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동화 / (5) 야윈 여름

[운영자]

［동화가게］(5)야윈 여름

어머니는 오늘도 대변을 보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째다. 시골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는데 서울에서는 도통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재래식 측간에 익숙해서인지 좌식변기에 엉덩이를 붙이고서는 도대체 힘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하루에 몇번씩 화장실에 들어가는 어머니를 식구들은 못본 척했지만 온 신경이 화장실에 집중되었다. 식구들은 자신도 모르게 항문에 힘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나오는 어머니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집안 분위기는 무언가에 체한 듯 더부룩했다. 식구 모두가 변비에 걸린 듯 개운치 않았다. 나 혼자 대변을 푸짐하게 봤을 때는 죄스런 마음까지 들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갔다오면 인사 대신 “할머니 대변 봤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편치 않다는 옆집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고 시골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는 병색이 완연했다. 그런데도 나를 보자 회사는 어떡하고 내려왔느냐고 핀잔이다. 아프면 빨리 전화를 하지 누워만 있었느냐고 화를 내자 어머니는 감기 몸살이라고 잘라서 단정을 해버렸다. 걱정 말고 다시 올라가라고 했다. 그 말에 울화가 치받쳐 올랐다. 고향에다 늙은 어머니 홀로 남겨둔 불효자식일망정 객지에서 어머니 걱정 안하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런 못난 자식을 되레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면 더욱 화가 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아들들, 그리고 가장들의 아픔이다. 그래서 무능과 무력감이 울분으로 바뀌는 것 아닌가.

명절이 아닌 평일에 찾아간 고향은 너무 남루했다. 찬찬히 동네를 한바퀴 돌아봤다. 빈집이 반은 넘었다. 아이들 울음이 끊긴 자리에는 노인들의 기침소리만 들렸다. ‘아이들 울음이 귀신을 쫓아낸다 했는데 우리 마을은 이제 귀신이 붙어도 쫓아낼 수가 없겠구나.’ 고향마을은 어머니만큼 늙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막무가내로 어머니 옷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서울로 가자고 우겼다.

“이제 다 나았다. 저 텃밭에 푸성귀는 어쩌고…, 그리고 모레는 일 맞춰놨고…, 글피는 방앗간집 딸 결혼식이여…. 나 안간다.”

나는 못들은 척하고 어머니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내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인지 어머니는 단념하고 차에 올랐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셔왔다. 서울에 와서도 어머니는 계속 안색이 밝지 않았다. 감기 뒤끝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뜻밖에도 변을 못본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집안은 변비통을 앓아야 했다. 생각다 못해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의사는 어찌 보면 뻔한 처방을 얘기했다.

“신경이 예민해지면 장운동이 경직되어 대변을 볼 수 없습니다. 음식물이 크게 차이가 나도 그럴 수 있지요. 할머니 경우는 ‘심인성 변비’입니다. 섬유질과 수분을 풍부하게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시면 좋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하세요. 약까지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의사 말대로 물을 몇컵씩 마시고 뒷산을 오르내렸다. 그래도 그렇게 기다리던 대변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시골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태우고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향집 측간를 향해 달렸다.

“나는 시집 와서 50년 동안 한곳에서만 대변을 봤다. 한번도 밖에서는 대변을 안봤어야.”

어머니는 차안에서 시키지도 않은 말을 느릿느릿 혼잣말처럼 하셨다. 어머니가 일을 보는 세상의 단 한곳. 거미줄이 쳐져 있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철 지난 잡지가 휴지로 나뒹구는 그 컴컴한 공간에서 어머니는 반세기 동안 쪼그리고 있었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키우셨을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 당신만의 측간에서 시원하게 일을 보셨다.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리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주저앉아 있던 집이 어머니 손길이 닿자 서서히 일어났다. 시골 우리집은 어머니 대변을 받아먹고 버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기운차게 푸성귀를 뜯어 저녁상을 차렸다. 푸짐했다.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서울 갔다온게 얼굴이 뽀얗네. 손주놈 많이 컸지? 근디 뭣허러 내려왔어, 며느리가 해주는 편한 밥 먹지.”

“나 빼놓고 저그들끼리 들밥 먹을까봐 내려왔지. 그리고 사람이 안살면 집은 금방 내려앉어버리는 것이여. 안그런가?”

마당의 모깃불이 사그라들쯤 해서 모두들 돌아갔다. 밤이 깊었다. 어머니는 가만가만 코를 고신다. 가만히 어머니 젖을 만졌다. 말라붙어 겨우 잡히는 어머니 젖, 고향 떠나와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어머니 젖. 여름 밤은 평화로웠지만 허허로웠다. 처마높이까지 내려온 별이 유독 슬픔만을 비췄다. 야위었다,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