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은 "상 갚아주시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같이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상 얻지 못할 기도만 들으셨는데 오늘은 "상 갚아주시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요 내용은 6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이제 믿는 자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기도에 대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면 이제 예수님과 뜻을 같이하는 기도, 수준을
같이 하는 기도가 되어야하는 것임을 알게해주신 겁니다. 첫째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 하지 말라'하셨고, 두 번째는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 즉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자기 마음에서 나는 것들로 기도 한다고 했던 그런 신심의
기도 하지 말라! 그것은 귀신에게 하던 이방인의 때에 기도이니, 너희가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네 구주로 믿고 영접하였으면 하나님은 네 아버지시니, 이제 네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을 잘 배워서 그 기도에 맞는 믿음과
믿음의 생활로 맞추어져야 하는데, 그런데 그 삶으로 맞추어지지 않고 그 기도의 뜻도
모르고 입으로만 달달 외운 것만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이방인이요,
중언부언(重言復言)한 것 밖에 되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중이 뜻도 모르고
염불 외운 것과 똑같이 주문처럼 외우는 것에만 충실했다고 하면, 그 믿음은 아직
예수님께 나온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 아니요, 예수님 밖의 있는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또 다시 말하면 '예수님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이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귀신 섬기듯 했다는 것 드러나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하신 말씀을 따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 다시 말해
산상수훈의 모든 가르침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의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믿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치는 말씀 하나 하나를 잘 듣고
배우고 깨달아서 말씀을 따른 믿음이 되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이끄는 믿음,
자기 방식대로 자기 마음에서 나는 자기의 요구들을 가지고 나와 예수 이름으로 열심히
기도 한다고 했던 이방인들이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십수 년 또는 수십 년
신앙생활 한다고 했지만은 여러분께서 그동안 무엇을 가르침 받으셨고 또 무엇을
가르쳐 오셨습니까?
자기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 자면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맛이 자기에게서 나와야 그것이 예수 믿는 자인 것인데, 그런데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그 기도 조차도 뜻도 모르고 그저 중이 염불 외듯이 외면서 얼마나
자기의 육신적인 것들을 위해 세상적인 것들을 위해서만 예수 이름을 사용하고
살았는가 말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열심히 예수믿는 믿음인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와
같이 믿는다고 했던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 밖에 있었던 이방인이었다는 것
알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우리의 기도는 입으로만 하나님께 아뢰라는데 목적을 둔 것 아닙니다. 기도가 바로
그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하는 것이 되어서 나에게 그대로 적용
해야 되는 일인 것입니다.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하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요, 찾으라는 것이요, 두드려서 까지라도 열리게
하라는 것을 말씀하신 뜻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것이
바로 우리의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말이죠. 우리의 구해야 하는 찾아야
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이죠.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뜻이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의 의미예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예수님이 뭐라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기도를 들으신다"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가 보시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해 주신다"가 아니라
'갚아 주신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에 대해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을
통해 "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의 의미는 이것이구나!"하고 알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모르면 결국 이방인 같이 중언부언 하는 자 밖에 될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는
바가 되어야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아는 것이요, 예수님과 수준을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의 길에 있는 자인 거예요.(아시겠습니까?)
과거에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아주 세상 물질에 목 말라 가지고 하나님께 "나 좀 잘 살게
해주세요! 나 물질로 풍족하게 잘살게 해주시면 물질로 하나님의 일 많이하겠습니다"
하고 목매고 기도 했었는데, 하나님은 자꾸만 내가 요구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너는
기도로 살리라! 기도하라!"라는 말씀만 주시는 것이였습니다. 그래도 또 목매고
기도하면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막은 것도 나요, 여는 것도 나니라!"는
말씀만 하시는 것이였어요. 그러니까 돈이 생기는 길목마다 자꾸 막히고 막히니까,
얼마나 마음도 몸도 지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는 하나님이 내가 잘사는 꼴을
못 보는 분인 줄 알았었어요, 그러니 "막은 것도 나요 여는 것도 나니라 너는
기도하라"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은 사실이였습니다.
