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이 부었다. 오른쪽 턱이 볼록하게 나와 얼굴이 좌우가 다르다. 약이라도 먹어둘 것을 그랬나?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맑지 않아 혹시 비가 또 오려나? 땅에 물이 고인 것은 아닐까? 일정을 연기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다. 한쪽 턱은 더 부었고 뜬끈뜨끈 하다. 이것저것 챙겨 부지런히 나서다.
9시50분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스텝은 소리랑에서 8시 집합하기로 한 것을 모르고 7시 40분인가부터 수락산 3번 출구를 지키고 서 계셨다는 한 분과 그 뒤에 합류한 한 분이 계셨다. 거리에서 차 소리를 듣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산에 얼른 가보고 싶어 혼자 길을 나섰다. 수피가 흰 자작나무들이 무리지어 선 것이 멋지다. 생강나무는 노란 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수락산 전체를 감싸는 커다란 새소리. “호호호호호오 호호호호호오” 어떤 새가 제 영역을 주장하며 외치는 것인지, 짝을 부르고 있는 것인지. 새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찾아가보고 싶었으나 참다. 천진난만하신 천상병 시인의 시를 써놓은 나무판들을 지나 수락산 숲체험교실(공연장소)에 가보니 아무도 없다. 제를 지낼 배드민턴장으로 간다는 것이 길을 잘못 들었다. 공연장소에서 계곡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 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왼쪽으로 올라갔다. 화요소리반 회원 한 분을 중간에서 만나 같이 헤매다 내려왔다. 워낙 길을 잃고 헤맨 경험이 많은지라 그러려니 했다. 전날 비가 푸짐하게 내렸으니 나무들은 물을 흠뻑 마시고는 꽃을 피워 내거나 잎을 피워낼 설렘으로 흐뭇하고 있으리라. 물오리나무에는 주렁주렁 꽃들이 매달렸다.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니 숲속체험교실에 우리 팀들이 보인다. 하하하 저기들 계시네요.
제사를 지내는 것은 즐겁다. 여럿이 힘을 모아 상을 차리고 묵념을 하고, 축문을 읽고, 천지신명께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춤을 올리고, 소지를 하고, 음복을 하는 모든 순서에 정성이 깃들어 있으니 좋다. 나상이님이 살풀이춤을 출 때는 바람도 사정을 봐주는지 얌전해졌다. 제를 마치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했는데도 여전히 춥다.
건너로 보이는 선인봉, 만장봉, 신선대를 포함한 도봉산 능선의 상부는 전날 내린 눈이 쌓였는데 햇살을 받고 늘어선 모습에 고귀한 기품을 보이는 산신의 모습이다. 바람이 얼마나 세찼던지 선인봉과 만장봉의 전면은 눈이 거의 날아가 버리고 없다. 호랑이(산신령할매)가 시집을 가시는지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가 하면, 어두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도 하고, 겨우내 버티며 겨울눈을 감싼 채 보호하고 있던 지난 해 나뭇잎들을 사정없이 우수수 날려버리기도 한다. 천지신명의 배려로 여러 날씨를 다 경험하는 것이니 감사해야 할 것이다.
2시 경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남행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 두둥딱 북소리, 맑고 명랑한 구궁따르르르 장구소리는 수락산 주위를 떠도는 모든 귀신들도 불러 모아 놀게 할 정도다. 곽선생님께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라는 소리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평소에 간혹 말을 듣지 않던 제 버릇대로 춥다고 버티다가 살풀이춤 바로 앞 순서인 승희양의 소리가 시작될 즈음에 후다닥 준비를 하는데 버선을 신으랴, 머리 모양을 다듬으랴 정신이 없다. 입술에 뭐라도 바르고 나가려 했는데 나오라고 해서 안경을 벗어 던져두고 나갔다. 무대에 올라 춤을 출 때면 평소에 좀 더 집중해서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게 된다.
