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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五柳)선생 표류기
이평수
“한판 뜹시다.”
가래 끓는 소리와 어울린 굵은 저음이 핸드폰 밖으로 튀어나왔다.
“뜨다니 무얼 뜬단 말입니까?”
“나도 내 새끼한테 매 한 번 든 일 없는데 당신이 뭔데 우리 앨 팬단 말이야!”
볼멘 억양이 냉큼 복장이라도 내지를 기세였다.
“인정합니다. 그 점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해진이를 위해서라면 저도 할 말이 좀 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기죽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 이번 한번뿐이었던가. 말하는 뽄새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당장 쫓아 들어갈려다 이쯤에서 참는 거요. 여러 말 말고 퇴근 후에 거기서 좀 봅시다. 양유정 못 미쳐서 큰길 모퉁이에 희정다방이라고 있소.”
“절 만나고 싶으시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일 학교로 오시죠.”
“각설하고 이따 봅시다.”
새 학기 첫 시간부터 그 아이는 졸기 시작했다. 제풀에 지쳐 조는 거라면 모르는 척 그냥 넘겨 버렸겠지만 이건 대놓고 잠을 청하는 꼴이었다. 책은커녕 메모지 한 장 없는 빈 책상에 얼굴을 모로 붙인 채였다. 늘 그랬듯이 새 학기 첫 시간 수업 분위기는 팽팽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였다. 첫 시간에 아이들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면 일 년 내내 힘들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 터에 반장의 인사 구령에도 아랑곳없이 고갤 묻고 잠을 잔다는 건 중대한 도전이었다. 한마디로 교직 이십칠 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불쑥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뜸 들이며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혼에 구멍을 낼 만큼 뜨겁게 닦달했을 텐데 간신히 눌러 참았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선생은 공급자에 불과했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가격이 결정될 것이고 수요자는 곧 소비자일 것이 아닌가. 사려는 사람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의 눈치를 보아가며 흥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무릇 파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의 아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 논리가 아닌가. 교직이 성직임을 운운하면서 가없는 희생을 요구하다가도 일순 쇄신의 대상이요, 부정이 만연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이 현실 아닌가.
“내 이름은 이렇게 쓴다.”
그는 칠판에 큰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김, 도, 진’
매년, 첫 수업 시작과 더불어 있어왔던 의식이었지만 어쩐지 선뜻 내키지 않았다. 지금은 이름도 뭣도 아닌 그저 글자 세 개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 선생의 이름이 될 것인지, 가게 주인의 이름이 될 것인지는 지나 봐야 알 터, 이즈음 들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짜증스러웠다.
“내가 우리 학교에 근무한 지는 올해로 이십칠 년째다. 너희들이 태어나기 십년 전부터 나는 여기에 서 있었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십칠 년을 강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 볼뿐이었다. 오히려 ‘당신에게 이십칠 년은 훈장 같겠지만 우리에게 그 이십칠 년은 당신과의 거리에 불과해.’라고 빈정거리는 듯 했다.
그는 잠자코 출석부를 열었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며 얼굴을 익히는 게 다음 순서였다.
“정교진, 송대훈, 유명재, 엄익훈……”
이름 불린 애들마다 더러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혹은 덤덤한 눈빛으로 그에게 낯을 들어 보였다. 어린 얼굴들을 마주 바라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보호본능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다. 그런 느낌은 좀 복잡한 것이어서 간혹은 뜬금없이 연민이 되기도 하고 측은지심이 되기도 했다가 뭐라고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느낌이 되어 감성을 은근히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 나는 대한민국 교사다. 저들이 누굴 믿고 따를까. 내가 해야 한다. 내가 정성껏 저들을 가르쳐야 한다.’ 가끔은 ‘무정’에 등장하는 계몽주의자들처럼 생각을 다잡아 볼 때도 있었다. 그것이 사명감이었든, 자아도취였든, 착각이었든 간에 그런 생각은 그가 대한민국 교사라는 별 두드러질 것 없는 신분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하곤 했다. 교사가 청소년 직업 선호도 상위 그룹에 끼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언제 쓰러질지 모를 사업가보다 훌륭한 제자 키워내는 교육자가 더 낫다는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줄 수도 있었다. 최소한 그런 때 만큼은…….
