 사들이기까지 했지만 사태만 악화될 뿐이었다. 종금사에 관한 법률과 규제가 매우 부적절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통합회계기준과 무수익자산 분류기준이 없었고 감사와 감시도 형식적이었다. 종금사들은 허술한 시장규제를 틈타
자산 축적에만 열을 올려 이것이 결국 경제위기로 연결됐다. 한국이 WTO와 OECD에 가입한 이후에도 정부는 정부와 은행, 기업이라는 소위 ‘주식회사 한국’의 삼각구도에 안주한 나머지 국제기준에 맞는 게임을 배우지 못했다. 외환 보유고 부족에 대비해 정부는 금융산업에 대한 포괄적 구조조정계획을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계획이었지만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했다. 외환
보유고 유출이 줄어들지 않으면서 1997년 11월23일 마침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결국 거품붕괴로 묘사할 수 있다. 이 거품의 기원은 중복 과잉투자와 허약한 금융시스템으로 요약되는 구조적 왜곡이다. 이러한 왜곡은 1990년대 잘못된 시장주의적 정책으로 더욱 증폭됐다. 마침내 금융체제의 국제신용마저 떨어지자 거품이 파열된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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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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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IMF이후 한국 경제
IIMF로부터 긴급자금을 지원받은 후 한국 경제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보자. 한 나라의 경제에 대해 논의를 하려면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적 관점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거시경제학적 분석을 위해서는 통합지표에 근거한 진단이
필요하다.
반면에 미시경제학적 분석은 시장 기능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법적, 제도적 구조를 검토해보는 것이다. 제3장에서는
IMF 자금을 받은 이후 4년간 거시경제학적 지표가 얼마나
회복됐는지 살펴보고 나서 경제위기 이후 취해진 개혁조치에 대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1.거시경제학적 측면
한국 경제의 거시경제학적 지표는 경제위기 이후 4년간 매우 좋아졌다.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여파로 -6.8%로 떨어졌으나 내수와 수출이 살아나면서 1999년 10.7%, 2000년
9.0%로 반등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8년 6천7백2달러에서 2000년 9천9백13달러로 증가해 경제위기 이전 수준인 1만3백7달러(1997년)에 거의 육박했다.
인플레이션은 1990년대 최저수준인 0.8%(1999),
2.2%(2000)를 기록했다.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무역수지는 82억 달러 적자에서 4백6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무역수지는 계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외환보유고는 1997년 12월 39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1년 12월에는
1천억 달러가 넘었다.
금리, 주가지수, 환율도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경제위기 직후 한때 30%가 넘었던 금리(회사채)는 1998년
하반기에 들어서 급격히 떨어져 지금은 낮은 한 자리수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가지수는 경제위기 직후 2백80선으로 곤두박질쳤으나
재정지출 확대와 1999년초 간접투자상품 열풍 등으로 1천선을 넘어서기도 했으며 이후 6백50선 전후에 머물러 있다. 원-달러 환율은 1998년초 2천원을 넘을 정도로 치솟았으나 이후 점차 감소해 지금은 1천3백선 내외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4년전만 하더라도 견실했던 재정은 악화됐다. 경제위기 이후 경기부양책과 실업정책으로 지출이 늘어나면서
재정적자와 정부채무는 급격히 늘어났다.
정부채무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서 1999년 1백8조1천억원에 달했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7년 11.1%에서 22.3%로 치솟았다.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된 정부채권과
공적자금으로 1998년 이후 이자상환부담도 크게 늘었다.
경제위기 이후 3년간 구제금융 비용 대부분을 공공재정이
떠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 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학적 지표는 전반적으로 좋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이같은 단기회복이 앞으로의 경제상황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거시경제적 지표가 좋아졌다고 경제체질이 구조조정으로
보다 강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단기경기부양책과 대증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한 일시적인 개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최근의 경제회복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4년간 경제체질을 튼튼하게 하고 성장 잠재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미시구조적 개혁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급속히 이루어진 거시경제적 회복은 한국경제에 ‘병주고 약주는’ 역할을 했다. 거시경제적 지표가 급속히 좋아지자 개혁노력이 느슨해지고 재벌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거세졌다는 의미에서다.
