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에 사는 이윤식(49)씨는 지난 5월 기아자동차 쏘렌토R를 타고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차량 결함으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2010년 3월에 기아차 쏘렌토R 신차를 구매한 후 4월부터 시동꺼짐현상이 생겼습니다. 네 차례나 정비센터에서 이상 유무를 확인했으나 기아차 서비스센터에서 간단한 정비 후 별일이 아니라며 차를 찾아가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중부고속도로를 시속 80㎞로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져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바로 뒤에 차가 없었고 재빨리 비상등을 켜서 제 뒤로 차들은 길게 늘어섰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갓길로 차를 밀어붙였습니다. 파주로 중요한 계약을 하러 가던 길에 일어난 사고라서 정말 분통이 터졌습니다. 차량 전체 교체 또는 환불을 받기 위해 상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차량 교환은 불가능하다며 큰 문제가 아니니 그냥 차를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큰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어야 큰 문제라고 말할 건가요.”
2005년 재경부 고시가 문제
부산시 진구 개금동의 한모(24)씨는 2009년 4월 기아차 포르테를 구입한 지 5개월 만에 급발진 현상으로 사고를 당했다. 기아차에 정비를 받았으나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보상받지 못했다. “신호를 받아 차를 멈추려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갑자기 엔진에서 굉음이 나며 차가 급발진을 했습니다. 당황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렸지만 세워져 있던 버스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기아차에 정비를 받았으나 하자가 없으며 운전자 본인이 잘못이니 무상수리를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차값이 1900만원 정도인데 수리비가 1300만원이 나와 그냥 차를 폐기했습니다. 포르테 관련 카페에 가입해보니 저와 같은 사례를 발견했지만 그들도 전혀 차량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시동이 꺼지거나 브레이크가 안 듣거나 급발진하는 등 생명을 위협하는 결함이 있어도 자동차 회사들이 수리만 해줄 뿐 새 차로 바꿔주거나 환불을 해주지 않아 애꿎은 소비자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자동차는 다른 제품과 달리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상품이다. 따라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때는 즉각 교환해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련 규정 자체가 소비자에게 극히 불리하게 돼 있고 설령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거해 차량교환 또는 구입가 환급기준이 적용되는 경우에도 자동차 회사 측은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거나 큰 고장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부품교환 정도의 수리만을 해주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09년 한국소비자원 ‘소비자피해구제 연보 및 사례집’에 따르면 자동차 품질·기능 및 AS와 관련된 불만은 전체 자동차 피해구제 619건 중 557건으로 전체의 90%이다. 원칙적으로 자동차 회사는 품질보증기간 내에 발생한 고장현상을 근본적으로 정비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 차량을 교환해주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자동차 고장현황 중 시동꺼짐현상과 제동불량으로 접수된 불만사항은 105건으로 전체의 16.9%에 이른다. 주행 중 시동꺼짐현상과 제동불량은 운전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중대한 결함이다.
피해보상 규정 강제성 없어
2005년 9월 16일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에서 개정된 자동차 관련 소비자피해보상규정(재정경제부 고시 제2005-21호) 내용을 보면 차량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2회 이상 발생했을 경우 제품교환 또는 구입가를 환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품질보증기간 이내의 경우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된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여 동일 하자에 대해 3회까지 수리하였으나 하자가 재발(4회째)하거나 중대한 결함과 관련된 수리기간이 누계 30일(작업일수 기준)을 초과할 경우도 제품교환 또는 구입가 환급을 보상기준으로 설정해놨다.
하지만 대량 리콜 사태가 아닌 경우 개인이 자동차를 교환받거나 구입가를 환급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은 권고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시동꺼짐현상, 제동불량, 급발진 등 안전상의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도 자동차 회사들이 고분고분 차량을 교환해주지 않는다. 보통 고장 현상이 발견되면 정비센터는 시운전(200㎞)을 포함한 차량 점검을 통해 현상이 재현되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 중 현상이 재현되지 않는다면 소비자 측에서는 교환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현상이 재현되더라도 교환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2008년 8월 현대자동차 i-30 신차를 구입한 인천시 남동구의 송완규(29)씨는 그해 12월부터 시동꺼짐현상이 나타나 여섯 차례 차량정비를 받았으나 끝내 현상이 개선되지 않아 차를 매각했다. “시동꺼짐현상으로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총 6차례 정비를 받았습니다. 정비소 직원 동승하에 세 차례나 시동꺼짐현상을 재현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측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며 간단한 정비 이외에는 차량 교환이나 환급을 거부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문의했으나 사업자가 거부할 경우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소비자에게 특별한 조치를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2010년 3월에 경주에서 안양으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시동꺼짐현상이 다시 발생해 화물차와 추돌할 뻔한 일이 생긴 이후 차를 매각했습니다.”
소비자단체인 자동차시민협회 임기상 대표는 “엔진이나 브레이크 결함과 같이 중대한 안전사고를 초래하는 결함을 이유로 자동차 회사에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을 요청해도 현실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동일 현상이 4회 이상 발생하면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을 자동차 회사 측에 요청할 수 있으나 동일 현상이라 말하는 것도 동일 부품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야 가능합니다.
