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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순서
<예수님의 부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예수님은 부활후 첫번째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마리아(막달라 마리아)는 '흰 옷 입은 두 천사'를 보았습니다. 천사들은 보통 짝을 지어 나타났고(예컨데 행 1:10) 보통 힌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 됩니다(겔 9:2; 단 10:2~6).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했는데 이는 아마도 날이 아직 여전히 밝지 않았고 그녀가 돌이켜 거기서 누군가를 보았다가 다음 순간 즉시 무덤 쪽으로 돌아서서 말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6절에서 마리아는 다시 "돌이켜" 예수님께 직접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뒤 다른 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 24:16). 예수님의 몸 또한 무언가 다르게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엄청난 고통과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형태의 젊은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16절에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는 자기 이름만 듣고도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가르치신 대로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옵니다(요 10:3~4).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이는 예수님의 영이 예수님이 죽는 순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으로 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 이후 예수님의 육체적 승천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눅 24:51).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자 아버지라는 의미와 이것이 제자들에게도 사실이라는 의미에 대한 구별을 유지합니다(요 1:14).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신자들을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시며 이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함의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예수님은 부활후 두번째로 부부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누가복음에서 발견되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나타나신 세 번의 사건 중에 첫 번째이자 복음서에서 가장 긴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눅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각 복음서들과 그 밖의 신약의 몇몇 책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여러번 나타나신 사건을 언급하고 있지만 누가만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바로 밖에 있는 감람 산에서 승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엠마오(아마도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중간기 시대의 엠마오가 아닌 오늘날 칼루니야)로 가던 두 제자와 대화하신 일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요한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그 주의 첫 번째 날인 일요일이고, '그들 중 둘이', 한 사람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입니다(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는 눅 24:18에 기록된 글로바와 그의 아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과 동행한 부부입니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낸 뒤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했는데 이는 아마도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았고 그녀가 돌이켜 거기서 누군가를 보았다가 다음 순간 즉시 무덤 쪽으로 돌아가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다른 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몸 또한 무언가 다르게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엄청난 고통과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원래의 젊은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 이거늘', 여기서 예수님에 대해 선지자는 정확하지만 불충분한 호칭입니다. 왜냐하면 말과 일에 능하시고, 귀신을 쫒아내시고 병을 고치고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을 행하신 일, 죄를 용서하시는 신적 권위 등 광범위한 가르침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의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9절에서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어떤 해석자들은 "문들을 닫았더니" 라는 말을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그 방의 문 내지 벽을 통과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본문은 이를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신 뒤에도 분명 살과 뼈가 있는 실제 육체를 지니고 계셨으므로 한 가지 가능한 대안은 예수님의 육신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적적으로 문이 열렸을 가능성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 후에 닫힌 문을 통과했다고 말하는 구절과 일맥상통합니다(행 12:10).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구절은 요한 문헌의 "지상 명령"을 담고 있으며 이는 성부께 보냄 받은 분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 복음서 전체의 표현에서 절정 역할을 합니다(3:17). 보냄 받으신 예수님은 이제 보내시는 분이 되어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자와 대표자 역할을 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17:18). 이 사명 위임에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 모두가 관여하십니다. 성부가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실 때 이는 성령이 오순절에 주어질 때 일어날 일(행 2장)에 대한 미리맛보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는 성령이 이 시점, 이 전에는 제자들의 삶 속에 전혀 임재하시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요 14:16~17).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사하여질 것이요....그대로 있으리라'. 이 표현은 둘 다 헬라어로 완료 시제 동사로 나타내며 '사하여졌다', '그대로 있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완료 시제는 현재에도 지속적인 결과를 갖는 완료된 과거 동작의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담긴 생각은, 개별적인 그리스도의인들이나 교회들이 스스로 사람들을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죄 사함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이는 곧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죄를 용서받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죄를 용서받지 못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이는 단지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미 하신 일을 반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참조, 마 16:19).