내가 잘 사는
꼴을 못 보는 분인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오해이기는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오해는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막으셨으니까, 지금은 정말 너무나 잘 알죠! 왜 그러셨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이셨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잘 알지요! 그때는 오로지
육의 미련과 욕심으로 마음에 꽉 차있고 눈이 가려져 있으니 알턱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처음에 기도만 하라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이후에 성영께서 말씀 안으로
저를 이끄시고 하나님의 비밀로 하셨던 영적인 역사와 그 베일을 벗겨주신 영적인
역사를 보고 깨닫게 해 주신겁니다.
기도라는 것은 그렇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의미를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믿음의 삶을 말한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 보여지는 삶, 하나님이 보시는 삶이
되어져야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 그것을 깨닫게 하시면서 실지로 그 안으로 이끄시고
이루어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드리게 되는 말씀은 여러분에게 참고로
드리는 내용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고 아주 응답이라는 말이 습관에
붙어서 응답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응답하신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라고 이같이 편하게 응답이라는 말을
잘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응답하신다'하는 이 '응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알고 사용하는 말이 되시자 말이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또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시대 때 예수님 오셔서 구원을
이루시기 전 구약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사) 41: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시는 등등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예수 믿으러 나와서 "자기의 사업이 망했다든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께 새벽마다 와서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를 주었다는 것을 제가 많이 들어요" 저도 사실 처음에 그것을
응답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도 가만히 보니까 그 절차를 다 밟더라구요,
그런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하는 것은? 자기 사업 무너진 것
일으켜주신다는 그런 뜻으로 그 말씀 주신 것 아니예요. 바로 "그 말씀을 주신
앞 뒤의 문맥을 다 살펴서 너희에게 적용하라"라는 그런 뜻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렇게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를 받았다는 분들이 자기의 형편에다 다 결부를
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처음부터 잘못 가고 있는 것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응답
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개인의 삶이나 또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육신의 것을 위해서 구하는 기도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에 쓰임받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자들로 하여금 환란을 당하고 고통 중에 거할 때나, 그래서
주리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를 고통에서 건져주소서!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소서!'하는 그 부르짖음의 기도들을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의 부르짖음, 하나님의 사람들이 원수에게 고통 당하는 그 호소와 부르짖어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내가 구원해 주겠다! 내가 구주를 보내리라! 속히 이루리라!
내가 원수를 갚아주시겠다!"하시는 것을 대답해주시고, 그때 그때 또 그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셨다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기도라는 것도 "내 자식
잘되게 해주세요! 우리 좀 잘 살게 해주세요!"하는 이런 육신적인 것을 구하는 것
가지고 기도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그것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알아들으세요?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예수 믿는 자들에게, 그런 육신의 것들을 위해서 세상적인
것들을 위해서 우리 마음에서 나는 것들을 가지고 무조건 기도하지 말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본문 7절에서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당부 하시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구약에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달라고 부르짖는 백성의 기도를 응답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 예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면서,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기도의 의미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기도요,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내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려고 하니 기도 안할 수가 없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마태복음 5장 1절에서부터 계속 여러분께서 가르침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산상수훈 전체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는다
할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는 도무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없기 때문에,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신 그 말씀 하나 하나를 깨달아 보기
위해 기도할 것이요, 또는 깨달았으면 자기 믿음에 적용하기 위해 기도할 것이요,
그러다 예수 때문에 예수 전하다 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려고 하니 핍박이 따르고
비난이 따르고 포기해야 될 일이 생기고, 진짜 믿음인지? 믿음의 시험이 따르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갚아주신다'고 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자의 기도요, 기도의 삶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어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요한복음 15장에 말씀하시길,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말씀하셨고,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그 말씀 자체가 바로 우리에게 과실을 주는 말씀인데, 바로
'우리에게 그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했어요.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가 되는 것은 무엇으로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말씀했어요.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어요.
(요)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했습니다.