“정해진…”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는 그때껏 잠자고 있던 그 아이, 정해진의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깨를 서너 차례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부아가 실린 손바닥으로 등짝을 호되게 얻어맞고 나서야 정해진은 고갤 들었다.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리면서 정해진은 곁눈질로 그를 올려다봤다.
귀찮은 눈초리로 눈살을 찡그리는 정해진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는 화를 삭였다.
“자는데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교과서와 연필은 필수품 아니겠습니까? 어디 있는지 찾아서 책상에 올려놔 주세요.”
아이들에게 늘 경어를 써 온 그였지만 비아냥에 배배 꼬인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그런 그의 태도를 오히려 조롱이라도 하듯 정해진은 눈을 감은 채로 책상 속을 더듬어 책 한 권을 꺼내 올렸다.
“이건 교과서가 아니잖아요? 어디 봅시다. ‘초원의 덫’이라…. 이건 판타지 소설 아닌가요?”
“……”
야마시타 겐조, 굵은 고딕체로 박혀 있는 원작자 이름이 힐끗 눈에 들어왔다. ‘수십 명의 복제된 자신을 관리하며 생을 실험한 초유(初有)의 운명론자! 그의 반란이 시작된다.’ 표지에 쓰여 있는 내용 소개가 퍼뜩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책갈피를 헤쳐 보다 말고 책상 위로 책을 내던졌다.
“불온서적이군!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과 연관 없는 책이라면 당연히 불온서적이겠지? 더구나 교과서도 준비 안 된 상황이라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정해진은 말이 없었다.
“널 복제하고 싶니? 그렇다면 수업시간만큼은 제대로 복제된 널 데리고 다녀라. 연필은 어딨어?”
정해진이 천연덕스럽게 짝꿍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볼펜을 받아든 정해진이 허리를 세우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엉덩이를 의자 끝에 간신히 얹어놓은 모습이 이미 반은 드러누운 자세였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책 있고 연필 있고 일단 눈도 떴으니 그만하면 된 것 아닌가.’ 말소리만 없다뿐이지 정해진은 그를 향해 그렇게 투덜거리는 중이었다. 그는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웠다.
“야. 이 자식아.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아? 버릇없는 놈! 일어서 임마. 가방은 어딨어?”
성령에 힘입은 신도가 방언을 쏟아놓듯 그는 참았던 울화를 빠르고 거칠게 토해냈다. 그리고는 정해진의 책상 주위를 눈으로 뒤지면서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가방 어딨냐니까?”
“가방 안 가져왔는데요.”
어이없게도 정해진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이미 선을 넘어선 바에야 물러설 것 없다는 기세였다. 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허나 이쯤에서 얼버무릴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한 해 동안의 수업 기류가 이 한 순간의 선택에 좌우될 상황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정해진의 뺨을 쳤다. 뿔테 안경이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살갗이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정해진의 안색은 태연했다.
“야. 이 자식아. 그게 자랑이냐? 배우는 학생 놈이 교과서도 없고 연필도 없고 수업이 시작되든 말든 머리 처박고 잠만 자는 게 잘하는 일이냐?”
상황은 묘한 반전의 기미를 보이며 학생의 문제가 아닌 선생의 문제로 변질되고 있었다. 큰 소리로 다그치면서도 그는 일단 이 사태를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야 어찌되었든 자신의 손찌검을 최대한 합리화시켜야 했다. 반 아이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상황 설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해진의 뺨을 친 건 이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도를 넘긴 자신의 폭력이 장황한 훈계를 통해 어느 정도 에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도 태연하게, 떳떳하다는 듯이 고갤 쳐들고 있는 정해진의 표정이 결국 그의 부아를 돋우고야 말았다. 정해진은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순간, 그는 정해진의 왼쪽, 오른쪽 뺨을 번갈아 올려붙였다.
“이 자식아. 그래. 네가 지금 잘했다구 내게 대드는 거냐? 어디 눈을 똑바루 치켜 뜨구 함부루 입을 놀리는 거야?”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정해진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는 내심 당황한 기색을 숨기느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옆에 앉은 아이가 정해진에게 휴지를 건넸다. 코피 한 방울이 ‘초원의 덫’에 툭하고 떨어졌다. 입 언저리에 번진 코피는 아랑곳없이 정해진은 먼저 ‘초원의 덫’부터 닦았다.