2.미시경제적 측면
미시경제적 측면에서 개혁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어떤 것일까. 실물부문에서 구조조정의 성공여부는 부실기업 정리에 달려있다. 금융부문에서는 금융기관의 무수익여신을 줄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실물부문 구조조정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목적은 ‘적자생존’ 법칙을 확립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것은 이미 행해진 비효율적인 자원 분배 결정을
교정한다는 좁은 의미에서 볼 때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향후 규모 같은 기준에 근거한 중복 과잉 투자 가능성을 방지한다는 넓은 의미에서도 부실기업 퇴출은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구조조정의 성공에 필수적인 또하나의 관건은 재무제표와
기업과 금융기관과의 거래, 기업지배구조에 있어서의 투명성이다. 투명성 없이는 기업과 은행의 재무건전성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시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실물부문 개혁 대부분은 재벌개혁에 집중돼 있다.
정부의 재벌정책은 소위 ‘5+3’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8년 1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재벌 오너들은
재벌 구조조정을 위한 5대과제에 합의했다. 1999년 8월말
3개 과제가 추가됐다.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폐지, 지분구조개선, 무분별한 사업다각화를
통한 문어발식 확장을 지양하는 핵심역량 강화,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책임강화 등 기존 5가지에 추가된 3개 과제는
산업자본 진입금지(재벌의 금융기관 소유), 부당내부거래금지, 재벌의 부당상속금지 등이다.
이러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가 취해졌다.
1998년 2월 30대 재벌과 정부는 과도한 부채비율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은행과 재벌은 자본구조개선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정부는 5대 재벌에 대해 부채비율
200% 상한선을 설정하고 1999년말까지 이 상한선을 맞추도록 요구했다.
재벌의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과잉설비를 줄이기 위해 소위
‘빅딜’(재벌간 자발적 사업교환)이 장려됐다. 정부는 이를 위해 5대 재벌에게 세제감면과 금융지원 등 혜택을 부여했다. 중급 재벌들에 대해서는 소위 ‘워크아웃’ 프로그램(파산절차 이전에 은행과 재벌간 민간 채무조정)이 시행됐다. 5대 재벌과 기타 재벌에 대한 처방이 달랐던 것은
5대 재벌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했다.
기업지배구조도 달라졌다.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1998년 5월 정부는 상장기업에 대한 소송에 필요한 최소지분을 1%에서 0.01%로 낮추었다. 정부는 1998년 사외이사제도도 강화했다. 1999년 12월에는 상속과 증여에 관한 세법도 강화됐다.
투명성 제고를 위해 정부는 1998년 2월 이후 30대 재벌에
대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요구했고, 1998년 12월에는 회계기준을 국제기준에 맞게 전면적으로 수정하도록
했다.
2)금융부문 구조조정
금융부분의 핵심과제는 천문학적인 규모에 도달한
은행의 무수익여신(NPLs)이다. 정부는 1998년 6월29일 5개 종금사를 퇴출시키면서 금융부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금융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도 뒤따랐다. 무수익여신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는 1998년 64조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해 1999년말까지 금융부문에 모두 쏟아부었다.
공적자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NPL 관리기금)와 예금보험공사(예금보험기금)가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마련됐다. 채권은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장해주는데 이는 국회 승인 사항이다. 따라서 이 자금 앞에
‘공적’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다.
공적 자금은 부실은행에 지분투자 그리고 부실채권
매입, 부실은행 예금보험금 지불 등에 쓰였다.
재투입된 회수자금과 27조원의 국채를 포함해 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간 공적자금 규모는 모두 1백9조6천억원에 달했다. 2000년 12월 정부는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마련하고 회수된 공적자금 10조원을 다시 투입했다. 이렇게 해서 1백4조원이 공적자금으로 마련돼 지금까지 1백75조원이 넘는 자금이
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금융부문을 건전화시키기 위해 그밖에 여러 가지 조치가
행해졌다. 1998년 금융감독기구들이 금융감독위원회(FSC)로 통합됐고 조기시정절차(PCA)가 시행됐다. 현재 금감위는 잠식자본 회복, 자산지분 매각, 사업 및 조직 감축, 고위험자산 보유 금지, 전면 또는 부분 영업정지 등에 대해 요구, 권고,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밖에 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은행합병과 외자도입, 자사주매입 등의 조치도
시행됐다.
