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 예루살렘 멸망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참하여서 아무리 울어도 충분하지 않다. 즉 유다 백성의 죄와 파멸을바라보자니 슬픔이 극에 달해 이미 눈물 근원이 말라버렸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또 다른 눈물 샘이 터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밤이고 낮이고 동포의 살육을 한탄하며 울 수가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지금 이런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Calvin).
=====9:2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 고대 근동에는 여관이나 유숙하는 집이 없었다. 다만 대상들이 유숙하는 공공 건물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그네들은 보통 여기서유숙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가구나 음식 같은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때로는지붕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의 야수들의 침입 정도를 막아주는 벽만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레미야는 지금 이처럼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면 거기로피신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백성에게 내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것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고있으나, 이상과 같은 설명에서 보다시피 예레미야 선지자가 한탄조로 내뱉은 말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Clarke).
=====9:3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 활을 당긴다고 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해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거짓말이 여기에 비유되고 있다. 혀는 타인에게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본절은 참으로 적절한 비유이다(시64:3). 거짓선지자들은 수없이 심판이나 파멸이있지 않을 것이라고 혀를 잘못 놀려왔다. 백성들은그들의 거짓을 참인 줄로 착각하고 그들을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칼이 그들에게 임하였으며 그들을 모조리 파괴하였던 것이다.
=====9:4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 이웃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들이속이기 때문인다. 속인다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진리(에메트)가 없다는 것이며 또한 거짓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당시 유다 사회에 만연되었던 극단적인이기주의와 불신 풍조를 반영해 준다.
=====9:5
이웃을 속이며...악행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 혀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웃을 격려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그들은 거짓을 가르치고 타인을 모함하는 일에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켰다. 또한, 그들은 파멸을 얻고 지옥에 가기 위해 악착같이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
=====9:6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 인간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보시며(삼상16:7), 그들의 악을 지적하신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처소가 궤휼 가운데 있다고 한 것은 그들이 악한 자들과 함께 악을 공공연히 자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척하는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9:7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 여기서는 이전에 사용되었던 예화로 다시 되돌아가고있다. 이미 유다인들은 제련되지 않는 불량 금속에 비유된 바 있다(6:27-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그들을 다시 녹여서 유용하게 만들어 보시겠다는 하나님의 굳은의지가 표명된다. 택한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를 엿보게 한다.
=====9:8
그들의 혀는 치명적인 화살과 같고 그들의 입은 속임과 사기로 가득 차 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들에 대해 겉으로는 다정하게 인사하면서도 그 내심은 어떻게 하여야 그들을 해할꼬 하는 생각뿐이다. '해를 도모하는도다'라는 표현 중 '해'에 해당하는 원어 '아라브'는 맹수가 먹이를 노리며 숨어있는 것 혹은 복병이 상대의 접근을 기다리며 엎드려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9:9
벌하지 아니하겠으며...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 백성들의 이 같은 악행에대해 여호와께서 이 백성들을 처벌할 것이며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이런 나라'(고이)에 보복하실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고이'란 용어로 지칭한 것은, 이 용어가 이방 나라를 가리킬 때 주로 쓰인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매우 참혹하다. 즉, 그들은 지금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아'의복수형인 '고임'으로 지칭되는 이방나라들은 언약과 상관없이 족속들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 밖에 있었다. 아마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용어를 선택한것은 그 당시 유다인들이 표리 부동하게도 여호와의 언약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9:10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대가로 이 배도한 민족에게 닥치게 될 끔찍한 재앙으로 인해 예레미야의 감정은 극히 동요되고 있다. 새와 짐승마저 도망가고 없다는 표현 속에서 철저한 파괴와 황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와 전국토에미치는 이 민족의 참변이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내용은 여러 선지자들에게 나타나는공통된 주제이다(암4장; 미6:10-16;학1:9-11 등 참조).
=====9:11
예루살렘이 폐허 더미가 될 것에 대한 예언은 26:18에 인용된 바 미가의 예언과도동일한 내용이다(미3:12). 또한 예루사렘은 시랑의 굴이 될 운명으로 설명되고 있다.'시랑'(탄님)은 자칼(jackal)을 뜻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이리나 늑대등과 같은 짐승들인데, 이것들이 폐허가 된 도시에 굴을 만든다고 하는 설명은 예레미야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표현이었던 것이 틀림없다(10:22; 49:33;51:37; 사13:22; 34:13 참조). 본절과는 대조적으로, 메시야의 날에는 시랑이 눕던 곳도 옥토로 변하게 되리라는 예언도 있다(사35:7).
