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인터넷의 급성장과 함께 점점 더 고도화되고 광대역화되어 최근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이렇게 고도화된 네트워크 안에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과 결실, 성공과 좌절로
반복되는 국내 네트워크의 역사와 질곡이 녹아있는 것이다. 국내 네트워크 업계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본다.
‘Network’란 단어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라인이나 튜브, 선 등으로 이루어져 다른 쪽과 교차하거나 만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첫 번째 정의가 내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네트워크라는 단어는 뒤를 이어 나오는 ‘구성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접속되어 있는 그룹이나 시스템’에 더욱 가까운 듯
하다. 이렇듯 ‘네트워크’란 단어의 개념 자체가 다소 애매모호하고, 현재도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며 사용되고 있어 네트워크의
개념을 절대적으로 정의내리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흔히 네트워크 업계라고 부르는 영역 안에서도 네트워크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국내 네트워크의 역사, 즉 네트워크의 도입과정과 향후의 성장과정에 대한 영역과 범위가 천차만별로 변하기 마련이다.
국내 네트워크 시장에서도 일부 관계자들은 국내에 최초로 모뎀이 소개된 1972년을 네트워크의 도입기로 정의내리기도 하고,
랜(LAN ; Local Area Network)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1983년 이후를 네트워크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의 서막을 알렸다는 점에서 모뎀을 이용한 데이터 통신시대도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업계의 관계자들이 왠과 함께
네트워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1983년을 국내 네트워크의 태동기로 정의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그야말로 변혁과 질곡을 거치면서 성장했다.
67년 ‘컴퓨터’라는
희귀한 물건 국내 첫 발 국내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도입된 것은 1967년. 당시 ‘IBM 시스템 1401’이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도입되면서 국내에 ‘컴퓨터’라는 희귀한 물건이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통계국의 IBM 시스템이 처음 가동되는 날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시연을 관람해, 정부차원에서 컴퓨터의 도입과 이의 활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후
컴퓨터의 놀라운 계산능력과 이를 이용한 효율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하리라고 인지한 정부 및 공공기관, 금융권을 중심으로 컴퓨터의 도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컴퓨터의 도입 초기만 해도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수작업의 관성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컴퓨터가 내놓은 계산결과를 주판으로 다시
검산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는 등, 실제적으로 컴퓨터의 능력을 이용한 업무효율 증대는 먼 나라의 이야기인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컴퓨터와
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업무에 활용한다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빠른 계산기능만을 제공하던 컴퓨터들은 새로운 업무비전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국내 컴퓨터 역사의 서장을 장식했던 이들 정부 및 공공기관들은 각지에 산재된 사무실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정보를 가공하는 것이 업무의 가장 큰 축을 이루는 곳이었다. 각 지사 및 사무실에서의 독자적인 업무 처리가 컴퓨터를 통해 어느 정도
효율화된 다음, 이들은 하나 하나의 단말기를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인지한 정부
및 금융권을 대상으로 IBM 메인프레임을 중심으로한 호스트와 각 터미널을 이어주는 사업이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 것이다.
KDC, 국내 최초로 모뎀 도입 1972년 최초로 국내에 모뎀을 도입한 KDC가 치안본부, 산업은행,
KIST를 중심으로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외에도 한국상역주식회사(현 한국컴퓨터), 효성컴퓨터 등이 메인프레임 시장에 진입, 국내에도 본격적인
모뎀을 이용한 메인프레임 시대가 개막된다.
당시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의 주역이었던 모뎀(Modem)은
모듈레이터(Modulator)와 디모듈레이터(Demodulator)의 합성어로,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체계인 전화선 상에 싣기위한 변조와
복조 기능을 수행했다. 1972년 당시 국내에 수입해 첫선을 보였던 모뎀은 300bps의 속도에 가격은 수백만원을 호가했다.
초기의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모뎀을 중심으로 IBM 메인프레임과 단말기를 연결해 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때만 해도 모든
기관 및 기업의 백본망은 IBM의 메인프레임 일색이었다. 이 당시의 네트워크 구조를 ‘호스트/터미널’ 구조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는 거의 모든
전산처리가 호스트인 메인프레임에서 수행되고 그 결과를 모뎀을 통해 단말기인 터미널로 텍스트 형태로 전송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랜이
국내에 첫발을 딛은 1980년대 이전의 국내시장은 메인프레임과 모뎀, 먹스(MUX ; Multiflexer)를 주축으로 정부 및 공공기관,
금융권을 중심으로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시장이 활황을 띠고 있었다.