'그래 알았다'하고 응답(말씀만)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약은 '내가 너의 원수를
갚아주겠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어주겠다'하신 응답이었지만, 이제 예수님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 주신다고 하신 거예요. 또 갚아주신다고 하신 거예요. '너희가
받는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금생(今生)에서도 내생(來生)에서도 상 주신다 하셨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복있고, 얼마나 능력있고, 얼마나 권세가 넘치는 것입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겁니다. 정말 예수님을 생각만 해도 나에게서 기쁨이 샘솟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사실
성서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머리의 지식만 삼아
가지고 아멘! 아멘! 하지만, 성경에서 예수님이 뜻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하셨다는 것, 왜 그렇게 말씀하셨겠는가 생각해 보셔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 이 말씀도 어떻게 대하는가 하면? (모든 말씀도 다 마찬가지죠?)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주신다는 것으로만 인식되어 버리고, 그렇게 인식되어진 것에 습관
붙어버렸고 그래서 이방인 같이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너무 익숙해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같은 기도의 가르침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니!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아예 모르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 말했다 저 말했다 이랬다 저랬다'하는
변덕으로 길들여지고, 습관들여진 자기의 태도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그렇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 쯤으로 여겨버리고 흐지부지 대하는 것입니다.
책임감 없이
하는 말들, 얼마나 무익한 말들을 쏟아내고 사는데 아주 습관 들여져버린 자기의
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자기의 말들과 같은 그런 수준에다 놓고 대해버리고 만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 생명으로 볼 능력들이 없습니다. 자기를
의롭게 살게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능력들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 하나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데다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의 요구만 구하는 겁니다. 자기의 필요만 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의 궁금한 것, 영적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기의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만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맞출 생각들이 없어요.
자기의 믿음을
자기가 다 이끌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 자기
삶에 능력으로 갖추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의 사랑하는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은 것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말씀과는 상관없이 "그냥 자기 마음에서 나는 것들을
열심히 주님께 기도했더니 응답이 떨어졌다"고 하는 자기 정신에 만족이 되는 그런
영적인 체험들, 신비적인 체험들 자기 육신의 만족이 되는 생활적인 이런 이방인이
구하는 기도들에 응답해주셨다고 하는 것들 때문에 기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속히 하나님께 맞는 신앙 정신으로 개혁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도 분명한 것이요, 복도 있고 영생도 있고 권세의 능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그 종교개혁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신앙 문제들도 이 개혁이 일어나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이제 정말 정말
개혁이 일어나야 되겠다 그말입니다. 자기에게 맞추었던 것에서 돌이켜 예수님께
맞추는 생명있는 믿음으로 개혁이 일어나야 됩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상관없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죄를 지었기 때문에 구원 받아야
될 존재가 아니라) 죄와 상관없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
그래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어 그 육에서 구원해 내시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 육에서 구원해 내시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말이예요) 그래서 부활의
영광의 몸을 주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예요.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이 같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자기 이성에 받아들여 이해가 되어져야 하고, 그러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이 같은 뜻을 기쁘게 받아들여 이 뜻에 함께 멍에를 메는 것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다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 되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속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이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하는 것과, 또
'은밀한 중에 계시는'하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기도할 때에
꼭 네 골방에 들어가 문 닫아야 하는가 말이죠? 예수님 말씀대로 라면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도 사실은 '네 골방에 들어와 문 닫은' 것
아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은밀히 계시는 분인데, 그래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보시고 갚아주시는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문을 닫은 골방의 기도인 것을
말씀하셨으니 우리 모두 문을 닫고 골방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골방에 들어가라 하셨으니 들어가야 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아버지께서
보시고 상이 있으실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여러분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니까
"아! 우리 집은 방이 두 개 밖에 없어서 빈방이 없으니까 성경 보고 기도하기 위해
골방을 하나 따로 만들어야 되겠다!"그런 것입니까? 물론 이것도 우리에게는 대단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있어서
우리가 말씀도 볼 수 있고 기도도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좋은 환경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골방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골방이라고 하는 것은 큰방 옆에 하나 딸린
문이 달린 작은 방을 말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골방의 뜻이 그거예요. 그러니까
비밀 공간 같은 은밀한 장소 같은 곳,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 집
주인만 자기 어떤 생활에 중요한 물품들을 들여놓고 문 닫아 잠궈놓는 곳, 주인만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은밀한 처소 같은 곳을 말합니다. 주인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예요. 주인의 중요한 생활이 거기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리고
골방의 용도가 다양합니다. 숨을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고 보관할 수도 있는
곳이예요.