엔진이나 브레이크의 동일 결함이 반복되어도 동일 부품의 불량에 의한 결함이 아니고서는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동일 현상이라도 정비센터 측에서 다른 부품이 원인이라고 말하면 소비자 측에서는 방도가 없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함을 스스로 입증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의 경우 차량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은 차량의 중대한 결함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을 꺼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자동차의 결함을 입증할 공식적인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수입 자동차도 교환 쉽지 않아
수입 자동차의 경우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07년 1월부터 11월까지 조사된 한국소비자원의 수입 자동차 소비자 불만 사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접수 건수는 253회이고 시동 꺼짐으로 인한 불만 사항이 50건으로 20%에 가깝다. 하지만 수입 자동차의 경우도 유통시스템이 국내판매법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국내 자동차 제조사와 같은 규정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차량의 결함이 발견돼도 교환은 쉽지 않다.
경기도 성남시의 엄모(30)씨는 2008년 6월에 당시 임신 5개월인 부인과 2살된 아들을 태우고 크라이슬러 300c를 타고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아찔한 사고를 경험했다. “구룡터널을 지나 성남 방면으로 시속 160㎞로 진입하던 중 시동꺼짐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임신 5개월에 들어선 집사람과 2살짜리 아들을 태우고 있었는데 만약 사고라도 났다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다행히 직선도로여서 큰 사고는 면했지만 아내와 저는 자는 아들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차후 2회 정도 시동꺼짐현상이 더 발생해 정비센터에 입고해서 정비를 받았습니다. 차량 교환을 강력히 요청했으나 크라이슬러 측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정비를 다 해보았다며 그냥 타보라는 겁니다. 제 가족들이 마루타도 아니고 정말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품 교환 및 구입가 환급의 기준이 4회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규정 때문에 시동꺼짐현상과 제동불량같이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도 4회 이상 반복되지 않으면 차량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을 받을 수 없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과에서 이 횟수를 한 회라도 줄여보고자 노력을 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과 김수주 사무관은 “과거 개정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의 반대에 부딪혀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량인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운전자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흉기로 변할 수도 있는데 고장이 4회나 반복된 것을 소비자가 증명해야 교환이나 구입가 환급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력이 없는 운전자들은 정비를 통해 하자가 해결되지 않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차를 탈 수밖에 없다.
2008년 2월 29일 정부조직법이 개정돼 재정경제부 소관이던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2010년 1월에 개정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도 자동차와 관련해 개정된 사항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과 관계자는 “2005년 개정 이후 자동차와 관련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사항은 없고 매년 개정 수요조사를 하고 회의를 거쳐 1월에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을 개정하고 있다”며 “현재 각종 물품에의 소비자 불만사항과 개정 수요를 파악하고 있는데 자동차와 관련된 개정 수요가 없어 특별히 자동차는 논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품마다 주무 부처가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주도적으로 기준을 개정하기 힘들다”며 “전임자의 말에 의하면 자동차의 경우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완강한 반대로 개정이 어려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선 레몬법으로 소비자 보호
한국은 세계 5대 자동차 대국에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관련 법규와 풍토가 소비자의 생명을 경시하고 자동차 회사의 이익에 치우쳐 있는 태도는 선진국에 비하면 후진적이다. 미국의 경우 신차 구입 이후 결함이 발생했을 때 일정기간 내 수리를 해주지 못하면 차량을 교환해주는 것을 법제화하고 있다. 이른바 ‘레몬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1975년 만들어져 현재 미국 50개 주에서 시행 중이다. ‘레몬법’은 레몬처럼 겉은 맛있게 생겼지만 신맛이 나는 레몬을 불량품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적용되는 법이며 주로 자동차 불량에 강력히 적용된다. 내용도 한국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보다 강력해 두 번 이상 결함이 발생하면 레몬법이 적용돼 차량을 교환받거나 구입가를 환급받을 수 있다.
그리고 레몬법은 소비자의 교환이나 환불 요청을 30일 이내에 들어주지 않을 경우 회사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2010년 3월 6일자에서 미국 시카고 신문 선타임스는 “미국 위스콘신주 법원은 결함 자동차를 구매한 위스콘신주 소비자에게 기일 내 환불하지 않은 메르세데스 벤츠 USA에 48만2000달러를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에도 2005년 10월 ‘레몬법’ 도입이 추진됐으나 입법화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레몬법’이 적용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법 사이 사이를 메우는 문화적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소비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자동차 회사는 소비자를 봉이나 마루타라고 생각한다. 불량에 의한 교환 및 구입가 환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수 없이 불량 자동차를 인수해도 방법이 없다. 도요타 리콜 사태 이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부족하다. 자동차 산업이 선진형 모델로 거듭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첫댓글 X물에 튀길X들....필리핀이나 한국이나 똑같네요....팔때는 살살 거리고...팔고나면 나 몰라라~~....ㅠㅜ....언제 제대로된 상도덕을 가지고 장사를 하련지.....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