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간밤 내 갇혀 있던 탁한 공기들이 냉큼 얼굴에 와 부딪친다. 아이들은 자명종 소리 같은 부모님의 고함에 가까스로 잠을 털고 일어나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대문을 나서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집이란 다만 밥 먹고 잠만 자는 곳일지도 모른다.
2층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교문은 흡사 지남철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쇳가루처럼 줄줄이 교문 안으로 끌려 들어온다. 나는 교탁 앞에 미소를 머금고 서서 아이들을 맞이한다. 맨 먼저 만나는 담임 얼굴이 보기 싫으면 아이들은 그나마 공부할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학교도 싫어진다. 그들은 요즈음 아버지 얼굴보다도 담임 얼굴을 더 많이 보면서 지낸다.
시험을 앞둔 아이들에게는 아침 청소시키기도 미안할 때가 있다. 그래도 주번 아이는 부지런히 칠판을 닦고 복도를 쓴다. 나도 빗자루를 들고 교실 앞 구석진 곳부터 찬찬히 쓴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책상 아래에 휴지가 떨어져 있다. 아이는 별 관심 없이 부지런히 사전을 뒤적거린다. 그는 담임이 책상 밑을 쓸기 편하도록 한쪽 다리를 들어준다.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머지 한쪽 다리도 들어준다.
나도 비로소 빗자루를 놓고 큰 소리 친다. 선생님이 비질하는데 쳐다만 보는 버릇 어디서 배웠느냐고. 아이는 무표정하게 일어나 말없이 내 손에서 빗자루를 빼앗아 간다. 화를 삭이면서 나는 곧 후회한다. 아침에는 절대 큰 소리 치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한편, 속으로 그의 부모를 원망한다. 이런 기본적인 예절 교육은 학교의 몫만이 아니라고 스스로 항변한다.
한때 유행했던 '교실 붕괴'란 말이 떠오른다. 교사로서 무거운 자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가정교육의 상실'이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인성 교육은 시류에 비추어 볼 때 그 한계가 명확하다.
가장 기본적인 예절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아이들, 아이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기보다는 오히려 야단치는 교사를 먼저 원망하는 학부모, 아직도 권위주의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학교 교육, 이런 허술한 기단(基壇) 위에 우리 교실은 서 있다.
교육 공동체라는 말처럼 듣기 좋은 말도 드물다. 그러나 교사와 학부모들의 심각한 자성과 분발이 없다면 이 말은 쓸모없는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학부모를 위한 가정교육담론서 '진자리 마른자리'(이평수 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