네번째로 예수님은 도마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도마의 신앙고백>
요 20:24~31절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분명히 도마는 제자들이 유령을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조심스럽게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말씀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한 몸이 유령이나 혼령이 아니라 실제 (영화롭게 된) 몸 임을 의미합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이는 부활절 한 주 뒤인 그다음 일요일을 가리킵니다. 세기 시작하는 날도 세는 날 수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교절 절기는 끝났으므로 제자들은 곧 갈릴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주' (헬, '퀴리오스')이자 '하나님'(헬, '테오스') 이라는 도마의 고백은 머리말에 나오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언급과 문예적 연결고리를 제공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부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는 도마의 말은 단지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 놀라움에서 비롯된 탄성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이 분명한 확언을 얼렁뚱땅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강한 도덕적 신념을 감안하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도마가 이 말을 예수님께 했다고 명백히 말하는 본문과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도마의 말은 사실 예수님이 자신의 주님이자 하나님이라는 '새롭게 찾은' 자신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분명한 고백입니다. 요한이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모든 신자들이 도마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이자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은 메시아 예수, '하나님의 아들' 여기서 요한복음의 저작 목적 진술과 요한복음 본문의 결론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정체, 예수님의 선별된 메시아적인 "표적" 예수님을 믿는 것의 '중요성',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라는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를 설명합니다.
다섯번째로 예수님은 배로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6, 14절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 후에', 일주일에 걸친 무교절(유월절) 절기가 이제 지나가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이름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으로 나와 있습니다. 누가는 그들이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어부로서 베드로의 동업자였다는 점을 언급합니다(눅 5:10). '배', 밤은 고대에 낮보다 물고기 잡기에 좋은 때로 선호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명령을 하시자 밤새도록 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하던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가 없을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마 4:18~19). 성경에서 "그물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물은 백성을 취하고, 보호하는 선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물은 예수님을 따른 첫 제자들의 직업과 남은 자들의 장차 사도직과 관련되었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이제 영적인 그물로 바뀝니다. 대표적으로 천국비유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 13:47).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전하며 ‘그물’을 빗대십니다. 그물 안에는 물고기로 가득 차지만, 어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냅니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이 임함>
행 1:6절~11절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40일 끝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감람 산으로 데려가시고 눈에 보이도록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모인 곳은 감람 산이었고 감람 산 기슭에 베다니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에 대한 약속의 근거로 메시아 시대가 밝아 왔고 이스라엘의 최종적 구원이 임박했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예수님이 언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지 여쭤봤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마도 여전히 구약에서 여러번 있었던 것과 같이 로마군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주권을 회복시킬 군사적 정치적 왕국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을 거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로마군의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의 복음에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성령께 능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의 생각을 바로잡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재림은 하나님이 정하실 때에 이루어지는데 그동안 신자들이 해야 할 다른 핵심적인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역사의 사건들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권한은 일관되게 삼위일체의 위격 가운데 성부 하나님께 귀속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수님에 대한 증언의 배후에 있어서 증언을 인도하는 성령의 능력과 함께 시작되며, 그 다음으로 '예루살렘',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이라는 사도행전의 대략적인 개요를 제공합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오순절 이후 성령의 강력한 새로운 역사는 복음증거와 사역면에서의 더 큰 효력, 효과적인 복음선포, 죄를 이기기 위한 능력, 사탄과 귀신의 세력을 이기기 위한 능력, 사역을 위한 은사의 폭넓은 분배 등 몇 가지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이 문맥에서 '권능'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능력과(성령을 통해) 그 메시지를 확증하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 둘 다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구름이 그를 가려 보이지 않게 하더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 구름은 보통 하나님의 임재의 표현과 관련된 일입니다. 이 구름은 보통의 비구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둘러싼 영광의 구름이었습니다.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이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우편으로 높아지셨지만, 즉 하나님의 영적인 왕국에서 직접적인 통치권을 받으셨지만(마 28:18) 한 인간으로서 물리적인 인간의 몸을 유지하고 계심을 나타냅니다.
이는 또한 행1:11과 한 짝을 이루면 예수님이 언젠가 똑같은 육체적인 몸으로 돌아오실 것이라는 점도 나타납니다. 성육신이라는 놀라운 기적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인성을 취하시고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인 분이 되셨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영원히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그들의 흰 옷이 입증하듯이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들이었습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의 재림은 승천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이고 가시적인 재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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