이와 같이 우리의 세상살이에도 집 주인에게 골방은 매우 중요한 장소이듯이, 바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참으로 믿는 자가 되는 것은 이제 믿음의 골방으로
들어가 문 닫아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성전 생활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이예요. 구약 성전에 제사장들이 사용하던 골방이 있었습니다. 성전 옆에 사용하던
골방이 있었어요. 은밀히 계시는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성전에 딸린 골방에다가
제사에 필요한 중요한 물품들을 보관하여 기거하면서 기도 처소로 사용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우리들도 이제 성전 골방으로 들어와 성전 생활이 되어야함을 말씀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이라 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거예요. 바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믿음을 말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성전이 되시는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신 이
산상수훈도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 되겠습니까? 성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즉 예수님이 성전 내가
성전인 이 관계를 말씀한 것이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의 말씀이 믿는다고하는 자기에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예수님이 성전 내가 성전인 이 관계가 되어졌을까요? 되어지지 않은 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이 자의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성전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그러니까 '행하는 것도 아버지의 하신 일을 보고 행하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요)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아버지께 들은 것을 그대로 또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하셨습니다.
(요)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른다"
고 하셨습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또한 성영도 오셔서 '자기 자의로 말하지 않고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아버지께서 구약 성전에서 이르신 아버지의 말씀, 성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성전 중에 성막뜰을 지나 성소에 들어가면 성소는
누구를 말한다고 했습니까?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장소입니다.
그러면 그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과 완전한 구별입니까? 아닙니까? 세상과 완전한
구별입니다. 성막뜰을 지나서 성소, 즉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거기는 오직 예수님과
뜻과 목적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하늘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고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산상수훈의 가르침 속에 세상의 것을 위한 가르침, 육신의 것을
위한 가르침을 베푸신 것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예수님은 세상의
것들을 위해, 또 우리 육신의 것을 가르치려 오신 것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문 닫고 네 골방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은? 이제 예수께서 오신 때는 세상에 대하여,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에 자랑에 대한 세상과 육신의 것을 이제 다 문 닫아
버리고 오직 은밀히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생활이라는 것, 성전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그렇게 "네 골방에 들어가 문 닫고"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셨던 거예요.
구약의 제사장들이 골방을 두고 성전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제사의 생활로 구별된
삶을 살았던 것처럼, 바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이제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다 성전이 되었으니 세상에 대하여서는 문을 닫은 골방을 두고 오직
마음을 아버지께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다 두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 자녀들의 생활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
아버지의 모든 것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또한 그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의 나라의
신영한 모든 복을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에게 내어주시려고, 그래서 구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으신 것이
뭐예요? 죄를 사해주셨죠, 우리의 육신의 병을, 영 혼 육을 다 치료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아플 권리 없습니다! 절대로 나을 권리만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께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그것을 구하면 아버지가 주신다
말이예요. 하늘의 신영한 것을 주신다 말입니다.
또 우리에게
영적 부유를 허락하셨어요. 우리에게 또한 생활의 복도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구하는 것 다 주신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에게 내어주시려고
그래서 구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해서 자녀를 향해 눈과 귀와
마음을 다 두고 계신다는 그 관계에 대한 것을 말씀해주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성전 안 어디에 계신다고 했습니까? 성소를 지나 가장 깊은 곳,
은밀한 장소 지성소에 계신다 했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오직 한사람 누구만 들어
갔습니까? (대제사장) 구약에는 대제사장이지만 대제사장을 예표하는 분이 누구예요?
바로 예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
하셔서,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니 어디까지 들어간 것이 되었나요? 지성소 까지
들어간 것이 되었어요. 내가 예수 안에 들어가니까 예수님이 지성소에 들어가셨으니
나도 덩달아 지성소까지 들어간 것이 되었어요. 아버지 계신 지성소까지 이제 들어간
것입니다. 또 내가 성전이니, 예수님이 성영으로 내 안에 들어 오셨으니 그러면
내 안에 성소가 들어오신 것이니, 무엇까지 들어와 버리신 것입니까? 지성소까지
들어와 버린거예요.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가 '내 안 지성소' 곧 영 안에 오셔서
은밀히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오셔서 은밀히 계신다 말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만 해도 아버지는 아세요! 우리가 바른 생각만 하면 그 생각을 귀히 여기시고
반드시 그 생각 조차도 다 놓치지 않고 아버지는 응답하시더라는 말입니다. 하늘에
대고 막 소리 지르고 부르짖어 안해도, 생각만 해도 아버지가 아버지 뜻에 합당하면
응답하시는 아버지시더라 그말입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성소에
계시지만 또한 우리 영 안으로 오셔서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요,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만져지지도 않고
눈에 보여지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게 계시는 아버지, 그래서 은밀한 중에 계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그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라는 것은, 이제 성전 골방에 들어가 문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여러분이 이제 골방의 의미에 대해 아셨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전 알지
못하면 믿음 생활 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구약의 성전으로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신 것이요, 우리 믿음이 어떠해야 되는지 알려주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성전 모르면 그 믿음은 거짓될 수 밖에는 없어요.