네트워크 개화기 주도한 랜 1970년대 초,
제록스(Xerox) PARC(Palo Alto Reserch Center)의 멧 캘프와 보그스가 문서공유를 위해 고안해낸
이더넷(Ethernet) 솔루션은 향후 일반 사무실의 업무환경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랜 네트워크의 첫발을 딛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내에서는 1980년부터 1983년 사이, 정부에서 국가전산망 계획을 수립하고 데이타 통신
주식회사(현 데이콤)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네트워크 시대의 기반을 마련한다.
당시 정부는 행정·교육·국가·공안망 등 정부의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할 ‘국가전산망’ 구축을 계획했는데, 이것이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초고속국가정보망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왠 분야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네트워크 도입에 있어서는 정부 및 대기업, 그리고 전문
네트워크 업체들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1985년에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금성전선(현 LG전선), 현대전자, 대우통신 등이
전자통신연구소와 함께 한국형 랜 개발에 돌입해 본격적인 네트워크의 국산화 추진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거세게 몰려드는
외산 네트워크 제품의 영향력으로 인해 독립적인 네트워크 솔루션 개발을 꿈꾸던 국내기업 및 정부의 노력은 지지부진해지기에 이르렀다.
한편 1986년 당시 삼성전자, 금성전선, 현대전자, 쌍용컴퓨터 등의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던 국내 랜 시장은 연구소 및 대기업,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초기 랜을 구축해 1990년대 이후에 이루어지는 네트워크 활성화의 근간을 마련했다.
1980년대 등장했던 초기
랜의 주된 구축방식은 FDDI(Fiber Distributed Data Interface)였다. FDDI 방식의 랜은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100M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로, 액세스 제어를 위해 토큰 패싱(Token Passing) 방식을 주로 사용하며 이중으로 구성된
링 토폴로지를 기반으로 구축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그러나 FDDI 방식의 랜은 이더넷 솔루션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곧바로 랜 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CSMA/CD(Carrier Sense Media Access/Collision
Detection) 방식으로 패킷(Packet)을 상호전송하는 이더넷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PC 및 1990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허브, 스위치, 라우터 등의 세그먼트(Segment) 장비와 그 성장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금융권과 기업시장을 중심으로 점차 네트워크 시장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이르러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형태로 시장에 참여하는 네트워크 전문기업들이 시장에 등장해 이러한 랜 중심의 네트워크 사업을 이어갔다. 1983년에 콤텍과
컴퓨터월드(현 테라)가 등장, 기존 금융권 중심으로 네트워크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1987년 자네트 시스템, 1989년 인터링크,
하이콤정보통신, 코리아네트, 네트컴 등의 네트워크 전문 업체가 등장해 국내 네트워크 업체의 선두세대를 형성했다.
업체들은
1980년대 말 PC 보급의 확산을 계기로 랜 시장이 열림에 따라 애플, IBM 등의 개인용 컴퓨터를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판매했고, 이후
인텔의 80286 프로세서를 탑재해 워드프로세싱, 데이터베이스 관리, 공정제어 등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XT 및 AT 컴퓨터의 등장으로
기업들의 PC 도입은 마른 볏짚에 불을 붙인 듯 급격한 속도로 늘어만 갔다. 기본적으로 사무실내의 문서공유를 위해 탄생한 이더넷 기반의 랜
솔루션은 1982년 등장한 TCP/IP와 PC의 급격한 확산을 등에 업고 엔터프라이즈 네트워크의 주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네트워크 시장 성장의 견인차, ‘이더넷’ 1990년대 초 일반 사용자 대상의 2400bps 모뎀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PC통신 시대의 막이 오른다. 이에 정부주도로 설립되었던 데이타 통신 주식회사가 데이콤으로 사명을 바꾸고 보라넷을
구축했으며, 한국통신, 하이텔, 신비로 등이 당시 PC통신 시대를 주도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현재는 폭발적인 초고속 인터넷의 성장에 따라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야할 형편에 놓여있는 상태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PC의 성능이 더욱 향상됨과 동시에 가격대는
하락하기 시작해 PC의 보급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게 되고, 이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랜 시장의 급성장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초기 FDDI 방식에 이어 이더넷이 1980년대까지의 랜 시장을 이끌었다면, 1990년대 초두에는 패스트 이더넷이 랜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10 Mbps 이더넷 보다 10배 빠른 100Mbps의 패스트 이더넷이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또한 HP가 중심이
되어 개발한 100VG-애니랜이 국내에 소개됐으나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졌다.