제4장 개혁에 대한 평가
정부가 지난 3년간 막대한 공적자금을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투입했다. 그러나 실물과 금융 부문 모두에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여건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 제4장에서는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게 된 원인과
그 파장을 살펴볼 것이다.
1. 실물부문 구조조정
실물부문 구조조정이 얼마나 부실했나. 실물부문 구조조정에서 가장 핵심과제는 적자생존의 원칙 확립,
다른 말로 하자면 부실기업 퇴출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시작단계부터 적자생존의 원칙은 정치경제
영역에서 용두사미가 되었다. 경제위기 후반부기에
들어 이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재벌개혁을 상징하는 ‘5+3’원칙조차 부실기업 퇴출을 위한 제도정착보다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 데 주력했다. 사실, 경제위기 이후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대출만기연장과 금리우대 같은 기업정책으로 대기업 부도와 실업을 방지하는 데 주력했다.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거나 재무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실물부문 구조조정이 이처럼 비틀거리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부가 고통스럽고 값비싼 구조조정을 단행하려는 의지가 희석되고 한국 경제에 몰아친 경제위기의 초반 충격을 극복해 내면서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거세진 것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정부는 미시구조적 개혁보다는 성장위주의 거시경제정책으로 위기상황을 관리하려고 했다. 1999년 대우그룹의 몰락은 적자생존의 시장원칙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개혁과정이 느슨해졌다. 대우사태를 계기로 ‘대마불사’의 신화가 부활된 것이다. 대우의 붕괴 여파가 엄청나자 정부는 대우같은 재벌의 붕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현대그룹 사태가 명백한 증거다. 현대그룹이 2000년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정부는 현대의 부도를 막기 위해 회사채신속인수 같은 조치를 발동시켰다.
몇 가지 실증적 증거를 열거해 보겠다.
1)잠재파산비율
실물부문 개혁이 실패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잠재파산상태에 처해있는 기업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자상환비율을 살펴보자. 1999년 5월말 현재 지급능력을 갖추었다는 6천1백16개 기업 중
31~33%(1천8백74~2천25개)가 1998년 재무제표에
따르면 사실상 잠재 파산 상태였다.
과거에도 잠재파산상태는 심각한 문제였지만 상황이 개선된 것같지 않다.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인
기업들은 2001년 상반기 현재 30%나 된다. 게다가
제조업 부문 총대출에서 이들 기업들이 빌려간 대출
비율은 50%로 증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0년말 현재 제조업체의 4%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이하를 기록했다. 실물부문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나 보여준다.
실물부문 구조조정이 이처럼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2차 실물부문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0년 11월 52개
기업 퇴출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나 부실 대기업에 대한 정리는 지연된 것이어서 실물부문 구조조정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실물부문 개혁은 1998년말부터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저금리와 공공사업 같은 부양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신용경색의 악순환에 숨통을 터줌으로써 구조조정에 따른
높은 실업률과 하도급업체 도산으로 초래되는 충격을 줄이려 한 것이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1998년초 구조조정의 첫단계에서 발생한 대량실업과 기업파산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으나 부양책으로 물러서면서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다. 생존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들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만기연장과 우대 금리 등 구제조치로 되살아났다.
이러한 조치는 기업의 부실을 금융부문에 전가하고 부실기업에 추가대출을 허용함으로써 잠재파산을 피한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실물부문은 여전히 부실기업 퇴출시스템이 확립되지 못했다. 개혁을 주도하는 주체로서 책임이 있는 정부가 개혁의
방향과 리더십, 확고한 근본원칙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적자생존의
원칙을 관철시키기 보다는 기업구제정책에 집착하고 있다.
2000년 12월 정부가 회사채 신속인수조치를 실시한 것은
전형적인 예다. 이 정책은 산업은행을 통해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에 대해 다시 대출을 해주도록 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회사채 신속인수조치는 “회생불가능한 기업은 영업중지돼야 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금융지원 여부는 해당기업의 재무와 경영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주거래은행에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에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산업은행에 그 결정을 맡긴 것이다. 게다가 이 제도는 산업은행이 인수한 회사채에
대해 다시 만기가 돌아올 때 발생할 사태에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임시응변책임이 분명하다.