어디서 내가
걸렸는지? 믿음이 무엇부터 시작이 되어야 되는지? 기초가 뭐가 되어야 되는지?
내가 지금 어디에 걸려있는지? 알지 못한다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전을, 정말
몰입해서 마음과 귀도 말씀에다 두고 (성전 말씀을)잘 들으면서 자기가 성전이
이루어지는 귀한 훈련을 받으시라는 말이예요. 우리 마음에서나 삶에서 세상의 문을
닫아버리고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 그래서 정말
그 믿음의 삶이 되어질 때만이 아버지가 갚아주시는 상급의 삶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우리 믿음이 되어야 되는 이 같은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말씀을
여러분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 사실은 마음이 참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듣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먼 하늘을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있는 그 마음들을 불편하게 할 말씀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솔직히
여러분께 물론 앞으로 드려질 말씀도 마찬가지예요. 지금까지 여기서 드려진 말씀들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말씀들과 같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 여러분께서도
귀가 있고 눈이 있으니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그 많은
말씀들이 얼마나 예수님과 방향이 어긋난 것으로 세상과 함께 넣어주는 것들로 너무나
익숙해 있기 때문에, 정말 예수님의 이 같은 말씀이 또한 너무나 듣기에 부담스러운
말씀이 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께서는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
하셨지, 사람들의 생명 없는 자기가 듣기 좋은 말들,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말들
쫓아다니며 들으라! 하신 것 아닙니다.
그러니 이 같이
예수님의 말씀에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골방에 들어가 문닫는 것이 될 것이며
설사 또 안다 해도 자기의 요구하는 것들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고 있다면
여전히 하나님께는 이방인의 자리에 있는 것이니 어떻게 은밀히 계시는 아버지가
보시는 것이 될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신 이 모든 산상수훈의 말씀들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였음으로 성전이 된 관계가 되어진 자에게 있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되지 않으면 하늘이 두쪽 난다 해도 아버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자기 믿음의 삶이 되었다면? 그는 분명히 세상과도 육신의 것과도 문닫은 자가 되어
지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것이 되었을 것이요, 그래서
성전의 관계가 되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의 아버지시니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가 갚아주시는 것을 자기 영혼에 늘 경험하는 것이 되어서 기쁨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래서 이 성전의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그 사람은 누가 기도에 삶을 살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마지 못해 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것 보이기 위해, 자랑이 되고 칭찬 듣기 위해서 하지않습니다. 은밀한 곳에
계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아버지가 보시는 아버지만 보실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신
성전인 아버지의 집 안에서의 삶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것도 개입이 되거나 개입에
의하여 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의 삶이 온전한 신앙의 삶으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제도 아버지가
보시는 생활이 되어있을 것이요, 기도 또한 아버지가 보시는 생활이 되어있을 것이요,
금식 또한 아버지가 보시는 온전한 금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제
아버지께서는 구제나 기도나 금식을 예배당 안에만 묶어놓으신 것이 아니라, 제한
시켜놓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에서 드러내도록, 삶이 되어지도록
하신 것으로 은밀히 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골방에 들어가 문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서 갚으신다"는 이 관계가 이루어져 예수 이름의 공력이 나타날 때에 불 타
버릴 것이 되겠습니까? 불 타지 않는 것이 되겠습니까? 불 타지 않는 것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영원히 불타지 않는 금이요 은이기 때문에 영원한 영광으로 그대로
들어가서 그 나라에 가서 영광 가운데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
예수님께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는 말씀이시기를 간절히 예수님 이름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