“나가서 씻고 들어와.”
그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요즘 들어 감정 추스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실 별 일도 아니지 않는가. 수업 시간에 아이가 책도 필기구도 없이 책상에 엎어져 졸고 있다면 조용히 깨우면 될 것이고 그래도 계속 존다면 집에서 무슨 피곤한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 될 것이고 그래도 계속 존다면 내 가르치는 요령이 워낙 재미없게 들리나 보다 하고 자기 탓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도대체 내가 무슨 능력으로, 아니 무슨 권한으로 저 아이를 바꿔놓으려는 것인가. 그것도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아주 천천히 길고 가늘게 내뱉기를 두세 차례 반복했다.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정해진의 담임을 찾았다.
“불행한 일이에요. 어쩌다 그놈 담임을 2년씩이나 하게 됐으니 말이죠. 벙어리 2년에 귀머거리 2년! 그게 정답입니다.”
정해진에 대한 선생들의 평가는 단호했다. 꼴 보기 싫은 놈, 싹수없는 놈, 내놓은 놈, 재수 없는 놈……. 그야말로 놈, 놈, 놈 시리즈였다. 두 달 전 김 선생 차 뒷유리를 박살내 놓은 것이나 교무실 유리창에 돌을 집어던진 것도 분명 ‘그 놈’의 소행일 거라고 동료들은 믿고 있었다.
“집안 사정은 어때요?”
“애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는 거 같고, 엄마는 전업주부라는데 확실치가 않아요. 집안 얘기만 나오면 도통 입을 닫아버리거든요. 애 아버지나 엄마하고는 통화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뭘 자세히 물어보는 것도 꺼려지고요. 지난 번 박 선생님 일도 집안 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정년 1년을 앞두고 있는 박 선생이 정해진을 달래볼 요량으로 아버지에 대해 물었더니 왜 오버하느냐, 우리 집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 수업이나 제대로 해라 등등의 험한 소리를 듣고 있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이 자식,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냐 하면서 손찌검을 하려고 했더니 정해진이 박 선생의 손목을 꽉 틀어쥐고 정년할 때 다 됐다더니 벌써부터 치매 든 거 아니냐면서 덤볐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정해진은 1주일 간 교내 봉사 처분을 받았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담임은 푸념하듯 말했다.
“걔뿐 아니에요. 제대로 수업 듣는 애들이 손에 꼽힐 정도니까요. 수업 중에 뭔가 열심히 적고 있어서 기특하다 생각하고 넘겨다보면 학원 숙제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죠. 교실 무너진 지 오래 됐어요. 저 액자 속에서만 살아있는 거지요.”
정해진의 담임이 턱짓으로 교무실 벽에 걸린 ‘바른 품성 5운동’ 패널을 가리켰다. ‘칭찬, 질서, 공경, 봉사, 나라사랑 ……’
문득 담배 생각이 났다. 끊은 지 3년이 넘었는데도 불쑥 담배연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흡연의 욕구는 마치 꼬리를 길게 끌며 떨어지는 유성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재빨리 사라지곤 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더욱 그랬다.
그는 인터넷 창을 열고 ‘연금공단’을 클릭했다. 예상 퇴직급여는 어제 그대로였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차이가 날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는 정색한 얼굴로 맨 아래 단위 숫자까지 또박또박 헤아렸다. 머릿속에 명퇴신청서를 썼다 지웠다 한 것이 벌써 대여섯 달 전부터였다. ‘그만 두면 그만이다. 그만 두면 그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암시처럼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약효 빠른 진통제랄까. 그럴 때마다 맥박이 빨라지면서 저릿한 기운이 손가락 끝에까지 느껴졌다. 살갗 바로 아래층에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기라도 하듯이 뭔가 스멀스멀 꿈틀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약물 중독’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런 달콤한 유희는 늘 한 순간이었다. 여지없이 그는 수업 시작종에 멱살을 움켜잡힌 채 교실로 끌려 들어가곤 했다.