2) 재벌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개혁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억제됐다. 30대 재벌의 계열사는 1997년 8백19개에서 2000년 5백44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재벌이 비대한 조직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려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거시경제적
지표가 좋아지자 재벌은 자신들에 가해진 제약들을 철회하거나 경감시켜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예를 들어 정부는 2001년 12월 통과된 법에 따라
상호출자 총액 제한을 완화시켰다. 재벌 계열사들이
2000년 5배44개에서 2001년 6백24개로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재벌의 천문학적인 부채비율은 대대적으로 감소했다. 1999년 말까지 부채비율 2백%에 맞출 것을 강제한 정부의 정책이 주효했다. 현대의 부채비율은
1998년 4백49.3%에서 1999년 6월말 3백40.8%로
줄었다. 대부분의 재벌들이 이처럼 부채비율이 감소했다.
그러나 부채비율 감소가 재벌의 자본구조 개선을 의미하는지는 의심스럽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예를
들어 현대의 총부채는 부채비율이 감소하는 동안에도 증가했다. 메이코(2001)는 재벌들이 실질적인 증가라기보다는 주로 계열사에 의한 투자를 늘려 자본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부가 요구한 목표를 맞추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재벌의 내부소유구조가 경제위기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면 재벌일가의 지배력이 1999년까지 계열사가
소유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더욱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4월 발효되는 제한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재벌들의 소유구조가 2000년과 2001년 약간 개선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K.Kim, 2002).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도 별로 개선된 것이 없다. 5대 재벌과 30대 재벌이 한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위기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5대 재벌간 자발적인
사업구조조정을 상징하는 ‘빅딜’은 실물부문의 과잉설비를 줄이는데 별다른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 빅딜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전략사업 특화는 실현되지 못했다. 빅딜로 정부의 개입 여지는 더욱 넓어졌다. 정부개입은 적자생존을 위한 법적 제도적 여건을
정비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시장메커니즘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관계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세우기보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접 개입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3) 투명성
회계 투명성의 중요성은 1999년 대우 그룹의 파산사태로
명확히 드러났다. 대우그룹은 부채가 눈덩이처럼 더욱 불어나는 데도 과도한 부채로 이루어진 과잉투자로 유동성
위기가 초래된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가 무너져 이 사태만으로도 개혁프로그램이 좌초될 지경이었다.
또한 투명성 없이는 대출심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부실채무가 줄어들기를 기대하기 힘들며 투자자 신뢰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시장 발전이 저해된다.
게다가 투명성이 결여되면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경쟁을 저해하고 물가의 경고기능을 무력화시켜 과잉투자와 거품형성이 촉진된다.
2.금융부문 구조조정
1)무수익여신(NPLs)
금융부문의 NPLs 정리는 공적자금의 대대적인 투입에 크게 힘입었다. 1998년 금융부문의 혼란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금융위기는 공적자금 투입 없이는 가라앉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과 무수익여신을 줄이려는 금융기관들의 자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부문의 전체 무수익여신은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부실화되면서 금융기관의 무수익여신 규모가 다시 증가함에 따라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금융기관들의 무수익여신은 1999년 6월 63조4천억원에 달했다. 무수익여신 비율은 1998년 공적자금이 처음 투입된
이후 개선되었으나 2000년 들어 다시 악화됐다. 무수익여신은 2000년 2차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시중은행들이 소매금융에 치중하는 한편 예대마진을 늘리고 대손충당금을 과감히 쌓으면서 2001년에는 약간 줄어들었다.
무수익여신 문제는 제2금융권(비은행권)에서 더 심각하다.
제2금융권 중 투신사와 보험사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외환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증권사, 저축은행(구 상호신용금고), 리스회사들은 상태가 좋지 않다.
1999년 9월말 현재 투신사와 보험사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각각 8.5%와 28.3%였다. 그러나 증권사, 저축은행, 리스사의 경우는 각각 48.2%, 46.5%, 32.0%였다. 이처럼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고 있는 금융기관에게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2)은행
금융구조조정이 부실하게 된 또다른 이유는 부실은행 정리에 미온적인 정부탓도 크다. 2000년말 단행된 2차 금융부문 구조조정의 핵심은 상대적으로 우량한 은행끼리 합병하도록 유도하고 회생불가능한 은행들을 금융지주회사로 묶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현실을 감안할 때 은행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로 의도한 결과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된 금융기관들은 예외없이 재무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미국의 경우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원래 취지는 건전한 지주회사에게 비은행권영업을 허용하는 특권을 주는 것이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지주회사제도가 부실은행 합병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회생불가능한 은행들이 지주회사 밑에 들어갔다고 해서 갑자기 개선되기를 기대할 근거는 전혀 없다. 부실한 것끼리
합하면 건실하게 된다는 법은 없다. 회생불가능한 은행들에게 구획정리방식으로 영업을 계속하게 한다는 것은 더
많은 문제를 초래하고 공적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을 키울
뿐이다.