음악이 나오고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아, 두 줄기 콧물이 졸졸졸 흐르는구나. 춥다고 셔츠에다 오리털파카를 끝까지 입고 있다가 두 가지를 벗어 던지고 올랐으니 온도차가 갑자기 생기면서 콧물이 자연스레 나온 것이었으니……. 미리 무대의상으로 입고 팔굽혀펴기라도 해서 체온을 올리고 차가운 기온에 적응하고 나서 무대를 올랐어야 하는데……. 앞에서 호야산악회 분들이 사진을 찍어주시는데 햇살에 반사되고 있을 두 줄기 콧물을 어쩌란 말이냐……. 콧물을 닦을 것이냐 말 것이냐? 어느 춤동작에서 닦을 것이냐? 여자 마라토너가 마라톤 도중 갑자기 생리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한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러다가 수건을 들고 있지 않은 손등으로 확 닦고 말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할 수 없다. 관객과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해야 하는데..... 관객들도 함께 콧물을 닦으면 좋으련만...... 잊어버려..... 멋진 구름과 아름다운 수락산, 북악산, 북한산, 남산, 관악산, 도봉산 산신들과 봄기운으로 들썩이는 나무와 풀과 사람들을 찬미하는 춤을 추어야 한다. 두 팔은 바닷물 속에 너울대는 미역처럼 부드럽게, 두 발은 꿀이 흐르는 것처럼 쫀득쫀득하게, 동백꽃의 목을 댕강댕강 무참히도 쳐내는 바람처럼 힘차게 춤을 추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무대에서 내려오니 곽선생님께서 잘 추었다 하시기에 다른 말을 덧보태지 못하시게 잽싸게 고맙습니다! 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다른 팀의 공연을 보러나갔다.
그러다가 계곡에 도롱뇽 알을 찾으러 내려갔다. 일전에 아시는 분이 수락산 산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사진 찍은 것을 보여주었기에 산기슭에 해당하는 이 계곡 부근에 알들이 있을 것 같았다. 10살 남짓 한 남자아이 둘이 나뭇가지를 들고 계곡을 오가는 것을 보고 접근해서 물어보니 개구리 알이 많다고 한다. 정말이다. 우무 질에 싸인 개구리 알이 여기저기 보인다. 짝짓기를 하는 개구리 10여 마리가 둥근 공 모양으로 엉켜서는 바깥쪽 개구리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있다. 덩치가 큰놈, 작은놈, 모두 악착같이 앞다리로 매달렸다. 나뭇가지로 살살 건드리며, 얘들아 둘 둘씩 질서를 지켜가며 해도 되지 않겠니? 하니 아이들은 짝짓기 하는 동물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점잖게 충고해준다. 경사가 완만해지는 계곡 바닥에는 하얀 배를 보이고 드러누운 개구리 사체가 여럿이다. 죽기 살기로 종족보존의 본능에 따르며 자신의 씨를 남기기 위해 다투다가 죽었는가? 짝짓기의 둥근 공의 안쪽에 있는 놈은 질식하여 죽을 것 같기도 하다. 짝짓기와 산란에 힘을 다하고 죽은 것인가? 희한하게도 죽어있는 녀석들의 네 발이 없어졌다. 족발이 맛있고 닭날개와 닭다리가 맛있듯이 개구리도 발이 맛있어서 어느 녀석이 개구리의 발만 똑똑 따먹었을까?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도롱뇽알도 봤나 물어보니 그렇단다. 가보자. 조금 아래 내려가니 편편한 바위 가운데가 오목하여, 물이 상당 시간 정체를 하는 곳에 솥에서 쪄내는 순대마냥 둥글게 말린 도롱뇽의 알주머니가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 사이로 보인다. 얘들아 도롱뇽도 봤어? 그렇단다. 그리고는 도롱뇽을 잡았다. 내게 넘겼다. 촉촉한 도롱뇽이 손바닥 위에서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긴 몸을 S자로 움직이며 우리 춤은 이렇게 곡선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가르친다. 둥근 두 눈이 툭 튀어나왔다. 짝짓기와 산란으로 지친 것인지 날이 추워서인지 낯선 환경에 긴장한 것인지 몸놀림이 느리다. 이 어여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우지끈 우당탕 하고 하늘에서 계곡으로 무엇이 쏟아져 내린다. 무어야? 와 멋지다. 계곡 바로 옆에서 계곡으로 몸을 기울이고 선 참나무에서 죽은 가지가 3초 정도 떨어지고 있다. 