그럴 때엔 가끔씩 중국 동진 때 시인 도연명을 떠올렸다. 칠판에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첫 다섯 구절을 적어놓고 넋두리하듯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도 있었다. 도연명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도연명 자신이 스스로 붙여 부른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는 자호(自號)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요. 벼슬길에서 물러난 도연명은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6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오류선생! 그의 고향 집 옆에 심어놓았던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 거기서 연유된 이름이 오류선생이지요. 내가 마음에 그리는 모습도 그렇거든요.”
그 후, 그에게는 분에 넘치게도 ‘오류선생’이란 별명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어쨌든 ‘약물 중독’의 부작용은 가볍지 않았다. 끊임없는 회의와 망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과연 교직자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서 교직이란 생계유지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지난 이십칠 년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보람도 거두지 못한 채 교단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그는 지난해, 아이들이 써놓은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수업이 지루하다. 자장가 같다. 젊은 선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ㅅㅂ. 학생의 자존심을 깎아내리지 마라.……’ 교원평가 서술형 반응란에 아이들이 올려놓은 말들이었다. 고무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가슴 쓰린 말들이 더욱 많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가르쳐봐야 소용없는 놈들, 인간미라곤 전혀 없는 놈들, 머릿속으론 애들을 욕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 학기를 시작했다.
그가 정해진과 다시 부딪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후의 일이었다. 시험 답안지 때문이었다. 정해진의 객관식 답안지는 스무 문제 모두 4번에 점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관식 답란이었다. 주관식 답란은 뒷장 한 면에 전부 열 개의 답을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정해진은 그 뒷장을 온통 장문의 글로 도배해 놓고 있었다. 그는 답지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 그의 컨디션에 따라 그가 끄는 슬리퍼 소리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슬리퍼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다소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그의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날은 가르치는 날이 아니라 푸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짧게 끊어지면서 날렵하게 들리는 날이면 더더구나 그의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날은 가르치는 날이 아니라 빈정거리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의 독선과 위선은 무엇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인가. 이곳에 내 이름자 찍힌 의자가 놓여 있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장황한 문구였다. 내용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선생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임에 틀림없었다. 내 과목 시험이니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대상이 누구인지 냉큼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따위 잡담을 답란에 늘어놓았다는 게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으론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정해진의 정연하고 날카로운 문장력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냥 덮어둘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시켜 정해진을 불러오도록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재차 아이들을 올려 보냈지만 소식이 없었다. 화가 치밀었다. 단걸음에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정해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무단결석이었다.
교무실로 돌아와 함부로 던져 놓은 답안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검은색 볼펜으로 흘겨 쓴 글씨는 비교적 정갈했다.
‘…… 우리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요긴한 수단으로 쓰고 있는 관리와 통제는 학교라는 조직을 탈없이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획일화와 서열화를 고집하고 있으며 근사한 포장지로 내부를 감추고 있다. 학교는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하고 학력이 더해 질수록 인간적 됨됨이가 흐려지는 심각한 역작용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자기를 의식했다. 불쾌함과 모욕감, 그러면서 뭔가 두려움 같은 것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분노와 놀라움일 수도 있었다. 문장 속에서 면도날 같은 차가움이 우러나와 맨살을 긋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학교 폭력이 어떻고 왕따가 어떻고 요란 떠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이미 폭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지금, 폭력은 폭력을 잉태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야자 마치고 개처럼 학원으로 끌려가는 우리의 친구들이 불쌍하다. 사교육을 방지한다고 방과후학교라는 제도를 만들어 낸 저능아들도 한심스럽다. 방과후학교에 참여한 후, 우리의 친구들은 더 늦은 시간까지 사교육 현장에 내팽개쳐 지고 있다. 이것이 선을 빙자한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교사들에게 방과후학교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마다할 이유 없는 별도의 수입원이라고나 할까. 이런 상황에서 인간다운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가능한 일인가. 이미 이 땅의 수많은 교육자들에게 교육은 생계 유지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렇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학교라는 이 괴물 속에서 나는 기꺼이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의 필치라고 보기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문장의 흐름에 강약이 실려 있고 쇠갈고리 같은 날카로움이 현상의 본질을 헤집어 내고 있었다. 그는 정해진의 답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정해진의 답지를 카피하기로 했다. 가슴 한쪽에서 까닭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나쁜 자식! 음흉한 놈! 모멸감 때문인지 명치끝에서부터 알싸한 기운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다.