패스트 이더넷 방식은 이론상으로는 이더넷이
제공하는 10Mbps보다 10배 가까운 100Mbps의 속도를 제공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이더넷 방식의 네트워크에 비해 2배 가량의 성능을
향상시킬 뿐이었다.
이더넷과 그 계보를 잇는 패스트 이더넷은 국내의 랜시장을 평정하며 90년대 중반까지의 국내 네트워크 시장에서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해갔다. 패스트 이더넷 방식으로 구축되어 오던 랜 시장은 1990년대 초반 스위치 및 라우터의 본격적인 도입과 인터넷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더욱 세력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시스코가 개발한 ‘인터넷 전용도구’ 라우터는 기존의 네트워크 및 장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뒤엎는 혁신으로 다가왔고, 인터넷 또한 네트워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전체 IT 시장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스위치 및 라우터의 국내 도입에는 중소규모 네트워크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들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기존 전산실을 네트워크 사업부와 통합해 해외 솔루션 위주의 SI 전문기업을 발족시키고 이와 함께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를 향한
첫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쌍용정보통신, 삼성전자 등이 중소형 라우터와 스위치, 허브 등 다양한 자체
생산품으로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섰을 무렵 이미 해외업체들의 공략이 거세지고 있어 자체 장비개발에 들어간 막대한 개발비용조차 회수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에 향후 전개될 네트워크 시장의 발전속도와 양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대기업들은 독자적인 장비개발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장비개발 사업의 고삐를 늦추게 되고, 이는 향후 이어지는 해외장비업체의 거센 국내시장 진출과 맞물려 국내에서 네트워크 장비개발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초기 네트워크 활성화, 대기업이 견인차 이들 대기업들이 네트워크 도입
초기 독자적인 제품 생산 방침을 버리고 해외 솔루션 위주의 사업을 전개해간 반면, 국내 네트워크 시장의 초기부터 일부 국내의 중소규모 네트워크
업체에서는 독자적인 장비개발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초기 네트워크 시장에서 대기업이 담당했던 네트워크 장비의 국산화는
이후 기술력에 기반한 중소 네트워크 업체들로 이어졌던 것이다. 1991년에 설립된 한아시스템과 그뒤를 이어 설립된 미디어링크, 다산인터네트 등
1990년대에 설립된 국산 장비 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ATM 솔루션에 이어 최근에는 기가비트 이더넷 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네트워크 장비를 생산해 토종 솔루션 개발업체의 자존심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해외제품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국산 장비의
시장점유율은 미미할 뿐이다.
1995년을 전후해 본격적인 성장기에 돌입한 국내의 네트워크 시장에는 ATM(Asynchronous
Transfer Mode)이 상용화되기 시작해 파란을 일으켰다. 랜보다는 왠 시장을 겨냥하고 개발된 ATM은 국내에서는 왠 시장보다 학내망을
선두로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구축되기 시작했다.
ATM은 당시만 해도 음성과 비디오, 데이터 통신 등을 셀(Cell)을 통해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이전의 가변적인 패킷 처리를 위해 많은 시간이 지연되던 이더넷 방식과는 달리 고정된 크기의 셀을
스위칭함으로써 지연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으며, 음성신호와 같이 실시간 전송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이터에 우선순위를 부여해 강력한 QoS 기능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을 부각시킨 ATM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있는 ‘매직박스’로 두각을 드러내며 향후 전개될 모든 네트워크의
패러다임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열리지 못한 매직박스, ‘ATM’ 1995년 당시
국가차원에서 추진하던 초고속국가망 사업이 ATM을 기반으로 구축되기에 이르렀고, 초고속국가망과의 연동을 염두에 둔 학내망과 같은 다양한 시장에서
ATM은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이러한 시장에서의 연승을 기반으로 왠에서부터 발전해 전송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던 ATM은 랜 백본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고 월등한 기능을 제공하던 ATM은 왠에 기반한 전송기술이라는 한계와 함께, 고가의
솔루션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인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ATM 카드 한 장의 가격이 수백만원에 이를 정도였으니,
현재의 랜카드처럼 네트워크가 구축된 사무실의 PC 하나하나에 ATM 랜카드를 설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한편,
10/100Mbps의 속도를 제공하던 이더넷은 기가비트급의 속도를 제공하는 기가비트 이더넷으로 한단계 발전해 ATM 솔루션과 네트워크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됐다. 당시 ATM 솔루션에 비해 QoS를 비롯한 다양한 성능 면에서 열세에 있던 기가비트 이더넷 솔루션이었지만, 편리한 관리
및 유지보수, 그리고 확장성의 우수성과 함께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워 ATM과 팽팽한 대결국면을 이끌었다.
