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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장,
그렇게 진경이가 나가고 희경이와 막내아들이 학교에 가고 나서야 김서연은 남여인을 부른다.
“아주머니!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마 진경이를 제대로 가르치셨다면 일을 잘 하겠지요?“
“그럼요!
워낙에 눈치가 빠르고 몸이 가벼운 아이니까 일을 빈틈없이 잘 해 낼 것입니다.
야단만 치지 마시고 어르고 달래면서 일을 시키시면 더 잘 할 겁니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달치 월급이고 이것은 그동안 오랜 세월 고생하신 것을 생각해서 조금 넣었습니다.“
김서연은 대단한 인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봉투 두 개를 준다.
“고맙습니다.
집안일은 끝내고 나서 출발을 하겠습니다.“
“끝까지 수고를 해 주셔서 저야 고맙지요.”
남여인은 집안일을 시작한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 모든 일들을 다 해 놓았던 것이다.
주방을 정리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나니 세탁기도 다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의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서울에서 진경이를 만났다는 연락이 온다.
남여인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면서 가벼운 마음이 된다.
진경이를 보낸 집은 오래전에 자신이 있던 집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지만 그 댁의 며느리의 성품이 참으로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또한 주인아주머니 역시 사람이 좋기로 소문이 날 정도로 정겨운 사람이다.
그 집의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학교 교사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기에 주인아주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집인 것이다.
남여인은 다른 곳보다도 그 집 사람들을 믿기에 진경이를 보낼 수 있었다.
치매 노인을 돌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래도 이곳에서 당하는 수모와 고통보다는 마음이 편안할 것이었기에 그 집으로 진경이를 보내면서 진경이에 대한 모든 것을 말을 해 두었다.
동생처럼 자식처럼 돌봐주겠다는 며느리의 말에 안심을 하면서 보내기는 했지만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을 할지 가슴이 아파온다.
“어디를 가든 네가 열심히 하면 사랑을 받을 것이다.
진경아!
반드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굳건히 서야만 한다.“
남여인은 진경이에게 했던 말들을 다시 중얼거려본다.
점심을 먹고 다시 주방을 정리하고 나서야 남여인은 가방을 챙겨들고 거실로 나온다.
“저녁 준비도 모두 다 해놓았습니다.
이제는 출발을 해야만 합니다.“
“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어디를 가시든 환영을 받으실 것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 인사를 끝내고 남여인은 김서연과 작별을 한다.
김서연은 마치 해방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모든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라서 행여 그만둘까봐 비위를 맞추어 주곤 했지만 진경이를 너무 감싸고도는 것이 불만스러웠던 김서연이었다.
그동안 오랜 세월 함께 붙여 놓았으니 진경이도 많은 일을 배웠을 것이라 생각하니 돈이 들지 않고 식모
를 부릴 수 있다는 것과 이제 마음대로 구타를 하던 욕을 하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엄마!
나 물 좀 달라고 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줄 생각을 안 해?“
연경은 자신의 방에서 나오면서 거실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짜증을 부린다.
“이년아!
내가 네 몸종이라도 되는 줄 아냐?
아무도 없을 때는 네가 떠다 마시면 될 것이 아니니?“
”몸이 이렇게 무거워서 그렇지.
엄마가 딸을 위해서 해 주면 안 돼?“
연경은 무슨 벼슬이라도 한다는 듯이 부른 배를 더욱 불룩하게 내 밀어 보이는 것이다.
연경이의 생각에 섹스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재미였다.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 배운 대로 피임을 했는데 언제 어느 놈의 씨인 줄도 모르게 임신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임신인줄을 알지 못했던 연경이다.
생리가 없다는 것도 거의 자각하지 않고 지냈었다.
그러나 자꾸만 속이 메스꺼리고 구토가 나서 음식을 먹고 체한 것인 줄로만 알고 소화제를 사 먹곤 했다.
그러다 서너 달이 지나서야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연경은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배에
복대를 하고 다녔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학교에는 나가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돈 쓰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며 지내고 있던 연경은 자신의 배가 자꾸 불러오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한 연경이다.
또한 아기를 낳고 나서 어떻게 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연경인 것이다.
김서연은 연경이의 부른 배를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떤다.
참으로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는 김서연이다.
“꼴 보기 싫어!
어서 네 방으로 들어가 꼼짝도 하지 말고 있으란 말이다.
진경이가 오면 모든 것을 진경이를 통해서 하란 말이다.“
“오늘부터 모든 일을 진경이를 시켜라!
이제 학교에도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엄마!
진경이에게 그래도 돼?“
”안 될 것이 뭐가 있어?
난 그 애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싫다.“
“우리 집 재산이 모두 진경이 것인데 이다음에 진경이가 나이를 먹으면 모두 달라고 하지 않겠어?”
“그러기 때문에 그 년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싫다는 것이다.
그 년만 없다면 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사기를 당했겠어?
모든 것은 자연히 네 아버지에게 돌아올 것인데 그 년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사기꾼들에게 당한 것이 아니냐?“
“허긴, 큰 아빠에게 다른 형제들이 없으니 당연히 아빠한테 내려올 테지만 진경이가 있으니 아빠 차지가 될 수 없지.”
모녀는 앞으로 진경이를 호되게 부려먹을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서연은 시계를 보면서 진경이를 기다린다.
벌써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었다.
“이년이 또 곧 바로 오지 않고 뭐하는 거야?”
“집으로 바로 돌아오겠어?
친구들하고 어디서 놀다 오겠지.“
“이년이 들어오기만 해 봐라!
오늘이야 말로 매 타작을 흠씬 해 줄 테니까!“
김서연은 진경이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진경이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희경이가 도착을 하고 나서도 진경이는 오질 않고 있었다.
“대체 이년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주 몸이 근질근질 한 모양인데 어디 얼마나 견디나 두고 보자!“
시간이 지날수록 김서연의 화는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우경이만 빼고는 식구들이 모두 귀가를 했다.
우경이는 일찍 들어오는 날이 없다.
항상 새벽이거나 아침에 들어오는 우경이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진경이는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년이 어디 간 것이야?
어디 도망이라도 간 것이 아냐?“
김서연은 진경이가 쓰는 방으로 들어가 방안을 살펴본다.
진경이의 옷가지들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을 한다.
“어?
정말 이년이 도망을 간 거야?“
김서연은 가슴이 털컹 내려앉는다.