=====9:13
이는 그들이...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 그들이 처참히 멸망당하고 말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불신자들의 눈으로 보면, 유다의 패망은 당시의 국내외적정세(情勢)에 따른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요 한 민족이나 개인의 흥망 성쇠를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는 이들은 본문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9:14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 가나안 신화에는 엘 신이 최고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의 배우자로서 아세라(또는 아티랏)가 있었다. 바알은 바로 이두 신들에게서 태어난 자식으로서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바알이 가나안 신들의 계열상 최고의 신이었다. 구약과 근동의 고대 문헌을보면 이바알이란 이름이 지역 신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지명에서도잘 나타난다. 즉, 바알-하솔, 바알-브올, 바알-시돈, 바알-레바논, 바알-하람 등이 있다. 바알이란 이름이 포함된 이러한 지명들은 바알이 그 지역의수호신으로 인식되었음을 말한다. 우가리트의 종교 문서와 전설 등을 참조하면, 그 당시 수많은 종교 의식들이 바알 신과 결부되어 있었고 또 다산 제사가 성적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런 종교 행사들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었던 것이며,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그런 활동에 가담하는 것에 대해 맹렬하게 경고하였다(왕상18:20-40; 호2:13,17; 습1:4). 여호와 외의 다른 신들에게 제사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주권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이것만으로도 심판을 초래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Thompson, Harrison).
=====9:15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 그들은 가장 처절한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며, 가장 고통스러운 고난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음식과 음료 대신에 독을 마시게 될 것이다(Clarke). 한편 '쑥'에 해당하는 '라아나'와 '독한'에 해당하는 원어'로쉬'가 신29:18; 애3:19; 암6:12 등에서도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쓴 것과 돌이 같은 맥락에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C.W.E. Naegelsbach).
=====9:16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언약 파기의 결과라고 말하였으며(사1:4-9), 마모스는 포로로 잡혀 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암4:1-3). 그리고 신 28:36에 기록된 저주 목록 중에도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때문에 당시 유다 백성들은 본문과 같은 예언이 성취되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9:17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 곡하는 부녀들은 댓가를 받고 초상집에 가서 소리내어울어주는 일을 하였다. 이런 관습은 오늘날에도 근동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일랜드에도 이 관습이 대단히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의 조상들이 동방에서 건너왔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한 첫 번째 애도는 갑작스럽게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9:18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 예레미야는 이들 직업적인 애곡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일을 빨리 진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상황이 그만큼 긴박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9:19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 70인역(LXX)은 이를 '우리는 우리 집들을 포기해야(내어버려야) 한다'고 옮겼으며, 어떤 주석가들은 레 18:25에 근거하여 이를 '우리의 처소가 우리를 내어던졌다'라고 해석하지만(Hitzig, Kimchi) 이는 맛소라 본문에충실하지 못하다.
=====9:20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 아울러 이 말에는 자자 손손 애곡이 이어지게 되리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9:21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멸절하려 하느니라 - 여기서는 사망이 의인화되어있다. 이 사망이 창문을 타고 요새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자기의 희생자들을 내어놓으라고 주장한다. 사망은 거리의 아이들과 공공 장소의 청년들을 멸절시키고 말 것이다. 한편, 사망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는 내용은 고대 근동의 가나안 신화에서도 발견된다(Thompson).
=====9:22
유다인들이 대량 학살당할 뿐 아니라 그 시선조차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질 것에 대한 비유이다. 분토(도멘)는 썩는 냄새를 풍기는 거름을 의미한다. 따라서전반절은 유다인들의 시체가 밭에 흩뿌려진 거름처럼 버려져서 온 땅이 악취로 가득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그리고 뭇(아미드)은 추수를 하면서 여기저기 흘려놓은 곡식 이삭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반절은 이미 추수가 끝나 내팽개쳐진 채 돌볼사람이 없는 뭇처럼, 유다인들의 시신 또한 미처 장사지내지 못하게 되는 치욕을 당할것을 가리킨다(신21:22,23 참조).
=====9:23
문맥의 흐름상 본절과 24절은 독립된 신탁의 말씀인 듯하다.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그로부터 또는 그를 통하여 나오지 않는 지혜와 용맹 그리고 부(富)란 무의미하다. 부(富)란 것은 죽는 날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힘과 용맹도 사망에 대항할 수가 없다.