국내의 네트워크
시장에서 1999년까지 이어진 기가비트와 ATM의 우열논쟁을 통해 결국 고객들은 저렴한 가격과 간편한 관리기능, 기존 이더넷에 비해 속도가
향상된 기가비트 이더넷의 손을 들어주기에 이르렀다. ATM은 현재 초고속국가망과 캐리어 사업자들의 장거리 전송을 위한 백본망 분야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뿐, 현재 네트워크 백본 시장은 기가비트 이더넷이 주도하고 있다.
‘성장’과 ‘문제’ 동시에 안겨준
해외지사 네트워크 시장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1990년대 초반, 해외의 네트워크 업체들이 지사 형태로 대거 국내시장에 진출,
본격적인 국내시장 공략에 돌입했다.
이미 음성 전송시장 공략을 위해 지사를 설립한 모토로라, AT&T 등의 해외지사들이
국내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었고, 휴렛팩커드나 알카텔의 경우 이미 80년대 말에 국내에 진출해 있었지만, 랜 및 왠 등 본격적인 네트워크
솔루션으로 국내시장 공략을 위해 해외 네트워크 업체의 지사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노벨과
로터스가 1991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것을 비롯, 이후 1993년에 노던텔레콤(현 노텔네트웍스)이, 1994년엔 스트라타콤(시스코에
인수합병), 시스코, 쓰리콤, 뉴브리지(알카텔에 인수합병) 등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뒤를 이어 자일랜(알카텔에 인수합병),
베이네트웍스(노던텔레콤에 인수합병), 유비네트웍스(뉴브리지에 인수합병) 등이 1995년에, 케이블트론(현 엔터라시스), 포어시스템(현 마르코니)
등이 1996년에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어 익스트림, 파운드리, 탑 레이어, 애로우포인트(시스코에 인수합병), 알테온
웹시스템즈(노텔에 인수합병), 유니스피어 등 국내에 진출한 해외 네트워크 업체의 지사만도 수십 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해외
네트워크 업체의 지사들은 각자 본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 및 시장의 흥망과 더불어 여타 업체에 인수합병 되는 등, 다양한 외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1990년대 중반에 진출한 스트라타콤과 뉴브리지, 포어시스템, 자일랜 등은 이무렵 ATM 명가로서의 명성을 시장에서
부각시키며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트라타콤과 뉴브리지는 자사 솔루션의 장거리 전송분야에서의 강점을 살려 캐리어급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며, ASIC에 기반한 ATM 장비를 갖춘 포어시스템과 자일랜은 기업 및 학내망 중심의 중소규모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ATM 시장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시스코가 ATM을 지원하는 카탈리스트 스위치 시리즈로 국내 ATM 시장에 참가, 국내 ATM 시장을 점령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됐다.
그러나 결국 ‘매직박스’로까지 불리우며 향후 전개될 네트워크 시장을 주도하리라 전망되던 ATM
솔루션은 기가비트 이더넷 솔루션에게 네트워크의 권좌를 내주었고,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스트라타콤은 시스코에, 뉴브리지는 알카텔에, 포어시스템은
마르코니에, 자일랜은 알카텔에 각각 인수합병되었다. 이렇듯 본사차원에서의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온 대형 네트워크 업체들은 현재도
부각되고 있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을 지속적으로 인수합병하면서 사업의 영역을 줄기차게 확장시키고 있다.