진경이가 없다면 이 집안 모든 살림을 자신이 해야만 할 판이었다.
“희경아!
너 진경이 친구들이 누군지 알지?”
“엄마!
진경이한테 친구가 어디 있어?“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없어?”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은 같은 학교도 아닌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희경은 진경이와 중학교를 따로 들어간 것이다.
“이년을 어디 가서 찾지?
이년이 계획적으로 집을 나간 것이 틀림없어!
아니, 혹시 아주머니가 데리고 간 것은 아닐까?“
김서연은 남여인이 적어 놓고 간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남 여인은 점잖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는다.
“아줌마!
진경이를 어디로 빼 돌렸어요?“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진경이를 내가 왜 빼 돌려요?“
“그럼 진경이가 어디를 갔다는 말이에요?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진경이가 갈 곳이 어디 있다는 말이에요?
아줌마가 빼 돌리지 않았다면 진경이는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는 아이란 말입니다.“
“왜 생사람을 잡고 트집을 잡아요?
내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그 아이를 데려다 뭐하려고요?
기다려 보세요.
들어오겠지요.“
남여인은 그런 말을 남기고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김서연은 멍하니 전화기를 들고 생각에 잠긴다.
진경이는 갈 곳이 없는 아이다.
이 집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 천지에 갈 곳이라고는 없는 아이었다.
지금까지 안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필경 무슨 일을 당했거나 도망을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경이의 안위가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일손이 없다는 것이 더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김서연이다.
“저녁 안 줘?”
“네가 가져다 먹으면 안 되니?”
희경이의 말에 김서연은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주방으로 간다.
모든 준비는 아줌마가 해 놓았지만 밥은 직접 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서연은 다시 주방을 나온다.
“뭐든 먹고 싶은 대로 시켜다 먹든지 나가서 사 먹어!”
“돈 줘!”
희경은 손을 내밀어 돈을 달라는 표시를 한다.
“나가지 말고 시켜다 먹어!”
“싫어!
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테야!
엄마가 밥을 해 주지 않으니 어서 돈을 줘!“
김서연은 지갑을 열어 희경과 막내아들 보경이에게 돈을 쥐어준다.
“늦게 오지 말고 저녁을 먹고 곧장 들어와!”
그러나 두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
“엄마 난?”
연경 또한 자신도 나가고 싶다는 얼굴을 하면 엄마를 바라본다.
“넌 그냥 시켜다 먹어!
그런 몰골을 해서 어디를 가려고 해?
아빠하고 우리는 그냥 시켜다 먹자.“
“피!
집에 앉아서 시켜봐야 중국 집 뿐이잖아?
난 자장면 싫단 말야!“
”중국집이 자장면만 있다던?
네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을 시키면 될 것이 아냐?“
김서연은 그래도 늦게라도 진경이가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마 정이 들었던 아줌마와 헤어지고 나서 마음이 울적해서 어디서 바람이라도 쏘이고 마음을 달래고 들어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
김서연은 언제고 들어오기만 하면 자신의 성질이 풀릴 때까지 죽지 않을 정도로 매 타작을 해야겠다는 악심을 먹고 시간을 본다.
그러나 자정이 넘고 아침이 되어도 진경이의 모습은 나타나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아줌마가 데리고 간 모양이다.
너 주방을 치우고 집안 청소를 해 놓고 있어!“
연경이에게 말을 한다.
“내가?
내가 어떻게 일을 해?“
“왜?
애를 가진 년이 일도 못해?“
김서연은 다시 앙칼진 음성으로 연경이에게 집안일을 떠맡기고 아줌마가 갔다는 울산으로 내려간다.
다행히 울산으로 이사를 갔다는 아들네 집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아줌마는 아들네 집의 전화번호를 묻는 김서연에게 순순히 일러준 것이다.
울산으로 내려간 김서연은 아줌마의 며느리를 통해서 아줌마가 일을 하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여기까지 웬일로?”
아줌마는 의아하다는 듯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김서연을 맞이한다.
“그러지 말고 우리 진경이를 어디로 보냈는지 말을 해요.”
“뭐라고요?
진경이를 내가 어디로 보내다니요?
참으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를 않네요.“
”정 이러시면 경찰에 고발을 할 것입니다.
아직 진경이는 미성년자라는 것을 잘 알지요?“
제 17장,
김서연은 서슬이 퍼래서 으름장을 놓는다.
“허! 참!
그 말 한 번 잘 했수!
우리 함께 경찰서로 갑시다.
진경이가 미성년자라는 것을 알기는 아슈?“
“.........................”
“그런 미성년자에게 호된 일을 시키고 구타를 한 것이 누군지 내가 가서 증명을 하리다.
어서 갑시다.“
남여인은 김서연의 엄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 나오리라고 예상을 했던 남여인이었다.
“내가 그 애를 빼돌려서 어디다 팔아먹었으니 어서 갑시다.”
김서연은 그런 남여인의 행동에서 남여인이 어디로 빼 돌린 것이 아님을 느끼는 것이다.
“아줌마!
정말 진경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말이에요?“
한결 누그러진 음성이었다.
“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내가 먹고 살기 힘들고 내 자식들도 제대로 건사를 하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남의 자식을 데려다 무엇을 하겠소?
아마 내가 그만 둔다고 할 때부터 울고 그러더니 어디 바람이라도 쏘이려고 그런 게지.
좀 더 진중하게 기다려 보면 갈 곳이 없는 애가 어디로 가겠소?“
”에효, 왜 이렇게 내 속을 썩이는지 원!“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고 닦달을 하면서 구타를 하니 내가 그만 두고 나면 지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마음이 좋겠소?
한 사날 기다려봤다 정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그러면 될 것을 이 먼 곳까지 헛수고를 했구랴!“
“............................”
남 여인은 김서연의 표정을 살핀다.
이제 자신의 대한 의심은 풀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고소함을 감추지 못한다.
“아줌마!
정말 우리 진경이가 집을 나갔을까요?“
”그야 내가 알겠소?
연경이가 임신을 한 마당이니 진경이 또한 남자가 없으라는 법이 어디 있겠소?
아마 사내 녀석들과 어울리다 보면 집 생각은 잊을 테고 집에 들어오기 싫어지겠지.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살뜰하게 걱정을 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마음인들 누가 알겠소?“
남여인은 김서연의 아픈 곳을 찔러버리는 것이다.
