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모던 재즈(비밥, 하드밥)는 영 라이언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표현되는 방식들이 변해오고 있지만 연주되는 스탠더드 곡이나 형식은 한 세대가 훨씬 지났는데도 그때 연주 방식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더 변하지 않은 스타일이 있는데 바로 브라질의 삼바와 쿨재즈가 만나 60년대 초반 전 세계에 열풍을 불러일으킨 보사노바 음악, 엘라 핏제럴드와 사라 본을 능가하는 보컬리스트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여성 재즈보컬이다. 보사노바와 재즈보컬, 이 두 음악 스타일의 공통점은 처음 시작 단계에 이미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이를 실현하는 거장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재즈보컬은 예습과 복습을 통해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핏제럴드가 1930~40년대에 만들어 놓은 문법을 익히고 닮아가는 것이 재즈보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타고난 개성파 목소리로 주목을 받는 보컬리스트들이 있지만 정확한 가사 전달과 즉흥적인 스캣, 그리고 화려한 무대 매너까지 결국 이 둘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것이 재즈 보컬의 종착점인 것이다. 보사노바 또한 그러한데 생존해 있으면 80살이 되는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하 조빔, 1927~1994)이 1960년대 초반에 내 놓은 앨범들에는 아름다운 멜로디, 상큼한 리듬, 이국적인 노랫말이 특징인 보사노바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보사노바의 거의 대부분이 이때 쏟아져 나왔다고 볼 수 있다.
1958년부터 브라질의 파퓰러 음악계를 주도한 보사노바가 이렇게 한순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가볍게 재즈를 듣는 일반 팬들을 만족시키는 재즈 스타일의 부재에 있다. 60년대 당시는 매너리즘에 빠진 모던 재즈의 탈출구로 제시된 프리 재즈가 주류 재즈로 인정받지 못하고 엘비스 프레슬리로 시작하여 비틀즈로 만개하는 록 음악까지 가세하게 되는 시기라 재즈 팬들은 탈출구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린 힘든 상황이었다. 이렇게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을 때 단순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리듬과 처음 들어도 익숙한 멜로디, 그리고 이국적인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보사노바의 등장은 재즈 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신선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런 유행은 재즈계 전반에도 전달되어 거장들도 보사노바 열풍에 동참하게 된다. 보통 라틴 재즈(아프로 큐반)는 스페인어로 불리어 지지만 브라질의 보사노바만큼은 포르투갈어를 사용되는데 미국에서도 듣기 쉽지 않은 이국적인 노랫말과 소박하지만 대중적인 멜로디는 앨범으로 나오자마자 큰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조빔과 질베르토 부부(조앙 질베르토, 아스트러드 질베르토), 작가이자 작사가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레즈, 그리고 미국의 재즈 연주자(스탄 게츠, 찰리 버드)들이 이룩해 놓은 음악은 그야말로 보사노바의 처음과 끝인 것이다. 이후 그 누가 보사노바를 해도 이들과 누가 더 닮아 있고 그들의 감성에 더 가까이 접근하느냐가 최대의 관건이 되었다.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 보사노바 여왕으로 인정받으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인 리사 오노는 브라질 사람보다 더 보사노바를 완벽히 소화해 내기 때문에 지금의 인기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출발한 보사노바 프로젝트‘더블 레인보우’ 이처럼 보사노바를 연주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모범답안이 나와 있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기에 쉬울 수 있지만 정확한 해석으로 보사노바만의 정서를 담아 내지 않으면 그저 자신의 레퍼토리를 추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자신의 앨범에서 보사노바 곡을 1~2곡 정도는 비교적 쉽게 노래하고 연주하지만 앨범 전체를 보사노바로 만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음악이 보사노바지만 정확하게 소화해내기 어려운 음악이 또한 보사노바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재즈사에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났다. 보사노바를 앨범의 일부분인 액세서리로 접근 한 것이 아니라 앨범의 전부인 정공법으로 다가간 그룹 ‘더블 레인보우(Double Rainbow)’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 최초로 보사노바만을 담은 앨범 [A Letter From Rio]를 발표한 그룹 더블 레인보우의 음악적 신념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더블 레인보우는 국내 연주자 중 각 악기에서 최고의 연주자가 모인 드림팀이라 할 수 있다. 