=====9:24
본절 내에는 대단히 중요한 용어 세개가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인애'(헤세드), '공평'(미쉬파트). '정직'(체다카)이다.이 세 단어들은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 함축된 의미를 다 드러내면서적절하게 번역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첫 번째 낱말인 '인애'에 해당하는'헤세드'는 구약에서 약 245번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진실한 사랑', '끊임없는 사랑', '충실함', '다함없는 헌신', '자비' 등으로 번역된다. 하나님의 활동은 그의 백성의 불성실함과 두드러지게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진실하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공평'에 해당하는 '미쉬파트'는 의를 행하는 자를 격려하고 악을 범하는 자를 징계하는 '공의' 혹은 '정의'를 의미한다. 심판자로서 여호와는 행악자들의 활동을 제한하시고 그를 처벌하신다.반면에 의인을 구원해 주시고 그를 위해 변호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압제받는 자들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러 그들사이에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었다(창16:5; 출5:21; 시26:1; 사2:4). 하나님은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받기를 원하셨던 것이며, 이것은 그가 '미쉬파트'를세우고자 하심을 의미한다. 세 번째 단어인 '정직'에 해당하는 '체다카'는 흔히 '의'가 그의 백성 중에,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 중에 편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6:33).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여호와의 날에 메시야께서 '미쉬파트'와 '체다카'를 가지고 다스리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9:6).
=====9:25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다 벌하리니 - 할례받은 자는 유다인들을 지칭하고 할례를 받지 못한 자란 이방인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모두 똑같이 여호와의 공의의 심판아래 있다. 마음의 할례가 없는 단순한 의식에 의한 육체적 할례가 하나님의심판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지는 않는다. 다음절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서 할례받지않는 자들이란 애굽의 주도로 결성된 반바벨론 동맹을 우선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같다.
=====9:26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 그들의 신전에서 머리털을 밀어버리는 관습을 가졌던 아랍의 어느 부족을 가리키는 듯하다(Harrison). 그러나 히브리 율법은 이같은 행위를 금지하였다(레19:27). 바벨론 군대가 아랍인들을 원정한 바 있는 것으로보아(49:28-33), 이들 역시 반바벨론 동맹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짙다.
본장은 8:18후에서 줄곧 언급된 바와 같이 현실적 무감각을 비판하고 그로 인한 심
판을 선언한다. 특별히 선지자의 거듭되는 회개 촉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역을 일
삼는 백성의 어리석음을 독백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궁극적으로 배교한 유다의 최종 상
태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유다 백성들 가운데 철저히 만연되어 있는 뿌리 깊은 죄악상을
토로하는 전반부(1-9절)와 (2) 바벧론의 침입과 추방으로 야기될 유다의 황폐함과 그
파멸의 원인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으로 서술하고 있는 중반부(10-16절), 그
리고 (3)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세 개의 선언과 진정한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설정하고 있는 후반부(17-26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언약 백성으리 정체성(identity)을 좀더 실제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본장은 대체로 8장에서의 내용과 유사하면서 동일한 주제들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1, 2절 | 유다의 행음과 선지자의 슬픔 |
+--------------+--------------------------------------------+
| 3-9절 | '혀'로 인하여 궤휼(詭譎)의 실상 |
+--------------+--------------------------------------------+
| 10-12절 | 하나님의 보응으로 인한 유다의 황폐 |
+--------------+--------------------------------------------+
| 13-16절 |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치 못한 대가 |
+--------------+--------------------------------------------+
| 17-22절 | 유다의 멸망을 슬퍼함 |
+--------------+--------------------------------------------+
| 23-26절 | 언약 백성의 특성을 설명함 |
+--------------+--------------------------------------------+
또한, 본장의 역사적 시점을 정하는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선지자
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일종의 '예언적 과거'-미래에 있을 사실을 마치 과거에 발생
할 사건처럼 기술하는 행위-형태의 진술들이 정확한 연대 결정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
이다. 그러나 다음의 사실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추측할 수는 있을 것이다. 즉 (1) 전
체적인 분위기나 재난이 임박하기 전, 곧 예레미야의 활동 초기의 것으로 볼 수 있고
(2) 16-21절에 등장하고 있는 애가의 내용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쓰라린 비가(悲
歌) 형식을 띠고 있으며, (3) 17-25절의 짧은 신탁 내용이 어느 정도 바벧론의 침입이
가시화된 분위기 속에서 기술된 점 등으로 볼 때 본장은 제 1차 바벧론 침입 이전 여
호야김 통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
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언약 백성으로서의 유다의 변화가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1-9절). 하
나님은 유다에 대해 '내가 어떻게...처치할꼬?'(7절)라고 질문함으로써 언약 파기에
대한 법적 대응 조치를 암시한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혀는 성(城) 안에서 이웃을 죽
이는 화살로서(3-8절) 거짓과 죄악을 도모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한
행위에 대해 처벌하고 심판할 것이다(9절;5:9, 29).