김서연은 남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연경이처럼 이미 사내를 알고 있는 아이라면 집에 다시 들어오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는 것이다.
“미안해요!
그래도 아줌마라도 데리고 있거나 어디로 보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그것은 김서연의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남여인으로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럴 줄 알았다 해도 내가 무슨 힘이 있어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말이오.
난 주인의 눈치가 있어 이만 들어가 봐야 하니 잘 가시우!“
남여인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김서연은 그대로 돌아서는 수밖에는 없었다.
남여인으로서는 진경을 빼돌려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김서연도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그 나이에 어디다 취업을 시킬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여인이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집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서연은 이곳까지 허탕을 치며 왔다가는 것이다.
김서연은 제발 진경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십여 년 이상을 살림에 손을 놓고 살아왔던 김서연이 이제 다시 새삼스럽게 집안 살림이 손에 잡히지도 않거니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주방 살림인 것이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연경이의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낼 자신이 없는 김서연으로서는 사람을 구하려 했으나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내가 왜 구정물에 손을 담그고 살아야 하는 거야?”
김서연은 살림을 하면서도 가슴에 천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배가 잔뜩 불러 있는 큰 딸 연경이에게 일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너희들 방은 각자가 알아서 치우도록 해!”
“엄마는 뭐하고?”
희경이 불만을 털어 놓는 것이다.
“엄마가 너희들 수발을 들어주는 하녀냐?
너희들 방은 너희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싫어!
지금까지 진경이가 모두 해 주었는데 엄마는 왜 못해?
난 공부하기도 바쁘단 말야!“
김서연은 자식들을 보기만 하면 악다구리를 쓰며 싸우기 일쑤였다.
“엄마!
돈을 좀 줘!“
우경이 나갈 차비를 마치고 나서 손을 벌린다.
“돈은 또 뭐하려고?
나에게 돈을 맡겨놨어?”
“에이 씨!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구상을 하고 있는데 초장부터 엄마가 이렇게 초를 치면 어떻게 해?
어서 돈을 달란 말야!“
”이제 네가 벌어서 써!
더 이상 너에게 줄 돈이 없어!“
“정말 왜 이래?
내가 돈을 벌려고 해도 사업자금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사업자금으로 이억만 줘!“
“뭐?
이억?
이억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알아?“
“강아지 이름가지고 사업하는 사람 봤어?
부모가 되었으면 그만 한 것을 대주는 것이 당연한 일 아냐?
어차피 줄 것을 왜 그렇게 잔소리가 심해?“
“흥!
누가 주기나 한 대?“
김서연은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정말 주지 않을 거지?
그러다 후회하지 마!“
“...........................”
김서연은 이제 우경이의 말이라면 듣기도 싫은 것이다.
수없이 돈을 가지고 나가는 우경이다.
우경이 손으로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적지 않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우경이에게 돈을 주지 않으리라 작정을 한다.
그때 갑자기 요란한 소음과 함께 집안 살림이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린다.
김서연은 방안에서 나와 본다.
우경은 미친놈처럼 잡히는 대로 집안 살림을 박살을 내고 있는 중이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놈아!
네 놈이 뭔데 살림을 박살을 내고 지랄이야?“
”이런 꼴을 보지 않으려면 어서 사업자금을 내란 말이야!“
“와장 창창“
우경은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박살을 내고 있었다.
김서연의 아무리 악을 써도 귀에 솜방망이를 틀어막아놓았다는 듯이 물건을 부수기에 온 신경을 모은다.
“이놈아!
차라리 이 애미를 때려라!
이 애미의 가슴에 목을 박아도 유분수지 애미의 살림을 이렇게 부수고 난리를 피우는 놈이 어디 있다더냐?“
“흥!
큰 집 재산이지 이것이 어디 엄마 아빠가 벌어서 마련한 것이랍디까?
진경이도 없는데 이까짓 것을 부순다고 누가 나를 경찰에 고발이라도 한 대요?
주인도 없는 살림살이 아닌가요?“
”.........................“
김서연은 우경을 이길 자신이 없다.
결국 온 집안의 모든 살림이 박살이 나고 나서야 김서연은 우경이에게 그가 요구하는 금액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서연이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자 그제야 우경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와중에 허용수는 아내 몰래 안방으로 들어가 아내의 핸드백에 들어 있는 돈을 몽땅 가지고 나간다.
김서연은 언제나 많은 현금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허용수였다.
아내가 우경이와 싸우고 있는 틈을 타서 아내의 핸드백을 열어보니 이천만원이라는 거액이 들어 있는 것이다.
허용수는 그 돈을 몽땅 들고 자신의 옷가지 몇 벌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가는 것을 김서연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허용수는 홍콩으로 가려는 것이다.
일 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는 유하영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허용수는 이를 갈고 있는 것이다.
허용수는 언제든지 기회가 있기만을 기다리며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
우경이가 난동을 부리자 허용수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그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서연은 남편의 그런 마음을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우경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칠 허용수가 아니었다.
언제든지 아내의 핸드백 속에는 많은 현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허용수였다.
허용수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천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 있는 것을 알자 그 돈을 몽땅 거머쥐고 집을 나선다.
유하영만 잡기만 하면 이까짓 것들은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르고 있는 김서연은 잠시 숨을 돌리려고 소파에 엉덩이를 내려 놓고는 냉수를 마신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오란 말야!“
“알았어!
엄마도 조금만 숨을 돌리자!
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잠시 숨을 돌리고 은행을 가면 될 것이 아니냐?“
이제 김서연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를 힘도 없다.
집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것을 치우려 해도 이제는 자신의 손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의 손도 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김서연은 집안을 보며 긴 한숨을 내 쉰다.
그럴 줄 알았다면 진경이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도 해 보지만 이제는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자신이 조금만 덜 때렸어도 집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경이의 부재가 처
음으로 아쉬움이 생기는 것이다.
“에효,
망할 년!
하필 이럴 때 집을 나가버릴 것이 뭐야?“
공연히 애꿎은 진경이를 원망하면서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통장을 찾아 핸드백에 넣으려고 핸드백을 연다.
“응?”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핸드백 속에 있던 지갑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이게 왜 여기 있지?”
무심코 지갑을 열던 김서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내 돈!