팀의 리더로 기타를 연주하는 김민석은 90년대 중반 인터플레이라는 퓨전 그룹을 이끌며 팻 메시니의 음악성을 이미 보여주었고 이후 재즈와 클래식를 넘나들면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04년에는 한국 연주 음악의 새 지평을 연 기타트리오 트리오로그(Triologue)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2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한다. 김민석과 함께 더블 레인보우가 보사노바의 본질에 더 다가가고 수준 이상의 음악으로 들려지게 한 데에는 보컬리스트 여진이 있다. 2006년 첫 솔로 데뷔작 [In Gray]를 발표한 여진은 매력적인 목소리로 재즈보컬의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하여 활동하다 지금은 미국(버클리 음대) 유학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 재즈 베이스를 대표하는 전성식과 국내에서 수많은 연주와 앨범 활동으로 재즈 팬들에게 믿음을 주는 크리스 바가가 드럼과 비브라폰을 맡고 있다. 피아노는 정통적인 노선을 걸으면서도 자신의 음악을 담아내고 있는 임미정이 연주하고 보사노바에서 빠질 수 없는 퍼커션은 김민석과 인터플레이시절부터 호흡을 맞추었던 김정균, 그리고 플루트와 색소폰은 김지석이 맡아주고 있다. 그럼 이렇게 화려한 연주자들이 모인 보사노바 그룹 더블 레인보우가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데 때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스페셜한 기획 공연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 2004년 8월에 준비한 것이 BGM이나 CF음악으로 대중적인 인기는 높지만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는 보사노바를 한국 재즈 연주자로 구성된 팀으로 해석해 내는 것이었다. 당시 공연 타이틀은 무더운 여름을 맞아 준비한 보사노바 무대 ‘보사노바의 밤 브라질리안 프로젝트’로 그때의 공연을 기억하는 재즈 팬들은 여름마다 보사노바 연주를 무대에 다시 올려달라고 신청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더블 레인보우의 시작으로 이후 3년 동안 연습과 공연을 거치면서 연주자들은 보사노바에 대해 충분한 이야깃거리를 준비하여 리오에서 보내온 편지를 완성해 내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 앉아 듣는 보사노바 [A Letter From Rio] 더블 레인보우는 조빔의 유명한 곡명으로 팀명이 말해주듯 정통 보사노바 곡들을 노래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 위에 ‘라랄라~라’로 반복되는 멜로디가 참 편안하게 들려오는 ‘Tristeza’는 본 앨범의 정통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흔히 보사노바는 포르투갈어를 얼마나 완벽하게 발음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발음에 신경 쓰고 노력했는지 알게 된다. 조빔의 곡들은 비교적 심플한 구조에 희망적인 노랫말을 담고 있는데 ‘Once I Loved’는 애잔한 느낌을 주는데 여진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사랑의 느낌을 더욱 진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상큼함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여 여진의 노래가 흐르는 ‘Ela E Carioca’는 조빔-모라레즈 콤비의 곡으로 ‘Carioca(카리오카)’는 브라질 원주민을 일컫는 말로 크리스 바가의 비브라폰과 김지석의 플루트 연주가 보사노바의 자연스런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후반에 여진과 함께 노래하는 남성 목소리는 베이스를 연주하는 전성식으로 그의 노래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Double Rainbow’는 큰 스케일을 가진 곡으로 하드밥 테너 색소포니스트 조 핸더슨이 1994년에 조빔의 곡으로만 연주한 헌정 앨범에 사용될 정도로 조빔의 보사노바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주요곡이다. 조 핸더슨의 [Double Rainbow]가 녹음된 다음 달인 1994년 12월 8일에 조빔은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다. 비브라폰과 플루트가 곡을 화려하게 수놓아 뮤지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빔이 60년대 초반 재즈인들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시작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느낌을 표현한 ‘Samba Do Aviao’는 임미정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김지석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멋지게 연주된다. ‘Sunset In The Sea’는 임미정의 자작곡으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저녁 해변을 연상시키는 경쾌함이 녹아있다. 보컬 대신 김지석의 플루트 연주가 주선율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연주곡으로 이들의 완벽에 가까운 보사노바 해석과 이를 받쳐주는 L.A. Mastering LAB의 베테랑 엔지니어 더그 색스(Doug Sax)의 섬세한 작업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연주이다. 적당한 템포가 매력적인 ‘Espranca Perdida’에서는 중반 플루트 솔로 이후부터는 포르투갈어가 아니 영어로 노래하고 있어 여진의 보컬이 더욱 완성도 높게 들린다. 이어지는 ‘One Note Samba’는 ‘The Girl From Ipanema’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보사노바 곡으로 각 연주자들의 솔로가 충분히 연주되고 있어 재즈적인 성향이 짙은 곡이기도 하다.