그런데 여기서 유다에 대하여 히브리어 '고이'가 사용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원
래 이 용어는 이스라엘 이외의 민족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었다. 결국 본문은 유다
가 언약에 불순종함으로써 이방 민족과 같은 위치로 격하(格下)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이다. 예레미야는 유다를 언약 외부의 민족들과 그 행위 면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현재의 유다가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음을 고지하며 하나님의 보응이 임할 것을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9절).
(2) 유다의 심판이 하나님의 율법을 내어버리고 자신의 고집대로 행동함에 기인한
다고 서술한다(13-16절). 하나님은 장차 임할 멸망을 미리 보고 탄식하며 이땅이 왜
이렇게 황폐해지고 말았느냐고 부르짖는 예레미야의 다급한 질문에 대하여 '이는 그들
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
치 가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3절0. 사실 출 19:4-8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
약을 받아 들였고 주권을 인정하였으며 순종을 다짐하였다. 바로 여기에 근거하여 예
레미야는 거듭 율법에 대한 순종의 요구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7:23). 그러나 유
다는 끝까지 율법에 불순종하여 스스로 언약을 파기하였으므로(7:24-26) 언약 속에 내
포된 저주 조항(신 28:64-68)을 발동시키게 됐다. 결국 저자는 유다의 언약 파기가 언
약적 저주로 귀결되었음을 밝히며, 파멸의 원인이 전적으로 백성들에게 있음을 주장하
고 있다.
이사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순종'이란 단순히 율법을
수납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철저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해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율법의 본질을 망각하고 단지 외형적 준수에만 그친다면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에 처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1. 유다의 뿌리 깊은 죄악상(9:1-9)
본 단락은 주로 예레미야 자신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으로 유다의 현실에 대
한 깊은 절망감이 뿌리 깊게 배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5:1-9, 20-29과 8:4-12에
서 제시한 바 있는 언약 백성의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의 실상을 재연하는 것이다. 예레
미야는 언약에 대해 불성실하고 기짓된 희망에 사로잡혀 있는 동족의 모습을 바라보면
서 고뇌에 찬 탄식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유다 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을 인식
하면서 그 슬픔을 토로하고 있는 전반부(1-5절), (2) 유다 백성들의 심판을 고지하고
하나님의 신탁을 담고 있는 후반부(6-9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
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소유하고 있던 유다가 얼마나
배도하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 단락에 있어서 중요한 해석적 문제는 주체(speaker)의 결정과 관련이 있
다. 본 단락의 내용이 매우 복합적으로 구성되어져 있어 난해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주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3, 7절 초두에 '요호와께서 말씀하시
되'의 표현은 본 단락에 예레미야의 언급과 하나님의 말씀이 연속적으로 쓰였음을 보
게 한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1, 2절 | 예레미야의 애가 |
+-------------------+---------------------------------+
| 3절 | 하나님의 말씀 |
+-------------------+---------------------------------+
| 4, 5절 | 예레미야의 애가 |
+-------------------+---------------------------------+
| 6, 7절 | 하나님의 말씀 |
+-------------------+---------------------------------+
| 8, 9절 | 예레미야의 애가 |
+-------------------+---------------------------------+
결국 본 단락은 8:18-22과 같은 예레미야의 애가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사이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첨가된 형식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또한 본 단락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두드러진 표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
로, 대부분의 애가 양식과 동일하게 초두(1, 2절)에서 강조 의문문이 드러난다. 곧
'어찌하면...할까?'라는 표현을 통하여 유다의 현실을 상징적 기법을 보여준다(7
절;6:27-30). 곧 금속시금법과 제련을 은유로 하여 현재 유다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철
저히 제련하시고 연단하심을 보여준다(7-9절). 결국 이 두 가지 표현 양식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의 현재 죄악 상황과 심각성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보응이
임할 것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
과 같다.
