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식 시몬 신부님
소유와 집착
저는 주일 미사 시간 중에 새로 온 사람들을 소개시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에서 온 신자가 자신은 전에 국회의원과 장관을 했었고 돈이 많은데 본당에 봉사하는데 쓰고 싶다며 은근히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는 눈치였습니다.
가브리엘 마르셀이란 철학자는 “가지는 것” “있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돈, 지식, 물질은 가지는 것이지 그것이 인간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 즉 소유물을 자기 자신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인가를 많이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꾸 내세우려합니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물질이나 명예 권력 등을 더 가지려 합니다.
수천만 원짜리 외국제 가구, 명품 옷, 명품 가방 구두, 패물 등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박사학위, 해박한 지식, 뛰어난 재능, 높은 직책, 최고의 명예, 권력 등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 아니고 훌륭한 사람 되는 것 아니고 특히 하느님의 사람 되는 것 아닙니다.
독일의 유명한 문호 괴테는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재개발이나 어떤 이유로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이나 특히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많은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폐인이 되었습니다.
집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비싸고 좋은 집입니다. 방도 많고 화장실도 많고 거실도 크고 다용도실도 많고 그 밖에 각종 편의 공간들이 많고 클수록 좋은 집이어서 비싸게 거래됩니다. 자동차도 무엇이던지 많을수록 좋은 자동차입니다.
비싸고 좋은 자동차에는 별별 게 다 있습니다. 차 안에 컴퓨터, TV, 냉장고, 안마기, 오락기, 홈시어터 등 각종 편의 시설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자동차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많이 가져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알맞게 가져야 합니다. 눈을 두 개만 가져야지 세 개를 가지면 기형이고 살이 알맞게 쪄야지 돼지같이 너무 많은 살덩어리를 갖고 있어도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밖에 체지방 콜레스테롤 혈압 비타민 등 모든 게 알맞아야지 너무 많으면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개나 돼지 등 동물도 대개는 덩치가 클수록 좋습니다. 소나 돼지는 클수록 고기가 많이 나오니 값어치가 있고 생선도 클수록 맛있고 비쌉니다. 나무나 풀이나 식물도 클수록 좋습니다. 특히 정원수로 쓰는 소나무는 큰 것은 몇 천 만원도 한답니다.
이번에는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동물이나 식물은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하고 더 좋은 것으로 커 갑니다. 충분한 영양분과 수분과 햇빛을 받음으로써 성장합니다.
사람의 육체도 동물이나 식물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하여 건강한 육체로 만들어집니다. 각종 비타민, 알맞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질 등 몸에 필요한 영양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체가 성장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과 정신은 육체와는 다릅니다. 육체와는 달리 무엇인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주고 버림으로써 성장하고 완성 되어가는 것입니다. 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심리적 발전은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떠나 이웃을 의식하면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밖에 모르는 아기는 모든 것을 받으려고 합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흙이건 장난감이건 불덩어리건 무엇이든지 입으로 들어갑니다. 이런 아기가 형제와 가족에게 자신이 가진 사탕을 나누어 줄 줄 알 때 비로소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자기중심에서 버리고 줌으로써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집 자동차 등 물질은 재료를 많이 가질수록 좋은 물건이 되고 동식물은 양분 등을 많이 받을수록 좋은 동식물이 되고 사람의 육체도 영양분을 충분히 받음으로써 건강한 육체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정신과 영혼은 다릅니다.
정신은 받음으로써가 아니라 줌으로써 성장하고 인간성도 받음으로써가 아니라 줌으로써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주되 많이 줄수록, 버리되 많이 버릴수록 사람다운 사람, 훌륭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들은 가지려하지 않고 주려합니다.
혹시 가진 것이 있으면 빨리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덜 된 사람들일수록 많이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려 하고 그냥 못 가지겠으면 빼앗아서라도 가지려 합니다.
법정스님의 유명한 책 무소유에 나오는 이야기 일부를 소개합니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인도의 유명한 성인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입니다. 법정스님은 간디가 한 이 말을 책에서 읽고 몹시 부끄러워했답니다. 자신은 간디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법정스님은 어떤 스님한테서 난초 화분 두 개를 받아 정성스럽게 가꾸었습니다. 장마가 갠 어느 날 난초를 뜰에 내 놓은 채 깜빡 잊고 들여놓지 않고 외출했는데 햇빛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 없어서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와 보니 잎은 축 늘어져있었습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는 온 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고 그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난을 가꾸면서는 여행중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한 적도 있었고,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씩 열어놓아야 했고, 화분을 내 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 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 친구에게 화분을 주어버렸습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라 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정든 난초를 떠나보냈는데도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 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초를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
우리들이 필요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롭게 얽어매게 됩니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성인들일수록 가지고 소유하기보다는 버리고 포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동식물처럼 받으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줌으로써, 버림으로써, 포기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오 복음(16.16)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재물이나 세상을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버림으로써 사람다운 사람, 참된 사람이 됩시다.
가톨릭 사랑방 cafe.daum.net/catholicsb
첫댓글 참으로 어렵지만 매일 매일 연습을 해서라도 될수만있다면..
2시간여 가까이 인터넷 쇼핑을 하다 이글을 읽습니다.. 사고싶은 한가지를 안삿는데 잘했다는 생각과 하루에 한가지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것부터 먼저 버려야 할까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중한 깨달음을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