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己卯二月八日。上宴宗功于內殿。酒酣。因誦潛邸時所製詩句曰。至美不務治。大造無顯迹。驥足寧急展。鵬翔豈厲促。遂命臣分其字。衍爲 二十首 而進。 (기묘이월팔일。상연종공우내전。주감。인송잠저시소제시구왈。지미불무치。대조무현적。기족녕급전。붕상개려촉。수명신분기자。연위 이십수 이진。)/기묘년(1459년, 세조4년) 2월8일, 임금이 내전에서 元宗功臣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술로 연회가 무르익으면서, 잠저(왕위에 오르기 전 기간) 때에 지은 바 있는 시구를 암송하도록 여쭈었는데, 이르기를
至美不務治。(지미불무치)/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다스리는데 힘쓰지 않으며
大造無顯迹。(대조무현적)/천지조화는 나타내는 자취가 없도다.
驥足寧急展。(기족녕급전)/천리마의 발 오히려 급하게 편다한들
鵬翔豈厲促。(붕상개려촉)/붕새가 나는 것 어찌 서둘러 재촉하리오.
하였다.
신하들에게 나누어 글을 짓도록 명하니 20수가 넘었다.
여기에 더한다.
大化運亭毒。(대화운정독)/천지조화는 도는 것이 멈추면 독인데
否泰工相倚。(비태공상의)/불운과 행운은 工巧하게 서로 의지하구나.
天眷有所屬。(천권유소속)/하늘을 돌아보면 딸린 곳이 있는데
保佑靡不至。(보우미불지)/사람을 잘 보호하고 도와줌은 예측할 수 없구나.
<右一>
皇天眷大東。(황천권대동)/거룩한 우리나라 하늘이 돌보는데
聖主濟時否。(성주제시부)/성스런 임금도 때를 구제하지 못하는구나.
撥亂極塗炭。(발란극도탄)/도탄에 떨어진 난리를 평정하였는데
湯武豈專美。(탕무개전미)/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오로지 칭찬을 독차지하였도다.
<右二>
賢能競攀附。(현능경반부)/어질고 재간 있는 사람 다투어 붙어서
輸誠事犇走。(수성사분주)/정성을 다하여 아주 바쁘게 일하는구나.
大智屈群策。(대지굴군책)/여러 계책에 굽히는 것이 큰 지혜이니
借筯相可不。(차저상가불)/한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은 옳지 않구나.
<右三>
瑤圖開景運。(요도개경운)/秘記를 받고 큰 행운을 열었으니
明良樂際遇。(명량악제우)/밝[明]은 임금과 어진[良] 신하가 노래로 즐길 때 두 뜻이 합치되었구나.
都兪具有爲。(도유구유위)/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합쳐서 서로 토론하면
유능함을 갖춘 것이니
應知所先務。(응지소선무)/응당 알겠노니 먼저 힘써야 할 바이로다.
<右四>
發政施仁義。(발정시인의)/政事를 펼침에서는 仁義를 베풀고
覃恩先嬛寡。(담은선경과)/임금이 베푸는 은전은 홀로 먼저 적어야 하네.
烹鮮固不擾。(팽선고불요)/ 無爲의 善治는 진실로 어지럽지 않으니
擧世在陶冶。(거세재도야)/온 세상이 심신을 닦아 기르는데 있구나.
<右五>
梯航盡山海。(제항진산해)/梯山航海하여 산과 바다가 다하면
一視同內外。(일시동내외)/안과 밖을 한꺼번에 볼 수 있구나.
包涵無不容。(포함무불용)/포함하면 용납하지 않은 일 없으니
天地所以大。(천지소이대)/하늘과 땅이 큰 것이었음을 말하는구나.
<右六>
山河擔帶礪。(산하담대려)/이 나라 산하가 마치 黃河水가 띠[帶]처럼 되고 태산이 숫돌[礪]만큼 닳도록 떠맡았으니
終始期永保。(종시기영보)/처음부터 끝까지 오래도록 보존하기를 기약하도다.
如臣顧微末。(여신고미말)/臣이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亦得被洪造。(역득피홍조)/나 역시 임금의 은혜를 입었구나.
<右七>
爬羅又刮垢。(파라우괄구)/숨은 인재를 널리 찾고 또 때를 벗기니
蒼海寧遺珠。(창해녕유주)/어찌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훌륭한 인물이겠는가.
賢愚各盡才。(현우각진재)/어짊과 어리석음은 저마다 재능을 다하는 것인데
如今古所無。(여금고소무)/예로부터 드물었는데 지금도 같구나.
<右八>
臨朝重大臣。(임조중대신)/조정에 임하여는 무게 있는 大臣이어야 하고
出詩示相勉。(출시시상면)/시를 쓸 때는 서로 권면하는 말을 보여주어야 하네.
詩中有深意。(시중유심의)/시 안에 깊은 뜻이 있으면
聖謨豈不顯。(성모개불현)/임금의 통치하는 방책이 어찌 현달하지 않겠는가.