1990년대 국내시장에
진출한 대부분의 해외 네트워크 업체들이 백본 네트워크와 관련된 스위치, 라우터 등의 핵심장비 위주의 사업을 전개해왔던 반면, 2000년을 전후해
국내에 진출한 해외업체들은 익스트림, 파운드리, 주니퍼 네트웍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백본 스위치나 라우터와 같은 핵심 네트워크 장비보다는
부가적인 솔루션 위주의 니치 마켓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알테온 웹시스템즈, 애로우포인트, 탑 레이어 등의 로드 밸런싱 스위치
솔루션 전문회사나 레드백, 유니스피어 등 RAS(Remote Acceess Server) 전문업체들이 2000년을 전후해 국내에 진출한 대표적인
해외의 네트워크 장비업체다. 이들 신생지사들은 해외의 본사가 설립됨과 거의 동시에 국내에도 지사를 설립해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시장의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국내 업체 새로운 도약 발판 마련한 IMF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해외 네트워크 업체들의 지사설립은 신속한 신기술의 도입과 높은 성능을 제공하는 솔루션을 국내 시장에 공급한다는 순기능 외에도
예기치 못한 역기능을 동시에 불러왔다.
일단 해외 네트워크 업체의 지사가 국내에 설립될 경우 해외의 본사에서 지사설립에 필요한
모든 인력이 파견되지 않는 이상, 국내의 인력을 대상으로 지사 인원을 모집해야 하고, 네트워크 시장의 확산으로 인력이 부족해 지자, 경쟁 업체의
인력을 스카우트 해가는 인력 빼가기가 고질병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적게는 2~3개에서 많게는 80여개에 이르는 채널 및
디스트리뷰터들이 동일한 업체의 솔루션을 취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격경쟁이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내시장의 경우, 미국·유럽을 제외한
해외시장에서의 매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해외시장보다 ‘특별한’ 가격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출고 가격보다
값싸게 도입된 네트워크 솔루션들은 적정 수준을 초과한 국내 채널 및 디스트리뷰터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또 한 번 가격하락을 겪게되는 것이다.
결국 국내 네트워크 업체들과 해외 지사들이 무분별하게 채널 및 디스트리뷰터를 확대생산함으로써, 어느 누구에게도 이익이 남지않는
출혈경쟁만을 불러일으켜 쓸데없는 시장의 과열경쟁이라는 부산물만을 생산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현재 네트워크 시장에서도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는 출혈경쟁, 부적절한 로비, 경쟁사 인력 빼가기와 경쟁사 솔루션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 등,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네트워크
업계의 문제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3년 이후 거듭되는 성장을 계속하던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그야말로 한껏 꿈에
부풀어올랐다. 국내의 어느 사업분야보다도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네트워크 사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다른 사업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속성장은 1997년 도래한 IMF 사태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날로 높아만 가는 환율로
인해 해외 네트워크 장비 중심으로 구성되던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격심한 파동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기존 NI(Network
Integration) 업체들이 프로젝트 구축을 위한 입찰에 참가하지 않거나 아예 유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더구나 이미 프로젝트
수주를 마치고 구축업무에 돌입한 업체들의 경우, 환율로 인한 손해 뿐만 아니라 제때 장비를 공급하지 못함으로써 거액의 위약금까지 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렇듯 IMF 당시 환율의 상승으로 인해 해외 네트워크 장비 업체의 지사 및 국내 채널, 디스트리뷰터들이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던 것에 반해, 오히려 국내의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은 성장의 호기를 맞이했다. 해외 네트워크 장비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성능을
제공하던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은 해외의 네트워크 장비들이 환율로 인해 국내시장에서 고전하는 틈을 타, 탁월한 가격대 성능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국내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기가비트 이더넷으로 꽃피운 네트워크 1997년의 험난한 IMF 시대
와중에 탄생한 미디어링크가 당시 ATM 액세스 스위치 및 기가비트 스위치를 출시하면서 국내시장에서 호평을 받았고, 한아시스템이
NMS(Network Management System)를 비롯한 리모트 라우터, 워크그룹 스위치 등의 제품을 출시하며 정보통신 우정망, 한국통신
코넷망에 자사의 장비를 구축하면서 정부 및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국내 네트워크 장비의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해외 솔루션의 급락과 이의
반대급부로 이어진 국내 솔루션의 부각으로 인해 이들 국내 네트워크 업체들의 연구개발과 솔루션 출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IMF를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위축되었던 국내의 네트워크 시장은 기가비트 이더넷 솔루션의 도약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당시 새롭게 국내에 진출한 익스트림, 파운드리 등 기가비트 이더넷 스위치 전문회사들이 이러한 추세를 등에 업고 약진을
거듭했으며, 시스코, 노텔, 루슨트, 엔터라시스 등 기존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도 기가비트 이더넷 장비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기가비트 이더넷이 이끈 네트워크 시장의 부흥은 지난해 약 1조원의 국내 네트워크 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사용자 구간에서
제공되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의 활성화도 네트워크 시장의 새로운 국면을 이끌어냈다. 1999년 하나로통신이 ADSL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불붙기
시작한 국내의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경쟁은 뒤를 이어 한국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온세통신 등의 주요 ISP들이 대거 참여, 현재 500만이 넘는
가입자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사용자 구간의 대역폭이 빠른 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백본망에서의 원활한 트래픽 소통을 위한 망증설과 새로운
솔루션의 도입이 발빠르게 이루어졌다.