지주회사제도가 합병과 조직 및 인원 축소에 따른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시도는 지금까지 금융부문 구조조정의 최대 장애물이었다.
이같은 시도는 단기적으로 구조조정의 고통을 경감시켜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은행 수익성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또다른 제도변경도 언급해야 한다. 2001년 11월 재정경제부 장관은 사전 소유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사후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은 건전금융자본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자율적 은행경영을 장려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가에서 인수한 은행을 조기 매각함으로써 공적자금 회수를 촉진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시스템이 취약하고, 금융구조조정이 미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재벌의 과거 행태와 이들이 제2금융권을 장악하면서 초래된 폐해를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살펴보면 정부가 제안한 은행법 개정안은
재벌이 주장하는 ‘은행 주인찾아 주기’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 분명하다. 효과적인 집행능력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은행 소유제한을
완화하려는 것은 재벌들이 은행을 사금고로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줄 뿐이다.
은행들은 본질적으로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자산 대부분이 많은 고객들로부터 받은 소규모계좌들로 구성돼 있는 관계로 특히 위험전환 문제에 취약하다. 따라서 은행 소유와 지배 문제에 있어 주주와 예금주간의 문제가 주주와 경영진의 문제보다 더 주목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은행 경영진과 이사들이 계열사에도 겸직을 한다면
상호소유 남용이 빈번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벌 오너들에 의한 전횡이 재연될 심각한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금융개혁을 실행할 진정한 의지나 구체적인 개념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제5장 경제개혁:올바른 방향설정
한국의 개혁 성공을 가름하는 잣대는 경제위기 이후 추진된 개혁으로 ‘적자생존’이라는 간단한 시장원칙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정착됐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위기 이후 거시경제적 회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개혁 노력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경제성장 잠재력은 거시경제적 지표만으로 판단될 수 없다. 그보다는 미시경제적 관점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시장이 작동하느냐에 달려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느냐는 다시 ‘적자생존’ 원칙이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되느냐에 달려있다. 즉 시장이 회생불가능한 기업을 퇴출시키고 있느냐다.
시장경제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기업 수익성이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다. 한국기업의 경우 과거에는 수익성보다는
규모가 시장에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됐다. 시장에서 내부적 기준보다는 외재적 요소로 기업을 평가했기 때문에 ‘대마불사’ 신화가 지배했다. 따라서 기업들이 수익보다는
규모를 최대화하는데 집중하게 되면서 중복 과잉투자와 재무상태 악화가 초래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금융부문 구조조정 역시 수익에 기초한 ‘적자생존’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규모가 큰 은행이라도 심각한 부실에 허덕이는 은행들은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부문이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부실이 심각한 은행들은 실물부문의 구조조정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구조조정은 과거의 병폐를 치료하는 동시에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체제를 구축하는데도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는 실물과 금융부문 모두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투명성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우선 재무투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보다 엄격한 회계기준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한국금융기관들은 자기자본비율, NPLs, 순익 등 핵심재무통계에서 아직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신용평가와 부실대출판정에 대한 기준
등을 포함해 대출회계가 부정확하다.
금융감독은 신뢰할만한 데이터 없이는 의미없다. 게다가
금융시장관행이 불합리한 상황에서 투명성이 결여되면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적자생존의 원칙과 함께 투명성
확립은 성공적 개혁에 필수적이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들을 고통없이 하룻밤새 치료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명성이 결여된 부실부문에 한정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다. 부실기업은
정리되어야 하고 보다 건전한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정상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실은행을 건전한 은행으로 만드려는 목적으로 1998년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지속적 효과를 거두기에 한계가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의미있다.
부실은행 건전화에 추가공적자금 중 얼마를 투입할 필요하게 될지는 측정하기 어렵다. 공적자금을 이전처럼 사용하기보다는 부실은행 정리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파장을 줄이는
데 쓰여져야 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