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도론 2권
8.3.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5]
8.3.4.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결실과 이익
이와 같은 열여섯 가지 토대를 가진 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238.
①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전적으로 고요하고 수승하고 … (S.v,321)”등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145) 고요한 상태 등도 이 수행의 큰 이익이라고 알아야 한다.
② 또 일으킨 생각(尋, vitakka)을 끊어버릴 수 있는 능력도 큰 이익이라고 알아야 한다.
일으킨 생각은 삼매를 방해하는데 이것은 그 일으킨 생각 때문에 마음이 이곳저곳으로 달아남을 끊어버리고 마음을 오직 들숨날숨이라는 대상으로 향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고요하고 수승하고 순수하고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하셨다.
“일으킨 생각을 끊기 위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A.IV.353)”
239.
③ 영지(明, vijā)와 해탈을 성취하는 근본 원인이 됨도 이것의 큰 이익이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완성하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를 완성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영지와 해탈을 성취한다.(M.III.82)”
240.
④ 더욱더 [임종시의] 마지막 들숨날숨을 아는 것도 이것의 큰 이익이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라훌라야,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지으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소멸할 때에도 [멸한다고] 안다.
그것을 모른 채 멸하지 않는다.(M.i.425-26)”
241. 소멸에 따라 세 가지 마지막 들숨날숨이 있다. 즉
① 존재에서의 마지막과
② 禪에서의 마지막과
③ 죽음에 의한 마지막이다.
존재 가운데서 욕계의 존재에서만 들숨날숨이 일어난다.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존재에서의 마지막이다.
禪 가운데서 첫 번째 세 가지 禪에서는 일어난다.
제4선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禪에서의 마지막이다.
죽음의 마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죽음의 마지막 들숨날숨이다.
이 [죽음의] 마음(死心, cuti-citta) 이전의 16번째 마음과 함께 일어나 죽음의 마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죽음의 마지막 들숨날숨이다.
이 [죽음의] 마지막 들숨날숨이 여기서 뜻하는 마지막이다.
242. 이 명상주제에 전념하는 비구가 죽음의 마음 이전의 열여섯 번째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에 일어남(生)으로 전향할 때 그에게 그들의 일어남이 분명해지고,
머묾(住)으로 전향할 때 그들의 머묾도 분명해지고,
무너짐(滅)으로 전향할 때 그들의 무너짐도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그 대상인 들숨날숨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243. 들숨날숨이 아닌 다른 명상주제를 닦아서 아라한과를 얻은 비구는 그의 수명의 기간을 정확히 재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열여섯 가지 토대와 함께 들숨날숨을 닦아서 아라한이 된 자는 그의 수명의 기간을 반드시 정확하게 잰다.
그는 ‘이제 이만큼 나의 수명이 유지될 것이다. 이 이상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알고,
자연스럽게 몸을 돌보고 가사를 수하는 등 모든 일을 마치고 눈을 감는다.
꼬따 산(Koṭapabbata)의 사원에 머물던 띳사 장로와,
마하까란지야(Mahā-Karañjiya) 사원에 머물던 마하 띳사 장로와,
데와뿟따(Deva-putta)의 큰 왕국에서 탁발승이던 띳사 장로와,
찟딸라 산(Cittala-pabbata)의 사원에 머물던 두 형제 장로처럼.
[일화]
244. 다음 일화가 그 보기가 된다.
두 형제 장로 중의 한 분이 보름의 포살일에 계본을 외우고 비구 승가에 의해 둘러싸여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갔다.
경행처에 서서 달빛을 보다가 자기의 수명을 재고서 비구 승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그대들은 어떤 방법으로 비구들이 열반하는 것을 보았는가?’
어떤 자들이 말씀드렸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자리에 앉아서 열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자들은
‘저희들은 공중에서 가부좌를 한 채 앉아서 열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장로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경행하다 열반하는 것을 보여주리라.’
그때 장로는 경행처에 선을 긋고는
‘내가 경행처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이르러 되돌아오다가 이 선에 이를 때 열반하리라.’
그는 경행처에 올라 저쪽 끝에 이른 뒤 돌아오면서 한 발이 선에 이르는 순간에 열반하셨다.
그러므로 현자는 이와 같이 여러 이익을 가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항상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것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상세한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