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서 90도 각도로 절할까?
한국의 ‘큰절’과 비슷한 풍습이 일본에 있다면 그것은 ‘도게자(どげざ)’일 것이다. 이 차이 또한 한국의 <가정원리> 중심 문화와 일본의 <사회원리> 중심 문화의 차를 알 수 있는 예가 돼 있다.
일본에서는, 물론 특수한 경우이지만 정치가나 회사 사장 같은 책임자가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대중 앞에 사과를 할 때 땅에 납작 엎드려서 조아리는 ‘도게자’라는 자세를 취할 때가 있다. 때때로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시민에게 ‘도게자’를 하는 의원 후보도 존재하지만 이것도 물론 ‘큰절’이 아니라 더 없는 낮은 자리에서 자존심도 벗어 던지고 부탁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2013년도 일본에서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성한 최고의 인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서도 평범한 은행원인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회사 일 때문에 사죄나 부탁의 뜻으로 ‘도게자’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 그것이 드라마의 최고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했다.
한국사람들이 자신들의 최대의 예의 표현인 ‘큰절’을 가정에서만 하는 반면 일본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도게자’를 사회적 상황에서만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사람들은 방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앉는다. 사회적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자리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무릎 꿇고 앉는 것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에서 부모나 조부모 앞에 하는 경우 밖에 없다. 심지어 치마를 입고도 책상다리로 앉는 여성들이 있어 일본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한편 한국사람들이 놀라서 종종 화제로 삼는 풍경은 일본사람들이 자기 고객 앞에 선 채로 90각도로 몸을 구부려서 인사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한국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이라 흔히 “저것은 우리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갑을 보고 인사하고 있는 거겠지”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일본사람의 <사회원리> 문화로서의 예의와 그리고 겸손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여성원리> 문화에서 나오는 표현인 것이다.
만약 문화적 시각에서 이러한 차이의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실제로 다양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필자가 아는 사람 중에 “자기는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일본사람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는 한국 학생이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알게 된 일본 친구의 고향 집에 놀러 갔는데, 결국은 큰 쇼크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야기인 즉, 그 일본 친구의 집에서 친구 방에 둘이 있었는데 밤이 돼서 친구 아버지가 귀가했다. 그런데, 현관 쪽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이 일본 친구는 아버지에게 인사하지도, 자신을 아버지에게 소개해 주지도 않은 채 그대로 방에만 있었다는 것이다. 놀란 그 학생이 “왜 아버님께 인사 안 해? 아버지와 다퉜니?”라고 물었는데 “아니, 일본에서는 원래 이래. 부모 자식이라 해도 서로 간섭 안 하는 것이 좋잖아”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한국 학생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인사조차 시키지 않고 완전히 무시하며 따로따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자체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일 이후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원리>의 일본사람은 가정이 아닌 자기가 속하는 사회에 귀속 의식을 갖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집단 속에서 확립한다. 한편, <가정원리>의 한국사람들은 자기의 가정에 귀속 의식을 갖고 스스로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자기 혈통과 가정 안에서 확립하고 있으므로 그것과 완전히 떨어진 인생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에는 없는 ‘효도’라는 단어
한국에서는 부모에게 잘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너는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았냐”라고 종종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은 “부모가 있어 내가 있고, 부모가 없으면 나도 없다. 부모를 위해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효’(孝)에 길 도(道) 자를 함께 써서 ‘효도(孝道)’라고 표현한다. “부모에게 효도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부모에게 효행한다”라는 말은 쓰지만, ‘효도’라는 말은 일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효행’이란 ‘행동’이므로 부모의 ‘행동’에 감사하고 효의 ‘행동’을 갖고 보답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의 ‘효도’는 그야말로 인간이 사는 ‘길’인 것이며, 말하자면 하늘에서 주어진 도리, 즉 ‘천도(天道)’다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유교가 국교가 된 조선시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오래 전부터 역사를 통해 한국은 무엇보다도 ‘효도’의 나라였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효도 문화의 걸작인 〈심청전〉은 삼국시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불교를 배경으로 한 <효녀지은설화(孝女知恩說話)>가 조선 후기에 판소리로 완성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애창가 <어머니의 은혜>는 불교의 <불설부모은중난보경(佛說父母恩重難報經)>을 그대로 가사로 따낸 당당한 찬불가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효도’는 반드시 가정 안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근원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한국인의 혈통이나 가문, 향토, 조국, 하늘 등 모든 ‘뿌리’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있기에 내가 있으며,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고 하면서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한국사람의 애국심이다. 이러한 절실한 마음은 나라를 빼앗긴 적 없는 섬나라의 일본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알 수없는 느낌이다.
17세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말은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였다고 한다.
한국에는 일본사람들이 모르는, 역사 속에 장구히 흘러 내려온 위대한 정신문화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근본에 대한 올바른 자각과 그것을 이으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는 ‘효도’의 정신이다.
지금 한류 드라마 하나를 봐도 거기에는 아이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쓰고, 비록 남녀가 서로 사랑해도 반드시 부모님 허락을 받고 나서 결혼하며, 결혼한 후에는 부부가 부모님 앞에 ‘큰절’을 올리는 한국사람의 ‘얼’을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자신의 근원에 대해 올바르게 서려는 한국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본사람도 거기에서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