그는 정해진이 자신을 노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과목 답지에 그런 장난을 쳤다면 아마 벌써 말이 돌고도 남았으리라. 그런 판단이 서자 그는 주먹을 부르쥐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더군다나 놈은 건방지게도 교직이란 말을 입에 올려가며 생계 유지 수단이니 뭐니를 운운하면서 그의 속생각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정해진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해 오고 있었다. 교사로서의 자세를 다잡을 수 있는 연수 프로그램이나 감성 조절 강좌 등 초심을 되찾는 일에도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쉰이 넘도록 그저 시간에 쫓겨 가면서 입시 지도에만 혈안이 되었던 자신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국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법을 지도하다가 국내 모 대학 석좌교수를 하고 있다는 원격 연수 강사는 여기저기 그의 아픈 곳을 잘도 찔러댔다.
‘학생에게 영향을 받는 교사는 이미 교사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 교사는 모름지기 학생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선생이 학생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바로 학생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니 이것은 교사로서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다. 착실하게 본보기를 보이고 감동과 감화를 받게 함으로써 학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참 교사가 할 일이다. 교사는 학생과 한편이 되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교사가 자기편이란 걸 느끼게 되었을 때 학생은 교사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리하여 교사는 학생과 같은 눈높이에서 원만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원격 연수 강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 아닌가.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정해진에게 최대한 마음을 열기로 작정해 온 터였다. 그러나 정해진은 늘상 그대로였다. 여전히 교과서도 필기구도 없는 빈 책상이었다. 가방엔 달랑 잡서 한 권뿐이었고 학교에 들고 나는 시간은 제멋대로였다. 그렇더라도 약간의 변명에 눈감아 줄 정도의 여지는 언제든 남겨두는 요령이 있었다. 그는 그런 정해진을 먼발치로 바라보기만 했다. 구렁이 속 같은 녀석에게 돌연 살갑게 대하는 것도 뜬금없어 보일 것 같아서 자연스런 조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뜻밖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지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시험이 끝난 다음날, 그는 서둘러 교실에 들어갔다. 정답 풀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해괴한 답안을 꾸민 정해진을 징치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는 정해진이 비굴한 모습으로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모두들 시험지를 꺼내놓고 앉아 수군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시험 문제 정답을 맞춰보도록 합시다. 객관식 스무 문제, 주관식 열 문제 모두 서른 문제였지요? 아. 그보다 먼저 정해진 이리 나와 보세요.”
정해진은 언제나처럼 책상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옆에 앉은 아이가 흔들어 깨우자 무슨 일이냐는 듯 주위를 힐끗 둘러보면서 칠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해진 이리 나오라고!”
정해진이 지척거리면서 걸어 나왔다. 어깨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느릿느릿 걷는 자세가 퍽 불손해 보였다.
“정해진, 너 주관식 답지에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하지?”
그가 낮고 결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정해진의 대답이 의외로 선뜻 튀어나왔다. 그런 정해진의 태도가 그의 속을 슬쩍 뒤집어 놓고 있었다.
“그게 답이라고 쓴 거냐?”
“예”
“예? 예라고? 그게 이 자식아 왜 답이야? 너 나 놀려 먹으려고 작정하고 쓴 거지? 바른 대로 말해 이 나쁜 자식아.”
“선생님, 있는 그대로 보고 말씀하십쇼. 제가 답란에 어떤 답을 썼든 그게 정답이 아니라면 점수를 주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옳은가 옳지 않은가 그것만 보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정해진의 갑작스런 우격다짐에 그는 거의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학생에게 영향을 받는 교사는 이미 교사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 자격을 잃은 것이다. 잃은 것이다. 것이다.’ 어디선가 낮고 잔잔한 목소리가 이명(耳鳴)처럼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느닷없이 그의 주먹이 정해진의 얼굴 양쪽에 마구 떨어졌다. 정해진의 왼쪽 귓불이 찢어지면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정해진은 비슥하게 선 채로 웃고 있었다. 앞에 앉아있던 아이 두 명이 일어나 그의 팔을 붙잡았다.
“선생님, 참으세요.”
정해진의 얼굴이 금세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보건실로 가자.”