내 돈이 다 어디 갔지?“
지갑 속에 빽빽하게 들어 있던 돈이 하나도 없었다.
“이 영감탱이가?”
김서연은 허용수가 있던 방으로 뛰어가 방문을 열어재킨다.
그러나 이미 방안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아이고, 이놈의 영감탱이 어디 갔어?
내 돈을 가지고 어디로 갔냐고?“
김서연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을 터트린다.
“대체 왜 이래?”
우경이 다가오면서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묻는 것이다.
“네 아버지가 내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흥!
아버지가 오죽했으면 엄마 핸드백 속에 있는 돈을 가지고 나갔을까?
엄마는 엄마 자신만 생각을 했지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데 아버지라고 언제까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겠어?“
”뭐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어?
아버지가 날려버린 것이 얼마인 줄이나 알고 그런 말을 해?“
”그 돈이 얼마건 그것은 아버지 돈도 엄마 돈도 아닌데 엄마가 무슨 상관이 있어?“
”너 이 자식!“
김서연은 우경을 향해 손을 뻗친다.
제 18장,
우경은 자신을 향해서 뻗어오는 엄마의 팔을 잡는다.
“왜 이래?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날 때리려 해?
내가 고스란히 엄마에게 매를 맞기나 하고?“
”아이고!
이젠 다 컸다고 엄마를 무시하고 엄마에게 대들고 있으니 아이고, 내 팔자야!“
김서연은 다시 주저앉으며 대성통곡을 터트린다.
“이러지 말고 어서 은행에나 다녀오란 말야!
이런다고 내가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잘못 생각한 거야!“
김서연은 이제 아들 우경을 이길 자신이 없다.
그렇게 우경에게 이억이라는 돈을 내 주고 다시 남편의 소행을 생각하면서 온갖 화풀이를 남편을 향해 험
한 욕설을 퍼 붓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 욕설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김서연이 그러고 있는 그때 진경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느라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보내고 있었다.
진경은 서울에서 도착을 하고 나서 낯선 곳에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진경을 향해서 말을 걸어오는 여인이 있었다.
“네가 허진경이냐?”
“네!”
“바로 보았구나!
내가 너를 데리러 나온 사람이다.“
손영미는 진경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생각보다는 큰 키에 얌전해 보이는 진경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손영미는 남편과 함께 부부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남매를 두고 있는 사십대의 중년여인으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교사였다.
지금은 그들이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어머님께서 살림을 해 주시고 아이들을 키워주셨다.
이년 전 시어머님의 치매증상을 알고 병원을 다니고 약물 치료를 하고 있지만 그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곤 했다.
이제 시어머님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편은 시어머님을 요양병원으로 모시자고 했으나 손영미는 평생을 자식을 위해 고생을 해 오신 시어머님을 그런 곳에 모시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시어머님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셔야만 한다는 생각인 손영미였다.
손영미는 사람을 두고 시어머님을 모시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붙어 있는 사람들이 없고 모두들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그만 두곤 하는 것이었다.
“진경이라고 했니?”
“네!”
“이제 우리 오래도록 한 가족처럼 지냈으면 한다.”
“네!”
“진경아!
너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할머니만 잘 모셔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너만 잘 해 준다면 나도 너를 자식으로 생각하고 잘 해 줄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잘 하겠습니다.“
진경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 해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약해지지 말고 강해져야 한다는 남여인의 말을 떠올린다.
“들어오너라!
이 방이 할머니가 계시는 방인데 네가 할머니와 함께 이 방을 써야만 한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다.“
”네!“
진경은 누워계시는 노인을 보며 인사를 한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아가!
넌 누구냐?“
”어머님!
오늘부터 어머님을 돌봐드릴 학생이에요.
어렵고 힘들게 하지 않으실 거지요?“
”응!
근데 참 곱구나!“
그렇게 진경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하느라 노력을 한다.
처음 며칠 동안은 노인은 별다른 증상이 없이 진경이 해 주는 대로 밥도 받아 드시고 씻기면 매우 좋아하시곤 하신다.
노인은 씻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진경이를 보면 목욕을 하자고 졸라댄다.
진경은 그런 노인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목욕을 시켜드리곤 한다.
손영미는 진경이 오래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진경이가 먹을 밥까지도 모두 해 놓고 나서 출근을 하는 것이다.
진경은 어려서부터 일이 몸에 밴 사람이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할머니가 잠이 드시고 나면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찾아 세탁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다 해 놓고 나서 저녁 준비도 말끔히 해 놓는 것이다.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일할 것들을 찾아서 하는 진경이었다.
손영미는 그런 진경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말을 한다.
또한 진경이를 위해 중학교 졸업장을 보내 줄 것을 학교에 연락을 한다.
이미 수업일수가 모자라지 않는 진경이었다.
손영미의 아들과 딸도 진경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언제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를 돌보고 저녁준비를 해 놓아야만 하는 손영미의 딸은 대학생인 것이다.
그런 손영미의 딸 김미나는 진경이 오고 나서 자신의 시간이 자유로워지고 집안일에서 해방이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을 하면서 진경이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경이는 그런 미나와 기훈에게 언니와 오빠라 부르면서 지내고 있었다.
기훈은 고등학교 삼학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지 못한 진경이를 위해 기훈은 책을 구해다 주고 틈이 나는 대로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진경은 처음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이런 훈훈함과 넉넉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차츰 가끔씩 노인의 병이 심해지면서 진경을 힘들게 한다.
잠시 눈을 돌리기라도 하면 노인은 그대로 옷에다 대소변을 보기 일쑤였고 진경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기도 한다.
“네 이년!
내 금비녀 내놔!
네 년이 어디다 숨겼지?“
진경은 처음에는 몹시 놀라 당황하며 쩔쩔매고 어쩔 줄을 몰라 했으나 그것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특유증상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를 해 나간다.
“할머니!
할머니 비녀를 누가 훔쳐 갈까봐 잘 두었어요.“
“응!
그랬어?
우리 영감이 해 준건데 깊이 숨겨놔야만 해!“
“네!
그럴게요!“
노인은 움켜쥔 진경의 머리를 놓는다.
“나 배고파!”
방금 밥을 드시고서도 항상 배고프다고 하시는 노인이었다.
“할머니!
우리 이것을 가지고 놀까요?“
진경은 손영미가 사다 놓은 퍼즐 맞추기를 꺼내어 노인에게 준다.
