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1 시흥문학27집 신작작품 초대 수필: 정목일/지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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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역사(驛舍)를 지나며
鄭 木 日
매주 한 차례씩 창원에서 서울로 KTX를 타고 오간지도 10년 정도가 되었다. 고속열차를 타면 바깥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풍경이 사라지고 만다. 시간의 단축이 목적일 뿐, 여행을 즐기려면 저속 기차를 타는 게 좋다.
고속 열차는 대구, 대전 등 큰 역사에만 멈춘다. KTX 역사(驛舍)는 철제로 천정에서 바닥까지 전 공간을 바라볼 수 있게 돼있다. 목재나 석재를 사용하지 않고 철제 골조로 기둥을 세우고 상하좌우(上下左右)로 연결시켜서 기하학적인 공법을 구사했다. 좌우 균형을 이루는 시메트리(symmetry. 대칭성) 기법이다. 날렵하고 견고해 보인다. 바닥과 천정, 좌우 공간을 철근 자제들로 짜 맞추었다. 한 눈에 역사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최신 건축술이지만, 성냥개비로 지어놓은 건축구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KTX 역사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공간일 뿐, 목재 건물에서 오는 삶의 체취, 정감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잠시 정차하여 승객만 바꾸고 떠나곤 한다. 마중이나 배웅을 하는 이도 없다.
KTX역사는 군거더기가 없는 과학적인 건축기법을 구사하여 실용성과 경제성을 최대로 살린
건축물이다. 철재를 사용하였기에 안정성과 균형감은 있지만, 정취와 정서감이 없다. 목재와 석재가 동원된 건축물은 문화의 체치를 느끼지만, KTX역사는 어느 곳이든 동일한 모습이다. 편리성만 살렸을 뿐 개성이나 차별성이 없다.
인터넷과 고속열차의 등장으로 현대의 삶은 속도 경쟁에 빠져들었다. 한 눈 팔거나 속도에 뒤지면 뒤떨어지고 만다. 그 동안 쌓아 왔던 노력은 단숨에 허물어질 수도 있다. 모든 일이 시간 경쟁 속에 빠지고 말았다. 한가하게 감상적인 생각을 떠올릴 겨를이 없어졌다. 승객들은 시간에 얽매여 있으며 속박돼 있다.
KTX의 운행으로 시간 혁명이 앞 당겨졌다. 시간 혁명의 방향은 세 가지로 전개된다. 첫째는 ‘시간의 단축’이다. 빠른 교통수단을 만들어 내고 속도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속도가 모든 변화를 이끌고 있다. 둘째는 ‘시간의 늦춤’이다. 인간은 노화와 수명을 늘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속도는 빨라져도 인간은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셋째, ‘시간의 보존’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퇴색시키며 망각의 길로 가게 만든다. 이를 막기 위해 오디오, 비디오 등의 기억 장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KTX 역사가 생기면서부터 간이역은 소용이 없어졌다. 속력에 밀려나면 쓸모가 없어져 퇴색된 채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을 통해 속도에 밀려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쏟는다. 시간의 단축만이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생존 수단이 돼버리고 말았다.
고속열차를 타면서 편리에 취하면서도 고속으로 달려가는 삶에서 무엇을 얻을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속도에 빠져 있는 동안에, 기억하고 음미해야 할 귀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가치는 무한 경쟁으로 얻는 물질적인 이익보다도 느림에서 오는 사랑과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가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 했던 친구들을 만나는 일, 마음에 두고서 인정을 나누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보는 일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KTX를 타고 가면서 삶의 속도와 질(質)을 생각해 보곤 한다. 삼십대 후반에 산부처로 일컬어졌던 경봉선사(鏡峰禪師)를 통도사(通道寺) 극락암 (極樂庵)으로 가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다. “길이 없는 데 어떻게 왔는가?” 그 물음은 가끔씩 가슴 속에 천둥처럼 울리고 있다.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여행자이다. KTX를 타면서 빠른 속도에 휩쓸리면서 가끔씩 자신에게 의문을 던진다. 과연 어디로 달려가며 무엇을 얻고 잃고 있는 것인가.
고속의 편리에 취해서, 어쩌면 느림에서 얻는 여유와 정겨움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경봉선사는 평생에 걸쳐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해 암자에서 40여년이나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해 오지 않았는가.
KTX역사를 지나면서 일생에 오직 한 물음만을 생각했던 삶이 떠오른다. 지금 눈 깜짝 할 이 순간, 내 삶의 한복판으로 고속열차는 소리 없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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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경남 진주 출생 , 1975년 「월간문학」수필 당선. 1976년「현대문학」수필 천료.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연세대학미래교육원 수필 지도교수, 한국문인협회 수필교실 지도교수 , 저서, 수필집: 「마음 고요」(청어) 「지금 이 순간」(선우미디어) 「아름다운 배경」 (범우사) 외 30여권, 한국문학상, 조경희문학상, 원종린문학상, 흑구문학상 등 수상
황금들녘
지연희
한 무더기의 바람이 들녘을 흔들고 있다. 저녁놀에 물든 황금빛 파도가 일제히 고개 숙인 성자다. 익는다는 것, 온갖 과실이 제 몸의 빛깔로 익어가는 일은 생존의 존엄한 가치를 터득하는 일이다. 바람 불고 천둥번개 치는 계절의 질곡을 체험하고서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결실, 황금 들녘은 지금 생명의 씨앗을 품은 오곡백과 만연한 만찬의 향연 속에 있다. 이 장엄한 현실을 가슴에 품고 내 발걸음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발걸음이 그 어느 날 보다 풍성하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티끌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나는 세상에 없는 안위를 가슴으로 만끽한다. 황금들녘이 전하는 경건한 의식에 동참하고 있다.