(1) 유다의 패망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1, 2절). 유다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유다의 파멸을 예엄하게 된 선지자는 슬픔과 절마으로 가득 차게 되었
다. 아울러 어떻게 언약 백성이 이렇게 철저히 파멸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의 시련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절박한 불안과
고뇌를 느끼며 고통에 동참하면서도(8:18-22) 결코 백성의 사악한 죄악을 덮어주거나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광야의 피난처러 도피해 버리고 싶은 욕망을 피력한
다. 왜냐하면 만약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에서 조금이라도 적응이 되어 살 수만
있다면, 매일 맹리 지켜보아야 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행악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유다의 패망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새로운 언약 질서를 대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유다가 하나님을 언약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주제넘고 부당한 행위를 함으
로써 심판을 자초하지만 완전한 멸망에 이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특히 예레미야는 아
모스와 동일하게 히브리어 동사 '피카드'곧, '벌하리라'(9a절)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본래 이 단어는 특별히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에 그 백성이 받게 될 '저
주'의 관점에서 사용되어진다. 그런데 본 단락에서는 '보수하다(티트니켐, 9b절)라는
동사와 맞물려 하나님의 보응은 인간처럼 보복의 의도로 시행되지 않고 오히려 회개와
회복의 목적으로 시행됨을 알려준다. 결국 예레미야는 유다의 반역으로 인하여 언약
자체가 파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언약 질서로 발전될 것
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깊은 절망감 속에서도 희망을 소유해야 함을 알게
된다. 예레미야는 총체적 부패로 인한 민족의 파멸 선언 앞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계
획을 의지했다. 그러므로 신자는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인
내해야 할 것이다.
2. 율법에 대한 불순종(9:10-16)
본 단락은 유다의 패망에 대한 슬픔과 아울러 예루살렘이 더 이상 민족적 자존심의
중심지가 아님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심판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과 맺은 언
약 준수의 근거인 율법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함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유다의 패망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를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0, 11절), (2) 유다
의 언약 파기의 사실로 반(反)율법준수를 지적하고 있는 후반부(12-16절)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세분하면, (가) 짧은 애가(10절), (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미칠 심판의 신탁(11절), (다) 유다의 멸망에 대한 반문(12절), (라) 그 반문에 대한
대답(13, 14절), (마) 심판에 대한 서술(15, 16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시어체와 산문체가 혼합적으로 쓰이고 있다. 특히 산문체로 구성
된 12-16절은 5:19;16:10-13;22:8, 9 등과 유사하다. 또한 유다가 하나님의 율법을 버
림으로 인해서 땅이 황패해질 것이라는 주제(13절)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신명기의
해석적 견해를 따르고 있다(신 28:15-68;왕하 17:13-23, 34-41).
이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상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다의 파멸을 매우 포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10, 11절). 이 사실은 예레미야
가 이 땅에 임할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전반적인 파멸에 대해 고심한 사실로 더욱 극명
하게 나타난다. 곧 가축들이 풀을 뜯는 광야와 목장과 산들까지도 완전히 황패해져서
가축들의 우는 쇨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심지어는 새들도 사라져 보리고 말 것이다
(4:25). 이처럼 언약 백성의 죄악을 짐승과 땅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민족적 재앙의 원
인으로 묘사하는 내용은 다른 서지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이다(암 4장;미
6:10-16;학 1:9-11). 유다 백성들의 죄악은 그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까지도 황폐
해지도록 만들었다.
(2) 유다의 추방을 율법 불이행에 따른 결과로 간주하고 있다(12-16절). 사실 가나
안 땅의 황폐와 유다 민족의 추방은 철저하게 우상 숭배로부터 기인한다. 그들은 조상
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바알들을 좇았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의 강퍅함(원문상으로는 '
그들 마음의 완강한 고집')을 따랐다. 이와 같은 유다의 행태는 몇몇 선지자들에 의해
제기되어진 사실로서(왕상 18:20-40;호 2:8-13;습 1:4) 명백히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
하는 행위이다. 그 결과로 이사야 선지자는 언약 파기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말하였과(사 1:4-9), 아모스는 사치와 안일에 빠진 사마리아 귀부인들이 포로로 잡혀
갈 것이라고 위협했으며(암 4:1-3), 미가는 예루살렘에 참혹한 심판이 있을 것으로 언
급했다(미 3:12). 이러한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한 유다는 결국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비운을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이전의 다양자한 조건과
상황 속에서 제시되어진 하나님의 교훈을 바탕으로 순간마다 자신의 상태를 재점검하
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명백한 경고를 거부하는 백
성은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이다.