백본망의 증설을 위한 중대형 라우터 및 테라비트급 라우터의 도입, 네트워크 상에서의 부하
분산을 위한 웹 스위치와 캐싱 시스템, 이를 응용한 CDN 솔루션이 줄을 지어 국내에 상륙했고, 이를 통해 확보된 대역폭은 음성과 데이터의
통합을 제공하는 VoIP, VoDSL 등의 새로운 솔루션을 쉴새없이 쏟아내고 있다. 충분한 백본 및 사용자 구간의 대역폭을 기반으로 새롭게
등장한 솔루션들은 기존 장비 위주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던 NI 및 SI들의 사업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게 한다. 즉, 이들 국내 네트워크
업체들은 기존 장비 딜리버리 위주의 사업으로는 고질적인 과열경쟁으로 인해 더이상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파악하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고부가가치의 솔루션 사업에 치중하면서 수익위주로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IMF 당시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국내 네트워크
업체들간의 과당경쟁과 이로 인한 경쟁력 약화는 최근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네트워크 업계에 새로운 혁신을 요구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급격하게 성장한 네트워크 사업에 한꺼번에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듦으로 인해, 자사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기술개발이나
독자적인 제품생산을 빌미로 기성 네트워크 업체의 인력빼가기가 심화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네트워크 관련 인력의 임금 인플레 현상과 각 업체간
경쟁력 약화는 끊기힘든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또한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등한시해오던 국내 업체들은 최근 네트워크의 포화상태로
인해 더이상의 장비 딜리버리 위주의 사업이 수익성을 보장해주지 못하자 최근에야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솔루션 위주의 사업으로 급선회하고 있으나,
충분한 기술인력을 보유하지 못한채 이 또한 해외업체의 솔루션에 의지하거나 여타 기술개발에 치중하고 있는 건실한 업체의 기술인력 빼돌리기에
치중하는 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국내시장은 향후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MSP는 국내 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스로 수익성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 KDC 정보통신, 콤텍 등 전통적인 국내 네트워크 업체들 뿐만 아니라, 아이월드네트워킹, 아이에스피, 에스넷, 데이타크레프트 등 다양한
업체들이 전개하고 있는 국내 MSP 시장은 아직 고객들의 아웃소싱 마인드가 확립되지 않은체 본격적인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확실한 수익 개선책으로 지속적으로 국내 네트워크 업체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국내 시장은 MSP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할 수 있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향후 솔루션 사업의 기로가 결정된다고 보고, 향후 이들 사업자들의 행보에 첨예한 관심을 쏟고 있다.
차세대 네트워크의 주역, 광전송망과 메트로 이더넷 IMF 이후 또한번 네트워크의 부흥기를 초래한 기가비트
이더넷은 이제 랜의 영역을 넘어 왠의 영역까지도 넘보고 있다. 10/100Mbps에서 1000Mbps에 이르는 속도의 증가와 함께 전송거리 역시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 거리의 제한없이 국내의 모든 영역을 커버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탄생 초기에는 아직까지 랜의 영역에서만 사용되던
기가비트 이더넷은 최근들어 캐리어 사업자의 백본망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활용영역을 공격적으로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향후 네트워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메트로 솔루션이 최근 국내에서도 부각되기 시작함에 따라, 기가비트 이더넷의 후계자인 10G 솔루션이
기가비트 이더넷의 시장 주도권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 광케이블의 증축없이 이론상으로는 무한한 대역폭의
확장이 가능한 광전송기술의 발전과의 접합을 통해, 향후 구축될 네트워크는 메트로 이더넷과 광전송 백본망이 주축이 될것으로 업계의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아직 기가비트 이더넷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킬만한 새로운 솔루션의 등장은 예고되지 않고있어, 기가비트 이더넷과 그 주도권을 이어받은
메트로 이더넷의 전성기는 당분간 저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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