아주 간단한 퍼즐 맞추기였다.
노인은 그것을 보기만 하면 얼굴에 화색이 돌며 좋아하는 것이다.
“응!
나 이거 잘해!
너 내가 하는 것 볼래?“
“네!”
노인은 한참을 퍼즐 맞추기에 정신을 쏟는다.
그러나 처음과는 달리 퍼즐 맞추기를 잘 해 내지 못하는 노인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두어 번씩 옷에다 그대로 대소변을 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진경은 웃는 얼굴로 노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는 노인의 옷을 깨끗하게 빨아 넌다.
“오늘도 이렇게 옷을 많이 버리셨구나!
네가 점점 더 힘들어 어떻게 하니?“
손영미는 널려져 있는 시어머님의 옷을 보면서 진경이의 고생을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사모님!
이런 것은 고생이 되질 않습니다.
이 댁에 와서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진경아!
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짐작을 할 수가 있구나!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설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며 믿지를 않았었는데 너를 보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
진경은 작은아버지나 작은어머니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기도 끔찍한 지난날들이었다.
“진경아!
네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우리 집도 모든 가족들이 안정을 찾았구나!
그동안 우리 집도 참으로 힘들었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넌 우리 가족으로 함께 살 생각을 하렴!“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할머님을 돌보겠습니다.“
진경은 손영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힘든 줄도 모르고 더 열심히 노인을 돌보면서 살림까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손영미 또한 그런 진경이를 위해 매달 정해진 날에 맞추어 진경의 이름으로 적금을 부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의 옷을 살 때 진경이의 옷도 사주고 필요한 모든 것들은 자기 자식들과 함께 해 주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동안 진경은 변변한 옷도 없었다.
속옷이나 겉옷이나 옷다운 옷이 한 벌도 없이 살아온 진경이다.
사촌이 입다 버리는 옷들을 주워 입곤 하던 진경이는 자신을 위해 새로 사다주는 옷들을 신기하고 아까워서 제대로 입지 못하고 보관한다.
“진경아!
이 옷 내가 입던 것인데 나에게 작아서 그러는데 네가 입을래?“
미나는 그런 진경이를 보면서 자신이 아끼던 옷도 내어주곤 한다.
“언니!
이렇게 좋은 옷을 제가 입어도 돼요?“
“그래!
나 보다는 네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진경은 눈물이 글썽해진다.
“이렇게 사람대접을 받고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언니!
고마워요!“
“얘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뭘 그래?
그리고 이제는 너도 사랑받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있을 거야!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으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거든!
지난날의 아픔이 큰 만큼 커다란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미나는 진경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다독여준다.
진경은 자신의 새 속옷을 보며 선뜻 입을 수가 없다.
이런 새 옷이 자신의 차지가 된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진경의 기억 속에서는 자신을 위해 이런 옷들을 산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들이었다.
이제 진경이 가지고 나왔던 몇 안 되는 옷가지들은 모두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신이 사용하라고 내어준 작은 옷장 속에는 자신만을 위한 속옷들과 브래지어 그리고 외출복과 평상복들이 늘어나가고 있었다.
손영미와 미나의 세심한 배려로 인해 진경이가 갈아입을 옷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진경이는 시간이 있을 때면 옷장을 열고 자신만을 위한 옷들을 본다.
마치 무슨 신기한 것이나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싫증을 내지 않고 들여다 보는 것이 진경이의 기쁨인 것이다.
손영미는 식탁에서도 진경이를 가족처럼 대한다.
모두 같은 식탁에 앉아 똑 같은 음식을 함께 나누곤 한다.
처음 진경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로 조금씩 그들과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절실하게 진경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이 좋은 가족이 없는 진경은 자신이 마치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 드려주는 손영미의 마음씨에 조금씩 융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인이 어떤 투정을 부리던 어떤 힘든 일을 시키던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한 진경이다.
아무리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을 해도 그것은 할머니의 진심이 아니고 할머니의 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더욱 노인에게 정성을 다 쏟는 것이다.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그리고 온갖 더러운 배설물들을 치워주면서도 그것이 더럽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진경이 그렇게 정성을 다해 보살핀 덕분인지 노인도 차츰 안정이 되어가고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손영미는 그런 진경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과 고마움을 느낀다.
자신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라는 생각까지도 하는 손영미는 자신 또한 모든 정성을 다해서 진경을 보살펴준다.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진경은 차츰 안정을 찾으며 평화를 느껴간다.
제 19장,
김서연은 매사에 짜증이 난다.
이제 오늘 내일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연경이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에 울렁증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를 가져다 버릴 고아원은 이미 물색을 해 놓은 상태였지만 그것을 시킬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나 싫다는 생각만 든다.
우경이와의 싸움도 이제는 점차 지쳐만 간다.
우경이로 인해 통장에 넣어두었던 돈도 이제는 얼마 안가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것이기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들어오는 수입은 한 푼도 없고 나가는 돈만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남편에게서는 단 한 줄의 연락조차 없는 것이었다.
남편이라도 있다면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는 잔소리라도 할 것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하소연 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
연경은 한 밤중에 산고의 고통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누가 있어 도움을 청할 만한 곳도 없는 것이다.
우경이조차 벌써 며칠 째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기에 산고를 겪는 연경이를 힘들여 끌어안고 승용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아직 어린 나이의 초산이라 그런지 연경은 오래 고생하지 않고 딸을 낳는다.
김서연은 다음날 바로 연경이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퇴원을 한다.
더 이상 병원에 있어보아야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축하해 줄 만한 일이 아니기에 곧 바로 퇴원을 시키는 것이다.
“너 꼼짝하지 말고 이 방에 있다 배가 고프면 주방에 가서 밥을 먹어!”
“엄마는 어디 가려고?”
“엄마는 이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올 곳이 있다.
그러니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잠이나 푹 자둬!“
“엄마!
꼭 그렇게 아기를 남에게 주어야만 해?“
연경은 그래도 자신이 낳은 아기에게 조금의 미련은 남아 있는 것이다.
“뭐?
그럼 아직도 앞길이 창창한 네가 이 어린 핏덩이를 끌어안고 평생을 고생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살아갈래?“
“아니!”
연경은 도리질을 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너 이제부터는 이 아기를 낳았다는 것마저도 네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에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연경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김서연은 아기를 안고 집을 나선다.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아이는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너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없다.
