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구해 읽을 루트가 없어서 수업이 끝난 후 무등도서관에 들러 박흥용 작가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보았다. 총 세 권짜리 책이었지만 도서관에 1권이 없이 2, 3권만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그 두 권만 읽게 되었다. 권당 가격이 아주 비쌌는데 아마 하드커버인 표지와 컬러내지, 종이질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과제 때문에 갑작스럽게 사기엔 조금 부담되는 가격이었는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앞권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읽은지라 초반에는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의외로 금방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보통 보는 요즘 만화와는 다소 다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야기가 조금 끊어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화를 보면 칸과 칸으로 이루어져 있어 필연적으로 사이의 장면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데 보통은 그것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느끼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장면을 어느 정도 건너뛰거나 생략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내용 이해에는 지장이 없고 오히려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구성도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에 영향을 주었지만 익숙해지니 괜찮았다. 캐릭터도 주로 겉보기에 예쁘고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만화 캐릭터와 달리 그다지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 만화에는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림적인 면에서는 선이 다소 굵고 거친 느낌이면서도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묘사를 넣어 표현한 것에 감탄했다. 특히 한복 표현이 인상 깊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한복이 특유의 느낌을 잘 살려 표현되었고 움직임에 따른 주름 역시 잘 표현되어 있었다. 딱히 배경이 빡빡하게 차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묘사를 하고 아닌 부분을 생략해서 그런지 비어 있다는 느낌이 아닌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그림 외에 내용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차이가 느껴졌다. 요즘 만화들처럼 가볍게 쭉쭉 읽을 수 있는 만화는 아니었지만 대신 읽고 나면 무언가 가슴속에 남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만화였다. 특히 감탄했던 것은 대사였다. 책 앞에 들어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도 느꼈는데 만화가가 아니라 소설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만큼 표현이 다채롭고 만화의 분위기에도 어울려 그것만으로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이 만화뿐만 아니라 순정만화 중에서도 요즘 만화에 비해 비교적 예전 작품을 보면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요즘보다 더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요즘 만화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같이 변해온 것이고 재미도 있지만 예전 만화는 예전 만화만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대사의 유려함과 함께 읽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식의 전개도 좋았다. 이 만화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때의 시대상과 얽혀 있는데 그에 따른 부분이 주인공 견자의 여정, 성장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스승을 기다리다 지쳐 한 환쟁이와 함께 길을 떠났던 날,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 환쟁이가 자신의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다음 날 자결해 있던 에피소드나 침략해온 일본인들에게 욕을 당하고 새로 만들어진 칼로 자결한 백지의 에피소드 등이었다. 금강산에 거처를 마련한 의적들의 이야기나 자신을 따라온 양반집 막내손녀딸의 이름을 물었던 마지막 장면도 여운이 남았다.
여유가 되면 구해보고 싶을 정도로 이 만화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아마 읽을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이번에 이런 식으로라도 읽게 되어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못 읽었던 1권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