3. 언약 백성의 본지(9:17-26)
본 단락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곡하는 자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는 동시에 유다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정의, 그리고 정직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
키고 있다. 아울러 언약 백성으로서의 유다가 언약 백성의 진정한 표상(表象)인 마음
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예루살렘에 대한 애도의 노래를 표현하고 있는 전반부(17-22절)와 (2) 유다의 언약 백
성에 대한 오해와 참된 언약 백성의 위치를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23-26절) 등으로 나
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서 저자는 유다가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음을 중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은 두 가지으 뚜렷한 대비 구조를 이루고 있다. (1) 전반부의 경우는
애곡하는 여인을 통해 유다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는 동시에 여기에 대한 예레미야의
진술이 첨가되고 있다. (2) 후반부의 경우는 서로 연속적이지 못한 상이한 내용들이
연결되고 있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1) 애곡하는 여인을 부를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심(17, 18 |
| | 절) |
| |(2) 그 여인을 부른 이유(19절) |
| |(3) 애곡하는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20절) |
| 전반부(17-22절) |(4) 애곡하는 여인이 사용한 만가(輓歌, 21절) |
| |(5) 예레미야로 선포된 신탁(22절) |
+--------------------+---------------------------------------------------------+
| 후반부(23-26절) |(6) 언약 백성의 하나님 인식의 근원(23, 24절) |
| |(7) 참된 의미의 언약 백성의 본질(25, 26절) |
+--------------------+---------------------------------------------------------+
또한 본 단락의 전반부에서는 '애곡'(哀哭)이란 단어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유다 백성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언약 백성에 대
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알다'(야다)와 '지혜'(하캄)가 두드러지게
쓰이고 있다. 이 사실은 참된 지혜가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데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서, 이 단어는 본서의 다른 곳-'알다'는 8:7;10:25, '지혜'는 8:8, 9-에서
도 사용되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1)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세 개의 분리된 선언을 기록하고 있다(17-21절/22절/23,
24절). 각각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다'와 같은 유시 어구를 통하여 시작하고
있다. 첫째 부분(17-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애곡하는 것이 직업인 여인을 불러 예루
살렘을 위해서 슬피울도록 하라고 하셨다. 이 여인들은 그 후에 딸들에게 동일하게 애
곡을 가르칠 것이다. 이러한 울음은 바벧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서 철저한 파
괴와 상육을 자행한 후에 끝날 것이다. 둘째 부분(22절)은 바벧론에 의해 자행된 가혹
한 살육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죽은 시시들은 낫으로 이삭을 베어 밭에 그대로 둔 것
과 같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러한 시신을 거두어 줄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선언(23, 24절)은 하나님께서 백성들로부터 기대하셨던 응답을 부(副)를 자랑하지 말
고 오직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 사실만을 자랑하기 원했다. 또한 자신의 거룩
한 속성 즉,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자비'(헤세드, 31:3;33:11;애 3:22),
하나님의 공정한 다스림을 말하는 '정의'(미쉬파트), 어떤 표준이나 규범을 가리키는
'의로움'(체다카) 등을 아기 원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언약 백성의 가장 근
본적인 규범이 되는 것이다.
(2) 언약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25, 26절). 사실 당시의 유다 백성
들이 자신들의 영원하 희망을 꿈꾸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육체적인 할례를 언약
의 본질로 간주한데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러한 외적 형식만으로는 하
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음을 밝히셨다. 역사적으로 보면 할례는 이스라엘
이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서 다른 어떤 민족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
신의 더러움을 정결케 한다는 의미로 받았던 것이다(창 17:9-14). 그렇기 때문에 예레
미야에게 있어서 육체의 할례는 내적 순종과 연결되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불순종한 유다는 결국 '할례받지 못한 마음'
(4:4)인 동시에 '할례받지 못한 귀'(6:10)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보증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외적인 예배와 봉사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만족해서는 곤란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하여 진정한 헌신에 도달해야 한다.