너는 세상에 태어나서는 절대로 안 되는 생명이었어!
너 같은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생명은 절대로 거두어 기를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김서연은 시동을 걸면서 뒷좌석에 태워진 핏덩이를 보며 중얼거린다.
그렇게 핏덩이를 다시는 찾아가지 않을 고아원의 정문 앞에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한 밤중이었다.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이름 모를 조그만 고아원이었다.
김서연의 이마와 온 몸에는 그래도 한 조각의 양심이 남아 있기라도 하듯이 땀으로 인해 젖어 있었다.
“휴!”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 한숨을 내 쉰다.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서자 심한 공복감이 밀려온다.
그제야 자신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려지는 것이다.
모두 잠이 들었는지 집안은 불이 모두 꺼져 있고 조용했다.
주방으로 들어간 김서연은 밥통을 연다.
배가 너무 고파 무조건 밥부터 먹으려 하는 것이었으나 밥통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것이다.
“이런 젠장!”
김서연은 공연히 화가 치밀고 심통이 난다.
연경이 잠이 들어 있는 방문을 확 열고는 불을 켜고 욕설을 퍼붓는다.
“이 우라질 년아!
밥을 다 처먹으면 밥이라도 해 놓아야 할 것이 아냐?
너만 처먹으면 모른다는 거야 뭐야?“
“엄마, 왜 그래?”
연경은 잠에서 깨면서 김서연의 서슬이 시퍼렇다는 것을 보며 묻는다.
“야, 이 년아!
에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렇게 천하태평으로 자빠져 자면 되냐?
네 배때기만 부르면 에미는 처먹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야?“
“내가 언제 밥을 해 봤어?
왜 공연히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욕설을 하고 있어?“
”아휴!
내 팔자야!
집구석이냐고 밥이 한 술 있나 사람이 들어오든 말든 신경을 써주는 것들이 있나?
에고, 내 팔자야!“
“참, 나!
엄마가 돈이 없어서 그래?
배가 고프면 오다가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올 줄 알았지 누가 그냥 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어?
괜한 것을 가지고 왜 자는 사람을 생트집 잡고 있어!“
연경 또한 지지 않고 악을 쓰며 대든다.
“나가!
어서 내 방에서 나가란 말야!“
연경은 엄마를 자신의 방에서 밀어낸다.
김서연은 그렇게 딸에게 밀려나 거실로 나온다.
참으로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진경이라도 있다면 자신이 이렇게 한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가버린 진경이가 더욱 괘씸한 생각이 든다.
“망할 것!
제 년이 가 봐야 어디를 가나 고생바가지 면치 못할 것을....
내 손에서 벗어난다고 제 년의 팔자가 필 것 같아!
그만큼 거둬주고 보살펴 주었으면 고맙다는 생각을 해야지 배신을 해?“
김서연은 진경을 상대로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 붓는다.
상대는 만만한 진경이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김서연은 핏덩이를 가져다 버리고서는 연경이의 산후조리를 위해 한시도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연경이는 출산을 하고 나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열 달 내내 자신의 뱃속에서 키운 아기가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하고 없어져 버린 것이다.
아기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마음의 허전함이 연경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것아!
빨리 털어버리고 다시 학교를 가야 하지 않니?
이대로 공부를 여기서 끝을 낼 것이냐?“
”공부를 더 해서 뭐하게?
이제 공부고 뭐고 다 귀찮아!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두란 말야!“
“너 정말 왜 그래?
엄마가 힘든 것은 보이지 않니?
엄마도 요즘은 너무 견디기 힘들어!“
”........................“
연경은 아예 엄마의 말에 귀를 막아버린다.
이제 자식들이 모두 성장을 하고 나서 엄마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는 자식들이 없었다.
남편이 그렇게 집을 나가버리고 나서 벌써 몇 달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고 있는 김서연은 문득 남편이 그리워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식들 누구하나 마음대로 되는 자식들이 없다.
자신 혼자서의 힘으로는 이제 자식들을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망할 놈은 어디로 돌아다니느라 집구석에도 들어오지 않는 거야?
집구석에 있으면서 애들이나 단속을 해 주면 오죽이나 좋아?
에효,
이 년의 팔자야!“
이제 집안일에서 잠시도 몸을 비켜날 수가 없는 김서연이다.
사람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도 없지만 자꾸만 줄어드는 돈 때문에라도 사람을 두고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서연은 다시 자신의 손으로 살림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매사에 짜증만 늘어난다.
“엄마!
사업자금을 줘!“
한나절을 자고 방에서 나오는 우경이 엄마를 보자 또 손을 내민다.
“이놈아!
내가 어디서 돈을 훔쳐오기라도 하냐?
이제는 더 이상 네게 줄 돈이 없다.“
“이거 왜 이러슈?
엄마가 어떤 사람인데 돈이 없어?
내가 돈 벌면 몽땅 엄마 가져다 줄 것이니 어서 사업자금을 달란 말요.“
”글쎄 이제는 없다는데도 그러냐?“
“엄마가 정 이렇게 나오면 이 집이라도 팔아야지 별 수 있나?”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 집을 누구 맘대로 팔아? 응?“
“그럼 어쩌겠수?
나올 돈이라고는 이 집 뿐인데 어쩔 수 있겠수?“
우경은 빙글빙글 미소를 띠우면서 김서연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아이고, 이놈아!
네가 지금까지 가지고 나간 돈이 얼마인줄이나 알고 그런 말을 해라!“
”그까짓 것이야 푼돈 아뉴?
사업을 하려면 목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집을 팔면 제법 목돈이 될 것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내가 이 집을 팔아넘기지 않게 하려면 어서 돈이나 주슈?“
”이놈아!
아예 식구들 목숨을 끊어라!
네 놈이 몽땅 가지고 나가면 남은 우리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을 해 봐라!“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
내가 사업만 잘 되면 우리 가족들 모두 호강을 시켜줄 텐데 그런 걱정을 왜 하고 있는 거야?“
우경은 그렇게 김서연의 통장에 있는 돈을 야금야금 날려버린다.
이제 김서연은 생활비조차 아껴서 살아가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씀씀이가 헤퍼진 김서연으로서는 그것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또한 아이들 역시 그동안 풍족하게 부족함이 없이 길들어진 습관으로 인해 아낀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돈은 사방에서 물 흐르듯 새어나가 버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계속 손을 벌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희경이 역시 공부는 뒷전이고 멋을 내기에 바쁘다.