반장이 일어나 정해진을 부축했다. 그러나 정해진은 반장의 팔을 뿌리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는 밭은 숨을 몰아쉬며 교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운동장 가의 등나무 꽃향기를 흩뿌리며 다가왔다. 교정 울타리 끝에 서 있는 버드나무 두 그루가 멀리 바라다보였다.
‘그래. 이놈아. 나는 네가 부럽다.’
교실 안은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다. 정해진은 말없이 고갤 숙이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 정해진의 귓불에 밴드를 감아 준 모양이었다. 아이들 보기에 민망했던지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정해진은 잘못이 없다. 해진이를 이상하게 보지 마라.”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이 사태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전혀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정해진의 답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만 가늠해 볼 뿐이었다.
“자, 시험지 정답 풀어보자.”
여느 때처럼 문제 풀이가 진행되었다. 객관식 8번을 지나 9번 문제의 답이 불려졌다. 그때, 조용하던 교실이 다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반장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 9번 문제 답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요. 답이 두 개 아닌가요?”
여기저기서 반장의 말에 동조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갑자기 그의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이번 시험문제에서도 또 오류가 난 것이 분명했다.
저녁나절의 양유정은 한산했다. 노인들 서넛이 장기를 두고 있었고 엄마와 함께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하나가 연신 까르르 웃고 있었다. 하천을 복개한 도로의 배수구 틈 사이로 시큼한 음식 썩는 냄새가 풍겨 올라왔다. 큰길 모퉁이 왼쪽으로 희정다방 간판이 보였다. 다방 안은 매우 좁아서 테이블 네 개가 전부였는데 천으로 만들어진 소파들이 누렇게 바래 보였다. 그가 들어오는 걸 보고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내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김 선생이슈? 내가 정해진이 애비 되는 사람이우.”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온 두툼한 체구의 사내였는데 나이는 그의 연배 정도 됨직해 보였다. 전화 속에서 느껴지던 인상과는 다르게 눈매가 사뭇 부드럽고 편안했지만 어딘가 묘하게 상대를 압도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해진이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도진입니다.”
“아까는 초면에 전화로 실례가 많았소. 얼굴이 온통 일그러져 들어왔길래 갑자기 욱해서 해 본 소리요. 사실 그놈은 좀 맞아야 싼 놈이오.”
“아닙니다. 제가 좀 과했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실, 아까 첨에 전화로 했던 말은 사실이었소. 난 울화가 치밀면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성미요. 그런 나를 오늘은 아들놈이 말렸던 거요.”
“해진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얼굴을 온통 왕텡이 쏘인 것처럼 하고 들어오길래 냅다 어느 놈이냐고 캐물었더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맞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합디다. 뭐라더라? 우울한 오류선생?”
그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해진이 끝까지 그를 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화가 뻗쳐올랐다.
“해진이는 무서운 아입니다. 저도 교단에서 근 삼십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런 애는 처음 봤습니다. 교과 내용을 가르칠 때 더러는 선생들이 실수할 때가 있어서 공부 깨나 한다는 아이들에게 책잡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건 흔한 일입니다. 삼십여 년이 흐르는 사이, 무수한 아이들을 가르쳐 내 보냈지만 아무리 뛰어난 아이라도 저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진이, 이 아이는 아닙니다.”
다방 유리창으로 저녁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해진이 아버지와 그는 한동안 햇살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김선생을 잘 모릅니다만, 해진이가 내게 들려주었던 김선생에 관한 이야기가 무얼 의미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가오.”
다방 안으로 길게 드리워진 햇살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는 정해진의 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았다.
“어렵게 큰 아이요.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세상엔 결코 길들여질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소. 어찌하면 좋겠소. 김선생.”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깥은 슬슬 초저녁 기운이 내려앉는 중이었다.
“그만 두게 해야 합니다. 학교를 당장 그만 두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냥 놔두면… 학교가 그 아일 죽일지도 모릅니다. 학교는 이미…….”
정해진의 답안지가 눈에 어른거렸다. 가슴이 거북했다. 손바닥으로 심장 쪽 가슴을 지그시 문질렀다. 왼쪽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직서의 감촉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학교를 당장 그만 둬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노을이 붉다 못해 검게 멍들어 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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