‘Voce’는 리더인 김민석의 창작곡으로 앞선 곡의 흥겨워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몽환적인 스캣과 잔잔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아름답다. 뛰어난 멜로디메이커로 이미 트리오로그 시절 훌륭한 작곡 실력은 보여준 김민석이 조빔을 비롯한 보사노바 자체에 대한 헌정 개념의 곡이기도 하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 음악의 강국인 쿠바의 거장인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 발라드인 ‘Sunrise’는 김민석과 임미정이 2중주로 연주한다. 큰 키와 큰 손으로 과감하게 연주모습이 인상적인 추초 발데스의 곡이지만 이 둘은 차분하고 잔잔하게 연주한다. 조빔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동료들이 모여 만든 [Antonio Carlos Jobim And Friends](1996)에서 브라질의 갈 코스타가 불렀던 ‘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같다면’이라는 뜻인 ‘Se Todos Fossen Iguais A Voce’를 여진이 원형을 보전한 채 노래하고 있고, 보컬이 빠진 연주곡인 ‘Lamentos’는 브라질 삼바 초로 음악의 대가인 픽싱깅야(Pixinguinha)의 곡으로 기타, 베이스, 플루트, 그리고 브라질의 전통 타악기 판데이로(브라질 스타일의 탬버린)가 연주하고 있다. ‘How Insensitive’는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한 남자의 감정을 담은 곡으로 슬픈 정서가 깃든 곡이다. 너무 짧은 연주 시간이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아쉬움을 남기는데 이것이 사랑에 상처 입은 이의 심정일지 모르겠다.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를 연상시키는 기타에 슬픔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극작가이자 작사가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레즈의 노랫말이 더해져 완벽한 구조를 이룬다. 브라질의 여성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로사 파소스의 2004년 연주가 인상적이었던 ‘Vose Vai Ver’는 피아노가 빠진 편성으로 전성식의 베이스 솔로가 분위기를 잡아준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Fotografia’는 기타와 피아노, 보컬이 잔잔한 조빔의 곡으로 한 장의 흑백사진이 엔딩 크레딧으로 사용되는 옛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곡이다.
보통의 음악 팬이라면 수록곡 리스트에 ‘The Girl From Ipanema’ ‘Corcovado’ ‘Desafinado’ 같은 보사노바의 히트곡이 빠진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런 곡들이 있었다면 홍보와 판매에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더블 레인보우는 보사노바의 감성을 잘 담고 있지만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곡들을 소개하며 교감하려 노력했고 이런 모습이 바로 전형성을 거부하는 그들의 힘이자 음악적인 고집이라 본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올 여름에는
로 대중적인 장르인 보사노바에 더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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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두..
와~! 들어보니 노래 넘 좋네요,,특히나 보컬의 여진님 목소리...! 굿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