희경은 남들보다 키가 크고 살결이 뽀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상당한 인물로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 희경이 온갖 멋을 내며 자신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김서연은 연경의 일도 있고 해서 그런 희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안하기만 하다.
“희경아!
너는 제발 공부를 좀 해라!“
“내가 언제 공부를 안 해?
난 언니나 오빠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
반드시 대학을 가고 말 것이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
”그래!
너와 상경이는 반드시 대학을 들어가야 한다.
오빠나 네 언니처럼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고 공부를 해!“
“글쎄 걱정하지 마!
내 미모에 대학을 들어가지 않으면 머리가 빈 애 취급을 받는단 말야!
난 언니하고는 달라!“
김서연은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한참을 더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이미 희경은 엄마의 잔소리에는 이골이 났다는 듯이 귀담아 듣지 않고 있었다.
희경이는 자신의 미모를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에 들어가 신분상승을 노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겠노라고 다부진 마음을 먹고 있다.
또한 언니처럼 그렇게 함부로 값싸게 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니 연경에 대한 경멸을 하고 있었다.
언니처럼 그렇게 값싼 여자 취급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희경의 눈에 연경은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벌써 기억나지도 않는 남자의 아기를 낳은 이미 더럽혀진 몸이었다.
그런 언니가 앞으로 살아갈 길은 너무나 뻔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연경이와의 대화조차 피하고 있는 희경이다.
“엄마!
나 가게하나 내 줘!“
연경은 며칠 만에 거실로 나와 엄마와 나누는 대화의 첫마디였다.
“가게?
그래, 무슨 장사를 하고 싶어?”
“카페를 하나 해 보고 싶어!”
“뭐?
카페라면 술을 파는 곳을 말하는 거니?“
”응!
그것이 뭐 어때서?“
”왜 하필이면 술장사야?
안 돼!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술장사는 절대 안 돼!“
김서연은 두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을 자른다.
그러나 연경은 그렇게 순순히 물러설 기미가 아니다.
이미 연경은 작정을 했다는 듯이 김서연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제 20장,
김서연은 연경의 끈질긴 시달림에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한다.
“대체 넌 어떻게 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크지 않는 것으로 알아보든지 해!“
연경은 부지런히 가게를 알아본다.
이제는 아무것도 부끄러울 것도 감출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답답해서 더 이상은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연경이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학력으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연경은 자그마한 카페를 시작한다.
그다지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 종업원 두엇만 두고 하는 가게였다.
맥주와 양주만을 취급하는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를 시작하는 연경은 그런대로 활기가 넘쳐나고 삶의 의욕을 보이는 것이다.
우경이 또한 사업을 한다고 열심히 움직인다.
전처럼 엄마를 보기만 하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에 온 신경을 쓰며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김서연은 비로소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집안은 한 동안 삶의 활력이 넘치는 기운이 감돈다.
아침이면 집안은 부산스러워진다.
우경이가 늦은 아침잠에서 떨치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나면 김서연은 밤새 장사를 하고 들어온 연경이 깰까봐 조용조용하게 집안일을 해 나간다.
이제 어느 정도 다시 집안일에 손이 익어가는 김서연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위해 운동을 하고 피부손질을 하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에 오후의 시간들을 외출을 해야만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다행이 이제 우경은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고 있는 김서연이었다.
우경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김서연이었으나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만 성실하게 일을 하면 좋은 여자를 찾아 결혼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통장에 있는 잔고를 생각해 본다.
이제 금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억이 조금 넘는 돈만 들어 있는 통장이 불안하다.
아직 들어오는 수입은 한 푼도 없는 김서연으로서는 희경과 막내아들 상경이의 학비를 걱정해야만 할 형편인 것이다.
남편은 어디 나가 죽었는지 소식 한 장도 없다.
연락을 해 볼 곳도 없는 것이다.
“에효, 가족들 걱정도 되지 않는지 어쩜 이리도 연락조차 없는지.....”
남편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외로움이 더 큰 김서연으로서는 깊은 한숨을 내 쉬면서 긴긴밤을 홀로 보내는 것이 더욱 진한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김서연은 지금이라도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더라도 혼자보다는 남편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남편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일을 하면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돈을 충분히 벌어 올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무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여자에 미쳐서 이제는 아예 가족들을 잊고 살아가는 모양이로군!
그러고도 이다음 자식들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
이제는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커지는 것이다.
연경이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온다.
“엄마!
배고파!“
“차려 놓았으니 네가 알아서 먹어!”
김서연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엄마!
왜 그래?“
“.........................”
연경은 봉투를 엄마에게 내 민다.
“이게 뭐니?”
“그동안 벌은 돈 중에서 생활비를 보태드리는 거예요.”
“뭐야?
정말 그동안 돈을 벌기는 벌었어?“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김서연이 반색을 하며 받는다.
“엄마!
이제 매달 생활비를 내 놓을게요.
그러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마세요.“
연경은 처음으로 자식다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얼마 만에 받아보는 돈이냐?
그래, 네가 생활비를 보태준다면 엄마는 고맙지.“
“알았어요.
얼른 벌어서 엄마에게 가져간 돈도 갚아드릴게요.“
“알았다.
배고프지?
어서 들어가 밥을 먹어야지.“
조금 전과는 달리 김서연은 자신이 앞장을 서서 주방으로 들어가 찌개를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켠다.
이제부터는 연경이를 기대고 살아도 될 듯싶었던 것이다.
김서연은 연경이의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는 연경이를 본다.
“네가 이렇게 든든하게 엄마를 도와줄 것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제 네 오빠도 정신을 차리고 사업에 몰두하고 있고 너도 이렇게 돈을 벌고 있으니 더 이상 아무런 걱정을 할 일이 없다.
안 그래도 희경이의 등록금 마련이 걱정이었는데 고맙다.“
“엄마!
희경이와 상경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공부를 중단하는 일이 없어야만 해요.
나도 엄마 말대로 대학을 졸업하기만 했어도 이렇게 술장사를 하고 있겠어요?
고등학교 졸업장으로서는 사회에서 발을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으니 이 고생을 하는 거죠.“
“그래!
희경이나 상경이 걱정은 하지 마라!