물이 튕기고, 아이들도 위험을 느끼고 공연장 뒤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아빠한테 달려가면서 그 광경을 돌아본다. 전날 내린 비를 머금어 무거워진 나뭇가지가 버티다 버티다가 한계점에 도달하여 떨어진 것이다. 길이 3미터 남짓에 직경 10센티미터 정도의 굵은 가지 둘에다 가느다란 가지들도 여럿이다. 도롱뇽아, 우리를 위해 머뭇거리지 않고 제 때 잡혀줘서 우리가 피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구나. 시산제 때 땅바닥에 이마 대고 절하였더니 산신께서 굽어 보살피셨구나. 생과 사는 한발자국 차이에 있다더니……. 죽어 쓰러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굳은 땅을 뚫고 연한 떡잎을 내보이는 나무가 바로 이웃에 있다. 봄산은 낙석과 붕괴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현장 바로 옆에 있던 우리보다 나뭇가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그 광경을 가까이서 보신 나상이님이 119 부를 뻔했다며 더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도롱뇽을 몇몇 분께 보여드리고 그제야 카메라를 챙겨들고 내려가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옆으로 치워주고, 바로 그곳 도롱뇽을 잡았던 웅덩이 가장자리에 놓아주며 사진을 찍었다.
고맙다. 그리고 잠시 붙잡아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 잘 살아라. 도롱뇽 알들과 산개구리 알들이 무럭무럭 자라 올챙이가 되고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나와 수락산자락을 누비며 잘 살기를 기원하다.
공연이 무사하게 잘 끝나고 저녁밥도 잘 먹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
** 애쓰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첫댓글 풍경과 심리와 관조의 묘사가 극에 달합니다. 경상도 여자가 가진 둔탁함을 전혀 느끼기 힘든 글빨입니다요...하하하...정말 잘 읽었어요...
한편의 산여행의 수필이군요. 느낌이 가슴속에 알알이 박혀 옵니다.^^
이정연님 추운데 공연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난 바로 옆에서 북을 잡고 있었는데 콧물은 안보이고 멋지고 예쁜 손끝
발끝만 보입디다. 염려 버리시길....^^
닉네임 고구마만큼이나 폭신폭신하고 달콤하게 어제의 일정을 전해주시네요.^^ 공연하시느라 고생도 많으셨을텐데 이렇게 멋지게 글로 풀어주시니 감솨~~
몇 년 전인 지 시중 서점에서 고구마 라는 건강 서적을 읽었었던 적이 있었는 데 고구마에 식이섬유가 많아서 다이어트 뿐만 아니라 장에 아주 좋아서 고구마 한 가지로 건강을 지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날씬 하신가? ㅎㅎ. 역시 춤이 그냥 되시는 것이 아니었군요. 세월이 지남에 알았습니다. 사람은 기예는 그냥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래 사신 분 들은 그 사람의 관상.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 지 알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춤이나 소리나 자신의 내적인 것의 외적인 표현 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만큼 깊이와 수련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자주 이런 글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
지도 마~ 그 책 봤습니더.
고구마 많이 먹으면 신물납니다.
늑대님 춤이 자연을 닮은 것이 보기 좋습니다.
캬~~~!! 두말이 필요 없구려~~^^그대의 글솜씨~~~과연 고구마~~ 고구마가 땅을 만나면 싹을 튀울것이요~ 불을 만나면 군고구마가 될것이니~ 하나도 버릴게 없구려~~^^^
얼씨고~ 고구마타령이 나온다~
사실은 느티나무로 할라카다가 다른 분이 쓰는 닉네임이라 해서 못하고 감자 할라다가 웬지 세글자인 고구마 가 리듬감이 더 있어보여서 고구마로 한 것입니다.
고구마는 역시 경상도 사투리로 먹어야 제맛이야,~~
소정선생께 고구마타령 좀 배워보자 부탁드려봐야짂ㄲㄲㄲ^&^
잔잔하게 감성이 잘 드러난 수필 인상깊게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