<右九>
任賢在勿疑。(임현재물의)/어진이에게 맡기면 의심이 없어야 하고
契合無緯繣。(계합무위획)/군신간에 들어맞으면 서로 어긋남이 없도다.
推誠置人腹。(추성치인복)/성의껏 추진하면 마음을 돌리나니
相與遺形迹。(상여유형적)/서로 어울리면 형상과 자취가 남는구나.
<右十>
小臣本迂儒。(소신본우유)/소신은 본래 유학과는 멀지만
每念便心悸。(매념편심계)/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여 두려웠도다.
愚蒙枉重眷。(우몽왕중권)/우매하고 굽었지만 두터운 은혜 입었다고
側足間騏驥。(측족간기기)/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라고 그 사이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는가.
<右十一>
涓埃何所補。(연애하소보)/작은 것이라도 어찌 보좌할 것인가.
大恩重山嶽。(대은중산악)/큰 은혜가 태산처럼 무겁구나.
但當盡心力。(단당진심력)/마땅히 마음과 힘을 다하여
孜孜日不足。(자자일부족)/날이 부족할 정도로 힘쓰겠노라.
<右十二>
至誠感影響。(지성감영향)/지극히 성실하면 그림자와 메아리가 감동하는데
天人誰使令。(천인수사령)/하늘과 사람이 누가 그렇게 시킬 것인가.
建業未數年。(건업미수년)/서울은 수년이 못되었지만
已見臻淸寧。(이견진청녕)/이미 보았듯이 맑고 편안함에 이르렀도다.
<右十三>
創易守之難。(창이수지난)/쉽게 만든 것은 지키기가 어려우며
霄旰當汲汲。(소간당급급)/군주가 政事에 부지런하면 마땅히 잠시도 쉬지 않네.
爲政在眞實。(위정재진실)/政事를 함에 진실이 있어야 하고
虛文非所急。(허문비소급)/빈껍데기 글은 당장 급한 것이 아니네.
<右十四>
賢路廓天衢。(현로곽천구)/벼슬길은 넓은 하늘의 네거리 길이니
濟濟集冠冕。(제제집관면)/많고 많은 갓과 면류관이 모아지겠구나.
微術至九九。(미술지구구)/작은 재주는 여든 한 가지에 이르니
寸長亦得展。(촌장역득전)/길고 짧은 것은 또한 펼쳐봐야 아네.
<右十五>
斥鷃顧何物。(척안고하물)/같잖은 메추라기 어찌 만물을 볼 수 있으며
咫尺恣飛騰。(지척자비등)/아주 가까운 거리를 방자하게 날아오르는구나.
摶風九萬里。(단풍구만리)/뭉친 바람은 구만리를 가는데
變化隨鵾鵬。(변화수곤붕)/곤붕 새 좇아서 모양이 달라지구나.
<右十六>
龍飛値九五。(룡비치구오)/용이 오른 것은 乾卦 九五의 값이니
文物方煌煌。(문물방황황)/문물이 널리 찬란해 지겠구나.
風雲倏已起。(풍운숙이기)/바람과 구름은 어느새 일어나니
鵷鷺齊翺翔。(원로제고상)/조정의 백관들은 모두 날개를 펼치고 뜻을 얻은 듯이 노닐겠구나.
<右十七>
春風扇微和。(춘풍선미화)/봄바람이 솔솔 화창하게 불어오는데
玉御臨丹扆。(옥어림단의)/임금께서 거느리고 붉은 병풍 앞에 임하였도다.
群臣齊拜舞。(군신제배무)/신하들은 무리지어 모두 절을 올리고 춤을 추니
樽俎同樂豈。(준조동락개)/술과 안주로 어찌 함께 즐기지 않으리.
<右十八>
聖澤浹萬民。(성택협만민)/聖上의 恩澤이 만민에게 두루 미치고
天威加四裔。(천위가사예)/하늘의 위엄은 사방의 변지에 더해지구나.
愼勿安小康。(신물안소강)/부디 조금 편안한 세상에 안주하지 마시고
競競願更厲。(경경원갱려)/바라옵건대 다시 힘써 나아가소서.
<右十九>
至治本無爲。(지치본무위)/지극한 다스림은 본래 한일이 없는 것이니
大道謝鐫鑿。(대도사전착)/大道라고 새긴 글씨가 고맙구나.
欲速多不成。(욕속다불성)/빨리 하자고 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없으니
遠圖不可促。(원도불가촉)/遠大한 계획을 재촉하면 옳지 않네.
<右二十>
<해설>
○潛邸(잠저)는 창업(創業)의 임금이나 종실(宗室)에서 들어온 임금으로서, 아직 위(位)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또는 그 동안.
○否泰(비태)는 본래는 《주역》 두 괘의 이름인데, 운명의 좋고 나쁨과 사정의 순탄ㆍ역경을 말한다. 여기서는 특히 세도(世道)의 길흉을 가리켜 말했다.
○大東은 《시경》 〈소아〉의 편명으로, 동방의 나라 전체가 부역과 착취에 시달리는 참상을 서술한 시인데, 그중에 “경박한 귀족들이 저 큰길을 행차하며 오락가락하여, 내 마음을 병들게 하도다.〔佻佻公子 行彼周行 旣往旣來 使我心疚〕”라는 내용이 보인다.