그 애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서 악착스러운 곳이 있으니 누가 뭐라고 해도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서연은 처음으로 큰 딸 연경이가 대견스럽다.
술장사를 하면 어떤가?
어차피 처녀 시집은 갈 수 없는 딸이었다.
술장사라도 해서 많은 돈을 번다면 누가 무시를 할 것인가?
김서연은 어떤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좋아하는 타입이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연경이가 벌써 인생의 쓴맛을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김서연이다.
우경 또한 생활비를 가져온다.
이제 김서연은 모든 것이 부럽지 않다.
아들과 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다시 씀씀이가 헤퍼지는 김서연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외출을 한다.
우경이의 큰소리를 김서연은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이제는 온 세상이 마치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처럼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니는 것이다.
희영이가 해 달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들어준다.
희영이는 대학에 입학을 하자마자 제일 처음으로 미스코리아에 출전을 한다고 들떠 있었다.
미스코리아만 되면 자신의 인생이 활짝 편다는 꿈에 젖는다.
“엄마!
내 뒤를 밀어 줄 거지?“
“그래!
미용실 원장님 말대로 너 만한 미모와 몸매가 어디 있겠니?
기왕에 시작을 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미스코리아 진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역시 우리 엄마는 센스장이고 멋쟁이!”
김서연은 희영의 미스코리아 출전을 두 팔을 벌려 환영한다.
두 모녀는 한껏 꿈에 부풀어 돈을 물 쓰듯 퍼 붓는다.
미용실 원장의 말만 믿고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에게 줄 뇌물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금액이 오간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뇌물이 없이는 본선진출도 하지 못한다는 미용실의 원장 말을 듣고 김서연은 자신의 통장에 남아 있던 잔고를 털어 거액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엄마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미용실 원장은 이것저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엄마!
아무리 미스코리아 출전을 한다고 해도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거 아냐?“
연경은 불안한 마음으로 엄마를 견제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모두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본선진출도 어렵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우리 희영이가 미스코리아 진에만 당선이 된다면 그야말로 신분상승이 아니겠니?
희영이를 위해서 너도 힘을 보태어야만 한다.“
“엄마 말대로 미스코리아 본선에 들어 등수 안에 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희영이가 받을 충격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아냐?”
“너 지금 희영이를 질투하고 있니?
언니가 돼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우리 희영이만한 몸매와 인물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어?
희영이가 떨어진다면 아무도 미스코리아에 당선될 사람이 없는 것이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매일 버는 대로 가져 와!“
“조금만 뒤로 물러나 냉철한 마음으로 생각을 해 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
“넌 돈이 드는 것이 아까워 그러니?
당선만 된다면 이까짓 돈 들어간 것은 모두 빠질 테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힘을 보태란 말이다.“
희영이보다는 김서연이 더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미스코리아의 출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최상의 꿈이요 영광이기도 하지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거금이 투자되는 것이기도 하다.
김서연은 모든 것을 희영에게 건다.
희영의 피부 맛사지를 위해 미장원 원장이 시키는 대로 최상급의 맛사지와 최고의 음식과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고가에 화장품들을 구입해야만 하고 걸음걸이를 위해 워킹업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다행히 희영은 예선 통과를 한다.
이제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합숙훈련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새롭게 모든 것들을 최상급이 아니면 명품들로 구입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속옷 하나 스타킹까지도 명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없는데도 하나같이 모두 최상급이나 명품들로만 갖추어 가지고 합숙훈련에 임한다.
게다가 평상복에 야외복 그리고 수영복에다 잠옷, 그리고 드레스까지 갖추어야만 하는 합숙훈련이다.
또한 그에 딸린 장신구들조차 하나하나가 모두 돈 덩어리들이다.
김서연은 그 모든 것들을 사소한 손수건 하나에까지 모두 명품들로 구입을 해서 희영을 보낸다.
“원장님!
우리 희영이가 유력한 것이지요?“
“그럼요!
희영이가 아니고서는 누가 있어 미스코리아가 된답니까?
제 눈은 확실하고 또 많은 로비활동을 해 놓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희영이가 진에 당선되기만 하면 우리 미용실이나 제 입지도 성공을 거두는 것이니 김여사님보다는 제가 더 마음을 쓰고 있답니다.“
“호호호..........
왜 안 그러겠어요.
모두 원장님만 믿고 있을 테니 끝까지 수고를 해 주세요.“
김서연은 또 다시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해서 미용실 원장의 손에 쥐어준다.
김서연은 희영이 합숙을 하는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이미 모든 것들은 공중에서 둥둥 떠다나는 기분이었다.
현실 감각을 잊고 마치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기분과 몸이 붕 떠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이제 본선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김서연은 마치 자신이 무대에 서는 것처럼 피부손질을 하고 새로 옷을 구입한다.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우경이가 벌써 얼마나 오래 집에 들어오지 않는지 조차 관심이 없다.
오직 희영이의 대회만 온 신경을 쓰는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빠질 새라 드레스 또한 최고급으로 유명디자인의 옷으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선대회가 있는 날 김서연은 새벽부터 바빠진다.
새벽부터 미장원에 나가 피부손질을 하고 화장과 머리를 하고 나서 준비를 해 두었던 옷을 갈아입고는 대회장으로 간다.
대회장에는 수많은 유명인사와 연예인들이 참석하고 참가자들의 수보다 그 가족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북적이고 있었다.
김서연은 연경이의 가게를 쉬게 하고는 연경이까지 데리고 대회장에 참석을 하면서 가슴을 조이며 대회를 바라본다.
하나같이 모두들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래도 자신의 딸 희경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희경은 본선에서도 예선을 통과하여 십육 명의 명단에 오른다.
그야말로 김서연은 마치 미스코리아 진에라도 오른 것처럼 기뻐 날뛴다.
“암!
우리 희경이를 빼고는 진이 될 사람이 아무도 없지.“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연경이 또한 좋으면서도 걱정스럽다.
이제 저 십육 명주에 또 반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기왕에 시작을 하고 수많은 투자를 한 일이니 제발 그 안에 들어주기를 연경은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신께 기도를 한다.
이제 한 사람 한사람 마지막을 향해서 호명이 된다.
희경이의 번호는 거의 끝번에 가 있는 것이다.
김서연은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간절한 기도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허희경의 이름을 불려 지지 않고 있었다.
김서연은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끝내 희경이의 이름은 불려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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