결실의 충만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생의 단 한번 눈부시게 맛보는 거룩한 수확의 기쁨이다. 가을볕에 고개를 숙인 성숙한 볍씨가 헤일 수 없는 생명의 인자들로 배태되어 한 방울의 피와 살을 잇고 새로운 세상의 주인으로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볏과에 속하는 한 해살이 풀로 태어나 무논에 뿌리를 내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득한 생존의 이유를 짓는 까닭은 어미와 어미로 종을 잇는 가치추구의 사명 때문이다. 지구촌 생명을 지닌 그 어떤 어미도 애초부터 무한의 생을 약속하여 생명을 이어오지는 않았다. 힘찬 울음으로 태어나고 가파른 생의 고단으로 유한의 생명을 감내하지만 종래에 저 황금벌판의 풍요는 한 해가 저물고 다시 한 해의 새 주인을 맞는 생명의 질서라는 것이다.
4층 옥상으로 오르는 추녀 끝에 작은 집을 지은 거미 한 마리를 보았다. 그의 집 허물기가 왠지 매정하다 싶어 용납하고 가끔씩 관망하던 차에 놀라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세를 넓혀 좌우로 2m쯤 확장된 그물망이 주변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었다. 하늘을 끌어안은 제법 큼직한 허공의 터를 확장한 그물망을 관찰하는데 맥없이 날던 크고 작은 곤충들의 앙상한 사체들이 보였다. 그리고 몇 마리 생명을 내려놓은 거미가 거미줄에 걸려 있었다. 거미집에는 주인인 듯 한 튼실한 두 마리가 아래 위로 근접해 있고 새끼 거미 한 마리가 제법 이들 두 마리와는 떨어진 귀퉁이에서 느린 미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침입자를 인식한 것인지 재빠르게 줄을 타고 달아나는 두 마리거미 중에서 애초에 목격한 한 마리 거미의 행방을 찾아보았다.
지난여름부터 허용한 몇 개월 동안 거미네 집에도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거미줄에 걸린 몇 마리 거미사체가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두 마리의 성숙한 거미와 새끼 한 마리의 관계는 어떤 동거일지 거미군단의 생태에 대하여 검색해 보지만 충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남의 집에 침입하여 살생을 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무법자는 아닐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거미들의 세상에도 본능적인 생존의 질서가 있어 아름다운 미담을 전해주는 까닭이다. 에어리염낭 거미는 알을 품고 있다가 깨어난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주는 희생적 모성을 보여주는 거미이다. 종을 잇기 위한 어미의 순정한 희생인 것이다.
어느 시인은 ‘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라고 했다. ‘꽃은 죽음이다’ 라는 것이다. 열매를 얻기 위한, 씨앗을 맺기 위한, 장렬한 죽음의 몸짓이라고 한다. 만개한 꽃잎에 스민 시든 종말의 그림자는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심판이다. 꽃의 죽음은 씨앗이며 씨앗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미래이다. 어미의 대를 잇는 종種의 순명이다. 단단하게 여문 저 열매들의 가슴 깊은 심중에 한 점 검은 생명의 뿌리가 숨죽이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극도의 화려한 색감으로 피어 찬란한 가을볕에 몸을 달구더니 꽃의 사리로 땅에 떨어지는 씨앗들이 도처에 누워있다. 가을은 꽃의 장례행렬들로 여기 저기 분주하다. 낙화로 떨어지는 어미들의 가없는 순장이 내일을 여는 지름길이다.
무엇으로 표현할 수없는 기쁨을 말하라 한다면 오늘 현재 나는 생명으로 살아있다는 일이다. 아련한 불빛에 스미어 눈을 감고 시각에서 촉각까지 내게 닿는 삶의 이유는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내일을 설계하여 신세계를 펼쳐낼 새 생명의 어미라는 자긍심이다. 황금벌판을 물들이는 수많은 열매들, 씨앗들의 웅크린 생명의 힘은 새 봄을 일으켜 세울 파릇한 새싹이며 용솟음치는 희망이다. 가을은 때문에 성스럽고 어떤 가치를 뛰어넘는 거룩한 시간이며 공간이다. 완숙의 경지에 도달하는 세상 모든 씨앗들의 경이로운 침묵을 위해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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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학 신인상(수필1983년). 시문학(시2003년) 신인문학상 당선, 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사)한국여성문학인회 부이사장역임. 사)현대시인협회 이사 /사)한국시인협회 회원, 계간「문파문학」발행인. 수상 : 제5회 동포문학상 수상/제11회 한국수필문학상/대한문학상 대상 수상 /대한민국 예총 예술인상/제9회구름카페문학상 수상/정과정문학상 대 상 수상 /제30회 동국문학상 수상. 저서 : 수필집=「식탁 위 사과 한 알의 낯빛이 저리 붉다」「씨앗」외 14권. 시 집=「메신저」외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