○專美는 칭찬을 독차지하다,
○犇走(분주)는 바삐 돌아다니며, 아주 바쁘게
○屈群策(굴군책)은 여러 계책을 굽히다,
○借筯(차저)는 한왕(漢王)이 막 밥을 먹고 있을 때 장량(張良)이 밖으로부터 들어와서 뵙고 말하기를, “청컨대 신에게 그 젓가락을 빌려 주소서. 대왕(大王)을 위하여 계획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데서 온 옛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한사람의 의견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 큰 지혜라 한 것이다.
○瑤圖(요도)는 나라의 형세를 그린 판도(版圖)나 도적(圖籍)을 말하며, 또는 왕가(王家)의 족보(族譜)를 말한다.
圖讖과 같은 의미, 秘訣, 秘記, 秘詞라고도 한다.
○明良(명량)은 순(舜) 임금이 신하들과 노래로 서로 화답하였는데, 그 노래에, “원수(元首)는 밝[明]고 신하는 어질[良]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都兪(도유)는 도유우불(都兪吁咈)의 준말. 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합쳐서 서로 토론한다는 말.
○有爲(유위)는 유능하다, 유능함,
○覃恩(담은)은 임금이 베푸는 은전
○嬛은 산뜻할 현, 홀로 경, 서고 환이란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홀로 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烹鮮(팽선)은 생선을 삶음.
곧 무위(無爲)의 선치(善治)를 비유함. 나라 다스리는 것을 마치 작은 생선을 비늘도 창자도 제거하지 않고 삶듯이 하여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老子 河上公註》
○陶冶(도야)는 도기 만드는 일, 심신을 닦아 기름,
○梯航(제항)은 산에 오르는 사닥다리와 바다를 건너는 배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帶礪(대려)는 한 나라 고조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공신(功臣) 들을 봉해 주고 결의하기를, “황하수(黃河水) 가 띠[帶]처럼 되고 태산이 숫돌[礪]만큼 닳도록 나라를 길이 편안하게 하여 자손에게 전하자." 하였다.
○顧微末(고미말)은 보잘 것 없는 것
○洪造(홍조)는 큰 조화, 큰 공덕, 임금의 은혜,
○爬羅(파라)는 손톱으로 후벼 파내듯이 남의 비밀이나 약점을 들추어냄, 숨은 인재를 널리 찾아 냄
○遺珠(유주)는 마땅히 등용되어야 할 사람이 빠지는 것
蒼海遺珠는 대해 중에서 빠뜨린 진주, 곧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훌륭한 인물의 비유.
○聖謨(성모)는 임금의 계획과 방략. 임금의 통치하는 방책
○任賢은 임현물이(任賢物貳) 즉 어진이에게 맡기고 의심하지 않는 것.
○契合(계합)은 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음.
○騏驥(기기)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준마(駿馬)
○側足間(측족간)은 그 사이에 발을 들여놓다.
○天人(천인)은 하늘과 사람, 천상의 사람, 천리(天理)와 인성(人性)의 준말, 등등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建業(건업)은 南晉의 수도가 建業임, 즉 서울을 말함.
○霄旰은 霄衣旰食의 준말로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 입고, 해가 진 후에 늦게 저녁을 먹는다는 뜻으로, 군주가 정사에 부지런함을 뜻하는 말.
○賢路(현로)는 현능한 사람이 벼슬하는 길로, 벼슬길을 뜻한다.
○値九五는 주역의 卦인 듯하다.
《주역》〈건괘(乾卦) 구오(九五)〉에 나오는 “나는 용이 있으니” 란 말이 있다. 성인이 위에 오름을 비유하는 말이다.
○倏已(숙이)는 어느새
○鵷鷺(원로)는 원추새와 백로. 이 새의 모습이 한아(閑雅)하다 하여, 조정에 늘어선 백관들의 질서 정연함을 이르는 말임.
○翺翔(고상)은 날개를 펼치고 뜻을 얻은 듯이 노닐음.
○丹扆(단의)는 단의 육잠(丹扆六箴)에서 따온 말로,
천자 뒤에 세우는 붉은 병풍에 쓴 6가지 경계. 즉 당 경종(唐敬宗)이 놀이를 자주 가고 소인들을 가까이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으므로, 이덕유(李德裕)가 단의 육잠을 올려 “정사에 부지런하고 의복을 바르게 하고 진기한 물건을 구하지 말고 충언을 받아들이고 소인들을 쓰지 말고 놀이하러 자주 나가지 말 것.”을 경계하였다.
○四裔(사예)는 사방의 邊地
○小康(소강)은 조금 편안한 세상이란 뜻으로,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의하면, 요순(堯舜) 시대를 일러 가장 태평한 시대라는 뜻에서 공도(公道)를 천하가 함께한다는 의미로 대동(大同) 시대라 하고,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주공(周公)의 시대를 일러 대동보다는 못하나 조금 다스려진 세상이라 하여 이를 소강 시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